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탐색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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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개방성
거울은 그 앞에 주어진 사물에 의해 혹은 그 사물을 비춤으로 인해 거울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즉 대상에 의해 물들지 않는다. 거울 자신이 스스로 변화됨이 없어야, 즉 자신이 빈 공간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해야만 비로소 그 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가 있다.
마음 역시 그러하다. 마음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대상을 바로게 보고 바르게 알 수 있다. 분노한 마음에 비친 세계는 분노로 들끓는 세계이고, 평온한 마음에 비친 세계는 평온한 세계이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세계로 인해 물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물을 그대로 포용하여 드러내는 빈 공간과도 같은 마음의 개방성이 곧 사물에 의해 물들지 않는 마음의 독립성을 함축하는 것이다. -20쪽

점수漸修의 필요성
무명에 의해 이미 쌓여진 오염의 습이 닦이지 않는다면, 결국 인식과 실천이 분리되어 있고, 내면과 외면이 그 습의 때에 의해 차단됨으로써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나아가려는 마음의 빛은 결국 꺾이고 말 것이다. 비추지 못하고 꺾여진 빛은 빛이 아니며, 본래의 빛을 잃은 마음은 자유를 잃은 마음이다. 점수는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나의 세계가 곧 불성의 자기 발현이 되도록, 그리하여 佛光이 여여하게 만물을 비추고 포괄하여 그 안에서 너와 내가 하나가 되도록, 나의 마음을 그 마음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노력이다.-37쪽

관념적 욕망과 공의 의식
물 속의 물고기는 물 밖에 던져져서 '물 너머'를 경험하지 않는 한 자신의 주위에 물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며, 공기 속의 인간은 공기로부터 차단되어 '공기 너머'를 경험하지 않는 한 자신의 주위에 공기가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고통 너머 희열의 의식이 있기에 고통을 고통으로서 의식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우리 자신의 관념과 욕망에 의해 구성된 관념적 현실임을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욕망 너머의 의식, 가상 너머의 의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기에 우리는 관념적 욕망의 사슬을 끊고 관념과 가상의 베일 너머의 실상을 직관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 안에 관념 세계의 구성을 멈출 수 있는 능력, 우리으 관념과 우리으 욕망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 그리하여 무명에서 愛로 그리고 다시 생사로 이어지는 연기를 따라 유전하지 않고 그런 연기 세계를 넘어서서 해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관념 너머에서 , 우리의 욕망과 집착 너머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실상은 무엇일까? 우리의 언어가 끊기고 사유가 멎고 욕망의 불길이 꺼진 곳에서 우리으 마음에 드러나는 것은 바로 空인 것이다.

일체가 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다시 일체가 공이라는 것은 우리가 만든 그 세계가 영원 불변의 고정된 세계일 수 없다는 것을 만해 준다.

그러므로 문제는 욕망과 집착, 우리의 환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환상으로 자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욕망과 집착의 산물, 우리 자신의 환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의 가상성을 망각하고, 존재 자체의 찰나 생멸성을 망각하고, 일체를 영속화하고 절대화하려 할 경우, 우리에게 더 이상의 욕망과 집착과 환상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소설을 쓰지 못하게 하는 소설, 그 다음의 문화를 가능하게 만들지 못하는 문화는 자기 파멸적이다.-83~91쪽


우리는 부수기 위해 쌓고, 지우기 위해 쓰며, 헤어지기 위해 만날 뿐이다.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의 차별도 이해를 받음과 이해를 받지 못함의 차별도 무의미해진다. 오늘의 이 말을 비롯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누군가 듣는 자가 있다면 고백이 되고 아무도 듣는 자가 없다면 독백이 되겠지만, 그 둘의 차이를 누가 알겠는가? 말은 사라져 버린다. 말해진 것도 말해지지 않은 것과 더불어 그냥 사라져 버린다. - 93쪽

우파니샤드 중 재인용
"신이 만물을 의욕하여 만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이 그 만들어진 것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너이니라! "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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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숨어 있는 힘 - 여성주의 심리 상담
미리암 그린스팬 지음, 고석주 옮김 / 또하나의문화 / 1995년 4월
품절


개인은 어떻게 발달하는가? 하는 질문 자체는 과학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내재된 문제는 특정 집단에 속하는 한 개인이 특정한 사회 내에서 어떻게 성장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서도 위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할 수 있다고 보는 데 있다. 여성은 단지 그러한 집단들 중 가장 규모가 큰 집단일 뿐이다. 우리 사회처럼 성·종교·계급으로 계층화되는 사회에서는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질문을 함으로써 간과 될 수밖에 없는 집단들이 있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러한 일반적 질문에서 상정되는 개인은 남성 백인 중산층이다. 따라서 그 모델에서 여성·흑인·노동자 계층이 나타나지 않게 되고 곧 이것은 전체 사회 속에서 이러한 집단들의 문제가 부각되지 못함을 반영해 준다.
-42쪽

