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아이들이 항복할 기미가 전혀 없다고!”

 

팔달산을 봉쇄하고 때마침 운좋게 비밀땅굴마저 발견해서 막아버렸으니 산속의 아이들이 곧 수상한 무기와 함께 항복하리라고 예상했던 황박사는 팔달산에 있는 이기혁 보안국장이 뜻밖의 상황보고를 하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곁에 같이 있던 천재인 국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하루 이틀이면 두 손 들고 항복할 줄 알았는데 뜻밖입니다.”

 

스크린속에서 이기혁 보안국장은 자신도 멋적은지 뒷통수를 굵적거린다.

 

팔달산에 또다른 비밀통로가 있는 거 아니야?”

저희들도 혹시나 해서 철저하게 주변을 수색했는데 더 이상의 비밀땅굴은 없었습니다.박사님,”

그런데도 녀석들이 버틴다 이거지?”

 

스크린에서 돌아서서는 왔다갔다하는 황박사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파여갔다.

 

이거 큰일인데 ? 정말 방법이 없는 거야?”

 

그는 천재인을 쳐다보며 물었지만 그 역시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놈들이 며칠이나 버티겠습니까? 결국에는 항복하고 말 테니 너무 걱정마십시오. 박사님,”

정말 기다리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황박사 역시 달리 뽀족한 수가 없어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벌써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그때 갑자기 중앙통제실을 뒤흔드는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이 놀라 돌아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화사하게 차려입은 소유천이 붉은 우산을 흔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가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냐?”

 

황박사의 물음에 석류같이 붉은 소유천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이제 그들을 불러오죠.

그들?”

 

소유천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순간 황박사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

그들은 너무 잔인해.”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나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황박사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던 터라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천재인을 힐끔 바라본다.

 

좋아, 그들을 최대한 빨리 데려와.”

.알겠습니다.”

 

 

 

 

다음날 7 8일 오후에 행궁광장에 두 트럭이 줄지어 나타났는데 첫번째 트럭에서 기존의 보안군과는 다른 특이한 갈색 제복을 착용한 건장한 남자들 15명이뛰어나왔다.

 

당신들은 뭐야?”

 

마침 광장에서 참모들로부터 산속에 있는 아이들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던 이기혁 보안부장은 난데없이 나타난 무리들을 보고는 황급히 뛰쳐나가 그들을 제지했다.그러자 무리들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보안국장앞에 쓰윽 나섰다.

 

 “나는 고독수 중령이요.”

 

고독수라는 자는 큰 체구에 어울리게 목소리가매우 굵직했지만 눈빛에는 독사처럼 차갑고 독한 냉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중령이라고는 했지만 그는 용병의 냄새가 더 났다.  그를 중심으로 서있는 다른 자들도같은 분위기였다. 사이보그처럼 표정이 없는 그들을 유심히 흝어보던 이기혁 보안국장은 벌컥 화를 냈다.

 

지금 작전중인 것 몰라?”

우리는 지금 당신들이 못하는 일을 대신하러 왔소.”

 

고독수의 말투와 표정은 마치 산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봉쇄작전만 펼치고있는 보안군들을 조롱하는 듯 했다.기분이 상했지만 일당백의 기세가 넘치는 분위기에 보안국장은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도대체 뭘 대신하겠다는 거야?”

두고보면 알 것이요.”

 

고독수 중령은 더 이상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 용병들앞으로 나아가 무리들을 이끌고 산쪽으로 나아갔다.안하무인격인 고독수의 행동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보안국장은 황급히 장시장에게 보고를 했다.그 사이 대오를 갖춘 고독수의 용병들은 저돌적으로  팔달산기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고독수는 팔달산을 향해 확성기를 들더니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

 

? 저들은 뭐지?”

 

고요하던 산중에 난데없이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자 영산수호회 멤버들이 담장앞으로 벌떼처럼 몰려왔다.

그러자 고독수 중령은 술렁이는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황금산 박사가 보낸 고독수 중령이다. 긴말할 것 없이 너희들을 기술요원들을 살해한 혐의로 모두 체포하겠다!”

