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아이들이 항복할 기미가 전혀 없다고!”
팔달산을 봉쇄하고 때마침 운좋게 비밀땅굴마저 발견해서 막아버렸으니 산속의 아이들이 곧 수상한 무기와 함께 항복하리라고 예상했던 황박사는 팔달산에 있는 이기혁 보안국장이 뜻밖의 상황보고를 하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곁에 같이 있던 천재인 국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네.저도 하루 이틀이면 두 손 들고 항복할 줄 알았는데 뜻밖입니다.”
스크린속에서 이기혁 보안국장은 자신도 멋적은지 뒷통수를 굵적거린다.
“팔달산에 또다른 비밀통로가 있는 거 아니야?”
“저희들도 혹시나 해서 철저하게 주변을 수색했는데 더 이상의 비밀땅굴은 없었습니다.박사님,”
“그런데도 녀석들이 버틴다 이거지?”
스크린에서 돌아서서는 왔다갔다하는 황박사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파여갔다.
“이거 큰일인데 ? 정말 방법이 없는 거야?”
그는 천재인을 쳐다보며 물었지만 그 역시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놈들이 며칠이나 버티겠습니까? 결국에는 항복하고 말 테니 너무 걱정마십시오. 박사님,”
“정말 기다리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황박사 역시 달리 뽀족한 수가 없어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벌써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그때 갑자기 중앙통제실을 뒤흔드는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이 놀라 돌아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화사하게 차려입은 소유천이 붉은 우산을 흔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가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냐?”
황박사의 물음에 석류같이 붉은 소유천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이제 그들을 불러오죠.”
“그들?”
소유천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순간 황박사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네.”
“그들은 너무 잔인해.”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나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황박사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던 터라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천재인을 힐끔 바라본다.
“좋아, 그들을 최대한 빨리 데려와.”
“네.알겠습니다.”
다음날 7월 8일 오후에 행궁광장에 두 트럭이 줄지어 나타났는데 첫번째 트럭에서 기존의 보안군과는 다른 특이한 갈색 제복을 착용한 건장한 남자들 15명이뛰어나왔다.
“당신들은 뭐야?”
마침 광장에서 참모들로부터 산속에 있는 아이들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던 이기혁 보안부장은 난데없이 나타난 무리들을 보고는 황급히 뛰쳐나가 그들을 제지했다.그러자 무리들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보안국장앞에 쓰윽 나섰다.
“나는 고독수 중령이요.”
고독수라는 자는 큰 체구에 어울리게 목소리가매우 굵직했지만 눈빛에는 독사처럼 차갑고 독한 냉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중령이라고는 했지만 그는 용병의 냄새가 더 났다. 그를 중심으로 서있는 다른 자들도같은 분위기였다. 사이보그처럼 표정이 없는 그들을 유심히 흝어보던 이기혁 보안국장은 벌컥 화를 냈다.
“지금 작전중인 것 몰라?”
“우리는 지금 당신들이 못하는 일을 대신하러 왔소.”
고독수의 말투와 표정은 마치 산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봉쇄작전만 펼치고있는 보안군들을 조롱하는 듯 했다.기분이 상했지만 일당백의 기세가 넘치는 분위기에 보안국장은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도대체 뭘 대신하겠다는 거야?”
“두고보면 알 것이요.”
고독수 중령은 더 이상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 용병들앞으로 나아가 무리들을 이끌고 산쪽으로 나아갔다.안하무인격인 고독수의 행동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보안국장은 황급히 장시장에게 보고를 했다.그 사이 대오를 갖춘 고독수의 용병들은 저돌적으로 팔달산기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고독수는 팔달산을 향해 확성기를 들더니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
“어? 저들은 뭐지?”
고요하던 산중에 난데없이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자 영산수호회 멤버들이 담장앞으로 벌떼처럼 몰려왔다.
그러자 고독수 중령은 술렁이는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황금산 박사가 보낸 고독수 중령이다. 긴말할 것 없이 너희들을 기술요원들을 살해한 혐의로 모두 체포하겠다!”
불안한 시선으로 갈색 제복의 유심히 쳐다보고있던 정화는 고독수의 말에 화를 버럭 냈다.
“우리는 그들을 죽인 적이 없다는데 왜 자꾸 억지를 부리죠?”
“발칙한 것들!너희들을 잡아서 조사하면 금방 탄로날 텐데 거짓말을 하다니!”
고독수가 앞으로 걸어나오며 위협을 가하자 곁에 있던 영훈은 산기슭에 엎어져 있는 시체들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응수했다.
“산속으로 멋대로 들어오면 당신들도 저 꼴이 될텐데!”
“하하, 웃기는 소리 마라!”
아이들을 향해 서서히 걸어오던 고독수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다가 정색을 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공중을 향해 쏘았다.
“우리들은 여의주를 장착하지 않은 사이보그 용병이다!”
“장착을 안했다고?”
정체불명의 제복들도 여의주를 이식해서 쉽게 산속으로 들어오지않을 거라고 다소 안심했던 아이들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는 저 등신들처럼 안 죽어!”
“뭐?”
고독수의 엄포에 비로소 아이들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우리들은 너희들을 체포하고 너희들이 숨겨놓은 비밀무기를 직접 회수하기로 황박사와 계약을 맺었다. 우리는 한번 약속한 것은 지옥끝까지라도 가서 반드시 관철시킨다. 그래서 우리를 사이보그라고 부르지.후후,”
마치 점령군이라도 된 것처럼 고독수가 의기양양해 말하자 태풍은 그를 향해 활을 겨누면서 되받아쳤다.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당신을 쏘겠어!”
“나를 쏜다고!”
대담하게 나오는 태풍의 대응에 고독수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하하, 그 따위 활로 나를 협박해! 이 자식들이 죽을려고 환장했군!”
서서히 웃음을 거둔 고독수는 용병들을 향해 돌아섰다.
“얘들아, 저 버릇없는 녀석들을 모두 체포해!”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병들은 거침없이 영산수호회가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이 펜스를 거칠게 발길로 걷어차자 오랫동안 방치되어 심하게 삭아버린 펜스는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그리고 용병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단숨에 팔달산으로 들어섰다.
“모두 피해라!”
설마했던 아이들은 혼비백산하여 급한대로 허둥 지둥 산기슭에 도랑처럼 길게 파진 참호속으로 뛰어들었다.그리고는 아수라 단원들은 참호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용병들에게 활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격을 받은 고독수는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교전수칙에 따라 사격!”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용병들은 주저없이 참호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그 바람에 기겁을 하며 태풍의 옆에 웅크리고 있던 한 사내 아이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의 오른쪽 손에서 붉은 피가 터져나왔다.
“상도야!”
쓰러진 아수라 단원을 보고 격분한 듯 태풍은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고독수에게 화살을 날렸다.하지만 화살은 용병들의 무자비한 총질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참호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격으로 인해 아수라 단원들이 제대로 활을 못쏘자 의기양양해진 고독수는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반항하는 놈은 사살해!”
섬뜩한 명령이 떨어지자 사이보그 용병들은 로봇처럼 굳은 표정으로참호속의 아이들을 향해 총으로 겨누며 서서히 옥죄여갔다. 아이들이 하얗게 질려 밖으로 도망가려는 순간 참호주변에서 느닷없이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건 또 뭐야?”
그리고 하늘이 금방 소나기라도 퍼부을 것 같이 시커멓게 변해버리자 고독수는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사이 거친 바람은 순식간에 거친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했다. 회오리는 미친 듯이 엄청난 양의 흙먼지를 빨아들이고는 그것을 사이보그 용병들에게 일시에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