프로이드는 더 논의할 필요가 있는 사고인, 자녀의 주된 양육자는 어머니라는 가정 생활에서의 결정적인 요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었다. 가족의 가부장적 본질이 프로이트에 의해 설명되었다기보다는 가족의 본질이 워낙 그런 것으로 전제되었으며 따라서 환경에 대한 프로이트의 정의는 ‘환경’과 ‘어머니’를 동일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를 계승한 정신 의학에 의해 더욱 확장되었고 현대 심리학이 남용하는 것 중의 하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자녀의 모든 사례에서 인간적 고민이나 고통의 원인으로 어머니를 비난하는 일이 흔하다.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가부장적 지배가 모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적절한 개념도 형성되지 못한 채, 아이들에 대한 어머니의 영향력은 과대 평가되거나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50쪽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외부적’인 것이 여성의 내부로 들어가 ‘내면적’인 것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이해하는 것으로, 사회 구조가 어떻게 여성 심리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형성하는가하는 것이다.
남성지배 사회에서 여성들은 사회적 피해자라는 맥락에서 자아 정체감을 형성한다. 그런 사회에서 정상적이고 여성다운 여성이 ‘피해자’이다.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무력한 상황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여성이다. 그러한 적응은 심리적 문제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는 남성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며 자신을 평가 절하하고 제한하고 심지어 증오하기까지 하는 여성이다. ‘피해자’가 자신에게 이롭지 않는 행동을 자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재배당하는 것에 잘 적응한 사람일수록 자기 파괴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정체성 특유의 문제와 갈등, 그리고 그에서 비롯되는 ‘증상’을 갖게 되기 쉽다.
-65,66쪽

인본주의적 상담역시 전통 체제에서와 같이 ‘문제는 모두 자신에서 비롯된다’는 신화에 의지하고 있다. 그 결과, 자신의 삶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 못하는 내담자 자신을 비난하게 만든다. 그뿐 아니라 있지도 않은 힘을 가질 수 있다고 거짓 약속을 함으로써 계속 오류를 범하게 된다.
-154쪽

성역할과 태도가 여성 억압의 원인으로 고려되는 반면에 그 역할과 태도를 강화시키는 제도화된 가부장제 구조, 그리고 계급 지배 구조는 미미하게 다루어지거나 간과된다. 사실상, 성역할은 단순히 가정 내에서 어머니는 집에 있고 아버지는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가정 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 뿐만 아니라 가정 밖인 임금 노동 시장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도 성역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 하는가 뿐만 아니라 아버지들이 어머니들을 어떻게 착취하는가에도 그 원인이 있다.
성역할은 여성이 바로 우리와 같은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심리적으로 남서전체, 그 중에서도 특히 자본가 계급 남서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종의 ‘성계급’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73쪽

모든 주요한 제도를 남성이 운영하고 문화 자체가 남성 중심적인, 철저한 남성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권력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깊게 뿌리 내린 무력함에 대한 확신과 억눌린 분노를 바로 일반적으로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우울증이란 남성 통치가 여성에게 미치는 개인적인 영향 중 하나에 붙인 임상적인 명칭일 뿐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수동적인 동시에 공격적인 적개심을 특징으로 갖게 된다.
여성들은 분노만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권력 사용의 제도화된 방식뿐만 아니라 권력이 있다는 느낌이 갖는 힘도 두려워한다. 여성이 사회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이 여성에게 권력은 남성적인 것이고, 무력함은 여성적인 것이라고, 즉 분노는 남성적인 것이고, 우울은 여성적인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성들은 자기가 권력이 있거나, 있다고 느낄 때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이제는 더 이상 남성의 보호를 받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것은 힘이 있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성에게 있어서 힘이 있다는 느낌은 여성답지 못하다는 느낌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이러한 느낌은 여성의 정체감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따라서 기분 좋은 느낌은 곧 기분 나쁜 느낌이 된다.
우울증은 권위에 대해 극단적으로 간접적이긴 하나 틀림없이 도전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우울증은 이런 방법을 통해 ‘피해자로서의 여성’으로 하여금 상대편을 무력한 존재로, 스스로를 강한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피해자’는 도와주는 이가 자기만큼 무력하게 느끼도록 교묘하게 조작한다. 이것이 바로 피해자들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은 채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다. 관심을 끌면서 동시에 그 관심에 저항하는 방법, 지배당하는 현실에 굴복하면서 동시에 도전하는 방법, 여성다우면서도 동시에 여성다움에 맞서 투쟁하는 방법이다.
-224~227쪽

