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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 - 조선왕조실록 기묘집 & 야사록
몽돌바당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어디까지 상상해봤나요?
우리 역사를 배우면서 결정적인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잠시 공상에 빠졌던 적이 있어요.
타임머신, 타임슬립... 그 무엇이든 시간을 거슬러 여행할 수 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인요>는 조선왕조실록의 야사를 바탕으로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예요.
특이한 건 '트렌스젠더'를 주제로 했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몰랐을 뿐, 과거에도 생물학적인 성(sexuality)과 사회적 의미의 성(gender)이 달라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
다만 트렌스젠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은폐되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에서 그와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었다는 건 무척 놀라운 일이에요.
숙종실록 63권, 숙종 45년 6월 4일 을사 1번째 기사
1719년 청 강희(康熙) 58년
- 원문 생략
- 이봉익을 사간으로, 김상옥을 교리로, 이세근을 병조참의로 삼았다.
이세근은 사람됨이 음험하고 간사한데, 얼굴을 단장하기 좋아하여 날마다 여러 차례 낯을 씻고 목욕하고,
분을 바르고, 눈썹을 뽑았으며, 의복과 음식이 모두 보통 사람과 다르니, 당시에 그를 인요(人妖)라고 불렀다.
또 성품이 탐오하여 일찍이 접위관이 되었을 때 왜인이 침을 뱉으며 비루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다만 붙좇는 데 교묘하여 때에 따라 얼굴을 바꿈으로써 승진하여 비옥에 이르렀으나,
조성의 관원들이 함께 반열에 서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 소설은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인요(人妖)'라고 불렸던 이세근을 모델로 하여, 21세기에 살고 있는 트렌스젠더 이수혁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인요>라는 소설 속 재료를 살펴보면 1%의 역사적 사실과 99% 허구와 상상력이 버무려져 있어요.
수혁은 클럽에서 쇼걸로 일할 때는 여장을 한 '미니'로 불리지만, 평상시에는 예쁘장한 남자로 살고 있어요. 아직 수술하기 전이라서 지금 그가 바라는 건 빨리 돈을 벌어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그런데 요즘 극성스럽게 쫓아다니는 그 녀석 때문에 당분간 쇼를 쉬게 됐어요. 엄밀히 말하면 술 취한 진상 손님이 무대에 난입한 것을 그 녀석이 달려가 주먹을 날리면서 무대가 망가진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쇼를 쉬게 된 수혁은 혼자 명동을 거닐다가 클럽 동료 써니를 잠시 만나고, 불현듯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싶었어요. 덕수궁 안 야경을 구경하다가 연못 근처에서 유독 빨간색 꽃이 눈에 띄었어요. 그 꽃에 홀려 손을 뻗다가 그만 '풍덩' 연못 안에 빠졌어요.
점점 가라앉는 몸과 함께 정신이 혼미해진 그는 정신을 잃었어요. 갑자기 머리가 띵~! 하며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대감~! 정신 좀 차리십시오~! 대감~! 대감~! 이세근 대감~!"
네, 놀랍고 신기한 시간 여행이 시작됐어요. 조선 시대의 이세근과 현대의 이수혁이 도플갱어일 줄이야...
과연 이수혁에게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확실히 <인요>는 일반적인 역사소설과는 결이 달라요. 트렌스젠더의 문제를 이수혁이라는 사람의 시간여행으로 전환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어요. 얼핏 로맨스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수혁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시대가 바뀌고 선비의 모습이 되었어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트렌스젠더이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사랑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자 본능인데, 트렌스젠더라는 이유로 인요, 즉 요사스러운 인간의 기묘한 짓거리가 된 거예요.
책의 구성도 소설 <인요>와 조선왕조실록 기묘집과 야사록에서 찾아낸 기묘한 이야기들로 되어 있어서 흥미로워요. 그 중에서 <미지와의 조우>는 상상력의 확장판이자 반전인 것 같아요. 묵직한 접근 대신에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로 풀어낸 <인요>, 그 기묘한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