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양산이 회오리치면서 날린 수 천개의 날카로운 암기(暗器) 들은 금강군의 몸둥아리들을 발기 발기 찢어내 버리고 말았다.그때마다 플라스틱 조각들이 어지럽게 허공에 날리면서 그속에 있던 푸른 빛의 아마라들은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그러나 아마라들은 이미 갈 곳을 알고 있다는 듯이 거침없이 지상으로 하강했다. 그리고는 각자 예전에 자신이 머물었던 인간의 뇌를  찾아  떼지어 날아갔다.

 

아아!”

 

그런데 잠시후 갑자기 수많은 시민들이여기 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정화와 태풍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와 했다. 아마라가 시민들의 머리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더 소유천은 그제서야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바보같은 놈들, 네놈들이 돌아가면 비소 때문에 인간들이 죽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소유천의 호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아마라가 돌아간 일부 시민들이 비소방출때문인지 예외없이 고통스러워하자 나머지 아마라들은 새삼 겁을 먹고 주춤했다. 그리고는 갈 곳을 몰라 허둥대다가는 이윽고 화이트홀로 돌아가려는 듯 위로 솟구쳤다. 그 모습을 본 지수는 그들에게 온 세상이 떠나가도록 호통을 쳤다.

 

 "아마라들이 돌아가야할 곳은 그곳이 아니야. 두려워하지말고 인간의 뇌로 빨리 돌아가!"

 

 지수의 강력한 질타에 하늘높이 솟구치던 푸른 빛의 아마라들은 멈칫하더니 다시 용기를 얻은 듯 각자의 뇌로 다시 돌아갔다.동시에 지상은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땅바닥을 구르며 내지르는 단발마의 비명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너무나도 끔찍한 아비규환을 목격한 채연은 어쩔 줄 몰라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지수야, 어떻게 좀 해봐!"

 

비록 지수의 계획을 믿고 감행한 일이었지만 막상 수 십명의 시민들이 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가는 끔찍한 상황을 목격하고보니, 채연도  극심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

 

지수 역시 자칫 잘못하면 수 백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순식간에 죽어나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에 상당히 긴장한 한 것이 역력했다. 그러나 곧 독하게 마음을 다져먹은 듯 지수는 주머니속에 손을 넣어 감춰두었던 뭔가를 조심스럽게 꺼내어들었다. 지난 번 소유천에게서 빼앗아왔던 투명한 호리병이었다지수는 호리병을 눈앞에 들고 잠시 유심히 쳐다본다호리병속에는 맹독천의 푸른 물이 작은 파도을 일으키며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이 호리병에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달렸군.)

 

 호리병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결심을 한 듯 호리병을 코브라의 중앙을 향해 힘껏 던졌다.

 

 “저놈이!

 

 그때 지수의 의중을 눈치챈 듯 소유천은 황급히 공중으로 높게 솟구쳤다.그리고는 호리병을 향해 붉은 우산을 힘껏 내던졌다.

 

 “꽝!

  

순식간에 날아간 붉은 우산의 날카로운 창에 정확하게 찍힌 호리병은 마치 핵폭탄이라도 터지는 듯 코브라에 닿기 전에  허공에서 푸른 섬광을 내뿜으며 폭발했다.식장에서 그 광경을 넋놓고 구경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와, 저게 뭐지?

  

잠시 후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조심스럽게 눈을 뜬 시민들은  코브라의에서 거대한 안개가 형성되어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술렁대기 시작했다. 깨진 호리병에서 뭔가 농축되었던 것이 밑으로 쏟아지면서 형성된 것 같았다. 어쨌든 거대한 안개구름은 빠른 속도로 실내에 퍼지더니 이윽고 창밖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중앙통제실을 가득 채운 안개는 실내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위로도 빠르게 흘러왔다그러자 그때까지 피를 토하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던 시민들은 신기하게도 비명을 뚝 그치더니 곧 모두 편안한 얼굴빛으로 돌아갔다.

 

또한 창밖으로 나간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정보탑 주변의  원형 스탠드에 앉아서 고통으로 몸부림치고있던 있는 시민들의 머리로 날아가더니 그들의 머리를 완전히 감싸버렸다.그리고 빠르게 사람들의 뇌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들 또한 모두 고통에서 벗어났다.

 

 “이,이럴 수가……”

 

 그제서야 비로소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챈 소유천의 얼굴색이 새하애졌다. 소유천은 안개속으로  달려가 미친 듯이 안개를 걷어내려고 했으나 이미 넓게 퍼져버린 탓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소유천은 사람들의 뇌속에서 비소를 조금이라도 더빨리 방출시켜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려는 듯 발악을 했다. 그러나 더이상 아무도 고통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때 수원시의 하늘에 갑자기 수십 만 개의 번갯불이  번쩍거리며 나타났다. 그 장엄한 광경에 채연은 너무나도 기쁜 듯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화이트홀로 갔던 아마라들이 돌아오고 있어!"

 ", 정말 대단해!"

 

 수십만 개의 푸른 번개들이 하늘에서 요동치는 것은 정말 대장관이었다. 마치 수원시의  하늘 전체를 산산조각 낼 듯이 요란하게 작렬하던 푸른 번개들은 어느 순간 홀연히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그들이 원래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던 채연은 글썽이는 눈빛으로 지수를 돌아봤다.

