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놈들의 정체가 뭐야?


 


겨우 살아돌아온 7명의 부하들을 둘러본 고독수는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그동안 수 백번의 작전중에서 단 한 번의 실패를 하지않았던 자신이 느닷없이 나타난 정체불명의 자들에게 거의 8명에 이르는 용병들을 잃고 비참한 모습으로 쫓겨오다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낡고  조잡한 붉은 갑옷을 걸쳤지만 그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독수마저도 엄청난 두려움을 느낄 만큼 신출귀몰하고 잔혹했다.그만큼 그는 엄청난 두려움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은 그가 소개작전에 실패할 경우 황박사로부터 잔금 70억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절대 이렇게 물러설 수 없어!


 


고독수는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작전참모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부하들이 정체모를 놈들에 대해서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습니다.또 산이 살아있다고 수군거립니다.


 


고독수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리는 참모는 부하들 핑게를 댔지만 사실은 자신도 정체불명의 사내들과 갑자기 일어난 광풍과 안개에 대해서 겁을 먹고 있었다.


 


“산이 살아있다니!주둥아리 함부로 놀리지마! 모두 놈들이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것에 지나지 않아!


 


고독수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듯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보다는……”


“쓸데없는 것 상상하지마! 이번에는 우리가 더욱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면 저놈들을 모두 박살낼 수 있어!


“무슨 계획이라도?


“오늘밤에 저 놈들을 기습한다.


 


고독수는 부하들의 공포심을 모두 쓸어내겠다는 듯 씩 웃으며  큰소리를 쳤다.


 


그날밤 자정무렵에 고독수는 살아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화성의 북쪽 성벽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그들은 돌계단을 뛰어가면 소리가 나서 정상 서장대에서 경비를 서는 아이들에게 들킬까봐 계단옆의 황토길을 택해 은밀히 움직였다.경사가 매우 가파른 탓에  산위에서 모인 빗물들은 큰 줄기를 이루어 세차게 흘러내려왔다.


이윽고 고독수의 용병들이 서장대의 누각에 켜진 횃불이 희미하게 올려다보이는 지점까지 숨어왔을 때 그들앞에 왼쪽으로 다른 샛길이 나타났다.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궁리하던 고독수는 왼쪽 길을 택했다. 괜히 위로 올라가면 아무리 빗속이라도 틀림없이 보초에게 걸릴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성장대를 치켜보니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탓인지 서장대에는 보초들이 보이지 않았다.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독수는 삵쾡이처럼 부하들을 이끌고 서장대의 밑을 신속히 통과했다.길은 다시 산아래로 급격히 내려가면서 저멀리 횃불이 반디불처럼 반짝이는 금잔디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내려서인지 금잔디 광장의 경비상태가 전반적으로 허술했다. 조만간 영산수호회를 모조리 박살낼 생각에 고독수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그런데 그들이 몇 발자국을 떼자,


 


“크르르르”


 


갑자기 고독수가 딛고 서있던 땅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고독수는 황급히 앞으로 달려나가려고 했다.그러나 요동치던 땅은 그들앞에서 순식간에 쩍 갈라졌다.기세좋게 달리던 용병 4명이 그만 4-5미터 깊이의 시커먼 땅속으로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운좋은 몇몇만이 나뭇가지와 풀뿌리를 간신히 붙잡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땅속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겨우 추락을 면한 고독수는 아우성치는 부하들의 손을 잡아 밖으로 끌어내려고 필사적으로 당겼다.그러나 그의 구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땅은 더둑더 심하게 몸부림쳤다.그 바람에 거의 바깥으로 기어나오던 용병들이 다시 중심을 잃고 시커먼 밑으로 낙엽처럼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아악,


 


하마터면 같이 떨어질 뻔 했던 고독수는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땅속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간신히 소나무 둥치를 부여잡은 고독수는 비명소리가 가득 찬 땅속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살았나? 대답해!


대장님, 살려주세요!


 


빗물이 쏟아져들어가는 시커먼 땅속에서 애처로운 절규들만이 어지럽게 튀어나왔다.


 


“살려줄 테니 침착하게들 있어!


 


그래도 대장이라고 고독수는 땅속을 향해 소리치더니 벌떡 일어나 곁에 있던 부하가 들고있는 밧줄을 나꾸어챘다. 그리고는 땅속으로 힘껏 던져 넣었다.잠시후 누군가 밑에서 잡고당기는 듯 밧줄이 팽팽해졌다.


 


“당겨!


