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 20장 쯤은 생명력 넘치는 시를 읽는 듯하다.

나무에 대한 동물적 상상력은 욕망을 지닌 나무의 숨소리와 고통이 문자에서 돋아나와 보여지고 들리는 것 같았다. 또한 사창가에서 불구의 아들을 업고 다니며 여자를 사주는 어미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며 신선하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차라리 안 읽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겠다 싶다. 책 중간쯤을 읽다가 초간 연도를 보았다. 2000년이다. 앞 부분은 시대를 초월 할 수 있으나, 뒤 부분은 너무나 낡은 글쓰기였다.

2대에 걸친 삶을 보면, 출생의 비밀. 권력층. 순애보. 운동권. 장애. 주변에 의해 못 이룬 사랑.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미스테리. 성소. 그야말로 온갖 갈등이 등장하고 그 얽힌 갈등들이 한 순간 녹아 버리고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또한 그 표현 방식과 인물들의 고루함이란! 같은 단어와 표현들이 개성없이 반복되고 대사와 묘사들은 낯익은 과거 통속 소설의 답습이다. 그리고 창녀가 되어서라도 옛 남자에게 가고 싶다는 여자의 모습에선 실소를...

제대로 된 B급 소설을 만난 듯 했다가 너무나 실망이다. 그러나 부분의 신선한 상상력과 요즘의 주류 소설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내가 저번 늦가을에 나목들을 보며 느꼈던 그 강한 느낌을 글로 만나 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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