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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파친코>의 저자는 1989년에 이 이야기를 생각해냈다고 합니다.
우연히 듣게 된 예일대학 초청 강연에서 '자이니치'라는 용어를 처음 듣게 됩니다.
식민지시대에 이민 온 조선계 일본 사람들이나 그들의 후손을 일컫는 '자이니치'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일본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선인 세대들에게는 명백한 차별적 용어입니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이 겪는 법적, 사회적 차별의 역사는 오래됐으며,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이 소설에서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앨범을 훼손당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사건은 실제 사건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소설에 나온 많은 이야기들이 조선계 일본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실화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거의 30년에 걸쳐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왜 제목이 파친코일까, 궁금했는데 순자의 두 아들은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친코에서 일하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이유는 조선인이기 때문. 그래서 조선인들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파친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순자의 두 아들은 똑같이 파친코에서 일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합니다. 노아는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길, 모자수는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길.
노아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만큼 노아의 고통이 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만약 노아가 조선인이라는 게 알려졌다면 일본인 아내와 아이들은 분명 차별과 고통을 겪었을테니까. 노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저주라고 여길 정도로 순결한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을 지킬 방법은 죽음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자살은 나약한 의지의 표출이 아니라 처절한 고통의 결과였고, 가족을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고 생각합니다.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 국제학교를 보내고 미국 유학까지 보내며 뒷바라지합니다. 하지만 일본에 돌아온 솔로몬은 여전히 조선인이라서 차별당합니다. 솔로몬은 깨닫습니다. 아무리 부자가 된다 해도 일본에서 조선인은 이방인이라는 걸. 그러나 자신은 일본에서 살고 싶다는 걸.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늘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일본은 남들에게 고통을 주고도 정작 그 고통이 뭔지 모르는 끔찍한 사이코패스... 결코 구원받지 못할... 파친코는 누군가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수단일 수도 있구나...
"장로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하나님의 의도를 믿었지만,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95p)
근래 사할린 동포를 찾아가 한끼 먹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역사를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머나먼 타국으로 강제 징용되었던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의 삶. 돌아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현실의 장벽. 이제는 아픈 역사를 보듬고 바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