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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평점 :
머리가 아플 때 필요한 건 두통약, 상처난 곳에는 소독약.
몸 상태는 이렇듯 정확하게 관리가 되는데, 왜 유독 마음은 관리가 어려운 건지...
그건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가 아닐까요.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늘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인생 우화>를 읽으면서, 그 질문들을 다시 떠올렸어요.
이 우화집은 폴란드에서 전해 내려오는 헤움 마을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류시화님이 재창작한 45편의 이야기라고 해요.
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헤움 마을이에요.
재미있는 건 바보들이 모여 사는 헤움에서는 자신들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믿는다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장소에 산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혹시나 그들을 바보라고 비웃는 건 아니겠죠?
처음엔 어처구니 없다고, 어리석다고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점점 알게 될 거예요.
나 역시 바보라는 걸 말이죠.
맨 앞에 실린 이야기 「제발 내가 나라는 증거를 말해 주세요」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목욕탕에 모여 철학적인 토론을 나누는 장면이 나와요.
"우리를 우리 자신이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모두 똑같게 창조되었다고 성경에 적혀 있어."
"맞아. 따라서 우리를 구분해 주는 것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야."
이 말을 듣고 있던 주인공은 깊은 고민에 빠져요.
'만약 각 사람의 존재를 구분해 주는 것이 옷이라면, 그 옷을 벗으면 어떻게 되지? 이러다가 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로 나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한 가지 묘안을 찾아내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 오른쪽 손목에 붉은색 끈을 한 가닥 묶는 거예요. 그 뒤로 목욕탕에 갈 때마다 옷을 다 벗기 전에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으면서, 내가 나라는 증거라고 생각했죠.
문제는 외지인이 헤움으로 이사를 왔는데, 목욕탕에 갔다가 우연히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은 주인공을 발견한 거예요. 외지인은 그것이 헤움의 관습이라고 여기고 따라했고, 그와 마주친 주인공은 공포에 몸을 떨며 말했어요. 왜냐하면 자신의 손목에 묶은 끈은 사라졌고, 눈 앞에는 붉은색 끈을 묶은 낯선 남자를 봤기 때문이에요.
"친구여, 나는 당신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바로 나입니다. 아니면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목욕탕에 들어갈 때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나에게 말해 주시오.
만약 당신이 나라면, 나는 누구인가요? 제발 말 좀 해 주시오. 남은 인생 동안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오."
어떤가요?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우리들도 저마다 붉은색 끈을 손목에 묶고 있지 않나요? 어떤 직업을 가진 나,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 특히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붉은색 끈들을 볼 수 있어요. 그 붉은색 끈이 사라졌을 때, 내가 나라는 증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인생 우화>는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저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요.
다만 이것만은 기억해야 될 것 같아요.
신성한 책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각각의 영혼에 탄생을 주관할 천사를 한 명씩 지정하여, 세상에 내려가는 영혼의 귀에 대고 속삭였대요.
"세상에 내려가 기쁘게 살고, 배움을 얻고, 더 지혜로워져라."
하지만 인간 세상이 번창하면서 천사의 속삭임을 잊은 영혼의 숫자가 나날이 늘어났고, 어떤 곳에는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을 지배했대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지혜로운 사람인 거예요. 천사의 속삭임만 기억한다면.
<인생 우화>를 혼자 볼 수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했어요.
사은품으로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의 워리돌 인형을 받았어요.
워리돌은 '대신 걱정해주는 인형'이라는 뜻이에요.
자신의 고민이나 슬픔을 인형들에게 이야기한 후 베개 밑에 넣고 자면, 밤 사이에 인형들이 대신 고민해줘서 걱정이 사라진대요.
걱정은 걱정일 뿐, 그 걱정들이 나를 집어삼키게 하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