 


고독수의 외침에 주위에 있던 다른 용병들도 같이 합세하여 밧줄을 끌어당겼다.그러나 그들의 구조활동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방해라도 하는 양 갈라진 땅은 이번에는 빠르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잠시 후 땅속에서 몸통이 툭툭 터지고 뼈가 우드득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그러나 땅은 아랑곳없이 계속 갈라진 틈을 메꾸어갔다.생지옥을 방불케하는 용병들의 비명소리가 마침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쯤에야 비로소 갈라졌던 땅도 태연히 제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용병들은 자신의 동료들을 삼켜버린 무시무시한 생매장 광경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넋나간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일제히 질퍽한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설 줄을 몰랐다.그런 그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고 발버둥치던 고독수도 잠시 후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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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화성행궁앞에서 무예24기를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시범공연단입니다 .


 


답변을 마친 마치 검귀는 공노인의 표정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한다.


 


 


“시범공연단이요?


 


반문을 하는 공노인의 눈동자에 의구심이 가득 찼다.그 순간 검귀의 시선이 더 날카로와졌다.


 


“그렇소, 그런데 수련을 위해서 산속에 들어왔다가 용병들이 아이들을 해치려는 것을 보고 의협심에 도와준 것입니다.


, 그래요,”


 


 공노인은 그제서야 그의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떡이었다.좀더 공노인의 시선을 깊게 들여다보던 검귀 역시 날카롭게 빛나던 시선을 거둬들였다


저 절벽이나 공원에서 죽은 놈들은 우리가 그런 것이 아니요. “


 


검귀는 나이든 공노인앞에서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앞질러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라고 강조를 했다.


 


……”


 


공노인의 침묵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것으로 받아들였는지 검귀는 부연설명을 했다.


 


우리도 왜 폭발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소.”


 


그의 말에 지수는 새삼 분노가 치미는 듯 한마디 거들었다.


 


처음부터 잔인하게 총질을 한 저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크죠.”


맞아요.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예요.”


 


다리에 총상을 당한 장미옥은 다리를 감싸며 원통하다고 듯 흐느꼈다. 엄청난 사건을 처음부터 겪은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붉은 갑옷의 병사들을 옹호하고 나섰다.그런 아이들을 두고 공노인은 굳이 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어쨌든 잔인한 놈들로부터 아이들을 구해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노인은 한발 더 나아가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이자 검귀는 비로소 희미하게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하옇든 정말 고맙소.”


 


공노인이 또다시 고개를 숙이자 검귀는 공노인과의 대화가 조금 따분한 듯  말머리를 돌렸다.


 


“우리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당분간 놈들이 섣불리 공격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검귀가 호탕하게 말했지만 영훈은 용병들이 금방이라도 쳐들어올까봐 겁먹은 시선으로 주위를 이리 저리 살피며 말했다.


 


“그래도 혹시 다시 쳐들어오면 어떡하죠?


 


 영훈이 잔뜩 겁먹은 소리를 내뱉자 검귀는 호기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우리가 다시 번개처럼 달려와 물리쳐 버릴 테니 걱정마라.


“정, 정말요? 고맙습니다.


대신 우리들에 대해서 절대 비밀로 해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영훈이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검귀는 곧바로 부하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각종 병장기를 정리하고는 검귀는 공노인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단원들과 함께 발머리를 돌렸다. 그때 공노인은 검귀에게 서둘러 물었다.


 


 “그런데 무예연습은 어디서 하는 게요?


 “특별히 정한 곳은 없어요. 팔달산이 전부 우리 수련장이니까요. 하하,


 


검귀는 호탕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슬쩍 넘어가자 공노인도 그냥 예의상 물어보았다는 듯이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무예시범단치고는 수상한 점이 많은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윽고 검귀가 이끄는 무리들이 북쪽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때 말없이 검귀 뒤를 따라가던 군관 한 명이 문득 뒤돌아본다.


 


“……!


 


앳띤 군관은 마치 지수를 찾고있었다는 듯 그와 시선이 딱 마주치자 수줍게 웃음을 지어 보냈다. 그 모습에 지수는 저 군관이 왜 자기를 보고 줄곳 반색을 하는 것일까 의문이 다시  들었다.그리고 어디서 그 군관을 보았을까하고 기억을 더듬었으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그 사이 사이에 검귀를 선두로 한 수상한 무리들은 숲속너머로 완전히 사라져 갔다.


 


,”


 


그들의 움직임을 끝까지 뚫어지게 바라보고있던 공노인은 그제서야 긴장이 탁 풀린 듯 비척거렸다. 줄곳 억지로 태연한 척 했었던 듯 긴장감이 풀리면서  그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짙어졌다.


