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와 영재는 후덥지근한 7월의 무더위를 뚫고 공노인이 일러준  동굴속으로  뛰어들어갔다 . 동굴안쪽에 걸쳐있는 판자를 발로 차버리고는 삽으로 동굴을 파해쳤다.정신없이 삽질을 한 지 얼마 안되어 시커먼 동굴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끝이 보이지않는 동굴속에서  섬뜩한 찬 바람이 새어나왔다.

 

“빨리 서둘러! 놈들이 쫓아올거야!

 

 지수는 영재에게 소리치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잠시 주춤하던 영재도 그뒤를 따랐다.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동굴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바람은 얼음장처럼 차가왔다.

 

 얼마 정도 걸어가자 동굴은 다시 좁아지고 경사또한 가파르게 45도로 굽어지기 시작했다. 수 년에 걸친 공노인의 발굴 흔적이 묻어있는 동굴은 긴 세월만큼이나 길게 한없이 이어졌다.

동굴 내부가 다시 넓어지자 두 사람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가파르게 변하던 동굴은 마침내 거의 절벽이 되어버렸다. 잠시 난감해 하던 두 사람은 바닥에서 예전에 공노인이 설치해놓은 듯한 밧줄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대략 5 정도 힘겹게 내려가자 다시  평지가 나왔다수 백명이 머물러도 좋을 만한 넓은 벙커와 같은  공간이 그들 앞에 드러났다.상당히 깊이 내려왔음에도 두 사람은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다.오히려 아늑하고 포근하였다.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횃불이 동굴을 비춰서 그런지 동굴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그런데 동굴벽 여기저기서 노란 빛이 반짝거렸다.그것을 발견한  영재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후다닥 달려갔다.노란 빛이 새어나가던 곳을 손가락으로 파헤치던 영재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거 황금 가루 아니야?

 

영재의 외침에 덩달아 놀란 지수가 쫓아가 반짝이는 곳을 손가락으로 후벼보니 정말 그의 손끝에 노란 금가루가 묻어나왔다.

 

이것 때문에 사부님이 발굴을 하셨군.

 

지수의 말에 영재는 동굴의 여기 저기를 뛰어다니며 손가락으로 마구 파헤쳐본다.그러던 영재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지수를 부른다.

 

지수야, 이리 좀 와봐!

뭔데?

 

지수가 다가가서 보니 영재는 동굴천정 부분에 떠다니는 자주빛 안개를 쳐다보고 있었다.영재는 매우 흥분한 얼굴로 지수를 돌아보았다.

 

이 자주빛 안개는 어디서 나오는 거지?우리가 지난번 코브라를 폭파시켰을 때 사용했던 우주입자도 이 색깔하고 비슷했는데……혹시?

사부님이 여기서 가져온 거야.

 

지수가 고개를 끄떡이자 영재는 자주빛 안개가 짙게 새어나오는 동굴의 안쪽으로 성큼 다가갔다.지수가 따라붙자 영재는 조심스럽게 자주빛 안개를 쫓아가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들은  얼마 안 가서  ‘第六宮’(6)이라는 한자가 힘차게  새겨져 있는 커다란 아치형  석문을 발견했다.

 

6? 여섯번째 궁궐이라는 소리야?”

 

금방 자주빛 안개를 잊어먹은 듯 호기심 많은 영재가 먼저 감탄사를 터뜨렸다.

 

“궁궐이라?

 

석문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면서 혼자 중얼거리던 지수는 석문을 힘껏 밀어제치고 제6궁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섰다. 영재 또한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지수 뒤를 따라 동굴안으로 들어섰다.

 

6궁안은  상당한 정도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고 기이할 정도로 다른 곳보다도 훨씬 더 밝았다. 6궁의 둥근 벽면을 따라 커다란 다섯 개의 동굴이 뚫려있었는데 각 동굴에서 빛이 들어와 동굴 바닥 가운데에 돌출되어있는  반원형 커다란 하얀 바위에 반사되어 동굴내부를 밝혀주고 있었다.

