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융!”
어디선가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총알소리가 나더니 고독수 근처에 있던 바위에서 한 순간 불꽃이 튕겼다.
그리고 다시 연달아 터지는 요란한 총성과 함께 고독수 주변에 있던 서 넛 명의 용병들이 삽시간에 쓰러졌다.본능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린 고독수가 총성이 났던 위를 쳐다보니 언덕위에 있는 산책로에서 붉은 갑옷을 입은 수 십명의 군사들이 아름드리 벚나무 뒤에 숨어서 사이보그 용병들을 향해 조총과 활을 쏘고 있었다.그들의 뛰어난 사격 솜씨는 밑에 있는 용병들을 정확하게 하나 둘씩 쓰러뜨렸다. 그리고 다른 붉은 갑옷의 군사들이 쏜 화살도 용병들의 특수 방탄조끼마저 한 번에 꿰뚫어 버렸다. 그들의 공격에 혼비백산한 용병들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흩어져 숨었다.
그때를 놓칠세라 지수는 장미옥을 부축하고 있는 정화에게 달려가 같이 부축하며 성벽위로 힘겹게 내달렸다. 그때 붉은 갑옷의 군사들이 집중적으로 엄호사격을 해준 탓에 그들은 무사히 성벽뒤로 피신했다. 지수일행이 성벽뒷편으로 사라지고 엄호사격이 뜸해지자 고독수는 엎드려있던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분통을 터뜨렸다.
“저 놈들을 절대로 놓치지마!”
고독수가 표독스럽게 명령을 내리자 사이보그 용병들은 또다시 사격을 하며 일제히 성벽으로 돌진하였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탄과 화살속에서도 쓰러진 동료를 밟고 악착 같이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언덕위에서 능수능란하게 사격을 하던 붉은 갑옷의 군사들도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마침내 붉은 갑옷의 군사를 지휘하던 장수가 후퇴명령을 내리자 산책로 바닥과 나무 뒤에 숨어있던 십 여명의 붉은 갑옷의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금잔디 광장과 반대방향인 북쪽의 아스팔트 내리막 산책로를 향해 번개처럼 질주했다. 왼쪽 산기슭은 팔달산에서도 보기드문 높은 절벽으로 햐얀 날카로운 돌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이 절벽옆을 지나 굽어진 산책로 너머로 모습을 감추자 그들을 놓칠까봐 마음이 급해진 고독수는 사이보그 용병들을 이끌고 굶주린 이리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절벽위에서 엄청난 폭발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엇?”
예상치않은 폭음 소리에 화들짝 놀란 용병들이 위를 쳐다볼 틈도 없이 절벽에서 수많은 날카로운 돌들이 그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칼날 같은 돌파편들은 용병들의 머리와 팔다리, 그리고 방탄조끼를 두른 몸통에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아아악!”
졸지에 돌파편 세례를 맞고 용병들의 서 넛 명이 피범벅이 된 채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순식간에 벌어진 아비규환의 장에서 고독수는 운좋게도 죽음은 면했지만 왼손이 날카로운 돌파편에 찍혀 피가 철철 흘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반쯤 무너진 내린 절벽위를 쳐다보았지만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매설한 폭발물이 터진 다음의 매캐한 화약냄새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빨리 위험지대를 벗어나야한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번쩍 들면서 고독수는 혼비백산이 된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용병들은 허겁지겁 절벽에서 벗어났다.그런데 그들이 절벽에서 이 십여 미터 떨어진, 녹슨 운동기구 몇 개가 설치된 공터에 겨우 피신하여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서 있던 땅밑에서 또다시 요란한 폭음이 일어나며 돌들이 하늘높이 튀어올라왔다. 그리고 폭발에 찢겨진 운동기구들이 날카로운 쇠조각으로 변해 또다시 용병들을 덮쳤다. 그 결과 순식간에 또 한번 용병들이 무더기로 비명을 지르며 처참하게 쓰러져갔다. 연거푸 처참한 습격을 당한 고독수는 완전히 혼이 달아난 듯 했다.
“저건 또 뭐야!”
그때 숲이 무성한 산중턱에서부터 두 덩어리의 짙은 안개가 빠른 속도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현장으로 빠르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뭉개구름과 같은 하얀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멀리서 아비규환의 장이 되어버린 공터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있는 붉은 갑옷의 군사들과 지수 일행을 보호라도 하듯 빠르게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른 짙은 안개는 고독수의 사이보그 용병들을 향하여 노도와 같이 밀려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의 수상한 접근에 완전히 겁을 먹어버린 고독수는 엉거주춤 뒷걸음질치면서 사격을 가했다.
그의 발포에 일제히 쓸데없는 총질을 하던 용병들은 곧 거친 파도와 같이 출렁이는 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속에서 용병들은 어디로 도망쳐야 할 지 갑자기 방향을 잃은 듯 허둥대기 시작했다.고도로 훈련을 받았건만 용병들은 오합지졸처럼 서로 부딪치고 뒤엉켜 마침내는 서로 총질을 해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속에 빠지고 말았다. 그 가운데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려는 고독수의 거친 고함소리만 공허하게 난무할 뿐이었다.
“바보새끼들! 빨리 방독면을 써!”
그러나 용병들에게 그런 틈마저 주지 않겠다는 듯 붉은 갑옷의 병사들은 짙은 안개속으로 뛰어들어가 예리한 칼날들을 휘둘렀다. 섬뜩한 칼바람과 함께 하얀 안개속에서 용병들의 팔들이 붉은 피를 부리며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심지어는 사방에서 화살마저 날아와 그들의 가슴을 정확하게 관통했다.짙은 안개속에서도 붉은 갑옷의 병사들은 용병들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정확히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날리는 듯 했다.안개속에서 혼비백산되어 갈팡지팡하는 용병들을 모두 전멸시킬 기세였다.
“퇴각하라! 퇴각해!
마침내 고독수는 절망적인 절규를 남기고는 무작정 낮은 지대를 향해 구르듯 달려내려갔다.그의 등짝을 노리고 날아오던 화살이 귀곡성 같은 소리를 허공에 뿌리며 바로 그 옆의 땅바닥에 무섭게 내리꽂혔다.기겁을 한 그는 북쪽의 장안공원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내려갔다.
잠시 후 용병들이 팔달산에서 모습을 감추자 이제껏 산기슭을 덮었던 짙은 안개도 신기하게 서서히 엷어져갔다. 산책로 여기저기에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용병들의 시신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중경상을 입은 용병들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아,이럴 수가……”
성벽너머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비록 자신들이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모두 할 말을 잃고 새삼 몸서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