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사랑과 상실에 관한 포토 에피그램
헤르츠티어 지음 / 싱긋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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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잊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기억 속에서 삭제해버렸습니다. 아니, 삭제한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누군가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그것들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이 책은 헤르츠티어(강건모)의 사랑과 상실에 관한 포토 에피그램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기억을 남깁니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그 곳에 다른 누군가도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봅니다.


"네가 거기 있어서, 나도 거기 있었다." (150p)

추억은 늘 각자의 방식대로 짜깁기된 보자기 같습니다.

쫘악 펼쳐보면 같은 듯 다르게.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인데, 내 마음대로 한들 누가 뭐랄까.

너의 존재가 나에게 의미를 줄 때, 가슴 한켠이 찌릿찌릿.  마음이 먼저 알려주더라.

추억의 보자기를 꽁꽁 싸두었다가 가끔 꺼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그는 일 년 만에 다시 마주한 여진에게 "다시 한번 헤어지자."라고 말합니다.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서 둘만의 사랑 장례식을 치릅니다.

서로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땅 속에 깊이 묻고, 조사(弔辭)를 읽습니다.

"... 송우현과 서여진의 연애,

2016년 5월 21일에 나서, 2016년 12월 27일에 가니,

우리들의 슬픔은 네 생애보다 길다, 무슨 말을 더 하랴, 울다, 그저 울다." (277p)

젊은 청춘들에겐 사랑의 상실이 가장 큰 슬픔이니, 그 상실감을 애써 무시하다가 결국에는 정중하게 떠나보내는 의식을 해줍니다.


당신은 무엇을 잃어버렸나요?

어쩌면 이 책이, 그 빈 자리를 채워줄 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찾게 될 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상실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슬퍼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슬픔을 위하여.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는 사라진 상상계에 바치는 조사(弔辭)다.

여기서 '사라진 상상계'란 그가 『사랑의 단상』에서 언급한 "사랑"의 별칭.

...

그가 애도하는 대상은 앙리에트 벵제.

1977년 10월 25일 사망한 그의 어머니다.

그는 어머니가 죽은 다음날부터 2년 동안 『애도 일기』를 썼다.

형식은 짧은 메모였다. 매 페이지마다 슬픔으로 직조된 단문이 어슬렁어슬렁 저녁길을 걷는다.

...

그는 "애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애도 :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 그 어떤 방어수단도 없는 상황.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어느 상주(喪主)의 고백, 『애도 일기』."  (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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