 

불안한 시선으로 갈색 제복의 유심히 쳐다보고있던 정화는 고독수의 말에 화를 버럭 냈다.

 

“우리는 그들을 죽인 적이 없다는데 왜 자꾸 억지를 부리죠?”

“발칙한 것들!너희들을 잡아서 조사하면 금방 탄로날 텐데 거짓말을 하다니!”

 

고독수가 앞으로 걸어나오며 위협을 가하자 곁에 있던 영훈은 산기슭에 엎어져 있는 시체들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응수했다.

 

“산속으로 멋대로 들어오면 당신들도 저 꼴이 될텐데!

“하하, 웃기는 소리 마라!

 

아이들을 향해 서서히 걸어오던 고독수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다가 정색을 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공중을 향해 쏘았다.

 

 “우리들은 여의주를 장착하지 않은 사이보그 용병이다!

“장착을 안했다고?

 

정체불명의 제복들도 여의주를 이식해서 쉽게 산속으로 들어오지않을 거라고 다소 안심했던 아이들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는 저 등신들처럼 안 죽어!

“뭐?

 

고독수의 엄포에 비로소 아이들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우리들은 너희들을 체포하고 너희들이 숨겨놓은 비밀무기를 직접 회수하기로 황박사와 계약을 맺었다. 우리는 한번 약속한 것은 지옥끝까지라도 가서 반드시 관철시킨다. 그래서 우리를 사이보그라고 부르지.후후,

 

마치 점령군이라도 된 것처럼 고독수가 의기양양해 말하자 태풍은 그를 향해 활을 겨누면서 되받아쳤다.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당신을 쏘겠어!

“나를 쏜다고!

 

대담하게 나오는 태풍의 대응에 고독수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하하, 그 따위 활로 나를 협박해! 이 자식들이 죽을려고 환장했군!

 

서서히 웃음을 거둔 고독수는 용병들을 향해 돌아섰다.

 

“얘들아, 저 버릇없는 녀석들을 모두 체포해!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병들은 거침없이 영산수호회가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이 펜스를 거칠게 발길로 걷어차자 오랫동안 방치되어 심하게 삭아버린 펜스는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그리고 용병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단숨에 팔달산으로 들어섰다.

 

 “모두 피해라!

 

 설마했던 아이들은 혼비백산하여 급한대로 허둥 지둥 산기슭에 도랑처럼 길게 파진 참호속으로 뛰어들었다.그리고는 아수라 단원들은 참호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용병들에게 활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격을 받은 고독수는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교전수칙에 따라 사격!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용병들은 주저없이 참호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그 바람에 기겁을 하며 태풍의 옆에 웅크리고 있던  한 사내 아이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의 오른쪽 손에서 붉은 피가 터져나왔다.

 

“상도야!

 

쓰러진 아수라 단원을 보고 격분한 듯 태풍은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고독수에게 화살을 날렸다.하지만 화살은 용병들의 무자비한 총질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참호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격으로 인해 아수라 단원들이 제대로 활을 못쏘자 의기양양해진 고독수는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반항하는 놈은 사살해!

 

섬뜩한 명령이 떨어지자 사이보그 용병들은 로봇처럼 굳은 표정으로참호속의 아이들을 향해 총으로 겨누며 서서히 옥죄여갔다. 아이들이 하얗게 질려 밖으로 도망가려는 순간 참호주변에서 느닷없이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건 또 뭐야?

 

그리고 하늘이 금방 소나기라도 퍼부을 것 같이 시커멓게 변해버리자 고독수는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사이 거친 바람은 순식간에 거친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했다. 회오리는 미친 듯이 엄청난 양의 흙먼지를 빨아들이고는 그것을 사이보그 용병들에게 일시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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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사람은?

 

그때 장미옥과 함께 멧돼지 구경을 나왔던 정화는 멧돼지를 겨누는 사내 아이를 금방 알아봤다. 그 아이는 지금 동굴속에서 감금되어있어야 할 위험한 남자  한지수였다.

 

“쌔액!