 

 “방금 전에 우리가 보았던 거대한 안개가 혹시 맹독천의 물 아니야?

 “맞아. 호리병에 농축해두었던 물이 호리병이 깨지면서 압력차이로 기화(氣化)된 거야. 그 덕분에 모두 살았어.”

그럼 이제 소유천을 죽여도 된다는 소리겠지?

 “,”

 “이제 모든 시민들은 안전해. 저 소유천을 마음놓고 처단하자!

 “오케이!

 

 채연이 신명나게 대답을 하고는 소유천을 향해 돌아서자 소유천은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이제껏 자신를 불사신으로 만들어주었던 비소가 맹물이나 다름없이 변하게 된 것을 알게된 소유천은 순식간에 소심한 겁장이가 되어 버렸다소유천은 쨉싸게 도망을 쳤지만 채연이 한 발 먼저 몸을 날려 소유천의 앞길을 막아버렸다.

 

 “비켜!”

 

소유천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이 붉은 양산을 앞세우며 달려들자 채연은 준비해온황금색 그물을 민첩하게 소유천에게 던졌다.

 

 “이빨 빠진 호랑이 주제에! 받아라!

  

넓게 퍼진 그물은 소유천을 단숨에 덮어버렸다. 졸지에 그물속에 갇혀버린 소유천은 혼비백산하여 미친 듯이 붉은 양산을 돌려 날카로운 비수로 그물을 찢으려고  했다. 하지만 금줄은 쇠동아줄이라도 된 듯 조금도 찢어지지않고 더욱 더 강력하게 소유천의 뼈와 살을 더욱 더 깊게 파고들어갔다. 

 

 “넌 이제 독안에 든 쥐다!

  

마침내 지수까지 합세하여 그물을 힘차게 잡아당기자 그물은 소유천의 몸둥아리를 완전히 묶어버렸다. 마침내 채연은 노련한 어부와 같이 쥐고있던 그물의 입구를 단단히 봉인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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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꼼짝없이 공노인의 목이 날아가는가 싶던 순간에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더니 소유천의 붉은 양산의 끝이 맥없이 허공에서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깜짝 놀란 소유천이 돌아보다가 지수가 레이저 총으로 자신을 겨눈 채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한다. 공노인도 낯익은 지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그만 눈을 뜨고 말았다.

  

“아니, 너는 지수? 네놈이 어떻게?

 

소유천은 아마라궁에서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던 지수가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지수를 발견한 정화도 잽싸게 권총을 뽑아들고는 숨죽이고 한 발 한발 다가갔다.

 

“소유천, 오늘이 너의 제삿날이다!

 

지수는 쓰고있던 보안군 모자를 벗어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소유천을 향해 레이저 총을 정조준했다.그러자 깜짝 놀란 소유천의 병사들이 일제히 지수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흥, 네가 나를 죽인다고?

 

소유천은이미 지수를 거의 죽음직전까지 몰아갔던 터라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지수는 묘한 웃음을 짓더니 건국식장이 뒤흔들릴 정도로 소유천을 질책했다.

 

“더 이상 나를 우습게 보지마라!

“그깟 장난감 총을 들고 나를 죽이겠다고 깝죽대다니……미쳤군!

한낱 컴퓨터인 주제에 감히 인간의 뇌를 탐하다니 미친 것은 바로 너다!”

 

다시 한번 지수가 비웃듯이 되받아치자 소유천의 얼굴빛이 핼쓱해졌다. 

 

“그 입 닥치지못해!

, 내가 네 입을 영원히 닫게 만들어주마!

“여봐라, 저놈을 죽여버려!

 

마침내 분을 참지못한 소유천이 이를 부드득 갈며 명을 내리자 그의 군사들은 지수를 향하여 일제히 사격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지수도 여차하면 소유천을 쏘아버리겠다는 무서운 기세로 권총을 겨누고 있자 , 간담이 서늘해진 그의 부하들은 섣불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그러자 소유천이 부하들에게 버럭 화를 냈다.

 

"뭘꾸물대!"

 

소유천의 질책에 부하들이 어쩔 수 없이 서둘러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갑자기 건국식장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휘둥래진 눈빛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어, 저것 봐! 저게 뭐지

 

사람들이 가리킨 화성행궁의 지붕위에서 홀연히 거대한 구름이 형성되어 자신들쪽으로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보탑 상층부를 감싸던 거대한 구름속에서 갑자기 요란한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수 천명의 군마가  폭포수처럼 건국식장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그들은 장용영과 비슷한 갑옷으로 무장한 수 천명의 군사들이었다. 하나같이 범같이 날래고 늠름한 군사들의 선두에 붉은 갑옷차림에 말을 탄 채연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늠름한 모습으로 지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지수앞에 내려선 채연은 지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하마트면 벌집될 뻔 했네.

"맞아. 조금만 늦었어도......"

 

지수는 채연의 등장때문에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는 듯이 다소 과장된 표정으로 환하게 웃어주었다.

 

“지난 번 것 신세갚은 거야.

 

채연이 예쁘게 눈을 흘기자 지수는 슬쩍 시선을 돌려  소유천의 군사들을 모두 짓이겨버릴 듯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사들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아마라의 진짜 모습이군.

 

지수는 금방이라도 소유천의 군사들을 모두 짓이겨버릴 듯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사들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했다.채연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3천명의 군사야. 팔달산에 잡혀간 네 친구들의 아마라를 설득해서 규합했어. 저들 중에 네 애인 정화의 아마라도 있을 거야.”

