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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챈스의 외출
저지 코진스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9월
평점 :
<정원사 챈스의 외출>의 원제는 'Being There' 입니다.
주인공 챈스(Chance)는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지만, 동시에 왠지 존재할 것만 같은 특이한 인물입니다. 이름이 챈스인 것도 우연히, 어쩌다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겪은 모든 일들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 짜여준 풍자극 같습니다.
어르신(Old Man)은 고아인 챈스를 거둬 키운 인물이지만 의식주를 제공했을 뿐 부모의 역할을 하진 않았습니다.
집을 요새처럼 만들어놓고 자신이 머무는 공간과 챈스가 생활하는 공간을 분리했습니다. 챈스가 제대로 글을 깨치지 못할 정도로 지능이 떨어진다고 여긴 어르신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나가봐야 정신병원에 보내지거나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될 거라는 게 어르신의 지론.
챈스는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들었고,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 만족했습니다. 자라는 식물처럼,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사는 법을 익혔습니다. 정원일 이외의 시간에는 TV를 봤습니다. TV 속 세상은 모든 게 가능했고, 무슨 일이든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는 채널을 바꿔서 자신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챈스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TV 영상을 통해 정원 밖의 세상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챈스는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다른 누구도 아니라고 믿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르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집을 떠날 처지가 됩니다. 어르신은 유언장을 남기지도 않았고, 관련 기록 어디에도 챈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
출생 이후 줄곧 어르신의 집에서 살았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건 법적으로 챈스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오게 된 챈스는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사고를 낸 건 리무진 운전사였고, 차주인 여자가 챈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그녀는 미국제일금융의 이사회장 벤저민 랜드(벤)의 아내 엘리자베스 이브(EE)였던 것.
잘생긴 청년이 과묵한 데다가 어떤 상황이든 침착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 감탄한 벤은 챈스를 대통령에게 소개시켜줍니다. 대통령은 챈스가 벤의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여기고 경제불황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데, 챈스는 정원에 대해 말합니다. 엉뚱한 대답이 묘하게도 비유적 표현처럼 들리면서 대통령 마음에 쏙 들게 됩니다. 그때부터 챈스에 대한 오해가 눈덩이처럼 커져갑니다. 벤의 유력한 후계자인 것처럼.
그러나 그들의 오해가 어쩌면 오해가 아닌 챈스의 본질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만들어낸 허상의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