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야 - 2019년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다이앤 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들어가며


주야

간밤

비 내리던 사문진

금난새가 이끄는

피아노 100대 연주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숙이를 숨 멎게 했어


『로야』의 첫 페이지에는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이 적혀 있습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소리내어 읽어봤습니다.

전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책날개에 적혀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서 '아하~' 힌트를 얻었습니다.


저자 다이앤 리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어독문학과를 공부했고, 2001년 캐나다로 이주해 현재 남편과 딸과 밴쿠버에서 살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여 밴쿠버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벤쿠버 리사이틀 소사이어티의 연간 회원을 7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몇 해 전 겪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오랫동안 감춰왔던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쓴 첫 소설, 바로 『로야』로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로야』의 주인공을 통해 저자 다이앤 리를 봤습니다. 그녀의 불안과 고통이 어떻게 발생됐고, 어떤 방식으로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평범해보이는 한 사람의 일상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내면의 세계가 낯선 듯 익숙해보입니다.

이야기는 웨스트 브로드웨이에서 갱단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고등학생 알프레드 윙 군의 소식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수영 클럽으로부터 온 이메일을 통해서 지난주 발생한 총기 발사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의 딸이 소속된 수영클럽 학생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딸 로야도 수영 클럽에 갔다가 알프레드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사고 발생 전에는 나이도 다르고 스케줄도 달라서 전혀 몰랐던 알프레드였는데, 이제는 모두가 알프레드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내 딸과 같은 수영 클럽 선수였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은 충격을 받습니다. 아이가 속한 클럽이 갑자기 마약이나 갱단의 위협을 받기나 한 것처럼.

그리고 얼마 후 알프레드의 장례식이 열리는 토요일이 되자 남편은 아이와 함께 수영과 오케스트라 일정을 치르느라 일찌감치 집을 나섰고, 주인공 혼자 집에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장례식에 참석해야 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가면 알프레드와 내 아이가 겹쳐 보일 게 분명하니까, 무엇보다도 알프레드 가족을 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나의 비겁함은 상실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비극의 화살을 막아 낼 방패가 나에겐 없고, 이제 신과 함께 있으니 아이는 더 좋은 곳에 있다는 관용 도한 나에겐 없다.

슬픔을 가장한 두려움을 덮어쓰고 장례식장에 발을 들여놓았다간  나의 본마음을 꿰뚫어 본 아이가 내 가면을 휙 벗겨 낼 것만 같았다.

적나라하게 벗겨지면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지거나 바락바락 대들 것만 같았다.

어느 상황에도 처하기 싫었다. 나는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비극의 참관을 거부하는 게 맞아 보였다."  (23p)


나였더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도저히 마주할 수 없어서 피하고 거부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감정을 추스리고, 서둘러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빨래와 침대 정리, 저녁 준비... 그리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저녁 음악회에 참석합니다.

음악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는 비도 오지 않고 안개도 끼지 않은 청명한 겨울밤이라서 막힘이 없습니다. 그때 비현실적으로 붉은 색깔의 차 한 대가 오른편에서 훅 뛰쳐나오더니 바로 눈앞에서 한 바퀴 휙 돌아서 주인공이 탄 차를 정면으로 쿵, 들이받고 멈춰버립니다.

다행히 아무도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정지된 시간 속에 공포가 엄습해옵니다. 남편이 911 버튼을 눌러 구급대원에게 사고 상황을 설명합니다. 구급대원은 사고를 낸 다른 차량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바깥으로 나가 보려는 순간, 주인공은 나가선 안 된다고 남편을 제지합니다.


"안 돼. 나가지 마. 나가선 안 돼."  (28p)


정말 이 장면에서 굉장히 몰입했고, 심장이 쿵쿵대며 불안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한밤중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벌어진 충돌사고가 너무 불길해서, 혹시나 차 바깥으로 나갔다간 뭔가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까봐...

끝까지 읽고나서야 맨 처음에 봤던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교통사고 이후 주인공은 내면에 봉인되었던 깊은 상처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뤘는데, 오히려 행복해서 과거의 불행이 더 커다란 고통이 되는 아이러니. 타인에게는 감출 수 있어도 정작 본인에겐 지워지지 않는 것.

그러나 주인공에게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곁에 있습니다. 딸 아이의 이름 로야는 페르시아어로 '꿈'이나 '이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주인공과 남편과는 달리 로야는 자신의 근원지를 낙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토록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지 신기했습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에서 불현듯 쏟아지는 대포알 소리는 주인공의 말처럼, 아니 주인공 엄마 숙이 말대로 숨을 멎게 했습니다. 『로야』라는 소설은, 그야말로 가슴을 내려치는 대포 소리였습니다.

대포 소리가 축포인지 절망의 폭격인지는 온전히 듣는 이의 몫이지만, 부디 각자의 로야를 찾기를 바랍니다.

5월 가정의 달,『로야』를 읽은 건 아무래도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편지를 써야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