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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ㅣ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은 대단해요.
이름만으로 선택하게 되는 책.
<잠자는 숲>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에요.
저는 가가 형사가 초면이네요. 가가 교이치로는 누구인가요.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에 태어나서 30년 넘게 그의 작품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에요.
우와, 30년이라니~~ 이 정도 세월이면 아무리 소설이라도 실존인물과 다를 게 없는 존재감이 느껴질 듯.
재미있는 건 그 존재감이 셜록 홈즈와 같은 경이로움이 아니라 이웃과 같은 평범함이라는 사실.
과거에 교사로 재직하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형사가 되었다는 점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암튼 <잠자는 숲>에서 가가는 30대 전후의 신입 형사로 등장하여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사건을 풀어가고 있어요.
실제 수사를 하는 형사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독자 입장에서는 그저 수사 과정을 지켜볼 뿐.
가가 형사는 교사였던 과거 때문인지 원래 성격인지는 모르겠으나 사건에 관하여 노트에 적으면서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요.
다음과 같이...
4월 10일 일요일, 네리마구 히가시오이즈미의 다카야나기 발레단 사무실에서 살인사건 발생.
내 차로 직접 현장에 갔다. 23시 25분 현장 도착.
피해자의 신원은 불명. 피의자는 다카야나기 발레단 단원 겸 사무국 직원 사이토 하루코(22세). (30-31p)
신입 형사 가가는 베테랑 형사 오타와 함께 현장에 갔어요.
석 달 전쯤에 가가는 상사가 소개해준 여자와 발레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바로 다카야나기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였어요.
생전 처음으로 발레를 관람하는 가가는 화려한 발레 공연 1막은 흥미진진하게 보다가 조용하고 서글픈 멜로디가 나오는 2막에서는 그만 졸고 말았어요. 막간의 휴식 시간, 같이 갔던 여자의 얼굴에서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고, 당연히 퇴짜 맞을 예상을 하며 3막에서 실컷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3막에서 검은 의상의 발레리나가 등장하여 가가의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스토리로 봐서는 백조의 연인인 왕자의 마음을 빼앗는 악역인 흑조인데 중간에 연달아 몇 십 번이나 회전하는 장면에서 극장 안에 박수가 일었어요. 가가도 감탄하면서 손뼉을 쳤어요. 다카야나기 발레단의 프리마발레리나는 백조를 연기하는 다카야나기 아키코라고 했는데, 가가의 눈에는 그 흑조 발레리나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갖고 있었어요. 그 발레리나가 바로 아사오카 미오였어요. 피의자 사이토 하루코의 절친이자 함께 살고 있는 동거인.
미오,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가가는 생각했어요. 가가 본인은 단순히 팬심이라고 하는데, 이건 누가봐도 첫눈에 반한 거죠.
다카야나기 발레단 사무실 살인사건 이후 또 한 번의 살인사건이 발생했어요.
이번에는 가지타라는 연출가.
놀라운 건 저녁 6시 반 개막을 앞두고 마지막 리허설 도중에 의자에 앉아 있던 가지타가 돌연 쓰러졌다는 거예요.
가지타가 입고 있던 면 셔츠 등판 한가운데 다갈색 얼룩이 묻어 있었는데, 살갗에 바늘 자국의 상처가 있었어요. 사인은 중독사.
도대체 누가, 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걸까요. 처음엔 이 질문에 답을 찾았어요. 그러다가 발레리나의 삶을 주목하게 됐어요.
발레리나의 삶.
예전에 최고의 발레리나 강수진님의 다큐를 보면서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피나는 노력을 알게 됐어요.
오로지 발레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매일 발레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그녀는 말했어요.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잠자는 숲>을 읽으면서 발레리나의 눈물을 보았어요.
문득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뭘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게 있을까요.
솔직히 가가 형사는 로맨스 능력으로 보면 꽝인 것 같아요. 이토록 어설프다니... 많이 아쉬웠어요.
어쩌다보니 사건 해결보다 딴 데 마음이 가 있었네요.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무시무시한 살인사건 이면에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