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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가 집을 나간 후, 나는 보일러 실내 온도를 28도에 맞추고 몸을 데웠다. 뼛속까지 잔뜩 바람이 들어갔는지 아무리 뜨거운 물로 몸을 녹여도 풀리지 않았다. 전자레인지에 들어가 해동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나의 1인 시위 소식을 듣고 나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크게 야단치셨다. 바위에 계란 던지는 짓이라며, 당장 그만 두라고 했다. 또한 회사가 요구하는 게 부당한 일이라면 나서서 도우겠지만, 금연하자는 데에 동참 안 하겠다고 우기는 처사가 얼마나 창피한 일이냐며 역정을 다 내셨다. 생각보다 아버지는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아마도 대현건설에 계신 아버지 친구 분을 통해서 얘기를 자주 듣는 것 같았다. 늘 자상하였던 아버지였건만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기세로 흥분하시는 것을 보니 안 그래도 기운이 다 빠졌는데 침울해졌다. 아버지는 시위 건 말고도 요즘 새어머니에게 이상한 일이 좀 있다며 나를 만나자고 했다.

나는 탕 속에서 누워 가족을 생각했다. 이미 욕실은 뿌연 증기로 뒤덮여 내가 시선을 둘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여동생은 잘 있는지, 입양한 둘째 녀석은 잘 크고 있는지 많은 것들이 궁금했지만 너무 추상적이었다. 늘 말이 없던 새어머니, 그리고 한 번도 제대로 같이 놀아주지 못했던 여동생과 새어머니만큼이나 별로 정이 안가는 입양한 막내 동생 모두 허상이었다.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유령처럼 떠돌았다. 중고등학교 졸업식장에도 새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 앞 플래카드에 이름까지 걸릴 만큼이나 영광이었던 S대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아버지 외에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새어머니는 한 번도 잘했다, 못했다 내 행동에 어떤 피드백도 해 주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날 밤, 마지못해 잘 다녀오라고 했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내 사소한 일상에도 새어머니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삼겹살이라도 한 번 구워먹고 싶었으나, 새어머니 티를 내려는 것인지 철저히 계획적으로 나를 가족에서 제외시켰다. 외롭고 쓸쓸했다. 회사 직원에게도, 가족에게도 나는 별다른 존재일 뿐이었다.

1인 시위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가장 컸던 것은 역시 자존심 때문이었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새삼 느낀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3개월 동안 손 안에 들어온 월급은 채 20만원이 되지 못했다. 마케팅팀 직원들은 매일 번갈아가면서 나를 미행했고, 일시와 장소를 표기해 경쟁하듯 신고했다. 3층에 있던 총무팀 직원들까지 가담한 사실도 알았다.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회사 생활을 하고 있던 입사 동기의 양심 고백이 없었더라면 나는 밖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누군가는 나를 ‘쓰레기’라 하였고, 누군가는 언제 회사를 그만 둘지 내기를 하고 있었으며, 가장 많이 신고한 사람은 경영기획실장에게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회사 내 두루 요직을 거치며 차기 대표이사 감으로 꼽혔던 실장은 팀장들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 앉힌 후, 마지막 남은 각 팀의 골초들을 처리할 방안을 의논한 끝에, 결국 돈에는 장사 없다,는 식으로 결론 내리고, 흡연자들을 매타작했다. 그는 내가 인권위원회나 노동부에 제소할 수도 있다며, 법무팀에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법률조치를 할 것인지 미리 사전에 검토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했다.

조직은 무시무시했다. 나 같은 거 하나 없다고, 어느 누구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모두의 흥미진진한 구경꺼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술자리에서도, 회사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점심식사 가는 행렬에서도 그들의 안주감밖에 되지 않았다. 양심적인 동기는 선량한 마음에서, 진심으로 내가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참한 일이 점차 이상하게 변질됐다고 했다. 경영기획실장의 지시를 받은 마케팅 팀장은 그룹이 요구해서가 아니다. 김무성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끊어야 하며, 모두 다 안 피우는데 김무성 혼자 담배를 피우면 왕따 당할 것이고, 앞으로 승진은 물론 회사의 모든 사안에서 불리해 질 수밖에 없는데, 서로 ‘식구’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 몰라라 관망만 하고 있으면 이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며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고 했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맞아요, 맞아, 무성이가 마케팅팀의 핵심 인재인데, 담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일은 속상하다,며 제 일처럼 걱정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재무팀장에게 말해 벌금으로 공제된 돈은 자신의 여비비로 채워주겠다는 약속까지 했기에, 재미삼아 신고하고 또 신고했는데, 그룹 월차회의에 참석하고 난 후,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했다. 그는 성난 코뿔소처럼 식식거리며, 나를 인사팀으로 대기발령 내겠다 했다. 자신이 얼마나 왕따인지 처절히 느낄 수 있도록 모든 팀원들은 세 마디 이상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지시도 내렸다. 김무성이 다가오면 십년 묵혀 둔 구더기 보듯 피하라 했다. 더구나 내가 그날 장난으로 당신들 모아놓고 흡연 신고하라고 했는지 아냐며, 벌금을 최소한 천만원 이상 물렸어야 담배를 끊을 것 아니냐며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얼마 후 나는 마케팅 팀장의 말대로 대기발령을 받아 인사팀으로 내려갔고, 3개월 동안 지루하게 모나미 펜만 돌렸다. 말이 3개월이지, 낯설게 오가는 회사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러나 지독한 회사는 3개월 이상 명분 없이 가두어놓을 수 없자 나를 강남의 총판 사원으로 발령내 버렸다. 너무 기가 막혀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케팅 팀장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것을 왜 나한테 묻느냐며 되려 짜증을 냈다. 이제 목소리도 듣기 싫어졌는지, 그도, 마케팅팀 누구도 내 얼굴조차 바라보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듯 불끈거렸다. 모든 것을 다 뒤엎고 싶었다. 담배 한 개비가 대체 뭐라고, 나는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한 히로시마 한복판에 서 있는 듯 했다. 다시 인사팀장에게 내려가 이런 조치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금연 안 했다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면, 기본권 침해로 인권위에 제소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노동청에도 신고해 부당행위로 고발하겠다고도 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사팀장은 어린놈이 싸가지 없게 어디서 법을 들이대냐며, 사납게 눈을 치켜 떴다. ‘인권위’의 시정 명령으로 내가 다시 마케팅팀으로 복귀한다 해도, 설 자리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노동법이 해석하기에 따라 너한테 유리할 거라 착각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이며, 금연법이 추가된 사규를 공지했는데도 보지 못했느냐, 네가 거기에 서명까지 했다는 사실도 정말 모르고 있느냐며, 서명이 된 출력물을 보여 주며 확인사살까지 했다. 

