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공노인과 산속의 아이들은 곧바로 금잔디 광장에서 긴급비상회의를 열었다.제일 먼저 영훈은 상기된 표정으로 분통을 떠뜨렸다.
“보안국장은 왜 우리에게 살인자 누명을 씌우는 거지?정말 억울해서 미치겠어!”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주먹을 불끈 쥐며 분개했다.
“맞아! 자기들도 기술요원들이 왜 죽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던데 무작정 우리에게 덮어 씌우다니……그 자식 미친 것 아냐?”
“기술요원들은 정말 푸른 빛에 의해서 죽었을까? 아니면 사부님 말씀대로 독극물에 의해서 죽은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닐까?”
멤버들의 의견을 조용히 듣고있던 공노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기술요원들의 시신을 모아서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아야겠다.”
“시신의 상태를?”
강태풍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러면 뭔가 너희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그래도……”
태풍이 머뭇거리자 공노인은 정화를 돌아보았다.
“네 생각은 어떠냐?”
“좋습니다.”
그녀가 흔쾌히 대답을 하자 공노인은 즉시 시신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뒤를 정화를 비롯한 핵심 멤버들이 조심스럽게 따라갔다.이윽고 첫번째 시신을 발견하자 공노인은 조심스럽고도 세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한참후 공노인은 정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째 모두 맹독에 의해서 죽은 것 같은데!”
“맹독이요?”
“여기를 좀 봐라, 몸에 푸른 반점이 여기 저기 생겼지?”
공노인은 푸른 반점으로 얼룩진 시신의 팔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게 왜 생긴거지요?”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었을 때 생기지.”
잠시 후 공노인과 아수라 군단들은 다섯구의 기술요원 시신을 들고 이기혁 보안국장이 머물고 있는 초소로 몰려갔다.공노인은 뜨악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기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잘 보시요. 저 기술요원들은 맹독에 의해서 사망한 것 같소.”
말을 마친 공노인은 이기혁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이기혁은 시신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공노인게 버럭 화를 냈다.
“그 독극물도 너희들이 뿌렸겠지.”
“뭐라고!”
이기혁 보안국장의 막무가내에 할 말을 잊었다는 듯 공노인의 얼굴이 핼쓱해졌다.
“당신은 여우탑을 저지하기 위해서 푸른 빛 그리고 독극물로 기술요원들을 죽인 거야. 다시 말하지만 그들을 살해한 무기를 당장 내놓고 항복해!”
“허, 이런 억지가 있나?”
공노인은 장탄식을 했지만 왠일인지 이기혁 보안국장은 그들의 결백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했다.결국 공노인과 영산사랑회 멤버들은 억울함을 풀지못하고 시신을 그곳에 놔 둔채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공노인은 아이들을 다시 불러모아 자리에 앉혔다.아이들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공노인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기술요원들은 독글물에 사망한 것 같은데 보안국장은 자꾸 푸른 빛 타령만 하고 있으니 그것을 찾아내기 전에는 봉쇄를 풀 것 같지 않구나. 그런데 푸른 빛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아무래도 오늘 밤 모두 여기를 빠져나가거라.”
공노인의 제안에 영훈은 고개를 갸웃뚱했다.
“보안군들이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틈도 없이 완전히 둘러쌌는데 어떻게 빠져나가죠?”
영훈의 걱정에 공노인은 엷은 미소를 짓는다.
“사실은 이 산에 외부로 통하는 땅굴이 있단다.”
“땅굴이요?”
혹시나 정말 굶어죽는 것이 아닌가하고 근심 가득하던 고래밥의 얼굴에 제일 먼저 혈색이 돌았다.
“내가 예전에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땅굴을 우연히 발견했단다.”
“정말 다행입니다.”
마침내 큰걱정을 털어냈다는 듯 영훈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공노인은 다시 아이들을 둘러본다.
“그 땅굴로 오늘밤 모두 빠져나가라.”
“네.”
소득없는 수색과 배고픔에 지쳐버린 대부분의 아이들은 두말없이 공노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정화는 걱정스러운 빛으로 말했다.
“할아버지는요?”
“정화야, 난 여기가 내 집이니 혼자 남겠다.”
