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얼굴
엄지용 지음 / 별빛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 가지가 마음에 듭니다.


첫 번째는 시인의 말.

이 시집을 펼쳤을 때 제일 처음 읽게 되는 '시인의 말'이

"사랑하는 이에게"라서...

시인이 이 말을 건네는 대상은 분명 내가 아니지만,

그 말을 읽는 순간 만큼은 나여도 될 것 같아서.

사랑하는 이가 가장 밝은 빛이자 가장 어두운 어둠이고

날 가장 행복하게 하지만 나를 세상 불행하게 만들어도

그래도 사랑하자고,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 혹은 믿음으로...

진심으로 내 심정과 똑같아서.


두 번째는 시인의 소개.

엄지용

1987년 7월

'지혜롭고 용감하게'라는 이름으로 서울 출생

시인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는 아니라고 답하고

시를 쓰고 싶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할 것

무엇이 되려 하지 않아도 이미 무엇인 사람으로 살아갈 것

읽히려 쓰지 말고, 쓰고 싶어 쓸 것

후회를 무서워하지 말고, 후회할 짓 많이 할 것

언젠가 또 다른 시집에는 더 멋진 시인 소개를 쓸 것

기억되려 하지 않고, 추억 속에 존재할 것

이런 거 이루지 못해도 딱히 신경 쓰지 말것


아하, 시인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여~

근래 초등학생들이 쓴 꿈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공무원, 일급행정공무원...

그 어떤 아이도 시인이라고 적지 않았다는 사실.

시를 쓰면서도, 시집을 내놓고도

시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너무나 확실히 이해하므로.

그래서 쿨한 척 신경 쓰지 않겠다는 시인에게

당신은 시인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세 번째는 시.

시집을 읽으면서 시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으니까.


<빙판길>이라는 시 중에서

"눈 내린 땅이 눈보다 차가워서 쌓이기만 한다. 녹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 시를 읽는다는 것, 시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꽁꽁 얼어붙은 땅을 녹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깨진 거울>이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아서

엽서에 적어보았습니다.


깨진 거울


골목을 들어서면 며칠째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깨진 거울이 버려져 있다

그 앞에 서면 내가 여럿이다

깨진 조각마다 내가 서 있다


나는 그제야

왜 나는 너로 소란스런가를 알았다


너는 내가 깨질 때마다 늘어났다


깨질 때마다 늘어난 너는

마음의 조각마다 서 있었다


2019년 2월의 나는 깨진 조각마다 서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소란을 떤 게 나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바로 나로구나...

시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참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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