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놈들의 정체가 뭐야?”
겨우 살아돌아온 7명의 부하들을 둘러본 고독수는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그동안 수 백번의
작전중에서 단 한 번의 실패를 하지않았던 자신이 느닷없이 나타난 정체불명의 자들에게 거의 8명에 이르는
용병들을 잃고 비참한 모습으로 쫓겨오다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낡고 조잡한 붉은 갑옷을 걸쳤지만 그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독수마저도 엄청난 두려움을 느낄 만큼 신출귀몰하고 잔혹했다.그만큼 그는 엄청난 두려움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은 그가 소개작전에 실패할 경우 황박사로부터 잔금
70억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절대 이렇게 물러설 수 없어!”
고독수는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작전참모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부하들이 정체모를 놈들에
대해서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습니다.또 산이 살아있다고 수군거립니다.”
고독수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리는
참모는 부하들 핑게를 댔지만 사실은 자신도 정체불명의 사내들과 갑자기 일어난 광풍과 안개에 대해서 겁을 먹고 있었다.
“산이 살아있다니!주둥아리 함부로 놀리지마! 모두 놈들이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것에 지나지
않아!”
고독수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듯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보다는……”
“쓸데없는 것 상상하지마! 이번에는 우리가 더욱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면 저놈들을 모두 박살낼 수 있어!”
“무슨 계획이라도?”
“오늘밤에 저 놈들을 기습한다.”
고독수는 부하들의 공포심을 모두 쓸어내겠다는
듯 씩 웃으며 큰소리를 쳤다.
그날밤 자정무렵에 고독수는 살아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화성의 북쪽 성벽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그들은 돌계단을 뛰어가면
소리가 나서 정상 서장대에서 경비를 서는 아이들에게 들킬까봐 계단옆의 황토길을 택해 은밀히 움직였다.경사가
매우 가파른 탓에 산위에서 모인 빗물들은 큰 줄기를 이루어 세차게 흘러내려왔다.
이윽고 고독수의 용병들이 서장대의
누각에 켜진 횃불이 희미하게 올려다보이는 지점까지 숨어왔을 때 그들앞에 왼쪽으로 다른 샛길이 나타났다.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궁리하던 고독수는 왼쪽 길을 택했다. 괜히 위로 올라가면 아무리 빗속이라도 틀림없이
보초에게 걸릴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성장대를 치켜보니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탓인지
서장대에는 보초들이 보이지 않았다.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독수는 삵쾡이처럼 부하들을 이끌고 서장대의
밑을 신속히 통과했다.길은 다시 산아래로 급격히 내려가면서 저멀리 횃불이 반디불처럼 반짝이는 금잔디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내려서인지 금잔디 광장의 경비상태가 전반적으로 허술했다. 조만간 영산수호회를 모조리 박살낼 생각에 고독수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그런데
그들이 몇 발자국을 떼자,
“크르르르”
갑자기 고독수가 딛고 서있던 땅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고독수는 황급히 앞으로 달려나가려고 했다.그러나 요동치던 땅은 그들앞에서 순식간에 쩍 갈라졌다.기세좋게 달리던
용병 4명이 그만 4-5미터 깊이의 시커먼 땅속으로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운좋은 몇몇만이 나뭇가지와 풀뿌리를 간신히 붙잡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땅속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겨우 추락을 면한 고독수는 아우성치는 부하들의 손을 잡아 밖으로 끌어내려고 필사적으로 당겼다.그러나 그의 구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땅은 더둑더 심하게 몸부림쳤다.그
바람에 거의 바깥으로 기어나오던 용병들이 다시 중심을 잃고 시커먼 밑으로 낙엽처럼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아악, ”
하마터면 같이 떨어질 뻔 했던 고독수는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땅속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간신히 소나무 둥치를 부여잡은 고독수는
비명소리가 가득 찬 땅속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살았나? 대답해!”
“대장님, 살려주세요!”
빗물이 쏟아져들어가는 시커먼 땅속에서
애처로운 절규들만이 어지럽게 튀어나왔다.
“살려줄 테니 침착하게들 있어!”
그래도 대장이라고 고독수는 땅속을
향해 소리치더니 벌떡 일어나 곁에 있던 부하가 들고있는 밧줄을 나꾸어챘다. 그리고는 땅속으로 힘껏 던져
넣었다.잠시후 누군가 밑에서 잡고당기는 듯 밧줄이 팽팽해졌다.
“당겨!”
고독수의 외침에 주위에 있던 다른
용병들도 같이 합세하여 밧줄을 끌어당겼다.그러나 그들의 구조활동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방해라도 하는 양
갈라진 땅은 이번에는 빠르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잠시 후 땅속에서 몸통이 툭툭 터지고
뼈가 우드득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그러나 땅은 아랑곳없이 계속 갈라진 틈을
메꾸어갔다.생지옥을 방불케하는 용병들의 비명소리가 마침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쯤에야 비로소 갈라졌던
땅도 태연히 제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용병들은 자신의 동료들을 삼켜버린
무시무시한 생매장 광경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넋나간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일제히 질퍽한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설 줄을 몰랐다.그런 그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고 발버둥치던 고독수도 잠시 후 포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