나는 회사 사람들이 다 듣도록 목청 높여 얘기했다. 당신들 다 병신 아니냐구! 담배 몇 개비 피웠다고 이런 처사를 받는 게 온당하냐고, 회사에서 피우지 말라 해서 집 앞 한강변에 나가 몇 개비 피운 것밖에 없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냐고. 정기검진 명목으로 소변 검사할 때, 모발 검사 받을 때 수치스럽지 않았냐고. 당신들은 나를 식구,라고 하는데, 당신들 동생이 회사에서 이런 수모를 겪는다면, 그런 회사 당장 때려 치우라 안하겠냐고, 나는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고 말했다.

그러나 인사팀장은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치며 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대현그룹이! 3년간! 수도 없이 금연 켐페인을 벌였는데!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며! 참고 기다렸는데! 처음엔 너 같은 직원들도 많았지만! 패치 부치고! 유혹될까봐 술도 안 마시고! 밤잠 설치면서! 이참에 독한 마음 먹고 모두 다 끊었는데! 왜 너만 버티고 있는 거냐고 이 미친 자식아! 넌 이기적인 새끼야 아주 이기적인 새끼! 4만명의 직원이 너 하나 때문에 쪽팔려하고 있다구 임마!”

그는 주먹으로 얼굴이라도 내리칠 듯 광분해 있었다. 넥타이를 끌었다 당겼다 하며 내 숨을 끊어놓을 태세였다. 그런 광경에 놀란 여직원 둘이 달려 나와 인사팀장을 황급히 말렸다. 괜찮냐며 나를 챙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작정한 듯 멀찍이 입구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뒤돌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모두들 기가 차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동기는 이해한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모두가 똑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4만여 명이 모두 똑같이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다고 해도,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다름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금연에 성공해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하더라도, 나와 같은 또다른 이탈자가 생긴다면 그때도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돌을 내던질 것인가. 공동이 추구하는 가치는 모든 수단이 획일적으로 동일할 때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큰 미래를 지향한다는 대현그룹이 모든 임직원을 금연,이라는 틀로 묶어버린다면, 그것만으로도 대현그룹은 이류, 삼류기업으로 후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흡연이 승진과 우열을 가리는 기준점이 되는 회사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굳게 침묵했다. 그저 하수인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혁명가도 투사도 아니었다. 단 하나, 담배 한 개비를 피고 싶었을 뿐이었다. 누나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나의 투쟁을 더 이상 농담처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누나는 흡연률 제로를 광고 홍보하는 대현그룹의 모든 관련 기사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댓글을 달겠다고 했다. 나는 그것은 아니다 싶어, 고개를 저었지만, 애들을 풀어 직접 처리하겠다고 했다. 갈수록 처량해져가는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럴 때마다 나는 누나에게 화를 냈다. 잘 나가는 과 동기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로 오라고 스카웃 제의를 하였지만, 나는 개미 발톱만큼도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신제품 마케팅 PT를 마쳤을 때, 기립하여 박수치던 대표이사가 생각났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코레일과 협의하여, 200만명이 넘는 귀경객들을 상대로 시음회 이벤트를 성공시켰던 추억도 떠올랐다. MBA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와 대현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해 밤새 토론하였고, 그에게 소개받은 GE의 직원과 이메일로 마케팅 관련 자료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또한 인터넷서점 아마존을 뒤져 세계 유명 CEO의 자서전이나 마케팅 성공 스토리를 원서로 읽었다.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였고,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스왓 분석을 통해 신제품에 대한 문제점과 대응책을 내놓았고, 자꾸 개발자들과 충돌하였지만 절대로 고객의 관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년 동안, 나는 최극점에 목표를 설정하고, 매일 매일 분투했다.

