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박사님, 한지수가 살아돌아왔습니다.”
“뭐라고!지수가 살아왔다고!”
7월12일 궁여지책으로 산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을 죽인다고 협박하여 무장테러분자들을 섬멸하라고 통보해놓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황박사는 보안담당자로부터 지수가 살아돌아왔다는 뜻밖의 보고를 받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가 황급히 쳐다본 스크린의 화면에는 출입구 검색대앞에서 낯선 사내아이들과 함께 서있는 지수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 지수 맞나?”
지수를 비롯한 대여섯명의 사내녀석들은 자기가 내준 K2자동소총으로 굴비처럼 묶여있는 붉은 갑옷을 걸친 남자들을 겨누고 있었다.붉은 갑옷을 걸친 이십 여 명 의 장정들은 행색을 봐서는 사이보그 용병들을 몰살시킨 무장테러분자들이 틀림없어 보였다.
“장하다. 지수!”
황박사는 무엇보다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지수가 멀쩡하게 살아돌아온 것이 제일 놀라왔고 기뻤다. 그것은 지수의 뇌속에 설치된 여의주플러스가 결국에는 팔달산의 전자기 펄스를 극복하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황박사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잡혀온 무장테러범들이 검색대에 하나 둘씩 세워져 스캐닝을 받는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박사님, 통과시킬까요?”
스크린속에서 지수일행을 검색하던 보안군 계장은 황박사쪽을 주시하며 그의 지시를 기다린다.
“혹시 모르니 총은 모두 압수하고 빨리 통과시켜라!”
황박사의 지시가 떨어지고 잠시 후 삼엄한 보안군들의 감시를 받으며 지수를 선두로 20-30 명의 무리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중앙통제실로우르르 들어섰다. 그들의 후미에는 모자를 쓰고 작은 자루 비슷한 것을 등에 멘 여자 아이 두 명도 쫓아들어왔다. 그들은 오랜 산속 생활에서 잘 씻지도 못했는지 때묻은 얼굴로 잔뜩 겁을 먹은 듯 쭈삣거렸다.
“이야, 귀한 손님들을 모시고 이곳에 직접 오다니! 지수야, 잘했어!”
황박사는 단숨에 지수에게 걸어가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그가 정말 장하다는 두 손을 활짝 벌렸다. 그러나 중앙통제실의 으리 으리한 코브라를 처음 보는 듯 감탄을 하던 지수는 황박사가 양 손을 활짝 벌리고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흠칫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 바람에 그를 반갑게 안으려던 황박사는 혼자 뻘줌해지고 말았다.
“이런,"
황박사는 지수가 같이온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자기를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것으로 여기고 곧 의례적인 태도로 돌아와 손으로 원탁 테이블를 가리켰다.
"하여간 오느라 수고많았다. 여기에 잠깐 앉지.”
하지만 지수는 사양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당신이 원하는 자들을 잡아왔습니다.”
지수는 포승줄에 묶인 채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무리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 수고했다."
황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지수와 시선을 맞추었으나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
그런 모습에 황박사는 불현듯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불안한 시선으로 지수가 잡아온 무리들을 바라본다.
“흠, 저놈의 몰골을 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고독수는 왜 그렇게 겁을 먹었지?”
생각보다는 상당히 젊어보이는 무리들을 한 명 한 명 유심히 살펴보던 황박사는 끝에 서있던 젊은 군관차림의 한 청년에게 다가가 섰다.
“너희들이 산속에서 용병을 죽였느냐?”
“……”
하지만 청년은 분노의 빛이 가득찬 시선으로 허공만 노려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박사는 기분좋은 표정으로 지수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묵비권이라 이거지?하지만 지수가 저렇게 멀쩡하게 돌아왔으니 모든 것을 말해주겠지.후후,”
그의 말에 지수는 매우 기분이 상했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이상한 소리 그만 하고 이제 부모님이나 풀어주시지요?”
지수가 강하게 요구를 하자 줄곳 보안군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주눅이 들어있던 영훈과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아우성을 쳤다.
“빨리 부모님을 풀어줘!”
아이들의 아우성이 계속 되자 황박사는 우선 아이들의 소란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는지 곁에 있던 보안군 부관에게 눈짓을 했다. 잠시후 중앙통제실로 한 떼의 시민들이 보안군에게 이끌려 들어왔다. 부모의 모습을 발견한 아이들은 즉시 환호성을 지르며 뛰쳐나가려 했으나 보안군들이 황급히 총구로 제지하였다. 양측간에 밀고 당기는 소란이 일어나자 지수는 황박사에게 성난 표정으로 항의했다.
"당신 요구대로 이자들을 모두 잡아왔는데 왜 부모님들을 못 만나게 하는 겁니까?"
그러자 황박사는 묘한 미소를 짓고는 빤히 지수를 쳐다본다.
“난 분명히 너희들이 잡아온 놈들의 숫자만큼만 네 부모들을 풀어준다고 했다!”
“뭐라고!”
비로소 황박사의 비열한 의도를 알아챈 지수는 화를 버럭 냈다.황박사는 씨익 웃었다.
“그런데도 다 풀어달라고 말도 안되는 떼를 써?”
“우리를 더 이상 고통스럽게 만들지 마시요!”
황박사를 노려보는 지수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그 모습에 황박사는 약간 놀라는 듯 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측은한 표정을 짓는다.
“하긴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사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지.”
“……”
“그래서 내가 너희들이 네 부모들과 같이 지낼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주마.”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들도 여기 같이 있으라는 말이다!”
황박사은 짜증나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보안군들에게 돌아서 신호를 보내자 보안군들이 일제히 총구를 들어 지수와 붉은 갑옷의 남자들을 정조준했다. 황박사의 돌변에도 불구하고 지수는 왠일인지 피식 웃었다.
“비열한 자, 당신의 참모습을 보게 되는군.하지만 이제 진짜 고통이 어떤 것인지 당신에게 보여줄 차례군요.”
“지수야, 이제 그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도 돼.너는 이미 임무를 충분히 완수했어.”
황박사는 끝까지 지수에게 일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