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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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네요.

류시화님의 <지구별 여행자>.

어쩌면 나만 변해버린 느낌이랄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잊은 것 같아요.

별일 없는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언제든지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오랜만에 다시 읽는 <지구별 여행자>는 잊고 있던 소중함을 일깨워주네요.

살다보면 다 아는 것 같아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 투성이에요.

그래서 나이만 먹은 어린애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살아 온 세월만큼 지혜도 쌓인다면 좋으련만... 잠시 그 지혜를 빌려보려고 해요.


식당 주인 라자 고팔란 씨는 말끝마다 명언을 늘어놓기 좋아했어요.

점심 한 끼 먹으러 왔다가 잘난 체 하는 식당 주인 설교로 허기를 채워야 하니, 손님 입장에서는 절대로 다시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류시화 시인은 그 근처를 갈 때마다 고팔란 씨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대요. 음식 맛도 맛이지만, 한 접시에 명언을 대여섯 개쯤 얹어 내오는 식당 주인이 자꾸 보고 싶어져서. 그 날도 수프에 소금이 너무 들어가 약간 짜다고 지적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라자 고팔란 스승께서 말씀하셨대요.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오!"   (105p)


그날 밤 야간열차를 타고 멀리 떠나야 했는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라자 고팔란 씨가 인도 만두 사모사 몇 개와 함께 마지막 명언 하나를 선물해주었대요.


"어디로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106p)


뭔가 이 말이 가슴에 콕 박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인생의 길에서 어디로, 얼만큼 가든 나는 '그곳'에 있다는 사실.

지금 여기.

여행을 떠나면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재미있는 건 가장 낯선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

그때도 지금도 똑같은 것 같아요.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에요.

다 알게 될 즈음 비로소 자유롭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지구별 여행자.


"내가 누구이든지, 그리고 내가 어디에 서 있든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축복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여행자로서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신에게만 의지해 살아가는 방랑 수도승들은

차츰 나의 스승이 되었다.

'단순한 삶, 고결한 생각'이라는 인도의 슬로건이

내 메모지 첫 장에 기록되었다." (246p)


2019년 <지구별 여행자>는 작은 노트가 함께 왔어요. 여행을 하며 메모해도 좋고, 일상을 끄적끄적 낙서해도 좋을 것 같아요.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당장이라도 인도로 떠나야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직까지 가보진 못했네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꼭 인도를 가야할 필요는 없더라고요. 여행의 이유를 알고 있다면 여행 그 자체로 충분한 것 같아요.

여행은 떠나기 전이 가장 설레고 즐거워요. 일단 여행이 시작되면 계획이 어긋나고 불편한 것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 뭔가 얻는 것이 있다면 그건 마음 속에 모두 담겨 있을 거예요. 그 마음에 담긴 것들이 바로 나라는 존재를 설명해줄 거예요. 그렇게 조금씩 나를 알아가요.


"아즈 함 바훗 쿠스 헤!" (291p)

(오늘 난 무척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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