누나는 이렇게까지 투쟁하는 내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누나는 퉁퉁 부은 내 다리를 보면서 속절없이 안타까워했다. 얼음찜질을 하면서, 절대로 쪽팔려하지 말고 당당하라고 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 제대로 싸워줘야 한다며, 믿음도 인정도 없는 더러운 집단이라며 마구 욕을 해댔다. 누나는 포털을 검색해서, 대현그룹의 흡연율 0% 기사가 나오면, 한 사람은 아직도 담배를 피고 있습니다. 거짓광고 마세요,라는 댓글을 달았고, 위선적이며 기만적인 대현그룹을 규탄한다고, 마치 데모대의 주동자처럼 댓글을 남겼다. 또한 토론방을 만들어, 회사 내 전직원 금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주제를 던져 놓고, ‘너무한 처사다’, ‘직원들 담배 다 끊어놓고, 오폐수 버리면 그것도 환경기업이냐’, ‘금연 구역에서도 안 피우고, 한강변에서 피운다는데, 그런 회사 때려치우고 우리 회사로 와라’는 등 토론방은 성난 흡연자들로 인해 부글거렸다. 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해닮은식품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자’고까지 했다. 찬성이 1988명으로, 반대 311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누나는 나 몰래 여론을 움직여서 그룹을 압박할 작정인 듯 나날이 강도를 높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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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1년 전, 본격적으로 흡연률 0%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룹 홍보실은 전 언론사에 대현그룹의 전직원이 흡연률 0%에 도전할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언론사는 경쟁적으로 이 사실을 기사화했다. 외국 기업 중 이와 같은 사례가 더러 있었지만, 국내 중견기업으로는 처음 시도되는 것이며, 이는 대현그룹이 환경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대외적으로 확고히 다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대현그룹의 금연 선언은 동종 업계 및 다른 기업으로도 확산되어 금연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졌던 대현그룹의 주요 상장 주식은 언론사의 일제 보도가 나온 즉시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물론 태양광 발전 기초 소재 설비 확장 공시와 맞물린 이유도 있었지만, 별다른 호재가 없었던 식품과 건설까지 동시에 상한가를 기록한 것은 상장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보다 외국인의 주식 매집이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증권사는 대현에너지와 해닮은식품의 목표가를 50% 이상 상향 조정하였고, 국내 최초로 전직원 금연 선언이 주는 효과가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친환경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러시아와의 태양광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대현건설까지도 유망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나는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대학교 같은 과 선배여서 유별나게 잘 챙겨줬던 박과장과 입사 전 M출판사 세계문학전집 마케팅 대사 5기 활동을 같이 역임하며 친하게 지냈던 최은지마저 메신저로 질책해 오자 모든 게 뒤숭숭했다. 박과장은 무슨 지령을 받았는지 나를 어루고 달랬다. 삼일 참으니까 헛구역질에, 헛것에 식은땀 줄줄 나오더니 오일 정도 지나니까 견딜만 하더라. 어차피 그룹 정책은 못꺾는다. 백기 들고 정진하자,는 내용이었고, 최은지는 팀장에게 대들 성깔 있으면 보란 듯이 끊어버려라,는 다분히 인신공격적인 멘트를 날렸다. 가장 믿었던 친한 동료들조차 대놓고 하나같이 멀리했다. 메신저 대화명도 금연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당신과 내가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는 흡연, 전직원 금연의 자부심 등 이래도 안 끊을 것이냐는 식의 경고성 메시지뿐이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마다 사내 홈페이지에는 포위된 적이 자진 항복하기를 바라는 양 금연에 대해 강도 높게 압박해 왔다. 기조실장은 그룹 임직원 중 흡연한 사람을 발견하여 메일로 신고하면 포상금 1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모든 것은 익명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신고하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했고, 언론에 공표한 그대로 대현그룹은 반드시 흡연률 0%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는 올곧은 의지를 다시 천명했다. 덧붙여 포상금 10만원은 흡연 여부가 확인되는 대로 즉시 급여 계좌로 지급될 것이며, 포상금 재원은 신고 당한 사람의 월급에서 공제한다고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남녀 성별을 따지지 않고, 3회 이상 적발된 직원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표하겠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공지 후 다시 흡연하다 적발될 시, 공개 반성문까지 쓰게 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흡연 직원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굳이 담배를 끊지 않고 계속 피겠다는 명분도 서서히 잃어갔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고 담배를 태웠다. 옥상마저도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자 옆 빌딩 흡연구역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웠다. 보름 정도 지난 후, 인재육성팀에서 사람이 파견 나와 흡연 사실을 물었고, 나는 담담히 그렇다,고 자백했다. 두 번의 자백이 있은 이후에도 몇 번의 반복된 질문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폈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달이 지난 후, 나의 이름은 사내 인트라넷에 20여명의 직원과 함께 소개되었다. 4만 여명이 보는 긴급공지 게시판이었다. 공지에는 한 번 적발된 직원이 198명, 두 번이 12명, 세 번에서 다섯 번이 3명, 예순 여섯 번이 1명이라고 소개되었다. 그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나는 인사팀에서 받은 메일을 통해 이번 달 월급이 마이너스 410만원임을 알았다. 급여 담당자는 다음 달 월급에서 전액을 공제하고, 그 다음 달에도 남은 금액을 공제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내왔다.

누나의 머리 뚜껑이 열린 것은 바로 이때쯤이었다. 누나는 별 거지 같은 회사가 다 있다,며 나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투쟁에 들어가라고 지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나를 대신해 인권위원회에 고소하겠다, 사규가 개인의 기본권보다 우선시 되는지 따져 묻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누나는 밤새도록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더니 결국 실성한 듯 660만원이면 던힐 1미리가 2640갑인데, 법인카드로 미친 척 담배를 구입하고 난 후, 회사 앞에서 한국노총, 민주노총의 흡연 회원 2640명과 함께 하루 종일 담배 연기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자는 얘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나를 챙겨 주는 건 역시 누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위로가 되긴 하였지만, 세상만사가 다 공허했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지만, 담배야 걸리지 않고 몰래 숨어서 피우면 되겠지만, 대체 어떤 사람이 입사 2년차 신입 직원을 신고하여 배를 불렸을까 생각하니 배신감에 아찔했다. 나를 예순 여섯 번이나 신고한 사람이 누구일까, 한 명일까, 다섯 명일까, 예순 여섯 명일까, 나는 밤잠을 설쳐가며 용의자를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추적해 보아도, 결국 내부 직원의 소행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담배 핀 대부분의 장소는 금연 구역으로 설정된 내부 옥상과 식사 후 옆 빌딩 흡연구역, 그리고 PC방 및 회사 근처 몇몇 술집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 직원이 내 얼굴을 알 리 없었고, 내부 마케팅 팀 직원을 제외하고 같은 층을 쓰는 재무팀, 인사팀, 인재육성팀밖에 나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내 인트라넷에 실명으로 흡연자가 공지된 후, 여러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했다. 담배를 끊느니 회사를 끊겠다며 사표를 낸 직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단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한 후 같이 담배를 나눠 폈는데 신고 당했다며 주먹다짐을 벌인 동기도 있었다. 상사가 후배 직원에게 느닷없이 메신저로 내가 사람 잘 되게는 못하지만 얼마든지 꼬이게는 할 수 있다,며 너 과장 진급하는지 두고 봐라, 협박했다는 소문도 흉흉하게 퍼져나갔다. 임신한 여직원 중 미처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은 온갖 비난질을 견디지 못하다 결국 퇴사했고, 자신을 신고했을 거라는 괜한 추측에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던 여직원의 이마를 거울에 밀쳐 결국 응급실로 이송된 별별 일도 다 벌어졌다. 회사 내부가 어수선해지는 만큼 내 마음은 두 배로 심난해 졌다. 니코틴은 내 몸 속에서 얌전히 꽈리를 틀고 앉아 있다가 해변가 지랄탄처럼 온 내장을 들쑤시고 다녔다. 예측할 수 없는 금단 현상에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마케팅 팀장은 나를 불러 매일매일 흡연 여부를 체크했다. 안 했다고 거짓말하기가 비굴해 보여 흡연 여부에 네,라고 짧게만 대답하고 시선을 피했다. 팀장은 반항하냐,며 큰 목소리로 질책도 하고, 끊을 수 있다는 용기도 주곤 하였지만, 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자 팀장은 설득하는 일 대신 아예 외출을 금지시켰다. 다른 팀원들이 거래처 관계자들 만나려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데 좀 과하지 않냐,는 어필도 해 보았지만, 팀장은 업무를 조정했으면 했지 절대로 그럴 생각은 없다,며, 꿈쩍도 안했다. 팀장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지극정성으로 도시락을 배달시켜 나와 함께 먹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나는 최대한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도 허락 받고 움직여야 했다. 나는 코미디 같은 이런 일들이 어떻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한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누나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급히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어디 가냐고 물을 기운도 없어 고개만 끄덕이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누나는 뒤늦게 무엇이 생각난 듯 잠시 자리에 앉아 보라며 제 방에서 보라색 악세사리 함을 가져 왔다. 또 무슨 심부름을 시킬 작정인 듯 보였다. 누나는 일 년 전부터 포털에 까페를 만들어 비밀리에 심부름 대행사 일을 하고 있었다. 은밀히 거래하는 직원이 20명 정도 된다고 하였다. 누나는 가끔씩 나를 알바로 동원하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무엇을 전달해 주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워낙 다양한 일을 하는 것 같았고, 직원에게 주는 보수도 상당한 것 같았다. 누나는 착수하기 전, 일을 해결할 직원을 불러 일대일로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누나는 자신이 보통 40%를 갖고, 실행자가 60%를 갖는다고 했다. 실행자에 비해 보수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고 물어 보았지만, 누나는 모든 전략을 자신이 세우기 때문에 실제로는 60%를 갖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뢰인이 의뢰한 모든 것을 100% 선택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사람을 죽여 달라는 무시무시한 제안이나, 심각한 상해를 입혀야 하는 제안, 어떻게 해도 뒷꽁무니가 밟힐 만한 일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슬쩍 발을 뺀다고 했다.

