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유동인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초점이 없는 눈은 잠깐씩 깜박거렸으나 정화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유동인의 앉아있는 의자위에는 스크린이 하나 달려 있었고 또한 그의 입에는 가늘고 투명한 호스가 삽입되어 있었다. 호스안에서 흐르고 있는 노란색의 액체가 간간이 유동인의 입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아마 마치 유동인의 생명을 유지하는 듯 영양분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유동인은 명태처럼 보기흉하게 말라 있었다.딸인 정화의 머리털이 쭈삣 쭈삣 일어설 정도였다.
“이런,”
객석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의 몰골은 모두 유동인과 똑같았다.그런데 정화를 그토록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엄마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제서야 타화자재천국의 충격적인 실체를 보았다는 듯 고수영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얘들은?”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아들 고래밥이 생각났는지 허둥지둥 사람들틈을 뒤집고 다녔다.다행히 얼마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의자에서 돈수와 나란히 의자에 앉아있는 고래밥을 발견했다.그는 정신없이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한참만에야 깊은 꿈에서 깨어난 듯 고래밥은 하품을 하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지금 맛있는 요리를 먹고있는데……왜 그래요?”
“정신차려! 모두 가짜야,”
고수영이 정색을 하자 돈수는 자신을 깨운 고수영을 원망스럽다는 듯 게슴프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설마, 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잘봐, 저게 진짜 모습이야!”
고수영은 객석에서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그제서야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고수영은 아이들을 이끌고 지수와 정화에게 달려왔다.
“빨리 피해, 정전이 됐으니 곧 GSA에서 긴급출동할 것이다.”
“아빠도 같이 데리고 가야해요!”
정화는 유동인의 입에서 호스를 뽑아내고는 그를 일으켜세우려고 했다. 다른 아이들도 서둘러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어?”
그때 수송차로 시동을 걸기 위해서 뛰어갔던 고수영이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쳤다. 그들의 앞에 검은 색 제복을 걸친 사내가 총을 겨누며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그의 뒷편에는 고수영의 예상대로 한 떼의 GSA 관리 요원들이 황급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정화의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는 이미 아이들의 의도를 궤뚫고 있다는 듯 재빨리 정화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모두 그대로 꼼짝마!”
“넌 누구냐!”
“난 이곳의 감찰요원이다. 허튼 수작하면 사살하겠다!”
감찰요원은 금방이라도 발포할 듯이 레이저총의 붉은 조준점을 정화의 이마 한가운데에 찍었다.
“피해!”
그때 사람들을 돌보는 척 하고 있던 지수가 링거병을 감찰요원에게 힘껏 던졌다.그러나 사내는 잽싸게 몸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
그때를 놀칠세라 정화는 감찰요원에게 몸을 날려 사내가 든 총을 나꾸어채려 하였다.하지만 사내는 납렵하게 피하더니 곧 왼손으로 그녀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정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변했다. 위기의 순간 고래밥과 돈수가 동시에 사내을 덮쳤다.두 아이의 육탄공격에 사내는 그만 땅바닥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빨리 달아나!”
그 사이 고수영은 수송차로 달려가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고래밥과 돈수는 다시 일어나려는 사내의 턱에 주먹을 한 번 더 날리고는 앞다투어 차로 뛰어갔다.
정화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아버지를 한번 쳐다보다가는 하릴없이 고수영이 몰고온 차에 번개처럼 올라탔다. 지수까지 차에 올라타자 고수영은 최고 속도로 수송차를 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언제 나타났는지 소유천이 붉은 양산을 붙잡고 쏜살같이 날아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젠장, 큰일났다!!”
겁에 잔뜩 질린 고수영은 욕설을 퍼부었다.
“겁먹지 말고 무조건 달려요!”
정화가 소리치자 잠시 주춤했던 고수영은 다시 차의 속도를 높혔다.하지만 소유천도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어딜 도망가!”
이윽고 소유천은 도망치는 차를 향해 붉은 양산을 겨누더니 무섭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수송차를 박살내려는 듯 붉은 양산의 테두리에서 레이저 빔이 수송차를 향하여 발포되었다. 소나기처럼 날아간 레이저 빔은 수송차의 지붕 윗부분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순간 차안의 모든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자신들의 목을 손으로 감싸며 기겁을 했다.
“꽉 붙잡아!”
타격에 실패한 소유천은 또다시 레이저빔으로 공격을 재개했지만 타화자재천국의 도로에 워낙 능숙한 고수영의 운전 덕분에 요리저리 잘 피해나갔다.
몇번이나 폭사당할 뻔한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도주하던 수송차는 마침내 타화자재천국의 출입문까지 간신히 다다랐다.
그런데 출입문의 셔터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안돼!”
똥줄이 탄 고수영은 엑세레이타를 미친 듯이 밟으며 출입문을 향해 무섭게 돌진했다. 그 덕에 수송차는 간발의 차이로 출입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출입문을 벗어나자 다행히 소유천은 더이상 쫒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이번에는 아까 감찰요원이라는 사내가 오토바이를 타고는 물귀신처럼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