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밍 레슨
클레어 풀러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길 콜먼은 서점 2층 창문으로 인도에 서 있는 죽은 아내를 보았다."(9p)


<스위밍 레슨>은 첫 문장이에요.

길 콜먼은 우연히 서점 건너편 인도에 큼지막한 코트를 입은 여자를 봤어요.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서로 두 눈이 마주쳤어요.

이럴수가... 잉그리드, 죽은 아내였어요.

쫓아가다가 발이 미끄러진 길 콜먼은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슬로모션으로 허공에서 붕 떨어지는 상황에서 한바탕 난리법석을 칠 맏딸 낸과 걱정할 둘째 딸 플로라를 떠올렸어요.

오늘은 2004년 5월 2일, 잉그리드가 사라진 지 정확히 11년하고 10개월째였어요.

경찰과 기자들은 아내가 익사했다고 발표했지만, 길은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아직 그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잉그리드는 왜 남편과 두 딸을 두고 사라진 걸까요?


처음에는 실종된 아내가 12년 후 깜짝 등장하는 장면 때문에 미스터리물로 생각했어요.

소설 속 인물에게 "왜?"라는 의문을 품는 것이 미스터리라면...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미스터리 극장이에요.


이 소설은 두 개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등장해요.

2004년 현재를 살고 있는 길 콜먼과 두 딸 낸 그리고 플로라...

남편 길 콜먼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1992년 6월의 잉그리드.


읽는 내내 평소와는 다른 의미의 소름이 돋았어요.

여자의 인생을 떠올리며.

딸이 말했어요. "엄마, 나는 결혼 안 할거야. 당연히 애도 안 낳을 거고. 내 인생이 없는 거잖아."

그러자 엄마가 말했어요. "어떤 여자도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진 않아. 사랑하니까 희생도 감수한 거지."

누구도 그녀에게 엄마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된 순간 모두가 그녀에게 엄마로서 살라고 강요했어요.

반대로 남자는 아들로 태어나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어도 어떤 강요도, 억압도 받지 않아요. 본인 스스로 느낄 뿐이지...

만약 이 소설에서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했다면 당신은 인생을 모르는 애송이?

인생이 늘 그러하듯이 뭘 더 안다고 혹은 모른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사랑에 빠진 순간에도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 아니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녀의 잘못은 딱 한 가지예요. 유행가 가사처럼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책을 덮으려다가 다시 잉글리드의 첫 번째 편지를 읽었어요.

우리가 인연이나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믿나요, 당신은?  그 자전거는 정말 우연이었을까요.




                               스위밍 파빌리온, 1992년 6월 2일, 04:04

길에게

새벽 4인데 잠이 오지 않아요. 이 노란색 코트를 발견하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지 했어요.

실제로는 하지 못한 말들, 시작부터 우리의 결혼에 관한 모든 진실이 담긴 편지를 말이에요.

당신은 내가 상상하거나 꿈꾸거나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할 내용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는 시선이에요. 내 진실이에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나요?

난 확실히 기억해요. 1976년 4월 6일이었죠. '만났다'라는 표현은 너무 태평하지만요.

화요일이었어요. 드디어 봄이 왔다는 설렘을 주는 따뜻하고 화창한 날이었죠.

루이즈와 나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푯말을 무시하고 대학 도서관 바깥쪽 잔디밭에 앉아서

앞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물론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의 의미 없는 삶이라고 치부하는

(전업주부로 살림하고 애를 키우는) 엄마들의 삶과 다를 거라는 데는 동의했죠.

...

그날 오후 루이즈에게 수업이야기를 하니

"그 남자는 멍청이야, 가까이하지 마." 라고 했죠.

길, 우린 당신이 그리워요. 집으로 돌아와요.

당신의 잉그리드


추신 : 당신의 자전거는 어떻게 되었나요?                (25-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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