정화의 아마라도?”

 

지수는 매우 놀란 듯 군사들을 다시 바라봤지만 갑옷을 입은터라 누가 누군인지 통 알 수 없었다.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채연은 나지막이 말했다.

 

전투가 끝나면 만날 수 있을 거야. 하여간 급한 김에 화성행궁에 버려져있던 장용영 마네킹을 주워입고 왔지만 어떠한 것에도 무너지지않는 삼천금강군(金剛軍)이 되었어.”

정말 늠름한 군대야. 수고했어.”

이제 소유천과 죽기 살기로 싸워보는 거지. 준비는 된 거지?”

“좋아, 일단 소유천과 한번 붙어보자!”

 

지수의 강한 자신감에 고무된 채연은 고개를 힘차게 끄떡이며 대답했다.그리고는 검을 위풍당당히 뽑아들고는 삼천금강군을  향해 돌아섰다.

 

 

“자, 소유천으로부터 폐하를 구해내고 소유천과 그의 졸개들을 모조리 척살하라!

“와아!

 

그녀의 명령에  금강군은 함성을 지르며 즉시 소유천의 군사들을 향해 창검을 겨누고 성난 범처럼 돌진해들어갔다.

 

소유천의 군대는 모두 총으로 무장했건만 창과 칼로 무장한 금강군의  압도적인 공격에 맥도 못쓰고 추풍낙엽처럼 무너져 갔다. 원래 무예가 뛰어났던 장용영의 몸을 취했던 탓에 그들이 칼날을 휘두르는 싶으면 소유천의 군사들의 목이 대여섯 개씩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마침내 소유천의 군사들이 거의 궤멸해버릴 위기에 몰리자 소유천이 직접 나섰다. 소유천은 서둘러 붉은 양산을 펼쳐서 금강군에게 가공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소유천이 펼친 치명적인 공격에 금강군은 순식간에 엄청난 타격을 입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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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때만큼은 황박사도 눈물을 글썽이었다. 그러나 곧 그는 정색을 하고는 천재인 기술국장에게 말했다.   

 

“자, 이제 여우탑통합으로 들어간다!

“네.

 

기술국장은 경쾌하게 대답하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주시하고있는 기술요원들에게 힘차게 지시를 내렸다.

 

“타화자재천국 건국!

 

그의 말이 떨어지기 3000개의 여우탑들이 하나의 여우궁으로 통합되면서 동시에 그들이 시민들의 뇌속에 만들어냈던 각각의 대환희성이 하나의 가상세계 타화자재천국으로 통합되기 시작되었다.

통합된 타화자재천국의 건국 진행상과 입체영상이 식장의 허공 한 가운데에 선명하게 맺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민들이 각자의 뇌속에서 느끼고 있는 타화자재천국의 모습을 외부에 드러내보이는 것이었다.

입체영상은 처음에는 수원시의 실제 모습을 내 보이더니 차츰 그것들이 사라지고  그 대신 기기묘묘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났다. 순식간에 전혀 새로운 모습의 세상이 식장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새롭게 탄생한 타화자재천국은 그것을 잠깐이라도 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의주를 거부했던 사람들의 뇌속에까지도 빠짐없이 넓혀갔다

 

잠시 공노인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황박사는 사람들의 뇌속에 신천지가 순조롭게 심어지는 것을 목격하자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는 이윽고 마치 혼령을 부르는 제사장처럼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외쳤다.

 

“오오, 소유천왕이여 !기뻐하소서! 이제 당신을 반대하던 자들의 뇌에도 임하소서그들마자도 사랑과 자비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시옵소서.

그의 부름에 응하듯이 코브라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소유천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인 것을 직감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빛이 상기되었다. 이윽고 사이렌 소리가 끝나자  어디선가 콧노래를 부르는 듯한 여인의 낭랑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 사부님, 무서워요!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돈수는 겁에 질린 듯 몸을 움츠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웅크리고 있던 고래밥도 볼 수 없는 극한 두려움에 몸을 마구 떨었다.

 

“잠시만 참아! 환상은 곧 지나간다. 겁먹지 마!

 

공노인은 아이들의 공포심을 없애주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버티어도 공노인 스스로도 눈을 뜨고 싶은 유혹이 들어 견딜 수 가 없었다.이윽고  어디선가 세상의 소리가 아닌 듯한 신비로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 소유천은 그대의 뜻을 받아들이노라.

 

그 소리는 아이들의 가슴밑바닥까지 공포와 전율로 떨게 만들었다. 그 외침에 호응이라도 하는 듯 스크린에 인간의 형상들이 맺혀지기 시작했다. 그 형상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수 천명의 중무장한 군사들로 변해갔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듯 그들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식장안으로 쏟아져들어와  일사분란하게 도열했다.

“호호호!

 

뒤이어 식장을 가득 채운 여인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도열한 군대의 위로 여신처럼 하얀 드레스를 걸친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유천이 붉은 양산을 활짝 핀 채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그녀의 허리춤에  여전히 작은 호리병이 앙증맞게 달랑거리고 있었다. 소유천을 발견한 시민들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에 숨이 탁 막히는 듯 짧은 탄성을 일제히 내질렀다.

 

“오, 소유천왕이시여!