'불감증‘이란 용어 자체도 남성적인 감이 없지 않다. 불감증인 여성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육체로서의 여성이다. 그 여성은 남성의 이익을 위해 자기의 성, 또는 성적 쾌감이 이용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지 성적 만족을 얻고 또 주는 능력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 성을 당신에게 양도하지 않을 것이다" 또는 "나는 당신을 위해 살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불감증은 남성의 승리를 용납지 않는 여성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불감증은 남성이 여성에게 쾌감을 느끼게 한 후, 여성에게 행사하는 권력의 근원인 남자다움에 스스로 매혹되는 즐거움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여성의 방식이다.
이것은 힘을 발휘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또 다른 간접적인 방법으로 남성의 성적 접근을 거부함으로써 남성으로 하여금 모욕당했다고 느끼게 하여 무력함을 느끼게 만드는 방법이다. 쾌감을 느끼는 척 가장하는 여성들도 남성 권력에의 굴복을 간접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유형에 속한다. 기술적으로 여성은 남성으로 하여금 자기가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도록 내버려 두지만 그가 연극에 속에 넘어갔다는 비밀스러운 악의를 가진 채 남성을 경멸한다.

-228~229쪽

노동자에게는 집에 아내가 있다는 전제가 암암리에 깔려 있는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여성 가장은 더 궁지에 물리게 된다. 이들은 여성 역할과 임금 노동 시장에서의 직장인이라는 두 영역의 일을 불충분한 자원을 가진 채 감당해야 하므로, 한 가정의 어머니 역할과 아버지 역할이라는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해야만 한다. -237쪽

‘고집부리기’라 일컫는 기미를 가끔 보이는 내담자가 있다. 철저하게 수동적이거나, 어떻게 느끼는가조차도 말하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심리 상담에서의 난국을 타개하려 도움을 주려는 내 제안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분노를 안으로 감추고 직접 표현하면 안 된다고 배운 여성들은 화내는 대신 이렇게 수동적이 공격성이나 간접적인 적대감을 키워 왔다. 이럴 때, 나도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을 내담자가 알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의 내 의도는 내담자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여향을 주는가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무력감을 느끼는 내담자는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랄 때가 많다. 더구나 심리 상담가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 아닌가! 자기 분노가 비록 간접적이긴 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허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상당히 기뻐한다. 그 결과, 종종 내게 분노를 직접 표현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대개의 경우, 그 분노는 내가 빨리 자기를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느낌과 관련이 있다. 자기 분노가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직접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 반응을 알려 주는 것이야말로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분노를 넘어서서 심리 상담 작업을 계속하도록 돕는 길이다, -274쪽

‘새로운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는 듯하다. 여성 해방 시대의 여성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남성들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슈퍼 우먼이라는 새로운 신화에 자신을 꿰맞추려는 것은 그 틀에 들어맞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맞지 않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문제들을 안겨 준다.
‘새로운 여성’은 전체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 경제적 불이익을 벗어난 예외적인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새로운 여성’이미지는 예전에 가정적 봉사의 대가로 기대했던 사항들은 (재정적 안정, 결혼, 순결 등)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남자를 돌보는 ‘옛 여성’의 매력까지 모두 지니고 있는 이상적인 여성이다. 이것은 개인 관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억압을 야기시키기 쉽다. ‘새로운 남성’은 자기가 필요할 때에는 자기를 위해 ‘새로운 여성’이 있기를 원하며 자기가 편리할 때는 ‘독립적’이기 원한다.
여성의 독립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남성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매우 힘든 시련을 겪고 있다. 실제로 내가 아는 가장 독립적인 여성들을 보면 여성의 독립성을 무시하지 않는 남성을 찾는 데만도 큰 어려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식 여성의 의존성을 싫어하는 남성일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구식 여성에게서처럼 자신이 숭배자로 대접받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이 남성들을 위협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은 여성이 그들을 특별히 중요하거나 가치 있는 상대로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위해 단순히 성적 대상물로 대하는 것이다. )-316,317쪽

