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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프레드릭 배크만은 어떻게 이토록 덤덤한 문체로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 걸까요...
『우리와 당신들』은 전작 『베어타운』의 뒷이야기예요.
그때 그 사건 이후에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비겁하게 행동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원래 스웨덴 원서 제목은 'Vi mot er', 즉 '우리 대 당신들'이었다고 해요.
"인간은 저마다 백 가지로 다르지만 남들 눈에는 우리가 그들과 한 팀인지 아닌지 그것만 보인다." (53p)
베어타운은 그 사건이 있기 전에는 이웃 마을 헤드 아이스하키 팀과 치열한 경쟁 관계였는데, 모든 게 바뀌었어요.
봄에 열린 회의에서 투표 결과 페테르 안데르손이 남게 되자, 케빈의 아버지는 아들의 소속팀을 당장 베어타운에서 헤드로 바꿨고, 코치와 후원사와 청소년팀의 우수한 선수들을 거의 모두 설득해 함께 데려갔어요. 어제의 '우리'가 손바닥 뒤집듯이, 오늘의 '당신들'이 된 거예요.
두어 달 전에 레오의 누나 마야가 케빈 에르달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경찰 측에서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기에 케빈은 풀려났어요. 돈과 권력의 힘은 대단해요. 법과 정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 같아요. 마을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서 대부분 케빈의 편을 들었고 레오의 가족을 쫓아내려고 할 정도로 증오가 증폭됐어요. 그들은 마야를 '나쁜 년'으로 만들었고, 레오의 아버지 페테르를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 단장직에서 해고하려고 했어요.
사건 당시의 증인이 나타났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경찰 측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마을은 침묵했고 어른들은 마야를 도우러 나서지 않았어요.
"레오는 열두 살이고 올해 여름에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에는 비교를 불허하는 장점이 있다. 진실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면 거짓은 쉽게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 (31p)
우리나라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서지현 검사는 국회 좌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을까,
아니면 성범죄를 방치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비난해온 공동체로 인해 입을 열지도 못하고 고통받으며 죽어간 것일까...
진실과 정의를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라야 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부디 이제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마야 안데르손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예요. 겨우 열여섯 살 소녀에게 벌어진 불행한 사건이 끝나지 않는 비극이 된 건 도망간 케빈 때문일까요, 아니면 마녀 사냥을 한 마을 사람들 때문일까요. 끔찍한 상황에서도 마야는 죽지 않고 버텨냈어요. 살아 있다는 건 기적이에요.
아나는 마야의 절친이자 알콜중독자 아빠 때문에 남모를 열등감에 시달리는 친구예요. 그 모든 걸 이해한다 해도, 아나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어요.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어요. 그러나 아나가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위로해주고 싶어요. 알고보면 아직 어린애일 뿐인데...
벤야민 오비크는 배신자가 아니라 옳은 일을 했을 뿐이에요. 가장 절친이었던 케빈의 범행을 말한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어요. 단짝 친구와 그들이 사랑했던 스포츠, 그들이 목숨을 바쳤던 팀, 그 모든 걸 동시에 빼앗겼어요. 더이상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의 유망주 '9 에르달'과 '16 오비크'는 볼 수 없어요. 또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폭로되면서 모두의 적이 된 벤이(벤야민)를 보면서 마음 아팠어요.
비다르 리니우스는 태어날 때부터 형 티무와 같은 편이었으니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안타까워요. 이제서야 사랑을 알게 됐는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은 정치인 리샤르드 테오예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교묘하게 '우리 대 당신들'이라는 편 가르기와 분열을 조장한 인물이에요.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쉽게 그가 만든 체스판 말이 되었던 사람들과 비교해도 누가 더 나쁜지 가릴 수가 없어요. 나쁜 놈은 그냥 나쁜 거예요.
우리 대 당신들... 소름끼치게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라서 분노, 슬픔, 좌절, 감동까지 온갖 감정의 쓰나미를 겪었어요. 그래서 지나치게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말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