 

소유천은 시민들의 환호성에 아름다운 손을 들어 우아하게 흔들어보이고는  건국식 상황을 생중계하는 카메라를 향해 사뿐사뿐 걸어간다그리고는 자애로운 시선으로 말문을 열었다.

“나의 백성들이여, 타화자재천국에서 영원히 나와  함께 하리라!

“와아!

건국식장에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숨죽이며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은 소유천의 선언에 열렬한 환호성을 보냈다.

특히 여의주를 극렬하게 거부하던 반대자의 마음에도 그녀와 함께 타화자재천국에서 영원히 살고싶다는 생각들이 저절로 불끈 불끈 솟구쳤다. 소유천은 성스럽고 아름다운 몸짓 하나로도 사람들의 저항심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마력을 가졌다. 다시금 소유천의 밁고 거룩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허공에서 메아리 쳤다.

 

“너희가 나를 자유롭게 했으니 나 또한 그대들을 속박과 무명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주리라.

 

소유천은 열광하는 군중들을 향해 손을 내밀자 허공에서 홀연히 아름다운 꽃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꽃비는 사람들의 머리에 차곡 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나를 믿고 따르는 자는 세상살이의 모든 시름에서 벗어나 영원히 복되게 살 것이나,

 

말을 마치고 공노인 일행을 바라보는 소유천의 아름다운 눈에  서서히 독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은 영원한 죽음을 맛보리라.

 

 소유천의 섬뜩한 외침과 함께 눈을 감고 있던 일부 사람들의 머리위에 내려앉았던  꽃잎들의 일부가 갑자기 붉은 화염으로 변하였다. 머리위에서 불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다가 순식간에 한 줌의 검은 재로 변하고 말았다.

비명소리에 얼결에 눈을 뜨다가 레이저 빛을 보고만 아이들의 머리에서 푸른 빛들이 무섭게 빠져나갔다. 대신 그들은 화염세례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자신도 모르게 소유천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노인은 그런 아비규환속에서도 눈을 질끈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꽃비가 쌓아지면서 머리위에 화려한 월계관을 쓴 것처럼 된 황박사는 어깨위에서 불꽃이 이글거리는 공노인의 모습을 보고서는 비아냥거렸다.

 

“공박사, 이제 소유천을 받아들이시지.

“……” 

“쯧쯧, 질투에 미쳐 소유천을 거부하더니 끝내 비참하게 타죽는구나.

……”

 

황박사의 온갖 비웃음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공노인을 바라보던 소유천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당장 눈을 떠라,그러면 살려주마!”

하지만 이미 얼굴 곳곳에 화상을 입은 공노인은 급기야는 화염으로 변하는 꽃비를 온몸으로 다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너의 사악한 요술이 내 몸을 태울 수는 있어도 내 정신만은 태울 수 없다!

 “저 놈이 끝까지!

 

소유천은 꽃비를 전혀 두려워하지않는 공노인의 저항이 괘씸한 듯 이를 부드득 갈았다.

 

“네 놈은 내가 직접 심판하겠다.

 

소유천은 공노인앞으로 바람처럼 날아가 우뚝 섰다. 어느 사이인가 날카로운 창으로 변한 붉은 양산을 높이 치켜들더니 공노인의 가냘픈 목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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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29 8 15.

......

운명의 아침 공노인을 비롯한 영산수호회의 모든 멤버들은 GSA에서 밖으로 끌려 나왔다. 어둡고 착잡한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8월의 뜨거운 태양이 녹이고 있는 바깥 세상은 너무나도 화창했다. 공노인 일행은 보안군의 삼엄한 감시속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갖가지 꽃무늬로 장식된 삼라정보탑의 건국식장 안으로 호송되었다.

“……!

 

중앙에 우뚝 자리잡고 있는 코브라는 오색의 색종이들로 휘황찬란하게 치장하고 있어서 건국식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코브라의 주변에는  말끔한 예복으로 갈아입은 수많은 기술요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복잡한 기계들을 부지런히 점검하고 있었다.

 

황박사는 코브라의 정면에 설치해놓은 단상에 앉아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촬영하는 감독처럼 모든 것을 총지휘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천재인 기술국장은 황박사의 메시지를 수시로 받아 기술요원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하곤 했다.

 

그런 떠들썩한 잔칫집 분위기를 이용하여 지수는 진작부터 보안군으로 위장하여 식장안에 침투해 있었다.무장 보안군과 감찰요원의 번뜩이는 감시의 눈빛을 피해 그는 실내의 상황을 익히며 소유천이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자신의 앞을 지나쳐가는 두 명의 사내아이를 보다가는 흠칫 놀랐다.

 

“……!

 

 그들은 다름아닌 아수라 군단을 지휘하던 강태풍과 김영훈이었다.두 사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지수는 얼른 고개를 돌려 낯설어진 그들의 시선를 피했다. 지수는 혹시나 싶어서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았더니 역시나 유정화의 모습도 멀찌감치 언뜻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찾는 듯 주변사람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피고 있었다. 정화와 친구들은 예전의 자기처럼 황박사의 비밀감찰요원이 되어 그의 수족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황박사가 결국 친구들의 뇌에까지 여의주를 심어 그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지수는 가슴이 꽉 막히며 분노가 치솟았다.하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어설프게 충돌하면 안되었기에 지수는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기위해  얼른 모자를 더 깊숙히 눌러 썼다.