 

 어쨌든 기대에 찬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지수가 날린 화살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50미터 이상을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보기좋게 커다란 멧돼지의 엉덩이에 깊숙히 박혔다. 멧돼지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와아!

 

그 모습에 숨죽이고 지켜보고있던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그 사이에도 지수는 화살을 다시 재어 다른 멧돼지에게 날렸다. 이번에도 멧돼지 한 마리가 무릎을 끓고 비명을 질러댔다.

 

“와아!

 

아이들은 또다시 환호성을 지르며 멧돼지와 한지수를 번갈아보았다. 영산수호회에  혜성같이 나타난 지수는 구세군이나 다름없었다. 우려의 눈빛으로 지수를 쏘아보던 정화는 때마침 그곳에 나타난 공노인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쫓아갔다.

 

“저 아이는 어떻게 된 거예요?

 

정화는 환호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있는 지수를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공노인에게 물었다.

 

“내가 풀어주었다.

“네에?

 

깜짝 놀라며 휘둥그래진 정화의 눈이 불안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이제는 위험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수는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하더라. 심지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몰라.

“정말요?

 

정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들을 발견한 지수가 그녀에게 성큼 성큼 다가왔다.

 

“내 솜씨 괜찮지?

 

마치 오랜 된 친구처럼 정화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 지수의 얼굴은 강인하지만 다정다감하고 선한 남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얼마 전에 악착같이 자신을 쫓으면서 보여주었던 표독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때 장미옥이 슬그머니 다가와 정화의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귓속말을 속삭였다.

 

“어머, 쟤 누구니?

“어, 어제 시내에서 데리고 왔어.

“어쩜, 어디서 저런 훈남을 꼬셨니 ?너 참 재주좋다!

 

장미옥은 금방 지수의 준수한 외모에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그날 세 마리의 멧돼지를 잡은 영산수호회 아이들은 오랜만에 멧돼지 바비큐 잔치를 벌렸다.

 

“얘들아, 잠깐만,

 

문득 자리에서 일어난 지성은 정신없이 멧돼지 다리를 뜯고있는 아이들에게 매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난 왠지 이 영산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왠지 확신에 찬 지성의 말에 영훈은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또 왜 그러실까?

“영산이 멧돼지를 우리를 위해서 보낸 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에이, 재수없는 멧돼지가 걸려든 거지.

“아니야, 잠깐만!

 

지성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땅바닥에 엎드리고는 자신의 귀를 땅바닥에 대어본다. 주변에 있던 모든 친구들은 마치 태아의 숨소리를 들어보려는 의사와 같이 매우 진지한 지성의 행동을  숨죽이고 지켜본다. 지성은 한참동안 꼼짝도 않고 땅바닥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땅바닥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영훈은 궁금증을 참지못하고 서둘러 물었다. 

 

“뭐좀 알아냈어?

“……”

 

대답대신 지성은 고개만 끄떡이었다.

“도대체 그게 뭔데?

“……”

 

그래도 지성은 계속 뜸만 들이더니 문득 양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는 하늘을 우러러본다.

 

"왕이 오셨어.

“무슨 소리야? 왕이라니?

“이 영산을 다스리는 왕말이야! 그분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어.

“그게 정말이야?

 

지성의 대답에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응.그분이 우리보고 멧돼지를 잡아먹었으니 기운내서 여우탑을 끝까지 저지하라신다.

“정말?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 잠시 술렁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성은 갑자기 손뼉을 치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 이런, 바보들, 내가 장난 좀 쳤더니 진짜로 믿네”

“에이,

 

그제야 다른 아이들도 흥분되어있던 얼굴을 풀고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영산의 얄개 장소천은 지성의 앞에 다가가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졌다. 오늘의 유머는 네가 일등이다. 하하,

 

소천을 따라 정화는 겉으로는 해맑게 웃었지만 지성이 농담으로 던진 영산의 왕이라는 말이 왠지 그녀의 가슴에 조용하지만 긴 파문을 남겼다.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자 지성은 다시 친구들에게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간 덕분에 우리 영산수호회가 상당기간 버티면서 여우탑을 저지할 수 있게 되었어.

