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잇, 나의 세컨드는 - 문학동네 시집 60 문학동네 시집 60
김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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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밝고 경쾌한 문체. 식탁에서 귤 까먹으며 풀어 낸 수다같은 일상의 언어가 싱싱하다.
그러나 그 가벼움 뒤에 삶의 지리멸렬함과 권태로운 일상, 무력하게 나이 들어가는 슬픔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이 유쾌하고 우아한 선율로 담담하게 슬픔을 견디는 것처럼 김경미 시인이 들려주는 시도 그러하다.

다음 장소로 이어지는 불안한 다리같은 시들이다. 우리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건너야하는 존재의 다리. 건너가면 더 이상 감정이 소용돌이 칠 일도 비탄스러울 일도 없는 잔잔한 세계가 있을 테지만 우리는 가볍게 그 곳으로 갈 수가 없다. 젊음의 빛이 사라지고 생명의 기운이 요동치지 않는 그 곳은 낯설고 쓸쓸하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서 그 세계를 받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과 일상을 인정하고 인생을 긍정하는 눈 속에서 다시 태어 나서 한 번 더 살아야 한다.

내 일기를 보듯 그녀의 시를 읽었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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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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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지보다 그녀가 더 매력적이다. 한,비,야! 외계인이다.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를 누비며 불편과 위험들 속에서 어쩜 그렇게 씩씩하고 유쾌할 수 있는지. 나도 산과 낯선 곳을 좋아 하지만 오지 속에서도 기쁘게 유유히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단순히 환경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힘과 성숙의 문제이다.

초간이 나온 지 7년 동안 무려 48쇄가 발행 되었다. 문학 작가가 쓴 여행기와는 물론 다르다. 이국적 정서와 감성이 묻어나는 문체가 빛을 발하는 책도 아니다. 또 그러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여행을 4년째 하고 있는 사람이 멜랑꼬리에 젖은 글들을 쓴다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그녀의 성격처럼 시원시원하고 군더더기 없는 체험과 현지인들과의 생활 위주의 글이다. 여행이 곧 생활인 사람의 어찌보면 밋밋한 글이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주는 용기와 낙천. 열린 마음. 자유로움은 아름답다. 부럽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사랑과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기를 우리 모두는 원한다. 원하는 지위와 외적 성취를 이루어 내더라도 결국 자신의 유치하고 얽힌 마음에서 고통을 만들고 마는 것이 우리들인데 그녀는 스스로의 주인이 된 듯 하다.

오지체험을 통해 더 넓어진 그녀가 요즘은 난민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종의 일이 아닌가 한다. 소박하게 살며 사랑의 마음이 깊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코스모폴리탄의 삶이다. 힘이 들 때 아무 곳이나 펴 놓고 보면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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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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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0장 쯤은 생명력 넘치는 시를 읽는 듯하다.

나무에 대한 동물적 상상력은 욕망을 지닌 나무의 숨소리와 고통이 문자에서 돋아나와 보여지고 들리는 것 같았다. 또한 사창가에서 불구의 아들을 업고 다니며 여자를 사주는 어미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며 신선하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차라리 안 읽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겠다 싶다. 책 중간쯤을 읽다가 초간 연도를 보았다. 2000년이다. 앞 부분은 시대를 초월 할 수 있으나, 뒤 부분은 너무나 낡은 글쓰기였다.

2대에 걸친 삶을 보면, 출생의 비밀. 권력층. 순애보. 운동권. 장애. 주변에 의해 못 이룬 사랑.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미스테리. 성소. 그야말로 온갖 갈등이 등장하고 그 얽힌 갈등들이 한 순간 녹아 버리고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또한 그 표현 방식과 인물들의 고루함이란! 같은 단어와 표현들이 개성없이 반복되고 대사와 묘사들은 낯익은 과거 통속 소설의 답습이다. 그리고 창녀가 되어서라도 옛 남자에게 가고 싶다는 여자의 모습에선 실소를...

제대로 된 B급 소설을 만난 듯 했다가 너무나 실망이다. 그러나 부분의 신선한 상상력과 요즘의 주류 소설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내가 저번 늦가을에 나목들을 보며 느꼈던 그 강한 느낌을 글로 만나 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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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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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5학년이상 권장하고 있다. 그 나이의 두배 반을 지나 읽었다. '시간'에 사랑의 의미를 담아 채울 것, 무언가를 위해 희생되어야 할 시간이란 없다. 출세, 돈, 권력을 위해 침흘리며 헐떡거리는 동안 우리 속에 피어 있던 아름다운 꽃은 시들고 우리는 서로에게 도구화 될 뿐이라는 미하엘의 메세지를 소녀를 통해 전한다.

5학년 쯤에 읽었더라면 감동스러웠을까,,, 왜 아무런 느낌이 없나? U, U ok?

얼마전에 읽은 '눈먼 자들의 도시' 또한 교조주의 책이었으나 무척 흥미짱짱 했는데.. 잔인함을 통해 선의 가치를 느끼고 악마를 통해 천사를 깨닫는 피폐한 인간이 된 걸까? ..... 아니, 아니, 이 책의 작위적 감동에 비위상한 걸 거다.

그래... 괜히 초등 5학년부터라고 출판사에서 썼을까? 머리 굳은 나같은 어른이 읽을 때는 여러가지 불화음이 생길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마치 노약자, 임산부, 12세이하 어린이는.... 이라고 사용자 주의를 요하듯.

( *의 수는 책의 가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평하고 싶지 않다. 능력도 자격도 없다. 단지 나에게 부딪히는 부싯돌 충격만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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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문학과지성 시인선 126
이기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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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은 있었지만 친하지 못했던 오래 전 한 친구가 이 시집을 들고 있었다. 지난 일들 중 태반이 아쉽지만 사람에게 소홀하고 무심했던 것만큼 후회스런 것도 없는 것 같다.심하게 말이 없던 그 친구와 숫기 없고 자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내가 친구가 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바보,바보. 그 친구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 시집을 읽었다.

처음 접하는 시인이다. 지상에서 부르는 노래는 자연과의 교감으로 가득하다. 자연을 통해 지상의 노래를 성실하게 부르고자 하는 삶의 반성과 치열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도 한다. 아래의 시 좋다.

정신의 열대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거기 슬플 것 다 슬퍼해본 사람들이
고통을 씻어 햇볕에 널어두고
쌀 씻어 밥짓는 마을 있으리
더러 초록을 입에 넣으면 초록만큼 푸르러지는
사람들 살고 있으리
그들이 봄 강물처럼 싱싱하게 묻는 안부 내 들을 수 있으리

오늘 아침 배춧잎처럼 빛나던 靑衣를 물고
날아간 새들이여
네가 부리로 물고 가 짓는 삭정이집 아니라도
사람이 사는 집들
南으로만 흘러내리는 추녀들이
지붕 끝에 놀을 받아 따뜻하고
오래 아픈 사람들이 병을 이기고 일어나는
아이 울음처럼 신선한 뜨락 있으리

저녁의 고전적인 옷을 벗기고
처녀의 발등 같은 흰 물결 위에
살아서 깊어지는 노래 한 구절 보탤 수 있으리
오래 고통을 잠재우던 이불 소리와
아플 것 다 아파본 사람들의 마음 불러모아
고로쇠숲에서 우는 청호반새의 노래를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말로 번역할 수 있으리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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