 

“……?

 

그때 출입구쪽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보안군들에 의해 끌려나왔다. 그들은 소유천에 의해서 잡혀온 공노인과 지성, 고래밥 그리고 돈수였다. 공노인의 얼굴이 매우 초췌하게 보였다.

 

(일단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지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유정화를 비롯한 비밀감찰요원들의 번뜩이는 시선때문에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그때 황박사는 공노인을 잠시 가엾다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만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천재인 기술국장의 신호를 받고는 곧 진지한 표정으로 생방송용 카메라를 향하여 돌아 앉았다. 정성들여 분장을 한 탓인지 미소를 짓는 황박사의 얼굴이 오늘따라 한결 젊어보였다.

 

“여러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란했던 건국식장은 한순간에 조용해지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집중되었다

 

“위대한 시민 여러분, 우리들은 그동안 우리 인류는 저 거대한 대우주를 포용하고도 남을 훌륭한 뇌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 사용하지못하고 죽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우리가 가진 이 훌륭한 보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데 에서 비롯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인류의 문제를 한 순간에 풀어줄 위대한 지도자가 드디어 우리 곁에 메시아처럼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오늘 타화자재천국에 함께 현신(顯身)하실 소유천왕입니다.그분은 우리에게 우리의 뇌를 완벽하게 사용하게끔 인도해주시고 우리에게 무한한 행복을 안겨주실 것입니다.

 

 황박사는 이제 노골적으로 소유천을 왕으로 부르고 있었다.

 

“소유천왕 만세!

황박사의 연설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분위기에 도취된 누군가가 선창을 하자 식장의 다른 사람들도열광적으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환호의 도가니속에서 지수는 침착하게 보안군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소유천을 기습할 기회를 노렸다.

 

“소유천왕이 다스리는 타화자재천국에서 새로운 시민으로 살아갈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모두 열심히 일하고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타화자재천국은소수의 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대다수의 시민들이 희생과 착취를 강요당하고 또한 그것을 합리화 시켜주던 기존의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모든 시민이 대통령이 되고 부유한 재벌이 되는 절대 평등의 세계입니다.

황박사의 열변은 점점 정점을 향해 뜨거워져 갔다.

“지금 우리의 지도자 소유천왕은 지금 이 타화자재천국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그분을 자유롭게 해줄 때입니다.

황박사가 사자후하자 감동한 수만명의 시민들은 광신도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을 했다.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곁에서 지켜보고있던 영산수호회 멤버들은 풀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혹시라도 어떤 뜻있고 용기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황박사에게 최후의 저항이라도 하지않을까 하는 한 가닥 기대를 품었던 그들은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는 완전히 절망을 하고 말았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황박사의 부하로서 충실하게 행동하는 유정화와 다른 친구들을 보고는 자신들도 곧 그들처럼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한편 지수는 황박사의 연설이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음을 느끼고 소유천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긴장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

그때 무슨 낌새를 챘는지 정화가 갑자기 지수가 서있는 곳으로 서둘러 다가오기 시작했다.그녀는 지수의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순간 숨이 꽉 막힌 지수는 정화의 날카로운 시선이 모자챙밑에 감추어진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 뚫고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

그리고 한순간 정화의 몸이 경직되는 것을 엿본 지수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허리춤에 찬 권총을 더듬었다.

그때였다. 한창 열변을 토하던 황박사는 모든 메시지를 다 전해주었다고 생각했는지 문득 연설을 멈추고 천재인 기술국장을 향해 서서히 돌아섰다. 그리고는 위엄있는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기술국장, 이제 레이저망을 작동시켜라!

!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대답을 한 천재인 기술국장은 곧바로 식장를 검색하던 모든 요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모두 제 자리를 지키라는 신호였다. 마악 지수의 모자를 벗겨 얼굴을 확인하려던 정화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지수는 기슴을 쓸어내리며 위기의 순간에 때맞춰 정화를 불러들인 천재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

잠시 후 삼라정보탑에서  레이저 빛이 나오더니 시 전역으로 뻗어나갔다.그리고 지상에서 투사되는 다른 빛깔의 레이저들과 만나 서로그물처럼 연결되었다. 이윽고 상공에 거대한 레이저망이 형성되고 그속에서 전기폭풍이서로 뒤엉켜 소용돌이쳤다.

1 여우탑 작동 시작!"

마침내 기술국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첫번째 여우탑이 자기 관할구역에 살고있는 모든 시민의 눈에 여의주와 소유천을 투사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후 그것을 받아들인 시민들의 뇌속에 여의주가 성공적으로 안착이 되고 대환희성까지 세워졌다고 코브라가 선언했다. 비로소 여우탑이 쏘아대는 레이저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간파한 공노인은 같이 있던 아이들에게 황급히 소리쳤다.

“얘들아, 레이저 빛을 보면 소유천에게 순식간에 정복당한다! 모두 눈감아! “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일제히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본 황박사는 공노인에게 벌컥 화를 냈다.

 

“언제는 환상이라고 비아냥거리더니 이제야 무서움을 깨달은 거구나.명색이 과학자라는 작자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타화자재천국을 거부하다니!

 

그러나 공노인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우리는 끝까지 가상세계를 거부할 것이다.”

