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배윤민정 지음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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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이따위 속담을 아직도 떠드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절대로 읽지 마세요.

책이 아까우니까. 그리고 저 속담은 진즉에 국어사전에서 삭제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는 배윤민정 님의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과정은 험난하였으니...

유별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였음을 깨닫기까지.


"우리 모두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은 나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11p)


결혼은 낭만과 거리가 먼 현실이라는 말,

아마도 결혼한 사람들은 뼈저리게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는 '그깟 호칭'일 수 있지만 그 호칭으로 시작된 가족간 갈등을 보면서 그 심각성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만약 호칭이 별 게 아니었다면 이토록 시끄럽지 않았을테니까.


"너만 조용히 있으면 아무 문제 없잖아?"  (168p)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평화'가 고작 약자의 희생과 침묵을 강요한 결과였다면 강력히 거부합니다.

저자의 투쟁기를 보면서 뜬금없이 동화 <인어공주>가 떠올랐습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마녀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팔고, 두 다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말 못하는 인어공주를 그냥 예쁜 인형 취급합니다. 인어공주의 언니들은 마지막으로 왕자의 목숨을 끊고 저주를 풀라고 조언하지만, 인어공주는 끝까지 왕자를 위해 거품으로 사라집니다. 비극적 결말이 싫기도 하지만 인어공주의 태도가 가장 못마땅합니다.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동화에서 주목할 점은 인어공주가 본연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이 된 순간 목소리를 잃었다는 점입니다. 왕자가 인어공주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인어공주의 사랑은 혼자만의 착각일 뿐입니다. 서로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없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이 동화가 주는 교훈을 제대로 알려주려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것과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저 아름다운 인어공주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윗사람 아랫사람이 문제라면 내가 제일 아랫사람 할게. 그러면 된 거 아니야... "

"지금 제가 윗사람 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세요? 

제가 겪은 일이 차별이고 폭력이기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요."   (200p)


남편의 아버지가 일을 무마하기 위해서 자신이 제일 아랫사람을 하겠다는 말이 너무나 억지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정상 가족'의 이미지 속에는 가부장이라는 위계 질서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집안의 가장이며 최고권력자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가정폭력을 범죄가 아닌 사생활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윗사람 아랫사람,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흔히 들었던 그 말이 얼마나 인권 유린이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부부 관계가 평등하듯이 부모와 자식도 평등해야 한다는 것.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 우리는 모두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인간입니다.

평등하다는 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위계와 서열이라는 야만스러운 행태로 평등을 짓밟고 있었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속담 역시 다르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미꾸라지는 치열하게 움직이는 것이 마땅하고, 그로 인해 물은 산소가 공급되어 더욱 맑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의 투쟁기는 혼탁한 우리 사회를 맑게 만드는, 유의미한 도전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우리의 문제니까요.


"이제 내가 말한다. 당신들이 들을 시간이다."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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