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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을 마시다
비올레타 그레그 지음, 김은지 옮김 / iwbook / 2018년 5월
평점 :
<수은을 마시다>는 영국에 거주하는 폴란드 출신의 시인 비올레타 그레그가 처음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폴란드의 시골 마을 헥타리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리고 묘하게도 우리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TV 드라마 <전원일기>처럼, 주인공 비올카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엔 우리의 농촌 드라마와 비슷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당시 폴란드가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비올카의 그림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공포를 느꼈습니다. 맛있는 초콜릿을 주면서 유도심문을 하다니...
어린애가 정치는 몰라도 공포분위기는 감지할 수 있습니다. 비올카의 그림 때문에 학교의 미술 클럽이 해체됐고, 비올카는 더이상 미술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순수하게 그림 그리기가 좋았던 소녀에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12월의 추운 날씨처럼.
일상의 이야기들이 절묘하게 비올카의 시점으로 그려져서 더욱 선명하게 묘사된 것 같습니다. 특히나 소아성애자로 보이는 크비에치엔 의사와의 개인 진료는 최악이었습니다. 비올카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의 다리를 걷어찼지만 의사는 비열하게 거짓말을 합니다. 아이가 버릇없이 진료하는 자신을 걷어찼다고.
애초에 어린애를 혼자 진료하는 의사를 의심해야 되는데, 엄마는 의사의 거짓말에 속아 비올카를 야단칩니다. 믿을 수 없는 어른들...
그 다음 날, 비올카는 몸에 심한 열이 났고, 집에 혼자 남아 침대에 누워 있다가 끓인 물에 온도계를 넣었습니다. 수은이 들어 있는 용기가 터지면서 은색 구슬이 흘러내렸고, 비올카는 그것들을 모았습니다. 그때 크비에치엔 의사의 얼굴이 떠올랐고, 알약을 먹듯이 은색 구슬을 삼키고 잠이 들었습니다. 몇 시간 후 잠에서 깬 비올카는 심한 두통과 구토를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에게 수은을 삼켰다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구급차를 불렀고, 루브리니엑 보건 병원 소아 병동의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소 수은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장에서 흡수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계속 살펴보도록 하죠...... 몇 시간에 한 번씩 상태를 살펴보겠습니다." (58p)
의사의 말은 틀렸습니다. 수은은 위험합니다. 비올카가 구토로 다량 뱉어냈기 때문에 독성 작용이 약했을 뿐이지,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습니다.
얼핏 평온한 듯 보였던 시골 마을이 아슬아슬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맴도는 건 어느새 우리 모두가 비올카에게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비극을 어린 소녀의 삶을 통해 그려낸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결코 비극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