반원형 하얀 바위의 표면은 그들의 얼굴이 훤히 비칠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마치 거울과 같이 미끌미끌하고 투명한 바위 표면을 만져보던 영재의 눈이 한순간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아니 , 이건?”

 

다름 아니라 바위의 표면에 검귀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은 조금 전에 지수와 영재가 마악 지나쳐 온 동굴이었다.

 

이럴 수가! 이곳에서 동굴의 모든 움직임을 한 눈에 다 보는구나!”

대단해. 사부님이 만들어 놓으셨을까?”

 

영재가 흥미로운 눈초리로 바위의 화면을 뚫어지게 살펴보면서 말하자 지수는 고개를 세게 가로젓는다.

 

“글쎄,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같은데……”

 

지수의 말에도 영재는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과학의 흔적을 찾아보는 듯이 하얀 바위의 여기저기를  예리한 눈빛으로 꼼꼼히  살펴본다.

 

하긴 기계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더욱 불가사의하군.”

감탄을 하던 지수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문득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6궁 동굴입구쪽에서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확연히 들려왔다.

큰일이다! 놈이 거의 다 쫓아왔나봐!

지수가 크게 놀라자 영재는 얼른 도망갈 길을 찾아보았으나 전방의 동굴은 꽉 막혀있었다.

 

“젠장!

 

마침내 독안에 갇힌 생쥐처럼 되었다는 두려움에 우왕좌왕하던 영재는 동굴 바닥의 돌에 발이 걸려서 그만 하얀 바위위로 엎어지고 말았다.그런데 놀랍게도 쓰러진 영재의 몸이 하얀 바위속으로 쑥 딸려들어가고 말았다.

 

어억!”

 

영재의 몸이 바위속으로 거꾸로 쓸려 들어가자 곁에 있던 지수는 엉겁결에 영재의 다리를 잡아당겼다.그런데 바위속에서 영재를 끌어당기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지수마저도 그대로 바위속으로 딸려 들어가고 말았다.

 

“사람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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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쩍거리는 칼날앞에서 공노인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지수는 공노인이 침묵을 지키자 미간을 찌푸리며 검귀앞으로 나아갔다.

 

장군님이 여의주를 파괴시켰나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맞지요? 저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모른다.”

장군님, 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렸습니다.제발,”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라. 다쳐!”

장군님,”

이놈이!”

 

검귀는 고함을 지르며 검을 지수의 목으로 옮겼다.차디 찬 검의 냉기를 느낀 지수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그러자 공노인은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오늘 날의 이 모든 사태는 사실 내가 황박사의 위험한 위험한 계획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내 탓도 매우 크지.그래서 나의 죄를 일부라도 씻는 의미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네.”

뭐야, 그 말은?”

 

검귀의 눈이 당혹스러움으로 흔들렸다.하지만 공노인은 아랑곳없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지수 너는 아마라궁으로 가서 저들의 왕인 지월을 만나거라.”

이 영감이!”

 

검귀가 두 눈을 부릅뜨며 공노인을 노려보자 그때 지수가 황급히 되물었다.

 

아마라궁이요?”

저들은 거기서 왔어. 그 아마라궁으로 가는 길목은 바로,”

 

공노인이 입을 떼려고 하자 검귀는 얼른 검을 공노인의 목에 갖다대었다.하지만 공노인은 죽일 테면 죽이라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살고싶으면 입다무는 것이 좋을텐데!”

그 아마라궁으로 가는 길은 내가 머물고 있는 동굴속 판자뒤에 있다.”

이 영감이!”

 

갖은 위협에도 끝내 공노인의 입을 막지못한 검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황급히 공노인의 목을 베어버맇 작정으로 검을 치켜들었다.그때였다.

 

멈춰라!”

 

갑자기 날카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복면을 한 무사 두 명이 검귀앞으로 뛰어들었다.그들은 공노인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던 자들이었다.