“내가 이것을 책장 밑 서랍에 넣어놓을 테니, 다음 주 일요일에 심부름 좀 다녀와라. 내가 한 일주일 정도 어디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나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주말에는 꼭 좀 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누나는 금새 내 곁으로 다가와 뺨을 어루만지며 애교 있게 부탁했다.

“회사 흡연 문제 내가 깔끔하게 처리해 줄 테니, 이것 좀 꼭 전해 줘.”

누나는 내가 연일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자,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언제부터인지 이제는 우리 무성이를 위해서 왕누나가 나서야 겠다,며 자주 내 엉덩이를 장난스레 토닥여 주었다. 나는 그때마다 누나를 만류하며, 회사 내부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 했지만, 누나는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냐,며 게의치 않았다. 나는 악세사리 함을 열어보았다. 번뜩임이 예사롭지 않은 다이아반지였다. 

“그 남자가 의뢰인에게 이것을 주며 6개월 후에 지금 사는 부인과 이혼한 후 자기와 결혼하기로 했다는데, 한 3개월 전부터 연락도 안 하고, 무조건 피하나봐.”

“사람 시켜요. 저 심부름 다닐 때 아닌 것 알잖아요...”

나는 귀찮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사람 시킬 일 아니야, 내 친구야.”

누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면서 갑자기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종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 남자를 모르면 어떻게 하겠는데, 나와도 잘 알거든. 그냥 이것만 와이프한테 전해 주면 돼. 주말에 가족들이랑 교회에 간다고 하니, 서교동에 있는 주찬양교회로 가. 와이프가 성가대원이야. 12시 10분에 예배 끝나면 성가 연습하고, 12시 50분 정도에 지하 식당으로 간다니깐 그때 불러서 전하기만 하면 돼.”

“이게 뭐냐고 물으면요?”

“그냥 어떤 사람이 전해 달라고만 했다고 해.”

누나는 어차피 부인이 남편에게 말할 것이고, 남편은 뒤로 놀라 자빠질 것이며, 이 정도로 나온다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만나서 무슨 얘기라도 할 것이라고 했다. 누나의 일 중에서 이렇게 쉬운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예측이 빗나가기도 하고, 돌발 변수가 튀어나와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일들도 꽤 있었다. 사건의 접수 및 실행 단계는 대략 이러했다. 의뢰인이 이메일로 처리해 주었으면 하는 내용을 적어서 보내면, 누나는 의뢰 사연을 보고 대략적인 판단을 내린 후, 유선으로 연락하여 1차 미팅을 갖는다. 그때 누나가 제시한 해결책에 동의하면 계약 금액의 50%를 선수금으로 받고 일을 진행한다. 계약 금액은 의뢰자를 만나서 즉석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힘든 일일수록 받아챙기는 돈이 많았다. 못해도 한 건당 최소 3백만원 이상의 사례비를 받는 것 같았다. 누나에게 너무 비싸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누나는 모든 해결 방법이 비정상적이고, 모든 것이 비밀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은 그다지 돈의 액수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고소나 고발에 대응하기 위해, 의뢰자를 만난 후 모든 내용을 사전에 녹음해 둔다고 하였다. 혹시 의뢰자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발뺌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해 놓는다고 하였다.

누나의 얘기를 들어보면 별별 제안이 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애인에게 차여 열이 받아 견딜 수 없다며, 반드시 똥을 한 바가지 퍼부어 달라는 제안이나, 사귄 지 두 달 됐는데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시험해서 결과를 알려달라는 제안, 시부모가 둘째 며느리만 이뻐하는데 둘째 며느리의 흠을 잡아서 절대 사랑을 못 받게 해 달라는 제안 등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 

첫 번째 사연의 경우, 누나는 남직원 둘을 시켜 몇 일간 남자를 미행하게 하였다. 그들은 서울 인근 노인집 푸세실 화장실에서 똥을 잔뜩 퍼 락앤락에 담아 다니다 점심 식사 후 테헤란로 대로변에서 별 생각 없이 담배를 피고 있던 놈의 머리 위로 똥을 부어버렸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건장한 두 남자 중 한 사람은 화질 좋은 소형 켐코더로 촬영에 성공했다. 남자는 눈에 똥이 들어갔는지 똥묻은 손으로 눈을 연신 비벼대다가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아 야이 개시팔눔들아! 연신 욕을 해댔다. 그러나 이미 실행자들은 자리에 없었다. 남자는 십분 넘게 자리를 뜨지 못했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했다. 어떤 사람이 그 광경을 사진에 담아 경찰서에 제보했고, 인터넷 뉴스에 한낮의 똥테러,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어 남자는 한참동안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하였다.

