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탐정 -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장의 37년 단어 추적기
존 심프슨 지음, 정지현 옮김 / 지식너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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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탐정>이란 제목 때문에 추리소설인가 싶었는데, 아닙니다.

이 책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의 사전 편집장 존 심프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76년에 초보 사전 편찬자로 입사해서 2013년까지 사전 만드는 일을 해왔습니다.

수백 년 동안 잊힌 단어를 되찾고, 문화와 사회 속에서 단어가 발생하는 모습을 살펴보는 사전 편찬자의 작업을 그는 '단어 탐정' 같다고 말합니다.

Lexicographer (사전 편찬자)는 언어의 수수께끼를 찾고 설명하는 '단어 탐정(word detective)'를 가리키는 오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책이 꽤 두껍다고 느꼈는데, 읽다보니 엄청 요약된 책이구나 싶었습니다.

OED 사전부의 일상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뿐 아니라 그때마다 나오는 단어들을 이용해 단어의 역사와 용법까지 설명해주고 있으니, 이 한 권으로도 부족할 뻔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존 심프슨의 인생이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다소 따분해 보이는 사전 편찬자가 될 거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당시 중세학을 공부하며 OED를 3개월 동안 붙들고 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옥스퍼드 사전의 편집자를 찾는 광고가 끌렸다고 합니다. 두근두근 떨리는 면접에서 편집장은 사전과 그 자신, 옥스퍼드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 과정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불쑥 등장합니다. 그가 몇 달 동안 밤낮으로 썼던 석사 학위 논문에서 OED와의 중대한 연결고리를 찾았던 것. 그건 바로 J.R.R. 톨킨, <가윈 경>의 현대 버전을 톨킨이 편집했고, 편집장은 처음에 톨킨의 제자였고, 나중에는 수년 동안 영문과 동료였던 것. 당시 톨킨은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후였지만 편집장의 마음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옛 친구라서 이야기는 더욱 무르익게 됩니다. 물론 그다음 부편집장과의 면접이 있었으나 아슬아슬 넘어갔고, 장장 2시간 넘는 면접 끝에 합격합니다.

존 심프슨은 1970년대부터 OED에서 일했기 때문에 컴퓨터 발명 전후의 격변기를 고스란히 경험한 편집장입니다. 사람이 일일이 책을 읽어가며 단어를 찾아야 하는 고단한 수작업부터 OED 컴퓨터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OED의 역사, 곧 영어라는 언어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가끔씩 과거의 유명 작가와 학자들이 사전부 사무실로 면접보러 오는 상상을 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애거사 크리스티는 "사전 만들기의 어떤 측면에 가장 매력을 느낍니까?" 라는 질문에 탐정에 대한 선호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마치 우리가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살인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어원은 단어의 지문을 채취해 역사 속에서 단어의 행방을 알아내는 과학입니다.

정의는 의도한 것보다 적은 단어로 뜻을 이야기하는 능력입니다."라고 말합니다. (300-301p)

그녀의 대답이 어쩌면, OED 사전편찬자를 가장 잘 표현한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좀더 학구적으로 표현한다면,

사전 편찬의 세계는 지금 다루고 있는 단어의 용법을 동일한 의미론적 영역의 수많은 보기와 비교하여 다른 점을 찾고, 정의를 작성하거나 수정할 때는 틀리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될 때까지는 모든 자료 출처가 틀리다고 생각하는 과학자적 관점뿐 아니라 창의적인 관점도 필요합니다. 또한 사전 편찬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쭉 버틸 수 있는 에너지가 가장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35년 동안 변함없이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으려면 그만큼의 애정 없이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는 단어 자체에 대한 애정보다는 단어의 물결을 바라보며 패턴과 변화, 높고 낮음, 우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이 좋았다고 합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리 인생은 운명적 끌림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책 속에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랑하는 아내 힐러리와 첫째 딸 케이트 그리고 어린아이로 머물고 있는 둘째 딸 엘리. 엘리의 disability 로 인한 가족의 아픔... 엘리는 단어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고, 아빠는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라고, 희망을 놓을 수 없기에.

결국 사전은 단어의 집합이 아니라,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담아낸 역사적 산물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위대한 사전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킬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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