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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당신 머릿속에 거머리가 있어요."
...
"거머리라 말한 그건, 연결체라고 불리는 거예요.
연결체는 뇌에 자리한 채 당신의 시청각 정보와 후각 정보를 해킹해서 누군가에게 연결하죠.
잘 들어요. 연결체가 해킹한 당신의 감각정보를 통해 당신과 똑같이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 누군가가 있어요.
놈이 진짜 거머리이자 흡혈귀죠. 당신 인생의." (12-13p)
만약 누군가 당신 뇌에 연결체를 삽입해서, 당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세뇌 혹은 조정을 당하고 있었다면,
그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미 벌어졌다면 처음 드는 감정은 공포, 그 다음은 분노일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돈, 명예, 권력 그리고 늙은 육체를 가진 당신에게 거액의 돈만 내면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이 달콤한 악마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김호연 작가님의 신작 『파우스터』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에요.
안타깝게도 『파우스트』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찾아봤어요.
『파우스트』는 독일의 위대한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60여 년의 긴 세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해요.
이십 대 청년 괴테가 집필하기 시작하여 여든두 살 노인 괴테가 완성했으니 그야말로 괴테의 인생작, 대표작이라 할 수 있어요.
파우스트는 '행복한 사람'이나 '행운아'란 뜻의 라틴어 '파우스투스 Faustus'에서 유래했대요.
### 괴테가 창조해 낸, 가장 위대한 세기의 드라마 『파우스트』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서라도 영원한 진리를 찾고자 했던 파우스트의 끊임없는 시도와 도전의 여정은
실패와 절망을 딛고 천상에서 지상을 거쳐 지옥에까지 이른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네는 날 마음대로 할 수 있네.
그러면 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네.
죽음의 종이 울려 퍼지고, 자네는 임무를 다한 걸세.
시계가 멈추고 하늘이 떨어져 나가고, 내 시간은 그것으로 끝일세."
- 열린책들 세계문학 073 『파우스트』본문 중에서
김호연 작가님은 스무 살 문학청년 시절에 읽다가 포기했던『파우스트』(1부 1829 / 2부 1831)를 마흔 넘어, 소설가가 된 후에 읽었고, 이렇듯 『파우스터』(2019)를 탄생시켰어요. 젊음을 누리고 싶은 부유층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첨단 시스템 회사 '메피스토'에서 고객은 '파우스트'이고, 고객에게 제공되는 젊은이는 '파우스터'라는 설정이 너무나 기막히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상상에 그쳤던 인간의 욕망이 점점 실현되고 있으니까요.
첫 장면은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 박준석이 의문의 교통사고 후 경이라는 여자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 내용이에요.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준석이 느끼는 혼란과 충격은 곧 자신을 조정하는 파우스트에 대한 복수심으로 변해요. 얼핏 스릴러물 같지만 인간의 본질과 그 욕망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너무나 철학적이에요. 메피스토와 파우스트 계약의 핵심인 '돈'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지만, 파우스트와 파우스터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예기치 못한 결말로 치닫게 돼요.
"자식들은 절대 부모 마음대로 될 수 없다.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식이란 또 얼마나 바보 같은 존재인가.
하지만 파우스터는 다르다. 파우스터는 자식들이 해줄 수 없는 모든 것을 대체해준다.
파우스터는 새로 태어난 나다. 내가 되고 싶었던 청년이고 내게 없었으면 하는 것들을 제거한 젊음이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그를 부림에도 거기에 대한 저항이나 반감이 없다.
무엇보다 나 혼자의 것이다." (244p)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노라. (Das Evig-Weibliche zieht uns hinan)"라고 해요.
그 의미를『파우스터』를 통해 이해했어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니라." (13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