남자 친구의 진심을 확인해 달라는 의뢰에는 초소형 녹음기를 대동하고 나섰다. 누나의 수족은 하교하는 남자 앞에서 일부러 넘어져, 굽이 부러졌다며 도와달라는 뻔한 수작을 했고, 남자는 드라마처럼 그녀를 부축하고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문 앞 버스정류장 구두 수선집에 구두를 맡기고 찾아다 주는 선심까지 베풀었다. 연신 감탄한 듯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남자에게 절대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술을 한 잔 사겠다 했고, 남자는 싫은 내색 없이 질질질 따라갔다. 남녀는 대학교 앞 조그만 라이브 음악 까페에서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 누나는 업무에 착수하기 전, 의뢰인에게 남자의 이상형을 물어 윤은혜와 닮은 밝고 상큼한 친구를 실행자로 내보냈다. 남자는 예상대로 정처 없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남자는 취기가 오를수록 호기로워져 여자의 손을 덥썩덥썩 잡았고, 여자가 그다지 제지하지 않자 한 번 하자,는 얘기까지 더했다. 물론 모든 것이 녹음되었다. 놀란 눈으로 여자가 다음에 만나자,고 수줍게 웃자 남자는 발정난 개처럼 여자 옆으로 다가와 자신이 곧 유학을 떠날 것이며, 자신의 아버지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의 대표이사이며, 유학을 가려면 믿을 만한 여자 친구와 약혼 후 떠나라고 온갖 있는 척에, 초특급 허풍까지 다보여 주었다. 누나는 사건을 의뢰한 여자에게 녹음한 내용은 이러하나, 사실 이 정도 여자 앞에서 안 넘어갈 남자는 거세한 내시 말고는 없다며, 크게 의미를 두지 말라고 했다. 여자는 꺼이꺼이 울면서 다 허풍이라며, 자기를 꼬여냈던 첫날과 너무 비슷하다며 즉시 헤어지겠다고 했다. 노련한 누나는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며 각서를 쓰게 했다. 

그러나 세 번째의 경우처럼 조금 시간이 걸리는 일도 있었다. 둘째 며느리의 흠을 잡아달라는 첫째 며느리의 의뢰를 해결하는 데에는 장장 보름이 걸렸다. 시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 두 분을 아주 어렵사리 구했는데,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삼일 밤낮 100번도 넘게 상황을 연습한 두 아주머니는 마트에서 천연덕스럽게 시어머니 곁을 배회하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상황을 놓치지 않고, “어머, 인숙이 시어머니 아니세요?” 다가갔다. 시어머니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우리 둘째 며느리를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었고, 평소 둘째 며느리와 찜찔방을 자주 갔다는 정보를 이용하여 “저번에 며느리와 백석 찜찔방에서 인사했잖아요”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두 아주머니는 장 잘 보시고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누나는 그 뒤로도 5일 걸러 한 번씩 아주머니들과 시어머니를 마주치게 했고, “왜 그렇게 고우세요, 너무 젊다 너무 젊어.” 라는 말로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시어머니가 편한 호감을 갖게 했다. 그러다 이렇게 만난 김에 찜질방이나 가자며, 한 아주머니가 유인했지만 시어머니는 오늘이 곗날이라며, 혼자 가기 심심하니 이번 주 토요일 날 저녁에나 봅시다,며 알아서 날을 잡아주었다. 그날, 작정한 대로 일이 터졌다. 한 아주머니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며느리가 어딨냐,며 둘째 며느리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다른 아주머니는 속모르는 소리 말라,며 펄쩍 날뛰었다. 시어머니와 둘째 며느리가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같은 찜질방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아주머니는 정해진 각본대로 능청스럽게 말했다.

“뭐시기... 저번에 둘째 며느리가 친구인지 이웃인지는 몰라도 함께 찜질방에 왔는데, 세상에 옆에서 듣자하니, 시어머니가 나이값도 못하고 그 나이에 보톡스를 맞고 다닌다며 얼마나 싸잡아 뭐시기하게 얘기하던지... 듣고 있던 내가 민망하더랑께. 어디 그뿐여! 마곡지구에 땅 사 놓은 것 있죠이. 그거 한 세배 뛰었제라? 돈다발 싸짊어지고 10미터도 못갈 만큼 돈 많은데도, 둘째 손녀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방 하나 안 사줬다고 얼마나 오래 사는지 두고 보겠다는 말이나 허고, 용인에 무슨 푸레지온가 하는 아파트 사 둔 거 그거 큰 아들 준다고 혔으니, 우리 남편한테는 마곡지구 땅 주지 않겄냐고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고 있더랑게요!”

시어머니는 부득부득 이를 갈다가 아주머니들과 인사도 안하고 찜질방을 박차고 나갔다. 빼도박도 못할 구체적 정황 앞에서, 둘째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완벽히 버림 받았다. 둘째 며느리는 펑펑 울며, 제발 그 아주머니들과 대질 좀 해 보자,며 억울함을 하소연 해 보았지만, 시어머니는 소박 안 맞은 것만도 다행이라며 세상에 있는 역정을 다 퍼부어댔다. 누나의 일은 언제나 완벽했다. 자로 잰 듯한 계획과 번개 같은 실행력으로 상대의 급소를 찔렀다. 살쾡이처럼, 대담하게 단 번에 콱 물면 절대 놓치지 않았다. 누나는 작업이 시작되면 평소답지 않게 무척이나 냉혹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모든 것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실행자를 실전처럼 연습시켰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정없이 질책했다. 비위 상한 그들도 빳빳한 현금이 손에 쥐어질 때는 그간의 과정을 모두 잊는 듯했고, 그렇게 검증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자기 편으로 모아 일을 쉽게 쉽게 처리해 나가는 것 같았다.

