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이보그 용병들을 척살한 붉은 갑옷의 군사들은 별 것아니라는 듯 여기 저기
흝어져있는 시신들을 능숙하게 수습했다. 시신 하나
하나를 유심히 살피던 붉은 색 투구를 쓴 장수. 키가 매우 큰 장수의 눈꼬리는 위로 길게 치켜져있어
매우 악발리 같은 악한 인상을 물씬 풍긴다. 장수가 자신의 뒤에서 조용히 따르고 있는 두 명의 군관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섰다.
두 군관중 한 사람은 덩치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선해 보였고 약간 체구가 작은 또다른 군관은 갸름한 얼굴로 앳띤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장놈은 용케도 도망쳤군.”
“죄송하게도 몇 명 놓치고 말았습니다.검귀장군님, ”
덩치큰 군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신속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검귀라고 불린 장수는 뭔가 불만이 서린 눈빛으로 덩치 큰 군관을 흝어본다.
“종주 네가 좀더 사정없이 몰아부쳤어야
했었다.”
그의 질책에도 종주라고 불린 군관은
엄한 시선을 피하지않는다. 그러자 곁에 있던 앳띤 얼굴의 군관도 고개를 똑바로 세운다.
“저희들은 필요없는 살상은 하지 않습니다.검귀장군님,”
“뭐라고?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들은 가차없이 베어버려야 해!”
“그래도 이 정도의 살상은 좀 지나치군요.”
“늦게 합류한 주제에 웬 말이 많아. 너희 장용영들은 참 고상해서 좋겠다!”
“폐하도 이런 살상은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맞받아치는 종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하자 검귀는 불쾌하다는 듯 노려보다가 마침 시신을 수습하던 다른 군관이 그에게 뛰어오자 얼른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군의 피해는?”
얼굴에 얼룩진 핏물을 미처 닦지 못한
군관은 얼른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한산도 부관이 중상을 입었을 뿐입니다.”
“저런,지금 어디 있는가?”
검귀는 걱정스런 표정을 짓더니 부상당한
부관을 찾아 나선다. 그때 부상당한 친구들을 돌아보던
지수가 그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우르르 그 뒤를 따라왔다.그들 모두
예상보다 살벌한 풍경에 놀란 듯 얼굴빛이 창백했다.
“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수가 얼른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검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떡인다.
“……!”
그때 지수는 장수 뒤에 따라오던 앳띤
군관의 시선과 부딪쳤다. 군관치고는 얼굴이 갸름하고 인물이 예쁘장한 그자는 지수를 보고는 반색을 하다가
옆에 있던 종주군관의 옆구리를 살짝 찌른다. 그자 역시 지수를 바라보다가는 흠칫 놀라는 것이 왠지 그를
아는 듯 했다.하지만 그자는 검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얼른 표정을 감추어 버렸다.
(저자들이 나를 아나?)
지수가 속으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신원미상의 앳띤 군관은 뭐가 즐거운지 흘끔 흘끔 지수를 바라보며 계속 웃음꽃을 피운다. 그것을 모르는
검귀는 근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흝어본다.
“다친 사람이 있군.”
“여섯 명이 가벼운 부상을 당했습니다.”
“잔혹한 놈들, 완전히 박살을 냈어야 했는데……”
“……”
“너도 죽은 저놈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느냐?”
지수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새삼
착잡한 생각에 잠겨있을 때 출타중이었던
공노인이 산책로에 나타났다. 그는 즐비하게 눕혀있는 시신들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했다. 그리고는 검귀일행을 보고는 뭔가 따질 듯이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흠칫 놀란다.
“당신은?”
공노인의 등장에 검귀도 흠칫하더니
곧 평정을 되찾고는 그의 눈을 유심히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