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아프리카에서는 아이가 죽는 것보다 노인이 죽는 것을 더 슬퍼한다고 합니다.

노인이 죽으면 그가 가진 경험과 지혜가 사라지는 것이니까.

반대로 유럽에서는 아이가 죽으면 노인이 죽는 것보다 더 슬퍼하는데, 그 이유는 노인은 이미 살만큼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누군가의 죽음을 놓고 슬픔의 무게를 저울질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 싶으면서도....

어쩐지 요즘 사회가 노인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 같기는 합니다.


<도리스의 빨간 수첩>은 아흔여섯 살의 도리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도리스는 스톡홀름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녀 곁에는 요양사와 미국에 살고 있는 손녀 제니뿐입니다.

점점 거동이 불편하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도리스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기억해줄 유일한 사람인 제니에게 자신의 삶도 함께 기억해주길 바라며 일종의 유언 같은 글을 남깁니다. 직접 쓴 수첩과 편지들...


"네게 내 기억들을 줄게. 그 기억들은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다."  (15p)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리스의 빨간 수첩이란, 1928년 도리스의 열 살 생일날에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반짝거리는 붉은색 가죽 표지의 수첩입니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거기에 네 친구들을 모두 적어두렴. 네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말이야.

앞으로 네가 가게 될 흥미진진한 모든 장소에서 만날 사람들.

그러면 넌 그들을 절대 잊지 않는 거지." (16p)

수첩의 첫 페이지에는 벌써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에리크 알름.


다정했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열세 살의 도리스는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세라핀 부인의 가장 나이 어린 가정부.

엄마는 슬픔을 속으로 삼키면서 웃음 띤 얼굴로 도리스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도리스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네가 살아가는 동안 네 하루하루를 밝힐 만큼의 태양이 내리쬐기를, 그 태양에 감사할 만큼의 비가 내리길 바란단다.

그리고 네 영혼이 강해질 만큼의 기쁨이 있기를, 살면서 만나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에 감사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있기를 바란다.

때때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만남이 있기를 바란다."  (53-54p)

그날 엄마가 해준 말이 도리스 삶의 등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삶의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도리스는 이제 손녀 제니에게 자신의 삶, 그 모든 기억을 남겨줍니다.

부디 가장 아름다운 것들만 기억하기를.

도리스의 빨간 수첩이 삶의 등대가 되어 주기를.


제니는 원래 도리스의 여동생 앙네스의 손녀입니다. 앙네스의 딸 엘리스가 낳은 제니.

어째서 도리스가 제니를 키우게 되었을까요. 제니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비밀은, 도리스가 직접 적어내려간 글을 통해 밝혀집니다.

결국 도리스의 빨간 수첩, 가장 마지막 페이지는 도리스 알름.

그 아래 제니는 그 단어를 씁니다. 사망.

도리스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제니와 제니의 딸 타이라 그리고 또 한 사람.

참으로 아름다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 도리스.

지혜로운 노인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슬프지만 미소 지을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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