“맞아, 보안국장 열 좀 받겠군.하하,

 

영훈이 웃으며  맞장구치자 다른 멤버들도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이빨사이에 낀 고기 찌꺼기를 긁어내던 강태풍이 생각에 잠긴 정화에게 물었다.

 

우리는 그동안 뭘 하지?”

 

정화는 생각에서 벗어나 대꾸했다.

 

푸른 빛을 찾아야지.”

왜 보안국장에게 넘기려고?”

 

영재가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정화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무슨 소리! 푸른 빛의 정체는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기술요원들이 죽고 여우탑이 무산된 거야. 푸른 빛이 여기에 있는 한 보안군들은 꼼짝못해!우리에게는 아주 잘된 거야. 따라서 우리는 푸른 빛을 찾아서 놈들이 못 찾도록 보호해주어야 해. 그것이 멧돼지를 보내준 왕의 뜻인지도 몰라.”

 

그녀의 설명에 지성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화답했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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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수호회의 아이들이 크게 당황하여 술렁이자 지성은 침착하게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땅굴의 이곳 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잠시 후 지성은 이윽고 공노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보안군들이 땅굴입구를 발견하고 화약으로 폭파시킨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발 늦었구나.”

 

공노인의 얼굴빛이 급속히 어두워지자  영재는 무너져내린 흙더미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우리 이제 산속에 정말 갇혀버린거예요?

 

영재가 고함을 지르자 천정에서 흙더미가 우수수 떨어졌다.

 

위험하다, 일단 여기서 빨리 나가!

 

공노인은 황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땅굴밖으로 빠져나왔다.

 

금잔디 광장에서  다시 열린 비상회의는 그야말로 침퉁한 분위기에 푹 빠져버렸다. 바깥세계와 통하는 유일한 땅굴이 꽉 막혀버렸으니 모두 절망감에 빠진 것이었다. 마돈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머리통을 쥐어뜯었다.

 

이제는 여우탑이 문제가 아니라 꼼짝없이 굶어죽게 생겼군.

 

그의 푸념에 영재는 버럭 화를 냈다.

 

굶어죽다니 무슨 소리야?

식량이 없으면 굶어죽는 거지 별 수 있어?

 

마돈수는 힘없이 대꾸했다.하지만 지성은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마, 우리는 죽지 않아!

뭘 믿고 그리 큰 소리야?”

 

마돈수는 여전히 앞으로 먹을 일이 큰 걱정인 듯 했다.지성은 그의 어깨를 다닥거려 주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어. 정신만 바짝 차리면 돼.”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소천도 걱정말라는 투로 마돈수를 격려했다. 정화는 공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비상식량은 없나요?”

한 사람이 이 삼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쌀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인원은 장담을 못해.”

 

공노인이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하자 정화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것이라도 아껴 먹으면서 대책을 강구하죠.”

 

다음날은 아침부터 30도를 훌쩍 넘는 찜통더위가 시작되었다. 숲속의 잡목에 달라붙은 매미들은 사방에서 떼를 지어 힘차게 울어댔지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영산수호회 멤버들은 기운이 빠져 누각과 광장 여기저기에 누워 있었다.

“정화야,정화야!

 

절망적인 분위기가 누각을 짓누르고 있을 때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요란하게 정화를 찾았다.누각에 누워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고래밥이었다.

 

“왜그래?

“멧돼지가 나타났어!

 

고래밥의 얼굴은 흥분과 기쁨의 빛으로 환하게 타올라 왔다.

 

 “뭐, 멧돼지?

 

그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누워있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고래밥이 가리키는 능선으로 향했다.정말 그곳에 대여섯 마리의 멧돼지들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팔달산에는 멧돼지가 없었는데 저 놈들이 어디서 왔지?

“광교산에서 건너왔나?

“하긴 요즘 멧돼지가 번성하고 있다는 말을 들기는 했어.”

 

아이들은 뜬금없이 등장한 멧돼지 무리를 두고 배고픔도 잊은 채 출처에 대해서 설왕설래하고 있었다. 그러자 강태풍은 재빠르게 화살을 활에 재우며 호기롭게 소리쳤다.