그때 잔뜩  찌푸려있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들은 팔달산의 땅바닥에 닿자마자  붉은 핏자국을 모두 깨끗이 닦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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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이보그 용병들을 척살한 붉은 갑옷의 군사들은 별 것아니라는 듯 여기 저기 흝어져있는  시신들을 능숙하게 수습했다. 시신 하나 하나를 유심히 살피던 붉은 색 투구를 쓴 장수. 키가 매우 큰 장수의 눈꼬리는 위로 길게 치켜져있어 매우 악발리 같은 악한 인상을 물씬 풍긴다. 장수가 자신의 뒤에서 조용히 따르고 있는 두 명의 군관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섰다.


두 군관중 한 사람은 덩치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선해 보였고 약간 체구가 작은 또다른 군관은 갸름한 얼굴로 앳띤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장놈은 용케도 도망쳤군.


“죄송하게도 몇 명 놓치고 말았습니다.검귀장군님,


 


덩치큰 군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신속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검귀라고 불린 장수는 뭔가 불만이 서린 눈빛으로 덩치 큰 군관을 흝어본다.


 


“종주 네가 좀더 사정없이 몰아부쳤어야 했었다.”


 


그의 질책에도 종주라고 불린 군관은 엄한 시선을 피하지않는다. 그러자 곁에 있던 앳띤 얼굴의 군관도 고개를 똑바로 세운다.


 


“저희들은 필요없는 살상은 하지 않습니다.검귀장군님,


뭐라고?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들은 가차없이 베어버려야 해!”


그래도 이 정도의 살상은 좀 지나치군요.”


늦게 합류한 주제에 웬 말이 많아. 너희 장용영들은 참 고상해서 좋겠다!”


폐하도 이런 살상은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맞받아치는 종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하자 검귀는 불쾌하다는 듯 노려보다가 마침 시신을 수습하던 다른 군관이 그에게 뛰어오자 얼른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군의 피해는?


 


얼굴에 얼룩진 핏물을 미처 닦지 못한 군관은 얼른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한산도 부관이 중상을 입었을 뿐입니다.


“저런,지금 어디 있는가?


 


검귀는 걱정스런 표정을 짓더니 부상당한 부관을 찾아 나선다그때 부상당한 친구들을 돌아보던 지수가 그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우르르 그 뒤를 따라왔다.그들 모두  예상보다 살벌한 풍경에 놀란 듯 얼굴빛이 창백했다.


 


“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수가 얼른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검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떡인다.


 


“……!”


 


그때 지수는 장수 뒤에 따라오던 앳띤 군관의 시선과 부딪쳤다. 군관치고는 얼굴이 갸름하고 인물이 예쁘장한 그자는 지수를 보고는 반색을 하다가 옆에 있던 종주군관의 옆구리를 살짝 찌른다. 그자 역시 지수를 바라보다가는 흠칫 놀라는 것이 왠지 그를 아는 듯 했다.하지만 그자는 검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얼른 표정을 감추어 버렸다.


 


(저자들이 나를 아나?)


 


지수가 속으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신원미상의 앳띤 군관은 뭐가 즐거운지 흘끔 흘끔 지수를 바라보며 계속 웃음꽃을 피운다. 그것을 모르는 검귀는 근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흝어본다.


 


“다친 사람이 있군.


“여섯 명이 가벼운 부상을 당했습니다.


 “잔혹한 놈들, 완전히 박살을 냈어야 했는데……”


……”


“너도 죽은 저놈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느냐?


 


지수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새삼 착잡한 생각에 잠겨있을 때  출타중이었던 공노인이 산책로에 나타났다. 그는 즐비하게 눕혀있는 시신들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했다. 그리고는 검귀일행을 보고는 뭔가 따질 듯이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흠칫 놀란다.


 


당신은?


 


공노인의 등장에 검귀도 흠칫하더니 곧 평정을 되찾고는 그의 눈을 유심히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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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융!

 

어디선가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총알소리가 나더니 고독수 근처에 있던 바위에서 한 순간 불꽃이 튕겼다.

그리고 다시 연달아 터지는 요란한 총성과 함께 고독수 주변에 있던 서 넛 명의 용병들이 삽시간에 쓰러졌다.본능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린 고독수가 총성이 났던 위를 쳐다보니  언덕위에 있는 산책로에서 붉은 갑옷을 입은 수 십명의 군사들이 아름드리 벚나무 뒤에 숨어서  사이보그 용병들을 향해 조총과 활을 쏘고 있었다.그들의 뛰어난 사격 솜씨는 밑에 있는 용병들을 정확하게 하나 둘씩 쓰러뜨렸다. 그리고 다른 붉은 갑옷의 군사들이 쏜 화살도 용병들의 특수 방탄조끼마저 한 번에 꿰뚫어 버렸다. 그들의 공격에 혼비백산한 용병들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흩어져 숨었다. 