 

검귀! 너는 끝까지 왕명을 어길 작정이구나!”

이놈이 또!”

 

검귀는 복면무사를 알아보고는 분기탱천하여  곧바로 달려들었다.그의 부하들도 가세하면서 한바탕 혈투가 벌어졌다.그 사이 공노인은 지수에게 다가가 품속에서 15cm 정도되는 작은 족자를  꺼내어 주었다.

 

지월이라는 친구를 만나면 이것을 보여주거라. 인증서다.”

감사합니다.”

어서 가!”

 

말을 마친 공노인은 서둘러 지수의 등을 떠밀었다. 지수는 공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공노인이 거주하던 동굴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그뒤를 영재가 헐레벌떡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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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일 지수와 영재가 팔달산 누각에 모습을 드러내자 공노인를 비롯한 지성, 돈수, 고래밥, 그리고 장소천 등 산에 남아있던 영산수호회 나머지 멤버들이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들을 구출하는데 실패하고 친구들마저 모조리 잡혀버렸다는 말을 듣고는 크게 낙담했다.

 

“정말 큰일이구나.

 

우주입자의 파괴력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공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지수가 공노인의 귓가에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큰 일이 있어요.”

뭔데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느냐?”

 

지수는 황박사가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얘기들을 공노인에게 들려주었다.물론 정화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지수의 얘기가 다 끝나자 공노인은 장탄식을 했다.

 

망할 놈! 여의주에 그런 끔찍한 것을 집어넣었다니……그 작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을까? ”

하지만 황박사는 지금 무예24기시범단이 푸른 빛을 이용하여 여의주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며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황박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될 지 모르겠구나.워낙 교활한 자라……”

 

역시 인생경륜이 많은 공노인이라 경계심을 앞세웠다.

 

그래서 저는 비록 부모님들이 인질로 잡혀있지만 무예시범단 사람들을 만나보겠습니다.그래서 어떻게 해서그들이 여의주를 무력화시켰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부님은 혹시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지수가 묻자 공노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흠, 한 군데 짚이는 곳이 있긴 한데 말이야.”

그곳이 어디죠?”

백프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왠지 그곳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그들이 어디 알고 계시는군요. 그곳이 어디인지 빨리 말씀해주세요.”

 

공노인을 바라보는 지수의 눈빛이 기대에 차서 반짝 반짝빛났다.

 

그곳은 바로,”

 

황박사가 입을 마악 때려고 할 때 어디선가 갑자기 거친 사내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잠깐!

 

모두 깜짝 놀라 소리난 곳쪽으로 돌아보니 검귀가 그의 부하들을 이끌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영감! 입다물어!

 

급한 김에 고함부터 냅다 지르고 공노인의 앞에 우뚝 선 검귀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듯 검을 빼들고 그를 위협했다.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기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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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지만 나는 아직도 네가 왜 그런 엄청난 짓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싸움은 당신이 먼저 걸었소.왜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겁니까?

”난 단지 너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했을 뿐이야.

“변명하지 마세요!”

왜 다들 내 진심을 몰라주지?”

 

황박사는 다시  화가 치미는지 독주를 입에 쏟아부었다.이번에는 처음처럼 미간을 찌푸리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너는 당장 팔달산으로 돌아가서비소가 네  뇌속에 방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죽지않은 이유를 찾아내라.”

그게 무슨 말이죠?”

 

지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자 황박사는 독주를 한 잔 입안에 털어넣는다.

 

네가 팔달산에 들어갔었을 때 네  여의주는 전자기 펄스의 영향을 받아 고장이나버렸다. 그때 시스템 운영상  필요해서 그속에 삽입해두었던 비소가 방출되었지.”

그런 위험한 독을 여의주에 넣어두었다고요?”

 

비소라는 말에 지수는 매우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이 하애졌다.

 

여의주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너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어.”

그래서요?”

