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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공포증
배수영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7월
평점 :
햇빛 공포증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병명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김한준이라는 서른다섯 살 남성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가 구조되면서 갑작스럽게 발병된 것으로 나옵니다.
햇빛을 보자마자 발작을 일으키며 기절하는 증상.
햇빛 공포증이라는 진단명은 이름 자체가 공포심을 자극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햇빛을 안 보고 살 수 없으니 말입니다.
드라큘라나 좀비와 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라면 모를까.
물론 이 소설은 판타지적인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한준이라는 남자가 햇빛 공포증이 발병하면서 정신병원에 갇히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헉! 멀쩡한 성인 남성이 잠깐 실신했다고 정신병원에 갇혔다고?
첫 장면부터 놀랐을 사람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015년으로, 본인 동의 없이 정신병원 강제입원이 가능했던 시기랍니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강제입원을 위헌으로 결정하고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었다고 합니다.
한준이 겨우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처음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다정하면서도 오싹했습니다.
"이제 슬슬 문이 열릴 때가 되지 않았나? 너무 오래 닫혀 있었어." (11p)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한준을 담당하는 정신과의사 김주승.
한준이 쓰러졌던 장소는 연인 이희우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였고, 그날은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하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의 김주승은 이희우가 김한준이 발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구급차를 불렀으며, 환자의 치료와 입원에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걸까요.
정신을 차린 한준은 병원을 탈출하여 희우의 아파트 앞까지 갔지만 공포증 환자라는 누명과 함께 따라붙는 섬뜩한 기시감에 괴로워하다가 제 발로 병원에 돌아왔습니다.
이 장면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황당하고 억울하게 환자가 되어 갇혔는데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연인을 만나기 두려웠다면, 일단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라는.
그러나 곧 그 이유가 밝혀집니다.
주승은 최면요법을 통해 한준의 무의식 속에 갇혀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냅니다. 햇빛 공포증보다 더 끔찍한 기억들...
시작부터 너무나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김주승이라는 인물 때문에 햇빛 공포증보다는 그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적의 혹은 악의.
인간의 뇌는 많은 기억들을 망각으로 덮어버립니다. 우리는 잊었다고 여기지만 뇌에는 어딘가 깊숙하게 숨어있는.
그 기억들이 우리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팠으니 너도 아파야 된다는 마음, 즉 복수는 또다른 불행일 뿐입니다.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면서 두 사람을 지켜봤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건 무엇일까요.
햇빛 공포증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미움을 봤습니다. 사랑이 없는 마음은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