그때를 놓칠세라 지수는 장미옥을 부축하고 있는 정화에게 달려가 같이 부축하며 성벽위로 힘겹게 내달렸다. 그때 붉은 갑옷의 군사들이 집중적으로 엄호사격을 해준 탓에 그들은 무사히 성벽뒤로 피신했다. 지수일행이 성벽뒷편으로 사라지고 엄호사격이 뜸해지자 고독수는 엎드려있던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분통을 터뜨렸다.

 

“저 놈들을 절대로 놓치지마!  

 

고독수가 표독스럽게 명령을 내리자 사이보그 용병들은  또다시 사격을 하며 일제히 성벽으로 돌진하였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탄과 화살속에서도 쓰러진 동료를 밟고  악착 같이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언덕위에서 능수능란하게 사격을 하던 붉은 갑옷의 군사들도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마침내 붉은 갑옷의 군사를 지휘하던 장수가 후퇴명령을 내리자 산책로 바닥과 나무 뒤에 숨어있던 십 여명의 붉은 갑옷의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금잔디 광장과 반대방향인 북쪽의 아스팔트 내리막 산책로를 향해 번개처럼 질주했다. 왼쪽 산기슭은 팔달산에서도 보기드문 높은 절벽으로 햐얀 날카로운 돌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이 절벽옆을 지나 굽어진 산책로 너머로 모습을 감추자 그들을 놓칠까봐 마음이 급해진 고독수는 사이보그 용병들을 이끌고 굶주린 이리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절벽위에서 엄청난 폭발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엇?

 

예상치않은 폭음 소리에 화들짝 놀란 용병들이 위를 쳐다볼 틈도 없이 절벽에서 수많은 날카로운 돌들이 그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칼날 같은 돌파편들은 용병들의 머리와 팔다리, 그리고 방탄조끼를 두른 몸통에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아아악!

 

졸지에 돌파편 세례를 맞고 용병들의 서 넛 명이 피범벅이 된 채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순식간에 벌어진 아비규환의 장에서 고독수는 운좋게도 죽음은 면했지만  왼손이 날카로운 돌파편에 찍혀 피가 철철 흘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반쯤 무너진 내린 절벽위를 쳐다보았지만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매설한 폭발물이 터진 다음의 매캐한 화약냄새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빨리 위험지대를 벗어나야한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번쩍 들면서 고독수는 혼비백산이 된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용병들은 허겁지겁 절벽에서 벗어났다.그런데 그들이 절벽에서 이 십여 미터 떨어진, 녹슨 운동기구 몇 개가 설치된 공터에 겨우 피신하여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서 있던 땅밑에서 또다시 요란한 폭음이 일어나며 돌들이 하늘높이 튀어올라왔다. 그리고 폭발에 찢겨진 운동기구들이 날카로운 쇠조각으로 변해 또다시 용병들을 덮쳤다. 그 결과 순식간에 또 한번 용병들이 무더기로 비명을 지르며 처참하게 쓰러져갔다. 연거푸 처참한 습격을 당한 고독수는 완전히 혼이 달아난 듯 했다.

 

저건 또 뭐야!”

 

그때 숲이 무성한 산중턱에서부터 두 덩어리의 짙은 안개가 빠른 속도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현장으로 빠르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뭉개구름과 같은 하얀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멀리서 아비규환의 장이 되어버린 공터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있는 붉은 갑옷의 군사들과 지수 일행을 보호라도 하듯 빠르게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른 짙은 안개는 고독수의 사이보그 용병들을 향하여 노도와 같이 밀려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의 수상한 접근에 완전히 겁을 먹어버린 고독수는 엉거주춤 뒷걸음질치면서 사격을 가했다.

그의 발포에 일제히 쓸데없는 총질을 하던 용병들은 곧 거친 파도와 같이 출렁이는 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속에서 용병들은 어디로 도망쳐야 할 지 갑자기 방향을 잃은 듯 허둥대기 시작했다.고도로 훈련을 받았건만 용병들은 오합지졸처럼 서로 부딪치고 뒤엉켜 마침내는 서로 총질을 해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속에 빠지고 말았다. 그 가운데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려는 고독수의 거친 고함소리만 공허하게 난무할 뿐이었다.

 

“바보새끼들! 빨리 방독면을 써!