문화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는 여성의 의존성은 약점이 되고 남성의 독립성은 과대 평가된다. 게다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의존성은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간다. 이렇게 된 원인은 여성의 의존성과는 달리 우리 문화가 남성의 의존성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그들의 성적, 정서적 그리고 가정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마누라’라 있다. 동료에게 독립의 화신과도 같이 견고한 남성은 식사를 차려 주고 자의식을 어루만져 주고 자녀를 키워 주며 또 청소까지 해주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간다. 이런 남성은 아내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의존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많은 여성들은 남성이 보살펴 줄 것을 원하기 때문에 의존적이라고 믿는다. 이러나 이것은 교묘하게 만들어진 가부장제적 이중 사고라는 게임일 뿐이다. 남서을 정서적으로 돌보아 온 것은 여성이지만 남성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여성의 임무였으므로 남성들은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이것을 감추거나 부인해 왔다. 이에 비해 여성의 욕구는 남성에게서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욕구를 남성보다 더 느끼게 된다. 또한 보살핌은 우리 사회에서 남성다운 속성이 아니다. 그 걸과 남성들은 여성에게서 받기만 했을 뿐 어떻게 주는지 알지 못한다. 이렇게 전통적인 관계 속에서 돌보는 일은 의심할 여지없이 모두 여성이 한다고 항상 여겨져 왔기 때문에 남성의 의존성은 거론될 필요조차 없다.
여성에게는 아내가 없는 대신 재정적으로 보호해 주는 남편이 있다. 즉 결혼은 여성의 재정적 의존을 보증해 준다.
우리사회가 아직은 남성의 독립성은 받아들이면서 여성의 독립성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여성을 절름발이로 만드는 이런 종류의 의존성을 가졌다고 비난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다.
-325,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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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있는 지혜의 여신들 - 심리여성학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이경미 옮김 / 또하나의문화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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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는 여성들에게는 전혀 '민주주의의 요람'이 아니었다. 모든 아테네 여성들은 가솔과 재산을 다스리는 남성의 법적 귀속물이었다. 아테네 법에 따르면 여성은 보리 한 말도 처분할 수 없었다. 이 시기 아테네 사회 여성의 법적 지위는 노예의 지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성의 소유물이 아닌 여성은 법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그녀는 법에 명시된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법정에 호소할 일이 있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아버지는 결혼 전에 성 관계 있는 딸을 노예로 팔 수 도 있었다. 태어자자마자 버려지거나 팔려 가는 여자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노예로 팔린 소녀들은 매춘부로 전락했으며 학대와 고문 혹독한 대우를 받으며 언제 다시 팔려갈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아테네는 고문을 제도화한 잔혹한 노예 사회였다. 재판 과정에서 노예의 증언은 고문을 받은 상태에서 이야기한 것만이 채택되었으며 공개 고문실은 노예들을 고문하느라 늘 분주하였다.

-56,7쪽

지혜와 함께 하면, 분노는 변화를 도모하는 곳에 활용되고 최선의 길을 선택하여 결단 내리도록 도와준다. 지혜가 있으면, 진리에 직면하거나 화를 내야 할 순간 질책이나 수치심 때문에 주춤거리거나 관심을 분산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명한 전략과 분노가 함께 어울러지면 나이든 여성은 만만치 않은 할머니로 변신한다.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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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시애틀 추장 외 여러 명의 인디언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1993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동안 숲에 가고 싶었다. 먼 산이 아니라 걸어서 갈 수 있는 풀들이 많은 숲. 잔풀들의 간지럼과 조용한 몸짓이 보고 싶어졌다. 어릴 적 뒷산에 가끔 혼자 가곤 했다. 누워서 나뭇잎들이 뒤덮고 있는 틈새의 하늘을 바라보거나 비행기를 길게 눈으로 따라가거나...... 어릴 때도 혼자 있길 좋아했던 것 같다.

인간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대지의 생명들에게 부처처럼 자비로운 인디언들을 사라지게 했다. '슬퍼하거나 외로워 하지 말라...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 어디에나 우리 인디언들의 영혼이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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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1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불교TV에서 현각스님의 설법을 챙겨 들었다. 설법을 들으며 그가 언젠가는 승려 생활을 접고 다른 활동을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에너지가 너무나 왕성했으며 일반적으로 '스님'이 갖는 식물적 이미지가 아니라 미안한 표현이지만 재능과 세상에 대한 자신감, 호기심 등이 동물적 혈기로 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삶에서 회의를 갖을 수 밖에 없지만 그 회의와 갈증에서 우물을 파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그는 세속적 월계관을 쓸 수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가 한국 불교에 계속 남아 있는 다면 포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님의 중진을 빈다. 그리고 나의 구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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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4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