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구역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구역>은 섬뜩한 좀비 영화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후의 밤'이 세상을 덮쳤을 때 역병에 감염된 사람들이 괴물로 변해가면서 지옥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생존자들은 안전한 맨해튼섬, 일명 '제1구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은 마크 스피츠인데,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는 지금 수색대원으로 남은 좀비들을 처리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비가 내린 지 나흘째 되는 금요일 오후, 침묵 속에서 마크 스피츠는 스스로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그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을 쉽사리 해내는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적절한 얼굴 보호대도 없이 괴물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물품 지급 순위는 먼저 버펄로가 필요한 것을 지급받고, 그다음 순서는 군대, 그다음은 민간인, 그리고 마지막이 수색대입니다.

수색대는 총알만 빼고 모든 물품에서 지급 순서가 최하위입니다. 반면 해병대는 가볍고 절대 뚫리지 않는 철선, 훌륭한 통풍구, 목 보호대가 갖춰진 최고급 얼굴 보호대를 갖고 있습니다. 마크 스피츠의 수색대는 오메가 팀으로 케이틀린이 팀장이고, 게리와 마크가 팀원입니다.

생존자들은 모두 최고위층들이 사는 버펄로 행 표를 얻고 싶어 합니다.

버팔로는 미래를 주조하는 곳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습니다.

재앙이 벌어지기 전에 '인간의 불행에 대한 허카이머 해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거액을 번 심리치료사 닐 허카이머 박사는 전문용어 PASD를 들고 나왔습니다.  '종말 후 스트레스 장애(Post-Apocalyptic Stress Disorder)'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입니다. 닐 허카이머 박사는 이 병명을 만들어낸 직후 버팔로행 헬기에 올랐습니다. 그는 생존자의 75퍼센트가 그 병을 앓고 있고, 나머지 25퍼센트는 그 전에 이미 앓고 있던 정신병이 대재앙으로 더 악화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 100퍼센트가 미쳐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버펄로는 <PASD를 견디며 사는 법>이라는 팸플릿을 만들어 각 캠프에 보냈습니다.

마크 스피츠를 포함한 모든 생존자는 PASD를 앓고 있습니다. 마크 스피츠가 볼 때 이 자료들은 병을 진단하기 위한 기준이라기보다는 삶 그자체를 요약해놓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최후의 밤' 이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삶.



"그가 애틀랜틱시티에서 돌아와 부모님의 침실 문을 열었다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섬뜩한 짓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당연히 그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몸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아버지의 창자 한 조각을 홀린 듯이 열정적으로 갉아 먹고 있었다.

... 그것이 그가 겪은 최후의 밤의 시작이었다. 모두 저마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잇었다."   (105p)


사람들은 생존자들을 미국불사조라고 하다가 줄여서 '불사조'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말이 정착지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정착지들은 새롭게 포장되어 캠프 14는 '새로운

전망'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로어노크는 '콸콸 흐르는 개울'이 되었습니다. 마크 스파츠가 처음으로 경험한 민간 캠프의 이름은 '행복한 땅'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해골, 좀비들을 '그것'이라고 지칭하는 반면 붙박이 망령은 '그' 또는 '그녀'라고 지칭합니다.

어떤 사람은 골칫덩이 해골이 되고, 어떤 사람은 붙박이 망령이 되는지 버팔로도 그 이유를 몰라서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찾고 있습니다. 붙박이 망령이 되는 사람은 1퍼센트입니다. 버팔로는 역병이 인간의 몸을 변형시켜 병을 퍼뜨리는 완벽한 수단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마크 스파츠가 물었다. "묵시록이 무슨 의미예요, 아빠?" 그러자 아버지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미래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빠질 거라는 뜻이야."   (174p)


마크 스피츠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단순히 좀비 영화로 묘사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극한 공포 뒤에 오는 슬픔과 허무... 지옥의 묵시록.

역병에 감염된 괴물들을 좀비라는 단어 대신 유령 내지 망령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한때는 인간이었던 존재들이 인간성을 상실한 순간 육체는 있으나 영혼은 없는 껍데기 같은 망령이 되고 맙니다.


게리가 물었다. "사람들이 왜 늘 마크 스피츠라고 불러?"  (197p)


구조대에서 마크 스피츠는 저격수를 맡았고 그날 그들이 맡은 곳은 I-95번 도로의 엉망이 된 구간이었습니다. 강은 다리에서 6미터 아래에 있었습니다.

본능을 따랐다면, 마크 스피츠는 지금쯤 다리에서 떨어져 물속에 있어야 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가 수영을 할 줄 모른다고 동료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끝내주는군. 이제부터 네 이름은 마크 스피츠야.

마크 스피츠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올림픽 사상 최초로 7관왕이 된 미국의 수영선수라고 합니다. 사실 그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수영을 잘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흑인들은 헤엄칠 줄 모른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롱한 것입니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한편으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역병 환자인 '그들'로 변경되었을 뿐이니다. 세상에는 계속 죽어 있어야 마땅한 것들이 많지만, 그것들은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마크 스피츠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반전은 스스로 편견을 깨닫는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말의 시대에서 제1구역처럼...


마크는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희망은 우리를 마약중독으로 이끄는 초기 약물과 같아. 아예 손을 대지마.   (26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