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여기가 어디지?

길고도 어지러운 꿈속에서 헤매다가 홀연히 잠을 깬 지수는 자신이 어느 낯선 방안에 누워있는 것을 깨달자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주황색 커튼이 쳐진 유리창 하나 달랑 있는 탓에 방안은 매우 침침하여 몇 시나 되었는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물론 위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아직도 잠이 떨어지지 않은 게슴프레한 눈빛으로 어두운 방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방 구석에 작은 냉장고 하나그가 앉아있는 침대 그리고 옆에 붙어있는 책상만이 놓여있어 누군가 잠깐씩 잠만 자고 나가는 그런 방으로 여겨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낯선 방에 대해서 몹시 당황하는 지수의 뇌리에는 팔달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어느 날 산속으로 공격해오는 사이보그 용병들을 물리친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반딧불이 무리속을 함께 달리던 정화의 청초한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또한 아이들과 함께 우주입자로 황박사의 코브라를 파괴한 기억이 퍼뜩 살아났다.또한  엄청난 폭발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던 기억이 전부였다.그랬는데 낯선 침대에서 누워 있다니 지수는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지? 그리고 정화는?

 

문득 정화에 대한 걱정이 들면서 정화도 혹시 같이 있나 싶어 방안을 황급히 둘러 보았다. 그때 맞은 편 벽에  A4 정도 크기의 사진이 여러 장 붙어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그것들을 그냥 지나치던 지수는 갑자기 흠칫하더니 득달같이 달려가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그의 움직임을 감지한 천정의 전등이 곧 켜지면서 사진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사진속에는 깍아놓은 듯한 조각상처럼 아주 잘 생긴 지수 자신이 검은 색 제복을 입은 채 양 손으로  레이저 총을 치켜들고  전방의 목표물을 향해 겨누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다른  사진속에서는 지수는 제복대신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총은 여전히 같은 모델을 쥐고 있었다.

 

“아니, 이게 나란 말이야?

 

지수는 사진속의 자기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싶어 허벅지를 힘껏 꼬집어본다. 허벅지에서 전해져오는 찌릿한 아픔 때문에 그는 인상을 쓰며 얼른 손을 뗐다.

 

“꿈은 아닌데...... 난 이런 기억이 전혀 없는데......"

 

지수는 사진들이 합성되었나 싶어 창문의 커튼을 제치고 사진을 들고  이리 저리 세밀히 들여다본다. 그러나 그 사진을 도대체 누가 언제 찍어주었는지 여전히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가 답답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면서 검은 색 중절모를 쓴 황박사가 불쑥 들어왔다.

 

“몸은 좀 괜찮으냐?

“황박사!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자신과 함께 공중으로 붕 솟구쳤던 황박사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지수는 깜짝 놀라며 얼른 경계자세를 취했다.그러자 황박사는 모자를 벗어 책상에 가볍게 내던졌다.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갈색 양주병을 하나 꺼냈다.

 

“그렇게 경계하지마라, 우리는 한때 아주 친밀한 사이였으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넌 내 손자였어.

“거짓말!

 

지수는 자기가 황박사의 손자였다는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듯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나를 너무 모른 체하지 말거라. 서운하다.”

 

황박사가 슬쩍 웃으며 너무나도 자연스런 말투로  대꾸하자 지수는 그에게 현혹되지 않겠다는 듯 서둘러 말꼬리를 돌렸다.

 

“참,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죠?

“다행히 코브라가 폭발하지않은 바람에 네 친구녀석들도 모두 살았어.

 

황박사는 책상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양주병의 뚜껑을 돌려 땄다.그리고는 한 모금 입에다 쏟아부었다. 독한 술이 식도를 찌르르 자극하는지 그는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코브라가 폭발하지 않았다고요!”

지수가 매우 낙담한 표정을 짓자 황박사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노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