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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11p)
<파친코>의 첫 문장입니다.
191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의 삶...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기였다는 것을 역사 교과서를 통해 배웠을 뿐 그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고 울컥했습니다. 역사가 망쳐 놓은 삶이 전혀 괜찮지 않아서...
소설은 부산 영도에서 시작됩니다. 어부의 아내는 세 아들을 낳았지만 가장 약한 첫째 훈이만 살아남습니다. 훈이는 언청이에다 한쪽 발이 뒤틀린 기형아인데 흉한 입만 가리면 자기 아버지를 쏙 빼닮아 잘생긴 얼굴인데다 영특했습니다. 1910년, 훈이가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에 조선은 일본에 합병되었습니다. 훈이의 부모는 살아남은 유일한 불구아들을 사랑으로 키워냈고, 훈이는 제몫을 거뜬히 해내는 의젓한 청년이 됩니다. 1911년 봄, 훈이가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중매쟁이의 주선으로 열다섯 살 여자애 양진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양진은 여러 번의 유산 끝에 순자를 낳았습니다. 네 번째 아이이자 유일한 여자아이인 순자는 건강하게 자랐고, 훈이는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했듯이 딸아이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순자가 열세 살이 되던 겨울날 훈이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른일곱 젊은 미망인이 된 양진은 눈물을 머금고 일상으로 돌아가 하숙을 치며 힘든 시기를 견뎌냈습니다. 하나뿐인 딸 순자를 키워야했기 때문에.
열일곱 살이 된 순자는 혼자서 장을 보고 오던 중 일본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희롱을 당하게 되고, 그 위기의 순간에서 구출해준 사람이 생선 중매상 고한수였습니다. 한수는 순자 엄마 또래의 남자로 그전에 일면식이 있던 사이였습니다. 이후 노골적으로 순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한수에게 마음이 끌린 순자는 그를 사랑하여 아이를 임신하지만, 그가 일본에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순자는 한수의 첩이 되지 않겠다면서 한수에게 결별을 고하고, 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운명의 장난일까요. 만약 순자가 고한수보다 백이삭을 먼저 만났더라면 순자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순자가 한수를 처음 만난 그날로부터 6개월 후 하숙집 손님으로 온 남자가 젊은 목사 백이삭입니다. 그는 하숙집에 도착하자마자 결핵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지만 양진과 순자의 극진한 간호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백이삭은 양진에게서 순자가 임신했다는 고민을 듣고, 생명의 은인 모녀를 위해서 큰 결심을 합니다. 순자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 형 요셉 부부가 사는 일본 오사카로 떠나게 됩니다.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게 된 순자는 한수의 핏줄인 첫째 아들 노아와 이삭의 핏줄인 둘째 아들 모자수를 낳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자라는 여인의 치열한 삶에 초점을 맞춰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순자와 이삭, 이삭의 형 요셉과 아내 경희, 노아와 모자수가 일본에서 겪는 차별과 고통을 보면서 조선인의 뼈아픈 한(恨)을 느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일본행을 선택한 순자였지만 당시 상황은 한국에 머물렀다고 해도 전쟁으로 참혹했으니,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비극이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조선인에게는 끝나지 않은 투쟁이 있습니다. 재일동포 2세, 3세들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본국적이 없는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차별과 편견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땅에 사는 일본인이지만 조선인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들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양진, 순자, 모자수, 솔로몬... 4대에 걸친 가정사를 통해서 치열했던 한국의 근현대사가 생생하게 와닿았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일본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이 꿋꿋하게 버텨낸 재일동포들이 자랑스럽고 미안합니다. 너무나 몰랐고,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