 

“점심식사를 놓칠 셈이야! 빨리 저놈들을 사냥해야지!

“아,맞다!

그때서야 멧돼지의 가치를 깨달은 수 십명의 아이들은 일제히 활과 몽둥이를 집어들고 능선으로 달려갔다.그러나 눈치빠른 멧돼지들은 몰려오는 아이들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이구, 내 고기가 달아난다!

 

고래밥은 안타까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먹지못해 맥이 풀린 다리로는 죽기살기로 도망치는 멧돼지들을 따라 잡을 수 조차 없었다.어영 부영하다가 멧돼지들을 모두 놓칠 판이었다. 그때 아이들틈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와 강태풍의 대나무 화살을 나꾸어챘다.그리고는 도망치는 멧돼지를 침착하게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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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공노인과 산속의 아이들은 곧바로 금잔디 광장에서 긴급비상회의를 열었다.제일 먼저 영훈은 상기된 표정으로 분통을 떠뜨렸다.

 

보안국장은 왜 우리에게 살인자 누명을 씌우는 거지?정말 억울해서 미치겠어!”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주먹을 불끈 쥐며 분개했다.

 

맞아! 자기들도 기술요원들이 왜 죽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던데 무작정 우리에게 덮어 씌우다니……그 자식 미친 것 아냐?”

기술요원들은 정말 푸른 빛에 의해서 죽었을까? 아니면 사부님 말씀대로 독극물에 의해서 죽은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닐까?”

 

멤버들의 의견을 조용히 듣고있던 공노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기술요원들의 시신을 모아서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아야겠다.”

시신의 상태를?”

 

강태풍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러면 뭔가 너희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태풍이 머뭇거리자 공노인은 정화를 돌아보았다.

 

네 생각은 어떠냐?”

좋습니다.”

 

그녀가 흔쾌히 대답을 하자 공노인은 즉시 시신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뒤를 정화를 비롯한 핵심 멤버들이 조심스럽게 따라갔다.이윽고 첫번째 시신을 발견하자 공노인은 조심스럽고도 세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한참후 공노인은 정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째 모두 맹독에 의해서 죽은 것 같은데!

맹독이요?”

“여기를 좀 봐라, 몸에 푸른 반점이 여기 저기 생겼지?

 

공노인은 푸른 반점으로 얼룩진 시신의 팔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게 왜 생긴거지요?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었을 때 생기지.”

 

잠시 후 공노인과 아수라 군단들은 다섯구의 기술요원 시신을 들고 이기혁 보안국장이 머물고 있는 초소로 몰려갔다.공노인은 뜨악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기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잘 보시요. 저 기술요원들은 맹독에 의해서 사망한 것 같소.”

말을 마친 공노인은 이기혁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이기혁은 시신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공노인게 버럭 화를 냈다.

 

“그 독극물도 너희들이 뿌렸겠지.”

뭐라고!”

 

이기혁 보안국장의 막무가내에 할 말을 잊었다는 듯 공노인의 얼굴이 핼쓱해졌다.

 

당신은 여우탑을 저지하기 위해서 푸른 빛 그리고 독극물로 기술요원들을 죽인 거야. 다시 말하지만 그들을 살해한 무기를 당장 내놓고 항복해!”

, 이런 억지가 있나?”

 

공노인은 장탄식을 했지만 왠일인지 이기혁 보안국장은 그들의 결백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했다.결국 공노인과 영산사랑회 멤버들은 억울함을 풀지못하고 시신을 그곳에 놔 둔채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공노인은 아이들을 다시 불러모아 자리에 앉혔다.아이들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공노인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기술요원들은 독글물에 사망한 것 같은데 보안국장은 자꾸 푸른 빛 타령만 하고 있으니 그것을 찾아내기 전에는 봉쇄를 풀 것 같지 않구나. 그런데 푸른 빛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아무래도  오늘 밤 모두 여기를 빠져나가거라.

 

공노인의 제안에 영훈은 고개를 갸웃뚱했다.