그럼 그렇게 비겁하게 눈을 내리 깔지말고 정면으로 용감하게 대항하시지.”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황박사는 공노인에게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의 분노를 반영이라도 하듯 2여우탑은 똑같은 방식이지만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급기야는 팔달산에 설치한 마지막 2999번째의 여우탑까지 치달았다. 스크린에 비친 팔달산의 중턱을 잔뜩 긴장된 시선으로 노려보던 황박사는 다시 기술요원들을 강하게 독려했다.

 

 “자, 마지막 여우탑이다! 더 이상 실패는 절대 안돼!

절규와 다름없는 황박사의 갈라진 목소리가 식장을 울리자 더욱 긴장한  기술요원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팔달산의 여우탑을 빠르게 원격작동시켰다.

“제 3000번 여우탑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이윽고 코브라의 낭랑한 목소리가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않던 고요한 실내로 흘러나왔다.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팔달산을 비롯한 전 시내의 상공에서 일제히  갖가지의 아름다운 꽃들이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와아!

“성공이다!

미증유의 건국식을 위해 수많은 날들을 밤낮없이 준비해오고 막상 당일에는 애간장을 태우며 작동을 지켜보던 모든 기술요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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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정보탑을 은밀하게 기어오르는 두 사람.

“……!

 

정보탑의 용두(龍頭)에 화살을 쏘아박고 긴 밧줄을 걸어맨 지수는 황박사가 장악한 수원시를 일초라도 빨리 구해내기위해서  젖먹던힘을 다해 오르고 있었다. 그나마 용의 비늘이 황금색 철갑으로 일정하게 돌출되어 있어서 올라가는 것은 수월했다.

그의 옆에서 채연 역시  스파이더맨처럼 밧줄에 의지한 채 힘겹게 오르고 있다.정보탑 전체가 황금빛 조명으로 비추어지고 있어서 경비병이 그들을 발견하고 언제 총질을 해댈지 몰라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하며 정보탑의 중앙통제실을 향해 오른다

 

황박사를 긴급체포하려던 장시장이 마달수에  의해서 어이없이 살해되고 또한 의사당은 갑자기 밀림으로 변해버리는 기괴한 상황을 목격한 지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었다. 또한 연모의 정을 갖고 있던 정화마저 자신을 배신자로 여기고 이를 갈고 있는 것을 알고는 맥이 풀려 모든 것을 그냥 접고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정화를 그대로 포기하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마음을 독하게 먹고 소유천과 맞서 싸워 정화를 조작된 나쁜 기억에서 구해내기로 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외부에 황박사의 만행을 폭로를 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자칫 수백 만 명의 시민을 일시에 죽게 만들 수도 있어 부득이 포기했다.

 

대신 호랑이굴로 들어가면 뭔가 소유천의 약점을 찾아낼 지도 모른다는 아주 실날 같은 희망을 품고 소유천이 주로 머무르고 있을 정보탑의 중앙통제실로 숨어든 것이었다.

 

“……!

 

이윽고 용두까지 다 올라간 지수는 조심스럽게 창문의 유리창을 다이야몬드 칼로 잘라냈다.높은 고층이라고 안심을 해서 그런지 의외로 창문에는 보안시스템이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천운(天運)이라고 여기며 지수는 잘라진 유리창 사이로 손을 넣어 문고리를 땄다.

창고로 쓰이는 듯한 방에 들어선 두 사람은 곧바로 중앙통제실을  향해 도둑고양이처럼 움직였다.그들이 거의 중앙통제실로 접근했을 무렵 갑자기 주변이 어둠침침해졌다.마치 거대한 검은 커튼이 날아와 그들을 덮어버린 듯 했다.

 

 “갑자기 왜 그러지?

 

갑작스런 변화에 지수는 화들짝 놀라며 유심히 주변을 살폈다.그때 20여 미터 떨어진 전방에 오렌지 색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그곳에 시선을 집중하니 불빛 너머로 회색 봉고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지수는 후방을 조심스럽게  살피고있는 채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저 차를 살펴보고 올 테니 넌 여기에 꼼짝말고 있어.

 “위험해. 그냥 지나치자!

 “아냐, 뭔가 수상해.

 

 지수는 채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색 차량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가 차량에 거의 다 접근했을 무렵 어디선가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오면서 그의 앞길을 막았던 어둠이 차츰 걷히기 시작했다.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름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피어있고 새소리들이 가득찬  화사한 정원이 드러났다.지수는 예상치못한 조화에 놀라음보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을 떨었다.

 

되돌아갈 생각으로 뒤돌아섰지만 이상하게도 채연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여기저기 찾아헤매다가 지수는 결국 채연이 찾는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정원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

 

주위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극도로 신경을 써가며 정원을 빠져나가는 그의 눈앞에 한폭의 그림처럼 아담한 초가집이 홀연히 나타났다.

초가집 뒷곁에 우거져 있는 대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하아프를 연주하는 듯한 소리가 아련하게 흘러 나왔다. 그리고 황톳빛 마당 한 구석에는 돌로 동그랗게 쌓아 만든 우물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소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곱게 땋은 머리에 붉은 댕기를 메고 연분홍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는 우물속에서 두레박을 올리다가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

 

그런데 소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녀는 아련하게 무척 보고싶었던 정화였다.

 

 “정, 정화?

 

 지수가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을 때 그를 알아본 정화도 깜짝 놀란다. 그리고는 곧 반가운 미소를 짓고는 황급히 그에게 달려왔다.

