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문학과지성 시인선 126
이기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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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은 있었지만 친하지 못했던 오래 전 한 친구가 이 시집을 들고 있었다. 지난 일들 중 태반이 아쉽지만 사람에게 소홀하고 무심했던 것만큼 후회스런 것도 없는 것 같다.심하게 말이 없던 그 친구와 숫기 없고 자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내가 친구가 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바보,바보. 그 친구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 시집을 읽었다.

처음 접하는 시인이다. 지상에서 부르는 노래는 자연과의 교감으로 가득하다. 자연을 통해 지상의 노래를 성실하게 부르고자 하는 삶의 반성과 치열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도 한다. 아래의 시 좋다.

정신의 열대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거기 슬플 것 다 슬퍼해본 사람들이
고통을 씻어 햇볕에 널어두고
쌀 씻어 밥짓는 마을 있으리
더러 초록을 입에 넣으면 초록만큼 푸르러지는
사람들 살고 있으리
그들이 봄 강물처럼 싱싱하게 묻는 안부 내 들을 수 있으리

오늘 아침 배춧잎처럼 빛나던 靑衣를 물고
날아간 새들이여
네가 부리로 물고 가 짓는 삭정이집 아니라도
사람이 사는 집들
南으로만 흘러내리는 추녀들이
지붕 끝에 놀을 받아 따뜻하고
오래 아픈 사람들이 병을 이기고 일어나는
아이 울음처럼 신선한 뜨락 있으리

저녁의 고전적인 옷을 벗기고
처녀의 발등 같은 흰 물결 위에
살아서 깊어지는 노래 한 구절 보탤 수 있으리
오래 고통을 잠재우던 이불 소리와
아플 것 다 아파본 사람들의 마음 불러모아
고로쇠숲에서 우는 청호반새의 노래를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말로 번역할 수 있으리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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