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작품 선집 대한민국 스토리DNA 23
백석 지음 / 새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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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윤동주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러면 백석 시인은 아시나요?

저는 이름 석 자만 알고 있었지, 시 한 편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청년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 『사슴』을 어렵게 구하여 밤새 필사해 어디든 지니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백석 시인은 '시인들의 시인'이었던 거죠.

분단의 비극으로, 월북 시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그의 작품은 금서로 취급되었다가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전집이 출간되었다고 해요.

이제는 백석의 시가 교과서에도 실렸다는데, 그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요.


<흰 바람벽이 있어>는 백석 시인의 작품을 모아놓은 책이에요.

시집 『사슴』(1936)에 실린 시 전부와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작품들을 해방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정리했고, 수필과 서간문, 북에서 발표했던 번역시들을 함께 수록했어요.

처음 만난 백석의 시는 고향의 정취가 물씬 느껴졌어요. 다만 1930년대 우리말이라서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들이 섞여 있다는 점. 그러나 친절하게 주석이 달려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도리어 눈으로 볼 때는 막힌 느낌이 들었는데, 소리내어 읽으니 비로소 시의 운율이 느껴졌어요.


청시(靑枾 : 푸를 청, 감나무 시)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하누바람 : 하늬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을 뜻하나 북한에서는 서북쪽이나 북쪽에서 부는 바람을 이름.


<청시>는 가을밤,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지고, 개가 짖어대는 마을 풍경이 한 눈에 그려지는 시예요. 시인의 마음을 느껴보려면 감나무 아래는 아니라도, 별 많은 밤에 나즈막히 시를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누가 정해놓은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자정 넘긴 시각에 시집을 펼치게 돼요. 그때라야 시(詩)가 마음에 촉촉히 내려앉아요.

마침 <탕약>이라는 시 중에서 마지막 연이 딱 그런 느낌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 萬年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 사람들

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백석 시인의 작품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 마음도 끝없이 고요하고 맑아지는 느낌이었어요. 한편으로 시인의 외롭고 쓸쓸함이 전해졌어요. '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시인의 숙명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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