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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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새벽만 되면 열이 38.2도까지 올라요."

"지금은 전 세계에서 매주 신약이 출시돼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어요."

미클로스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부서졌다. 그 일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났기 때문에 그로서는 돌아볼 시간조차 미처 없었다.

모든 걸 뒤집어엎는 지진 같았다.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게 부끄러워서 그는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르타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돌렸다.

"당신은 끔찍한 시련을 견뎌내고 살아남았어요. 그래요, 살아남았어요, 미클로스.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아요. 이제 이 순간만 극복하면 목적지가 나타날 테니까요."  (141p)


<새벽의 열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헝가리의 유명 감독 가르도시 피테르의 부모님 이야기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벽장 맨 밑바닥에 보관된 편지다발을 50년만에 꺼냈고, 갇혀 있던 두 사람의 놀라운 과거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적 같은 사랑으로 태어난 아들이 그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헝가리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미클로스가 스웨덴의 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다가 폐결핵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됩니다.

스물다섯 살 미클로스는 이제 겨우 살아났는데, 의사로부터 다시 죽음의 선고를 받았으니 그 충격이란...

새벽만 되면 열이 나는 증상은 마치 촛불처럼 그에게 남아 있는 생명의 열기였는지도 모릅니다.

미클로스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아있음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결혼을 결심합니다.

누구랑 결혼할 것인가... 그는 먼저 스웨덴 난민 등록 사무소에 부탁하여 자신처럼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117명에 달하는 헝가리 여성들의 이름과 주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들에게 차례대로 편지를 썼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이틀인가 사흘 뒤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받는 사람의 이름만 다를 뿐, 편지 내용은 다 똑같았는데도 그는 묵지로 편지를 복사하지 않고 일일이 정성껏 썼습니다. 드디어 117개의 봉투에 우표를 붙였습니다.

117통의 편지를 받은 여성들 중 답장을 보낸 사람은 열여덟 명이었고, 그 중 한 명이 릴리였습니다. 열여덟 살인 릴리는 신장에 통증을 느껴 의식을 잃는 바람에 재활센터로 실려왔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친구가 된 주디트가 편지를 보낸 젊은 남성에게 최소한의 동정심으로 답장을 하라고 설득하는 바람에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미클로스!

어쩌면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여성을 닮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전 데브레센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한 살 때부터 부다페스트에서 컸거든요.

그렇긴 하지만 전 당신을 자주 생각했답니다. 당신이 쓴 편지의 직설적인 어조가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당신과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기로 결심했답니다.

... 저에 관해서 딱 한마디만 하겠어요. 전 잘 다려진 바지나 정성들여 빗질한 머리에는 혹하지 않아요.

저를 매혹시키는 건 오직 그 사람의 인간성뿐이거든요."   (28-29p)


사실 릴리도 병명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침대에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살고 싶은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답장을 썼습니다.

그 마음이 편지에 담겨 있었던 건지 미클로스 역시 릴리의 답장이 마음에 들었고,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오직 릴리에게만.

6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 두 사람은 결혼을 결심합니다. 사랑의 힘은 기적처럼 미클로스의 몸을 치유합니다. 이제 새벽마다 몸열기를 잴 필요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여준 미클로스와 릴리의 사랑은 홀로코스트를 이겨낸 희망의 증거이기에 더욱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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