 

지수는 충격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자못 궁금하다는 시선으로 황박사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맹독이 뇌에 퍼졌으니 당연히 너는 이미 시체가 되었겠지. 하지만 너는 왠일인지 죽지 않았어. 그것은 뇌가 비소를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겠끔 진화를 했거나,”

제발 그놈의 진화타령 그만 좀 해요!”

아쉽게도 우리 분석한 것에 의하면 아쉽게도 너의 뇌에서는 진화가 일어난 흔적은 없더구나.그래서 나는 다른 누군가가 비소를 건드렸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다른 누군가가요?”

그래.”

그게 누구죠?”

 

지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 빛났다.황박사는 양주를 따라 다시 단숨에 들이켰다.

 

산속에 있는 테러분자들이다.”

테러분자요?”

산속에서 붉은 갑옷을 입고 설치는 자들 말이다.”

그들은 무예24기 시범단이예요.”

웃기는 소리! 놈들이 사이보그 용병들을 박살내는 것을 보고도 그 따위 소리를 해?”

그래도 그들은 그럴 능력이 없을거예요.”

아니야. 그들은 푸른 빛 ULO를 이용해서 시스템을 고장나게 만든 거지.우리들의 여의주를 저지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참 잘된 것 아닌가요?”

 

지수는 정말 잘 되었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그런 지수에게 황박사는 압박을 하듯 알코올 기운에 점차로 붉어져가는 얼굴을 쭉 내밀었다.역겨운  술냄새가 확 풍겨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류의 진화는 끝이다!”

제발 진화타령 그만하고 그놈의 여의주프로젝트도 당장 그만두세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듯 지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박사를 향해 내뱉았다.눈을 부릅뜬 지수의 강력한 질책에 황박사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그리고는 화가 치미는 듯 양주를 입에다 털어놓는다.

 

“그만 둘 수 없어! 그것은 내 욕심을 위해서 하는 일이 절대 아니야. 인류를 진화시키는 위대한 사업이야.”

그건 당신의 영역이 아니예요! ”

 

지수는 어린 나이답지않게 무섭게 맞받아쳤다.

 

그럼 그게 조물주가 하는 일이라고?어림없는 소리! 진화는 필요에 의해서 일어난다. 지금이 바로 그때야!”

궤변이예요!”

 

지수가 소리를 지르자 황박사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다시 무겁게 입을 연다.

 

하여간 지금 너는 인류의 진화를 방해하는 놈들을 찾아내 처단해야 한다.”

난 못합니다.”

 

지수의 답변은 단호했다.

 

못한다구?”

.”

 

지수가 다시 한번 강한 거부의사를 나타내자 황박사는 잠시 말문을 잃은 듯 침묵을 지켰다.그리고는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네 부모들은 죽어도 좋아?”

 

황박사의 짤막한 물음에 급소를 찔린 듯 지수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내가 이번에 정화의 기억을 살펴보았더니 너에 대해서 아주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더구나.

“정화?

 

지수는 비로소 황박사가 뜬금없이 정화 이야기를 꺼낸 의도를 알아챈 듯 흠칫했다.매의 눈을 가진 황박사는 그것을 놓칠리 없었다.황박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반딧불이가 춤추던 날 밤에는 너에 대한 감정이 더욱 고조되었더군.

“정화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아직 아무 짓도 안했지. 하지만,

“……”

“네가 역사의 부름을 무시하면 너에 대한 정화의 기억과 감정도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지.

비열한 협박입니다.”

정화가 너를 전혀 몰라보겠끔 그 아이의 기억을 조작하는 그 정도의 기술은 내게는 식은 죽 먹기야.

악마!

“인류의 진화를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악마가 될 테다.”

 

이미 독주에 점령당했는지 황박사는 매우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그리고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지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니까 인류의 발전을 방해하는 테러범들을 모두 소탕해. 알겠니?”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고맙다.”

하지만 나는 인류를 괴물로 만든 자로 영원히 기억되겠군요.”