 

“보안군들이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틈도 없이 완전히 둘러쌌는데 어떻게 빠져나가죠?

 

영훈의 걱정에 공노인은 엷은 미소를 짓는다.

 

“사실은 이 산에 외부로 통하는 땅굴이 있단다.

“땅굴이요?

 

혹시나 정말 굶어죽는 것이 아닌가하고 근심 가득하던 고래밥의 얼굴에 제일 먼저 혈색이 돌았다.

 

“내가 예전에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땅굴을 우연히 발견했단다.

“정말 다행입니다.

 

마침내 큰걱정을 털어냈다는 듯 영훈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공노인은 다시 아이들을 둘러본다.

 

“그 땅굴로 오늘밤 모두 빠져나가라.

“네.”

 

소득없는 수색과 배고픔에 지쳐버린 대부분의 아이들은 두말없이 공노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정화는 걱정스러운 빛으로 말했다.

 

“할아버지는요?

“정화야, 난 여기가 내 집이니 혼자 남겠다.

“할아버지, 안돼요.

“너희들이나 어서 나가.

할아버지,”

그만, 됐어.”

 

공노인은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정화는 공노인의 의지가 확고한 것을 확인하고는 산속에 머물고 있던 아이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그날밤 자정 무렵 수 백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땅굴을 통해 팔달산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정화는 지성 그리고 영재와 같이 조를 이루어 영산사랑회 멤버들을 한 명 한 명씩 각자의 집에 데려다 주었다. 마지막 아이까지 무사히 귀가시키고나자 시각이 새벽 2시가 훌쩍 넘었다.

정화, 지성, 영재도 각자의 집으로 가야했으나 산속에 홀로 남아있을 공노인이 마음에 걸려 선뜻 그러지 못하고 괜히 적막한 밤거리만 배회했다. 그러던 그녀는 바지주머니에서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을 느꼈다.꺼내보니 하늘색 작은 USB였다.

 

“……!”

 

그것은 지난 번 설산이 죽기 전에 정화에게 넘겼던 USB였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설산이 죽기 전에 내게 준 것이었는데……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정화가 탄식하자 곁에 있던 지성이 눈빛을 반짝이며 USB를 받아쥐었다.

 

그렇다면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을텐데 어디 가서 열어보자.”

 

말을 마친 지성은 마침 10여미터 앞에서 심야영업을 하고 있는 PC방으로 부리나케 뛰어들어갔다.정화와 영재도 일단 그를 쫓아들어갔다.그들은 지정받은 PC앞으로 가서 황급히 작동시키고 USB를 꽂았다.잠시 후 여우탑에 대한 숨은 비밀이 그들의 놀라운 탄식속에 그대에 눈앞에 드러났다.

 

세상에,”

맙소사!”

 

그날 아침 9시 공노인을 비롯한 영산사랑회 주요 멤버들이 금잔디 광장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공노인은 정화와 영재 그리고 지성을 돌아보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황박사가 팔달산에 여우탑을 세우려는 목적이 여의주 반대자들을 한번에 잡아들이기 위한 것이라 말이지?”

.”

 

정화는 새삼 몸서리를 치며 대답했다.

 

,그런 다음에는 타화자재천국이라는 가상세계를 세우겠다.”

유감스럽지만 그렇습니다.”

 

지성은 솟구치는 분노를 간신히 참는 듯 힘들게 말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팔달산에서는 기술요원들이 죽고 여우탑을 세우지 못하는 바람에 그것이 중지된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정화는 정색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기 때문에 팔달산을 떠나려던 저희 계획을 철회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산에 머무르겠다는 말이냐?”

.”

그것은 어제 말한 대로 매우 위험한 일이야.”

 

공노인이 걱정스런 빛을 띠며 만류하려고 하자 지성이 강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다고 저희들이 영산을 버리면 황박사가 어떻게든 이 곳에 마지막 여우탑을 세우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숱한 사람이 심각한 위험한 빠집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영산을 보호해야 합니다.”

 

정화는 다시 적극적으로 지성의 의견을 지지하고 나섰다.

