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듣고 있어요 - 혼자인 내게 그림이 다가와 말했다
이소라 지음 / 봄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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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릿찌릿 텔레파시가 통한 줄 알았어요.

"혼자인 내게 그림이 다가와 말했다.

지금 내가 듣고 있어요."

이럴 땐 이렇게 말하죠. "내 말이~~"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어요. 그림이 주는 위로와 격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열네 명의 화가를 소개하고 있어요. 단순히 작품 해설을 해주는 게 아니라 화가의 작품과 삶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어요.

그 화가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아냈어요. 각각 전혀 다른 작품 세계를 보여주지만 한 가지 공통된 메시지가 있어요.

그건 바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한, 누구도 내게 상처 줄 수 없다'는 것.

만약 이 책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서 그림들을 봤더라면 어땠을까요.

제가 받는 느낌은 똑같이 좋았을 거예요. 좋은 건 좋은 거니까.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놓쳤을 거예요. 화가들의 삶, 그들이 견뎌낸 시련과 고통...

그러니까 우리 눈 앞에 놓인 아름다운 그림들은 화가가 자신의 고통을 승화해낸 결과물인 거예요.


저자는 그림을 통해 다음의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어떤 말들이 당신을 힘들게 하나요?"

"어떤 순간들이 당신을 괴롭게 하나요?"


세라핀 루이(1864~1942)는 프랑스 화가예요.

세라핀이 한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일곱 살이 되기 전에 아버지도 눈을 감고 말았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잡일을 하며 생활하다가 열일곱 살 나이에 중산층 가정 식모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의지할 곳 하나 없던 세라핀이 유일하게 위안을 얻었던 곳은 성당이었어요. 성당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세라핀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어요.

그녀는 단 한 번도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예술적 열망이 불꽃처럼 피어올라, 식모살이로 번 푼돈으로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렸어요.

세라핀의 그림은 원색적이고 원시적인 이미지들과 싱싱한 꽃송이와 과일들, 스테인드글라스를 닮은 형상들이었어요.

독일 출신의 미술 평론가이자 화싱이었던 빌헬름 우데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세라핀의 그림을 보고 감탄했어요. 그림을 그린 사람이 친구 집의 가정부인 세라핀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놀랐어요. 세관원이었던 앙리 루소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 지원한 사람도 바로 우데였다고 해요. 우데의 만남 이후 세라핀은 전시회를 열 수 있었고, 난생처음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값비싼 미술 도구로 마음껏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1930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으로 타격을 입은 우데는 더 이상 세라핀을 지원할 수 없게 되었어요. 이때부터 세라핀은 극도로 불안정해졌어요. 그 와중에도 세라핀은 붓을 놓지 않았어요. 이웃 사람들은 세라핀에게 미천한 여자가 무슨 예술이냐며 비난했다고 해요. 차갑고 비정한 현실 앞에서 세라핀을 구원해준 건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캔버스였어요. 세라핀의 꽃그림은 굉장히 열렬한 감정이 느껴져요.

세라핀의 생애를 알고 그녀의 작품이 보니 그녀는 행복한 예술가였던 것 같아요. 불행한 현실을 뛰어넘는 예술의 경지.

남들 시선 때문에 진짜 나를 놓치고 있다면 세라핀의 그림을 한 번 보세요.


책 속 그림들 중 제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예르의 공원」(1877년)과 찰스 커트니 커란의 「선릿 골짜기」(1920년)이에요.

싱그러운 꽃향기를 내뿜을 것 같은 꽃길을 지나서 산으로 올라간다고 상상해보세요.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허리에 손을 얹고 아래를 내려다 봐요.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아요.

이러저러한 이유들과 좋지 못한 상황들 때문에 울적하고 속상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럴 때 산책하거나 등산을 하면 좋겠지만 당장 움직일 수 없다면 그림을 보면서 저 그림 속에 내가 있다고 상상하는 거예요.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억지로 상상하지 않아도 그림과 하나되는 느낌 드는, 그런 그림이 있어요.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그림.


이 책은 다정한 친구와 함께 화가와 그림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요.

낯선 화가의 삶이 알게 되면서 그의 작품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깨달았어요.

그림이 보여준 순간, 찰나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지금 이 순간, 나는 참 행복하구나."

나를 힘들게 했던 말들과 괴로웠던 순간들이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가버렸나봐요.

남은 건 사랑이네요. 사랑하는 나,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며 보낼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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