 

 “아니, 여기서 만나다니!

 

반색을 하는 정화의 갸름한 얼굴이 빛났다.정화의 도툼하고 붉은 입술에서 달디 단 과일을 한 입 깨물은 듯  향기가 가볍게 풍겨나왔다.

 

“난 너를 구해야 하는데……

 

지수는 너무나 뜻밖의 장소에서 정화를 만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을 맺지 못했다.그런그의 모습이 고맙다는 듯 지수를  응시하며 배시시 웃는다.그녀의 웃음을 따라 온 정원의 모든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

지수의 마음에서도  세상의 모든  걱정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는 소유천에 대한 분노마저도 엷어지고 나중에는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급기야는 지수의 마음속에서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사랑스런 정화와 정원에서 앉아 담소나 나누며 살고싶다는 이상한 열망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그런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정화는 홍조를 띠우며 지수에게 아직 솜털이 뽀송뽀송한 하얀 작은 손을 내밀었다.대리석같이 매끈한 정화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촉촉했다.정화는 지수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런 필요없어.난 그곳을 탈출했거든.

“정말이야?”

. 그리고 난 이곳에 살아.”

이곳에?”

그래. 골치아픈 세상 다 접어버리고 이제나 저제나 난 자기가 오기를 기다렸어.”

 

정화는 지수에게 살짝 예사롭지않은 눈빛을  흘리고는 수줍게 웃는다.자기라는정화의 호칭이 지수의 심장을 쿵꽝 쿵꽝 뛰놀게 만들었다.순식간에 격정적으로 되어버린 지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를 미워하는 줄로 알았는데.”

“아니야.”

정말 고마워.”

그만 저기 우리집으로 들어가서 그동안의 이야기 좀 들려줘.

 

재촉하듯 말을 마친 정화는 그 말을 남기고는 얼른 물동이를 머리에 이었다.머리에 얹은 물동이를 양손으로 잡기위해 정화가 두 손을 올리는 바람에 정화의 깊게 파인 허리선이 더욱 뇌쇄적으로 좌우로 흔들렸다.지수는  정화가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버릴까봐 서둘러 따라갔다.

 

부엌으로 들어간 정화는 정갈하게 꾸며진 부엌에서  머리에 이었던  물동이의 물을 커다란 항아리에 붓기 시작했다.

지수가 부엌문 앞에 엉거주춤 서서 안을 살피자 물을 다 채운 정화는 배시시 웃으며 그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지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한 척 어둠침침한 부엌으로 들어섰다.

 

“배고프지?

 

정화는 정겹게 묻고는 먹을 것을 찾아 찬장속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더듬었다.

 

왠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수의 눈이 부엌에 익숙해지면서 안에 있던 사물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다.

 

“……!

 

그중에서도 그의 시선을 강하게 끄는 것이 있었다.어둠침침한 부엌을 그나마 밝혀주던 낮은 창가밑의 나무판자위에 나란히 진열되어있는 투명한 호리병들이었다.

대부분 텅 비여 있었는데 첫번째 호리병에는 뭔가 잔뜩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지수는 얼른 호리병으로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개미만큼 작아진 그들은 얼마전 대원품전에서 호리병으로 빨려들어간 지월과 그의 아마라들이었다.

 

“아니 이 자들은……

 

지수가 매우 놀라며 묻자 정화는 흘끔 뒤를 돌아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툭 내뱉는다.

 

“그건 오빠가 사냥한 아마라들이야.

 “오빠가?”

.

 “……!

 

몇 마디의 대화끝에 지수의 눈빛이 서서히 예리해졌지만 정화는 더 이상 지수에게 신경을 안쓰고 밥상을 들고는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지수는 문득 솟구치는 의구심 때문에 방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서리는데 열린 방문사이로  정화가 빼꼼히 내다본다.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지수는 그만 모든 의심을 털어버리고는 강력한 자석앞의 쇠붙이처럼 힘없이 끌려갔다.

 

“......!”

 

은은한 석양빛으로 야릇한 분위기를 달구고 있는 방의 아랫목에는 하얀 이불이 새침하게 놓여 있었다.세상의 모든 풍파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는 듯 조그만 고요한 방안에는 서로 마주보고있는 젊은 청춘 남녀의 설레이는 숨소리만이  점점 크게 차 올라왔다

 

지구상에 정화와 단 둘이만 남겨진 듯한 기분 때문에 지수의 심장은 정화의 자그만한  옷깃소리에도 다시 쿵꽝 쿵꽝 뛰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정화의 손이 지수의 손을 슬그머니 당겨잡았다.그를  치켜보는 정화의 눈이 심상치않게 빛났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 자신과영원히 같이 있자는 애절함이 가득 차 있었다.  순간 지수는 모든 것을 잊고 정화와 영원히 살기로 결심했다.그런 지수의 뜨거운 눈빛이 전해졌는지 정화는 서서히 자신의 상의를 벗고는 하얀 이불위에 살포시 누웠다. 지수가 나이답지않게 성숙한 정화의 몸위로 타고 올라가 봉긋하게 솟은 붉은 유두에 키스를 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앙칼진 소리가 벽력같이 들려왔다.

 

“정신차려!

 

지수가 깜짝놀라 뒤돌아보니 언제 달려왔는지 채연이 성난 표정으로 나타나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채연은 지수에게 번개같이 달려와 다짜고짜 따귀를 사정없이 올려붙였다.그 바람에 정신을 되찾은 듯 지수는 채연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채연이?