 

너희들의 걱정을 잘 알겠다만……”

 

공노인은 팔달산에 세워지는 마지막 여우탑이 세상에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무턱대고 아이들을 만류할 수도 없어 그저 말끝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회의가 끝나자 아이들은 즉시 영산사랑회 멤버들은 수소문을 하여 50명의 아이들을 다시 팔달산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영산사랑회를 영산수호회라는 이름으로 바꾸고는 팔달산에 여우탑 건립을 결사적으로 저지하기로 했다. 또한 장기적인 투쟁을 위해 다시 시내로 나가 식량을 구해오기로 했다.

 

“……!”

 

그런데 오전 11시경 시내로 나가기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밀땅굴이 있는 부근에서 갑자기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깜짝 놀란 공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안한 표정으로 땅굴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창백한 낯빛을 하고는  그곳으로 황급히 뛰어내려갔다.아이들도 누구랄 할 것 없이 공노인을 따라 달려갔다.

땅굴속으로 들어가 앞서 달려가던 공노인은 문득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굳어져버린 공노인의 시선이 무너져 내려앉은 흙더미에 닿았다.

 

이런, 출구가 막혔어!”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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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우리가 함정을 팠다고 엉터리 핑계를 대면서 꽁무니를 빼는 거죠?”

 

비록 나이는 어려보였지만 비수처럼 예리한 지성의 추궁에   이기혁 보안국장은 얼른 받아치지를 못하고 버벅거렸다.

 

“그건……”

 

궁지에 몰린 이기혁이 되지도 않는 말이라도 내뱉으려고 마악 입을 뗄 때 뒤쪽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저들처럼 죽을까봐 그러겠지.”

 

느닷없는 조롱에 깜짝 놀란 정화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그곳에 머리카락이 성성하고 커다란 검은 색 뿔테 안경을 쓴 공노인이 서 있었다.

 

“사부님!

 

그를 알아본 아이들은 크게 반색을 했다. 아이들은 비록 큰소리를 치고는 있었지만 느닷없는 보안군의 포위에 내심 매우 불안해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그에게 몰려갔다. 공노인은  아이들에게 이제 걱정말라는 듯 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이기혁 보안국장에게 성큼 다가갔. 이기혁 보안국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공노인을 위아래 흝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 영감이 문제의 푸른 빛을 만들어낸 장본인 같은데 당장 그 무기를 내놔!”

내가 푸른 빛을 만들어냈다고?”

“그래.  행색을 보니 이런 산속에서 썩어지낼 늙은이로는 보이지 않는데.당신이 그것을 만들었지?”

나를 그렇게 능력있는 자로 봐주니 매우 영광이지만 난 유감스럽게도 난 촌부라 그런 재주가 없소이다.

“거짓말 마!”

 

이기혁은 승산이 없는 논쟁을 그만 중지시키려는 듯 권총을 빼들고 공노인을 겨누고 위협했다.그래도 공노인은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죽여도 좋아. 하지만 나도 그것이 뭔지도 몰라!

“끝까지 발뺌하다니! 좋아, 당신이 그것을 내놓을 때까지 산속에서 아무도 못 나갈 줄 알아!

 “뭐라고? 그런 말도 안되는 억지로 아이들을 산속에 가두어 두다니! 그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야!

 

보안국장을 무섭게 질책하는 공노인의 눈빛이 분노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기혁도 밀릴 수 없다고 생각한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공노인을 쏘아봤다. 그러나 눈싸움만으로는 공노인을 제압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보안국장은 그의 권총을 공노인의 눈앞에까지 바짝 갖다대고 소리쳤다.

 

“범죄행위는 당신이 한 거야.”

생떼를 부리지 말게.”

, 산속에서 며칠 굶어보시지!그때도 당신 입에서 그 따위 한가한 소리가 나오는지 보자고!

 

이기혁은 공노인에게 위협적으로 내뱉고는 돌아서서 장승처럼 서 있는 보안군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수 백 명의 보안군들은 일사불란하게 팔달산을  10미터 간격으로 빈틈없이 봉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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