“할아버지, 안돼요.”
“너희들이나 어서 나가.”
“할아버지,”
“그만, 됐어.”
공노인은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정화는 공노인의 의지가 확고한 것을 확인하고는 산속에 머물고 있던 아이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그날밤 자정 무렵 수 백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땅굴을 통해 팔달산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정화는 지성 그리고 영재와 같이 조를 이루어 영산사랑회 멤버들을 한 명 한 명씩 각자의 집에 데려다 주었다. 마지막 아이까지 무사히 귀가시키고나자 시각이 새벽 2시가 훌쩍 넘었다.
정화, 지성, 영재도 각자의 집으로 가야했으나 산속에 홀로 남아있을 공노인이 마음에 걸려 선뜻 그러지 못하고 괜히 적막한 밤거리만 배회했다. 그러던 그녀는 바지주머니에서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을 느꼈다.꺼내보니 하늘색 작은 USB였다.
“……!”
그것은 지난 번 설산이 죽기 전에 정화에게 넘겼던 USB였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설산이 죽기 전에 내게 준 것이었는데……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정화가 탄식하자 곁에 있던 지성이 눈빛을 반짝이며 USB를 받아쥐었다.
“그렇다면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을텐데 어디 가서 열어보자.”
말을 마친 지성은 마침 10여미터 앞에서 심야영업을 하고 있는 PC방으로 부리나케 뛰어들어갔다.정화와 영재도 일단 그를 쫓아들어갔다.그들은 지정받은 PC앞으로 가서 황급히 작동시키고 USB를 꽂았다.잠시 후 여우탑에 대한 숨은 비밀이 그들의 놀라운 탄식속에 그대에 눈앞에 드러났다.
“세상에,”
“맙소사!”
그날 아침 9시 공노인을 비롯한 영산사랑회 주요 멤버들이 금잔디 광장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공노인은 정화와 영재 그리고 지성을 돌아보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황박사가 팔달산에 여우탑을 세우려는 목적이 여의주 반대자들을 한번에 잡아들이기 위한 것이라 말이지?”
“네.”
정화는 새삼 몸서리를 치며 대답했다.
“허,그런 다음에는 타화자재천국이라는 가상세계를 세우겠다.”
“유감스럽지만 그렇습니다.”
지성은 솟구치는 분노를 간신히 참는 듯 힘들게 말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팔달산에서는 기술요원들이 죽고 여우탑을 세우지 못하는 바람에 그것이 중지된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정화는 정색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기 때문에 팔달산을 떠나려던 저희 계획을 철회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산에 머무르겠다는 말이냐?”
“네.”
“그것은 어제 말한 대로 매우 위험한 일이야.”
공노인이 걱정스런 빛을 띠며 만류하려고 하자 지성이 강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다고 저희들이 영산을 버리면 황박사가 어떻게든 이 곳에 마지막 여우탑을 세우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숱한 사람이 심각한 위험한 빠집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영산을 보호해야 합니다.”
정화는 다시 적극적으로 지성의 의견을 지지하고 나섰다.
“너희들의 걱정을 잘 알겠다만……”
공노인은 팔달산에 세워지는 마지막 여우탑이 세상에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무턱대고 아이들을 만류할 수도 없어 그저 말끝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회의가 끝나자 아이들은 즉시 영산사랑회 멤버들은 수소문을 하여 50명의 아이들을 다시 팔달산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영산사랑회를 영산수호회라는 이름으로 바꾸고는 팔달산에 여우탑 건립을 결사적으로 저지하기로 했다. 또한 장기적인 투쟁을 위해 다시 시내로 나가 식량을 구해오기로 했다.
“……!”
그런데 오전 11시경 시내로 나가기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밀땅굴이 있는 부근에서 갑자기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깜짝 놀란 공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안한 표정으로 땅굴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창백한 낯빛을 하고는 그곳으로 황급히 뛰어내려갔다.아이들도 누구랄 할 것 없이 공노인을 따라 달려갔다.
땅굴속으로 들어가 앞서 달려가던 공노인은 문득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굳어져버린 공노인의 시선이 무너져 내려앉은 흙더미에 닿았다.
“이런, 출구가 막혔어!”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