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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노트 ㅣ 움직씨 퀴어 문학선 1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19년 5월
평점 :
연일 어떤 연예인 부부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검색 1, 2위를 오르내리고 있어요.
권태기로 인해 이혼하자는 남편과 가정을 지키겠다며 이혼을 거부하는 아내.
드라마를 통해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 둘만의 프로포즈를 세상에 알리며 결혼했고, 3년만에 사랑이 식었음을 공개했네요.
만약 <악어노트>를 읽지 않았다면 이 뉴스를 그리 주목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녹슬어가는지 본 것 같아 너무나 씁쓸했어요.
<악어노트>는 주인공 라즈가 쓴 노트 형식으로 된 소설이에요.
라즈는 주인공의 진짜 이름이 아니라 후배 탄탄이 붙여 준 별명이에요.
대학생 라즈는 수령을 사랑하고 있어요. 라즈의 노트에는 대학생의 일상과 함께 미묘한 감정들이 적혀 있어요.
불쑥 등장한 악어는, 라즈의 또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어요.
"헤이, 친애하는 악어야, 안녕?" (122p)
청춘의 기록...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한 사람이 보이네요.
라즈는 이미 그 끝을 알고 있었나봐요.
"나는 나 자신이 되기 싫다. 나는 수수께끼의 끝을 알지만,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보기 싫다.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너를 미친 짐승처럼, 뜨거운 불꽃처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된다. 허락할 수 없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며 나는 피범벅이 될 것이다.
너는 나를 일깨워 나 자신의 열쇠가 되게 할 것이다. 그것이 열리는 순간 비방이 내 몸을 날려 버리고
자신을 증오하는 나조차 이 육체 안에 존재하는 나를 제거하려 들 것이다." [노트 1-8 중에서] (37p)
소설이라기에는 너무나 세밀하게 내적 갈등과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묘사하고 있어서 진짜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았어요.
주인공 라즈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예요. 당시 대만 사회에서 동성애는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자신을 증오하게 된 라즈.
저자 구묘진은 실제 레즈비언이며 <악어노트>가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이라고 해요. 1994년 출간된 이후 대만의 '혼인평권'운동을 촉발시켰고, 대만은 아시아 최초의 동성혼 법제화 국가가 되었어요. 이 책의 국내 초역본이 출간된 5월 24일 대만에서는 여성 총통 차이잉원의 서명하에 동성 부부 526쌍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해요.
구묘진은 만 스물다섯 살이었던 1994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임상심리학과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대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상이 중국시보 문학상을 수상했으나 유작인 <몽마르트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이럴 수가... <악어노트>에서 그토록 절절하게 고통을 호소하며 자기를 부정하고 학대했던 모습이 진심이었다니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어요.
자신의 정체성을 '악어'로 묘사한 것은 정말 탁월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어요. 악어를 볼 때 한 번도 성별이 뭘까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악어는 그냥 악어일 뿐이지 암컷이냐 수컷이냐 따져본 적이 없었어요.
악어는 알에서 부화활 때 물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고 해요. 온도라는 환경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성별이, 왜 유독 인간에게는 차별의 조건이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인권 차별이자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동성애라는 표현도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데 성별을 표시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문제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해요. 사랑하는 게 죄가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마음껏 사랑해도 아픈데, 사랑하지 못하면 얼마나 더 아플까요. 어쨌든 누구라도 사랑했다가 헤어지면 아픈 거예요. 유명인이라서 더 특별한 게 아니라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그들을 떠올리면서 <악어노트>의 다음 문장을 마음으로 전했어요.
"하우의 시 중에 「달콤한 복수」라는 시도 있잖아?
네가 한 번쯤 들어 봤을 시 같아서 예를 든다.
이 시의 제목처럼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복수하려는 것이고,
복수심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 또 싸웠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거든.
이 세 가지는 함께 어우러져 있는 거야.
... 애정 욕구가 파괴적으로 변질되어 드디어는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출구도 없이 제자리에서 회전하게 되는 거지.
이건 정말 무서운 일이야." (12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