누나가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년 전, 우리집으로 이사 온 직후였다. 누나는 이전에 오픈 마켓과 홈페이지를 통해 몇 가지 특이한 상품을 팔았는데, 톡톡히 재미를 보고난 후 과감히 폐쇄해 버렸다. 누나는 당시 우리나라에 빅 사이즈 옷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허리 40인치가 넘는 바지류와 티셔츠 류를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팔아치웠다. 여성 의류, 여성 구두 같은 것들은 워낙 경쟁이 치열하여 끼어들 엄두가 안 났다고 하지만, 사실 누나는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틈새 시장만을 공략하였다. 누나는 쇼핑몰을 걷어치운 후 곧바로 여성들을 위한 섹스용품을 팔았다. 누나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든 후, 이 쇼핑몰은 여성 회원제로 운영되며, 남성 분들은 절대 입장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메인에 박았다. 만 19세 미만과 남자들은 아예 회원 가입조차 되지 않게 제한하여, 남자 여자 모두 들락거리면 괜히 꺼림직해할 여성들을 철저히 보호하였다. 남자들이야 널린 성인용품점에 가서 얼마든지 물품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여자들은 호기심이 있어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인터넷에서 판을 벌였다. 누나는 성인용품 도매상에 가서 대차게 직거래를 텄고, 포털에 ‘섹스’ ‘여성전용’ ‘자위’ 등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홈페이지가 노출되도록 광고했다. 또한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의 여성들이 많은 사이트에 비싼 돈을 들여 배너 광고도 집행하였다. 민감한 여성들을 위해 배송되는 박스도 화장품 상자처럼 위장하였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누나는 꽤 많은 돈을 벌어 들였고, 이를 통해 아직 한국에 입점하지 않은 외국 명품 의류와 가방, 가죽제품까지 손을 대 거듭 성공을 거두었다. 누나는 자본주의의 신이었다. 누나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준 사업 아이템만 하더라도 수십 개가 넘었다.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누나의 표정은 자신만만하고 한없이 도도했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방식대로 돈을 벌어야 해. 틈을 노리고 기다리다가 제대로 한 방에 급소를 찔러야 해. 누군가 하고 있는 일이나, 했던 일은 가급적 안 하는 게 좋아. 아예 경쟁할 수 없는 미지의 블루오션에 쳐들어가 먼저 깃발을 꽂는 거지.”

그러다 어느 날 밤, 누나는 오래 전부터 꼭 재미있게 해 보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다며, 나를 불러앉혔다. 누나는 북어포와 마요네즈와 캔맥주 두 개를 꺼내 거실로 나오라고 하더니, 사뭇 진지하게 자신의 사업 구상을 얘기해 나갔다. 바로 심부름센터였다. 누나는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 줬으면 하는 골치 아픈 사연 한 두 개쯤은 갖고 있다며, 꼭 이 사업을 시작해 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농으로 하는 얘기인 줄 알았으나, 누나는 꽤나 심각하게 이런 일은 수익또한 엄청나다며, 이제 물건 떼어다 파는 것도 지겹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고객 클레임 처리하는 일도 이젠 신물 나고, 알바가 자꾸 바뀌다보니 인수 인계하는 일도 힘들다며 때늦은 짜증까지 냈다. 무엇보다도 누나는 이 일이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한참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히죽히죽 웃어댔다. 생각보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나는 몇 번이나 법에 접촉되는 일이 많을 거라며 우려하였지만, 누나는 모든 작업 이 의뢰자의 동의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만의 하나 문제가 생겨도 자폭할 수 있다며 걱정하지 않았다.

누나는 역시나 빠르고 대담하게 업무에 착수했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키워드를 장악했다. ‘골치 아픈 일’, ‘해결사’, ‘심부름센터’, ‘열받는 일’등 키워드를 검색할 때마다 사이트가 돌출되게 하였다. 또한 알바를 동원해 자신이 해결 받은 일들에 대한 감사후기를 속시원하게 올리도록 했다. 동원된 사람임을 고객들이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나는 부산, 광주, 대전, 강원도 속초에서 일이 해결된 양 광역적으로 스케일이 크게 장치해 놓았다. 누나는 한 달에 아무리 많아도 10건 이상 처리하지 않았다. 워낙 기습적으로 작전을 펼쳐야 하는 일이어서, 그 상황에 걸맞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교육시키는 일이 제일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누나는 깍두기 형님 10명 앞에서도 발가락조차 꿈쩍하지 않을 정도의 강한 깡다구가 있었다. 다른 일반적인 여자들은 곤경에 빠졌을 시 어떻게 하면 일을 감추고 무마하려고 할까 덮어버리는데, 누나는 상대가 누구이건 상관하지 않고 들이 받았다. 대학 시절, 하숙집 잡을 때까지만 같이 있어 달라고 했던 과 남자 후배 두 명을 인도적 차원에서 받아들인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 놈이 누나와 잤다는 식의 이상야릇한 말을 친구에게 농담으로 얘기했다가, 캠퍼스에 와전되고 확대되어 2대 1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른쪽 엉덩이에 어린 애 몽고반점만한 사마귀가 있어서 할 때마다 웃겨 죽는 줄 알았다는 등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버렸다. 누나는 소문의 첫 근원지를 추적하여 자취방에 몇 일 묶었던 후배 한 녀석이 문제였던 것을 밝혀 냈다. 강의실에 들어설 때마다 히죽거리며 웃어대는 선후배들을 보면서 소문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누나는, 정부 여성위원회 간사로 일하고 있던 여자 교수님 강의 시간에 참았던 화를 터뜨렸다.

