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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의 줄다리기>라는 제목을 보고,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언어의 세계에서 서로 힘 겨루기 하는 모습을 상상했거든요.
학창 시절에 배웠던 언어의 특징 중에서 역사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변한다는 것인데,
요즘들어 심각하게 언어 오염을 걱정하던 터라, '언어의 줄다리기'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고 느꼈어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 바로 언어의 숙명이라는 것.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충돌하는 순간, 줄다리기는 시작된다는 것.
습관적으로 사용한 언어 표현이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지배한다는 것.
이 책은 언어 표현들 뒤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 사이의 거대하고 치열한 대결을 보여주고 있어요.
저자는 해설자, 우리는 관객이자 선수.
참, 이 책 덕분에 처음 알게 된 '톺아보기'는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본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라고 해요.
책에서 지켜볼 언어의 줄다리기는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 '대통령'이에요.
대통령이란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81년 이헌영이 저술한 『일사집략』으로, 고종의 명을 받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헌영은 일본 신문에서 미국 대통령이 총격을 입었다는 보도를 읽었던 내용을 기록하면서, 대통령이라는 단어에 '곧 국왕을 가리키는 말이다'라는 주석을 달았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봉건군주제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직 대통령께서 자신을 왕이라고 착각했던 모양입니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봉건군주제의 왕이라는 의미를 담은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건 민주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입니다. 문제는 문제의식은 있으니 대통령을 대체하는 민주적인 명칭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장애자'라는 단어는 '장애는 정상이 아니다'라는 이데올로기가 담긴 단어입니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과 함께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점차 자리를 잡게 됩니다. 비장애인과 일반인이라는 표현은 장애인의 관점에서 붙여진 것인데, 이 또한 차별을 조장합니다. 최근에는 장애인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자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지닌 다양한 속성 중 한 가지에 불과한 '장애를 가진'이라는 속성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 대신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풀어서 표현하자는 생각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미혼'과 '비혼'의 줄다리기는 사회적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8년부터 결혼선호율 감소 추게가 지난 18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만 13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중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이제 미혼이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비혼이 미혼의 대체 개념으로 본격적으로 제안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 여성 단체들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애초에 세상 사람들을 결혼 여부에 의해 범주화할 필요가 있었나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이밖에도 차별과 불평등을 조장하는 언어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책에서는 언어의 줄다리기 사례를 통해서 이러한 관점 차이가 생긴 배경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누구의 어떤 관점이 그 표현의 이면에 숨어 있는가를 톺아보면서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합니다. 저자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언어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하여 좀더 민감해져야 성숙한 소통이 가능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표현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소통의 상황이 성숙한 민주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언어의 줄다리기>는 우리의 '언어 감수성'을 높이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