 “하여간 남자들이란……”

 

채연은 지수를 향해 눈을 흘기다가 정화를 향해 돌아서 쏘아부쳤다.

 

이제 정체를 드러내시지?”

 

채연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얼굴을 할켜버릴 듯 노려보자 당혹해하던 정화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고 미모의 낯선 여인이 그곳에 나타났다.

 

당신 누구야?”

 

지수가 놀라움으로 두 눈이 휘둥그래지자 채연은 그의 손을 나꿔어챘다.

 

저것은 소유천이야! 빨리 튀어!”

 

따발총처럼 쏘아부친 채연은 지수의 손을 나꾸어채고는 방문밖으로 뛰쳐나갔다.채연의 손에 이끌려 황토빛 마당에 엎어지듯이 끌려나오던 지수는 싸릿문 대문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왜그래?

 “네 오빠를 구해야지!

 

그 말을 내뱉고는 지수는 말릴 틈도 없이 다시 쏜살같이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부엌으로 뛰어든 지수는 아마라들이 잡혀있는 호리병을 나꿔채려고 했다.그러나 이미 지수의 속셈을 알아채고는 부엌으로 달려온 소유천은 붉은 양산으로 사정없이 그의 손목을 내리쳤다. 비록 붉은 양산은 빗나갔지만 그의 손목에 큰 생채기를 남기고 말았다.지수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사이 소유천은 호리병을 곧바로 챙겨 자신의 허리에 달았다.그리고는 지수에게 다가가 예리한 창끝으로 돌변한 붉은 양산의 끝을 지수의 턱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다니!

 

그리고 소유천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지수의 목줄기를 사정없이  찌르려는 순간 난데없는 화살이 날아와 소유천의 왼쪽 어깨에 꽃혔다.마당에서 채연이 급하게 날린 화살이었다.소유천은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의 어깨죽지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그틈을 타 지수는 다시 호리병을 나꾸어채려고 했으나 그 와중에도 소유천은 잽싸게 몸을 틀어 피해버렸다.

 

“그만 도망쳐!

 

보다못한 채연이 마당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을 쳤다. 그러나 지수는 아마라를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소유천의 호리병을 나꿔채려 했다. 그러나 소유천은 이번에도 재빨리 지수의 손길을 피해버렸다.그런데 헛손질을 한 지수의 손은 소유천의 허리에 매달려있던 또다른  호리병을 움켜쥐었다.그리고는 그것을 재빨리 뜯어내 후다닥 마당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 사이 채연은 또다른 화살을 소유천에게 날리며 지수를 엄호해주었다. 소유천은 자신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잠깐 주춤했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뛰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지수에게 호리병 하나를 빼앗긴 소유천은 집요하게 쫓아와 금방 지수와 채연의 등뒤에까지 따라 붙었다.

 

 “호호, 이 타화자재천국에서는 아무도 도망 못간다.

 

소유천의 호언대로 죽기살기로 도망쳐나온 정원에는 정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두 사람이 우왕좌왕하자 소유천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붉은 양산을 긴 창으로 바꾸어 성큼 성큼 다가왔다.하지만 채연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별로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채연은 의미있는 웃음을 짓더니 정원의 화단에 심어져있던2미터 크기의 해바라기를 잡고는 부러질 정도로 세게 당겨버렸다.그 순간 정원의 하늘에서 마른 벼락이 쳤다.그리고 동시에 기세좋게 두 사람의 목을 찌르기 위해서 붉은 창을 치켜들던 소유천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대신 채연은 그들이 처음에 보았던 회색 봉고차에 어느 새 앉아있었다. 또한 지수는 차창밖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그때 허공에서 소유천의 섬뜩한 절규가 메아리처럼 터져나왔다.

 

“이놈들! 뛰어봤자 벼룩이다. 어차피 너희들의 세상은 다 내것이니까!

 “흥, 그 벼룩의 무서움을 톡톡히 보여주마!

 

채연이 형체가 보이지않는 소유천을 향해 사납게 외치자 그때까지도 상황을 완전히 파악못한 지수가 풀린 눈빛으로 채연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는 중앙통제실에 들어가기 전에 여우궁의 덫에 걸렸던거야.

 “그래? 넌 그것을 어떻게 알았지?

 “소유천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아마라의 눈을 속일수는 없거든.

 “그랬었군.

 “자,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채연은 봉고차에 뛰어내리더니 아직도 긴가민가하고 있는 지수를 재촉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처음 침투했던 창고방을 찾아 긴 복도를 부리나케 뛰어갔다. 비상벨이 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두 사람이 창고방을 겨우 찾아 들어서는 순간 문주변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에 튀었다.

 

“이크, 이건 또 뭐야?

 

두 사람이 놀란 시선으로 주위를 뒤돌아보니 복도에 한떼의 무장 보안군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개미떼처럼 밀려오는 보안군들의 모습을 보고는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지수는 채연에게 창문밖으로 내려진 밧줄을 먼저 타고내려가라고 소리쳤다.채연이 서둘러 창밖으로 사라지자 그도 곧바로 밧줄을 잡고는 창문밖으로 몸을 날렸다.

곧바로 두 사람이 사라진 유리창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쏟아지는 레이저 빔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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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걸 2014-07-0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어요!짱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