“교수님 강의 시간에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해서 너무 죄송하지만, 여성 인권을 위한 일이니 잠시만 공식적으로 발언할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한 달 전, 저는 하숙집을 구하지 못해 애 먹던 남자 후배 둘의 간청을 받아들여 몇 일 집에서 묶게 하였는데, 이중 김필로라는 녀석이 제가 자기하고 잤다는 식의 농담을 친구에게 건넸고, 이것이 우리 과 전체로 퍼져 도무지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은 학생들 사이에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해져 급기야 제 엉덩이에 지름 10센티만한 사마귀가 있다, 2:1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임신해 산부인과에 다녀왔는데 누구 애인 줄 몰라 유전자 검사까지 받았다더라,라는 둥 도무지 제가 진압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버렸습니다. 첫 소문의 진원지를 김필로 친구에게 확인 받았고, 제 엉덩이에 사마귀 없다는 것도 여자 선후배 6명에게 화장실에서 보여 주어 사실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필로가 공식적으로 저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고, 이후 단 한 번이라도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학교의 징계를 받아야 된다고 건의 드리는 바입니다.”

여성위원회 간사 교수님은 눈이 확 돌아버린 듯 격한 숨을 내쉬며 김필로를 강단 앞으로 불러 이유가 어찌됐든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당신이니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누나는 삐쩍삐쩍 머뭇거리던 김필로에게 싸대기를 올려 붙였고, 단번에 사과를 받아냈다. 어디까지 소문이 퍼져나갔는지 확인할 길 없는 일을 거침없이 해결해 버렸다. 이후 누나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거의 전설이 되었다. 여학생들은 선배라며, 후배라며 찾아와서 자기의 고민을 수도 없이 얘기했고, 누나는 직접 나서거나 전략을 짜서 그들을 크게 혼내 주는 일들을 진행했다. 체득된 경험이 남달라, 누나가 구상한 심부름센터는 어찌보면 누나의 스타일 상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누나는 졸업하고 난 후, 강남 테헤란로 있었던 IT 기업에서 2년간 웹디자이너를 하였지만, 돈을 벌기 위함보다는 훗날을 도모해 경험을 축적한 것뿐이라고 했다. 결국 인터넷의 편리함을 맛본 고객들은 계속 가상 공간에서 쇼핑하며 떠돌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갈수록 사람들은 편리한 문명에 적응하여 게을러질 것이고, 온라인에서의 사업 수익은 서버 비용만 감당하면 된다고 하였다. 누나는 고객 특성에 따라 자유자재로 까페와 블로그와 사이트를 개설하고, 참신하게 디자인하여 고객을 끌어들였다.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누나는 자본주의의 전사로 그 누구보다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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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대현그룹의 금연정책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믿었던 대표이사마저도 자발적으로 회장에게 찾아가 금연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회장은 전체 사장단 회의에서 지난 수 년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금연 의지를 표명하였는데, 금연 문화가 전직원에게 확산되지 않고 있다며,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CEO들의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대표이사 중에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계신데, 뭐라 할 말이 없다,며 일침을 가했다. 사전에 미리 조율된 각본이라는 얘기도 떠돌았지만, 여튼 우리 대표이사는 만약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일이 목격된다면, 그 사람에게 100만원의 돈을 주겠다며, 전직원 앞에서 금연을 서약했다. 다른 6개 계열사 대표이사도 모두 동시다발적으로 금연을 선포하여 회장의 금연 정책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런 마당에 팀장급 이상 중견 간부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유능하고, 역량 있으면서, 담배도 안 피는 후배들이 해운대 모래알처럼 깔려 있는 판에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표이사의 정책을 거스를 수 있는 간 큰 팀장은 그룹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회장은 사내 홈페이지에 임원의 흡연률이 0%가 된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며, 앞으로 담배 피우는 사람은 절대로 임원으로 승진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새로 입사하는 신입 사원들은 반드시 금연서약서를 작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담배를 태울 시 퇴사하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전해왔다. 흡연자들은 회사 분위기가 장난 아니라며 앞다투어 걱정했다. 그냥 하는 말이겠지, 그냥 이러다 말겠지,했지만 분위기는 갈수록 사나워져 가고 있었다. 특히 알아서 미리 담배를 끊은 팀장급 이상 간부들은 유난히 여느 때보다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안절부절못했고, 술자리를 피하려 미리 잡았던 회식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결재 기안에 한 글자의 오류만 있어도 온갖 트집을 잡고 직원들을 야단쳤다. 회사는 언제나 깨끗하고 깔끔하였지만, 모래폭풍 몰아치는 중동의 사막처럼 스산하고 불안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일반 직원들은 요령껏 담배를 피웠다. 곧 자신에게도 닥칠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회장의 공식적인 언급이 없어 직원들은 술집에서, PC방에서, 베란다에서 흠씬 니코틴을 흡수했다.

그러나 회사의 금연정책은 집요했다. 몇 번 잽만 날릴 줄 알았던 흡연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원투 스트레이트에 어퍼컷까지 날리고 있었다.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다섯 살 된 아들의 나쁜 버릇을 고치려는 엄한 부모처럼 다가왔다. 계열사 모든 대표이사의 금연 선언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회사 인트라넷 팝업창에는 '당신은 건강에도 나쁘고, 일의 역량을 저해시키는 담배를 지금도 피우고 계십니까?'라는 설문이 올라왔다. 그리고 모든 직원은 ‘YES’와 ‘NO’중에 반드시 체크하도록 했다. ‘YES’에 체크하면 '이젠 회사의 금연 정책을 따르겠습니까?'라는 물음이 협박처럼 따라 나왔다. 흡연자들은 망설였다. 설문 하단에 써 있던 한 줄 문구 때문이었다. '만약 금연을 서약한 후 흡연이 적발되면 인사고과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으며, 승진자 명단에서 3년간 자동 제외됩니다' 흡연자들은 올 것이 왔다며 연거푸 한숨을 몰아쉬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흡연자에는 ‘YES’, 금연 동참은 ‘NO’로 체크했다. 화면에는 '회사의 금연 정책을 거역하여 지속적으로 흡연하겠다는 직원은 인사고과시스템에 자동 반영되어 그 어떤 역량을 발휘해도 D등급 이상 받을 수가 없음을 명백히 말씀드립니다'는 말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왔다. 한 번만이라도 D등급을 받으면 승진 연한이 2년 이상 늦추어지기 때문에 결국 직장인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다시 누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돌아가기’라는 붉은색 배너 버튼이 하단에 번득였다. 그러나 '돌아가기' 말고 다른 버튼이 없었다. '계속가기'라는 버튼도 있어야 하는데, 화면에는 배너가 심판관처럼 번득이며, '돌아가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지주회사 총무팀으로 긴급 업무협조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일단 누르고 보자,는 식으로 나는 '돌아가기'를 버튼을 눌렀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여러분을 치하합니다'는 문구 위로 강회장의 환히 웃음 짓는 표정이 나타났다. 놀림 당하는 듯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이것을 빌미로 금연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나는 그룹 공지를 담당하고 있는 기획조정실 홍보팀 직원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식품 마케팅팀 김무성 사원인데요. 금연 팝업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수화기를 타고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어투가 되돌아왔다.