 

그러나 용병들에게 그런 틈마저 주지 않겠다는 듯 붉은 갑옷의 병사들은 짙은 안개속으로 뛰어들어가 예리한 칼날들을 휘둘렀다. 섬뜩한 칼바람과 함께 하얀 안개속에서 용병들의 팔들이 붉은 피를 부리며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심지어는 사방에서 화살마저 날아와 그들의 가슴을 정확하게 관통했다.짙은 안개속에서도 붉은 갑옷의 병사들은 용병들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정확히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날리는 듯 했다.안개속에서 혼비백산되어 갈팡지팡하는  용병들을 모두 전멸시킬 기세였다.

 

“퇴각하라! 퇴각해!

 

마침내 고독수는 절망적인 절규를 남기고는 무작정 낮은 지대를 향해 구르듯 달려내려갔다.그의 등짝을 노리고 날아오던 화살이 귀곡성 같은 소리를 허공에 뿌리며 바로 그 옆의 땅바닥에 무섭게 내리꽂혔다.기겁을 한 그는 북쪽의 장안공원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내려갔다.

 

잠시 후 용병들이 팔달산에서 모습을 감추자 이제껏  산기슭을 덮었던 짙은 안개도 신기하게 서서히 엷어져갔다. 산책로 여기저기에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용병들의 시신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중경상을 입은 용병들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아,이럴 수가……”

 

성벽너머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비록 자신들이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모두 할 말을 잃고 새삼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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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

 

졸지에 흙먼지 공격을 받은 사이보그 용병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비명을 질렀다. 눈을 비비느라고 포위망이 무너지자 지수는 그때까지도 엉거주춤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고함을 쳤다.

 

“빨리 도망쳐!

 

그제서야 아이들은 참호에서 뛰쳐나가 산위의 성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간신히 흙먼지를 털어내던 고독수는  도망치는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즉시  발포했다. 겨우 눈을 뜬 용병들도 거대한 흙먼지의 보호를 받으며 도망치는 아이들을 향해 서슴없이 사격을 개시했다. 비록 뿌연 흙먼지가 연막탄처럼 아이들을 가려주었지만 워낙 용병들이 미친 듯이 집중사격을 하는 바람에 몇몇 아이들이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개자식들!”

 

아이들을 따라 성벽을 올라서서 땅으로 뛰어내리려던 지수는 그 광경을 보고는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시야에 20미터 떨이진 기슭에서 정화가 부상을 당한 어느 여자아이를 부축하면서 오느라고 뒤처져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런데 두 여자의 뒤에서 착검을 한 용병 서 넛 명이 달려오더니 그들을 잽싸게 포위했다. 그리고는 총구로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다가섰다.그 광경을 마침  근처에 있던 태풍이 목격했지만 겁을 집어먹은 그는 기겁을 하며 슬그머니 옆길로 빠져 도망쳐버렸다.

 

얘들아, 나 좀 엄호해!

 

지수는 급히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는 성벽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위기에 처해있는 두 여자아이에게 질풍처럼 달려갔다.

그 사이 영훈과 아이들은 일제히 대나무 화살을 사이보그 용병들에게 퍼부었다.소나기처럼 날아간 화살은 사이보그 용병이 입은 방탄복을 뚫지 못했다.간혹 재수없는 용병들 몇 명만이 얼굴에 화살을 맞고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틈을 이용하여 지수는 보안군들을 정조준하여 화살을 날렸다. 바람을 뚫고 무섭게 날아간 화살은 정확하게 용병 한 명을 쓰러뜨렸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다른 용병은 두 소녀를 제쳐두고 황급히 지수를 향해 발포했다.지수는 재빨리 근처에 있던 커다란 소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는 다시 활을 겨누었다.

 

 “저 자식이!

 

마침 그 현장에 헐레벌떡 도착한 고독수는 즉각 정화와 장미옥에게 다가가 권총으로 정화의 이마를 겨누었다.그리고는 지수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우리 서로 피를 흘리며 길게 싸울 필요 없겠지?

“무슨 개수작이야?

 

마악 활시위를 놓으려던 지수의 얼굴빛이 핼쓱해졌다.

 

“네가 대장이냐? 그만 항복해?  거부하면 이 여자애들을 죽여버리겠다!

 

고독수는 아이들의 대장만 검거하면  아이들의 저항이 금방 와해된다는 것을 파악한 듯  소녀들을 이용해 협박하는 것이었다.

 

“비겁한 놈!

 

어찌할 지를 몰라 지수가 머뭇거리자 고독수는 더 이상 봐 줄 수 없다는 듯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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