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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대신 권총을 든 노인
대니얼 프리드먼 지음, 박산호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지팡이 대신 권총을 든 노인>은 여든일곱 살의 버크 샤츠가 주인공입니다.
과연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 중에 버크 샤츠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직 여든일곱은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전직 형사였던 버크 샤츠는 결코 원하지 않았던 짐 월리스의 임종을 지켜보게 됩니다. 더불어 짐의 마지막 유언까지 듣게 되는데...
"내가 그 새끼를 봤어. 지글러를 봤어.
...내가 1946년 동독과 서독 사이에 있는 방어벽에서 헌병으로 일하고 있을 때 놈이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 나타났어.
놈은 가명이 적힌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딱 보자마자 대번에 놈인 걸 알아봤지.
아, 부디 하느님이 나를 구원해주시길. 내가 놈을 놔줬어.
... 나치의 황금. 놈이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금괴를 무더기로 가지고 있었어.
벤츠 뒤쪽이 황금의 무게 때문에 밑으로 축 쳐져 있던 기억이 나.
놈에게 뇌물로 그걸 하나 받고 도망치게 내버려뒀어. ..." (9-10p)
짐이 말하는 '그 새끼'의 이름은 하인리히 지글러, 1944년 프랑스 남부에 있던 버크의 부대가 독일군에게 격파돼서 들어간 포로수용소의 책임자이자 나치의 친위대 장교입니다. 지글러는 버크가 유대인이라는 걸 알고 심한 고문을 했고, 버크는 전쟁이 끝난 후에 직접 지글러를 찾으러 갔으나 이미 죽었다는 서류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잊은 채 살아왔는데, 갑자기 짐 월리스가 죽기 전 양심고백을 해오니 황당했던 것. 짐은 버크에게 용서받고 싶었겠지만 버크는 지글러가 어떤 괴물이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지옥에나 가라고 악담을 했으니,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짐은 심장발작을 일으켰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이자 이 소설의 결정적 장면인 것 같습니다.
죽음을 앞둔 짐과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를 87세의 버크.
한 사람이 원한 건 용서, 다른 사람에게 남은 건 원한.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나치의 황금.
하지만 그 모든 걸 무의미하게 만드는 건 시간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늙는다는 건 '시간'의 가치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황금보다 더 귀한 시간...
인생무상이라~ 조용히 자신의 집 쇼파에서 TV를 보며 여생을 보내고 싶은 버크에게 짐은 '지글러의 황금'이라는 폭탄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손자 테킬라와 함께 지글러를 추적하게 되는 버크.
사실 버크는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후부터 항상 기억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것'을 적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먹먹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것'이 떠올라서... 읽는 내내 지글러의 황금보다도 더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