아니야. 좋은 쪽으로 생각해. 너는 완벽한 여의주 시스템 아니 인류의 진화를 수호한 공로자로 영원히 인류사에 기억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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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가 어디지?

길고도 어지러운 꿈속에서 헤매다가 홀연히 잠을 깬 지수는 자신이 어느 낯선 방안에 누워있는 것을 깨달자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주황색 커튼이 쳐진 유리창 하나 달랑 있는 탓에 방안은 매우 침침하여 몇 시나 되었는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물론 위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아직도 잠이 떨어지지 않은 게슴프레한 눈빛으로 어두운 방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방 구석에 작은 냉장고 하나그가 앉아있는 침대 그리고 옆에 붙어있는 책상만이 놓여있어 누군가 잠깐씩 잠만 자고 나가는 그런 방으로 여겨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낯선 방에 대해서 몹시 당황하는 지수의 뇌리에는 팔달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어느 날 산속으로 공격해오는 사이보그 용병들을 물리친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반딧불이 무리속을 함께 달리던 정화의 청초한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또한 아이들과 함께 우주입자로 황박사의 코브라를 파괴한 기억이 퍼뜩 살아났다.또한  엄청난 폭발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던 기억이 전부였다.그랬는데 낯선 침대에서 누워 있다니 지수는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지? 그리고 정화는?

 

문득 정화에 대한 걱정이 들면서 정화도 혹시 같이 있나 싶어 방안을 황급히 둘러 보았다. 그때 맞은 편 벽에  A4 정도 크기의 사진이 여러 장 붙어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그것들을 그냥 지나치던 지수는 갑자기 흠칫하더니 득달같이 달려가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그의 움직임을 감지한 천정의 전등이 곧 켜지면서 사진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사진속에는 깍아놓은 듯한 조각상처럼 아주 잘 생긴 지수 자신이 검은 색 제복을 입은 채 양 손으로  레이저 총을 치켜들고  전방의 목표물을 향해 겨누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다른  사진속에서는 지수는 제복대신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총은 여전히 같은 모델을 쥐고 있었다.

 

“아니, 이게 나란 말이야?

 

지수는 사진속의 자기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싶어 허벅지를 힘껏 꼬집어본다. 허벅지에서 전해져오는 찌릿한 아픔 때문에 그는 인상을 쓰며 얼른 손을 뗐다.

 

“꿈은 아닌데...... 난 이런 기억이 전혀 없는데......"

 

지수는 사진들이 합성되었나 싶어 창문의 커튼을 제치고 사진을 들고  이리 저리 세밀히 들여다본다. 그러나 그 사진을 도대체 누가 언제 찍어주었는지 여전히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가 답답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면서 검은 색 중절모를 쓴 황박사가 불쑥 들어왔다.

 

“몸은 좀 괜찮으냐?

“황박사!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자신과 함께 공중으로 붕 솟구쳤던 황박사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지수는 깜짝 놀라며 얼른 경계자세를 취했다.그러자 황박사는 모자를 벗어 책상에 가볍게 내던졌다.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갈색 양주병을 하나 꺼냈다.

 

“그렇게 경계하지마라, 우리는 한때 아주 친밀한 사이였으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넌 내 손자였어.

“거짓말!

 

지수는 자기가 황박사의 손자였다는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듯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나를 너무 모른 체하지 말거라. 서운하다.”

 

황박사가 슬쩍 웃으며 너무나도 자연스런 말투로  대꾸하자 지수는 그에게 현혹되지 않겠다는 듯 서둘러 말꼬리를 돌렸다.

 

“참,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죠?

“다행히 코브라가 폭발하지않은 바람에 네 친구녀석들도 모두 살았어.

 

황박사는 책상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양주병의 뚜껑을 돌려 땄다.그리고는 한 모금 입에다 쏟아부었다. 독한 술이 식도를 찌르르 자극하는지 그는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코브라가 폭발하지 않았다고요!”

지수가 매우 낙담한 표정을 짓자 황박사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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