"다 끊으라는 얘긴데요. 아직도 담배 태우세요?"

"담배 태우죠. 근데 왜 모두 담배를 끊어야죠?"

"회사 방침에 대해 지난 3년간 그렇게 홍보하고 켐페인을 벌였는데도 제가 다시 설명해야 하나요?"

"그건 회사의 일방적 방침이죠. 저는 계속 담배를 피울 것이니 수정해 주세요."

여직원은 경멸하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근데 어디 회사 누구라고 하셨죠?"

"해닮은식품 신제품 마케팅팀 김무성 사원입니다"

여직원은 짧게 알겠다는 말을 하고 수화기를 내렸다. 그러나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일로 인해 회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옥상에서 담배 세 개비를 연거푸 태우고 자리에 돌아온 나는 외마디 비명 같은 팀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야!”

나는 벼락맞은 기분으로 재빨리 팀장에게 다가갔다.

"너 미친 거 아냐? 야 자식아! 지금 회사가 어떤 분위기인데 담배를 계속 태우겠다고, 홀딩스에 전화를 걸어 뭐 잘난 일이라고 확인까지 시켜줘! 너 또라이야? 또라이?”

평소에 나를 유난히 좋아했던 팀장이었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나 나는 여러 동기와 팀원들 앞에서 이미 자존심이 무너진 터라 쉽게 굽힐 수 없었다.

"아니요, 팀장님. 왜 전직원이 동시에 담배를 끊어야 하는지 전 별로 납득되지 않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결재판 서류가 가슴팍에 떨어졌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시로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반항했다.

"전 그럼 회사 밖에서만 필게요."

팀장은 벌떡 일어서서 검지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톡톡 밀었다.

"회사에서도 안 되고 집에서도 안돼! 우주에서도 안돼!"

나는 항의의 표시로 한숨을 표나게 연신 쉬어댔지만, 마케팅 팀장은 꿈쩍도 안했다.

"불시에 모발검사 해서 니코틴 튀어나오면 내 모가지 날아가. 나 애 둘인데 니가 책임질래?"

"이건 횡포입니다. 회사 밖에서도 집에서도 안 된다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팀장은 다시 날카로운 소리로 야단쳤다.

"둘 중 하나 선택해! 회사 다니려면 끊고! 안 다니려면 사직서 쓰고! 기조실장이 직접 대표님께 전화해서 타고 내려온 거야 이 또라이야! 흡연률 0%가 회사 원칙인데 너만 버틴다고? 절루 나가! 아휴 담배 냄새 나!"  


나는 마케팅 팀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빌려간 담배만 해도, 석가탑을 두 번 넘게 쌓았을 터인데, 그런 골초가 담배 끊었다고 해서 회사 정책 어쩌구 저쩌구 180도 돌아서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담배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만약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자가 있으면 형사처벌 받습니다,라고 법을 공표하면 되는데, 보건복지부가 주동하여 금연 켐페인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대체 이해가 안 된다며, 울분을 토하던 마케팅 팀장이었다. 담배 끊으라면 제일 먼저 자신이 그만 두겠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내뱉어 놓고, 이제 와서 또라이라는 둥, 냄새난다는 둥 이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강회장이 전직원 금연을 해야겠다 결심한 것은 대현그룹의 모든 사업 분야가 자연의, 자연에 의한, 자연을 위한 사업에 연관돼 있기 때문이었다. 대현그룹은 3년 이상 적자를 기록한 의류, 와인, 쇼핑몰을 처분한 후, 대체에너지와 건설 부문을 키워서 매출 규모 제계 10위권으로 진입하고자 하고자 하였다. 그룹 자산 규모는 제계 30위권으로 들어섰지만, 국내 유수의 대기업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건설과 에너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판단이 있었다. 강회장은 금연 이외에도 환경경영실천의 일환으로 모든 임직원에게 환경 개선 봉사활동을 매년 30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시켰다. 불만과 원성이 높았던 직원들은 가족들과 함께 산과 하천의 쓰레기를 줍고 나무를 심었으며,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을 고발하는 등 환경감시단 역할또한 톡톡히 해냈다. 강회장은 또한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에는 전직원에게 3일간의 유급휴가를 주어 태안 바닷가로 보냈으며, 봉사활동을 위해 식대를 비롯한 현지에서 쓴 비용 모두를 회사에서 처리해 주는 파격도 선보였다. 신문과 방송 매체는 대현그룹의 이러한 선행을 높이 평가했고, 덩달아 기업 매출도 상승했다.

강회장은 여러 매체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모든 직원이 친환경적으로 변해야만 우리가 더 큰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도, 그 누가 대현그룹을 칭찬하고 위대하다 말해도, 우리가 먼저 ‘친환경’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어린 아이들이 먹는 음료를 담배 핀 손으로 만들 수 없다. 공기청정기 파는 사람이 담배 냄새 가득하다면 누가 사고 싶겠느냐, 친환경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연구소에 외국 바이어들이 왔는데 직원들이 밖에서 담배를 뻐끔 뻐끔 피고 있다면 어떤 판단을 하겠느냐, 강회장의 친자연적인 사고는 경영정신 그 이상으로 중요한 실천항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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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짜고 치는 고스톱 마냥 회사는 내가 입사하자마자 금연 정책을 실시했다. 나는 심히 갈등했다. 누나에게 회사의 이런 정책을 설명하며 괜히 따지듯 항변했지만, 누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바닥을 딱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걱정 말고 피던 담배를 계속 피우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이냐며 반복해 물어보았지만, 누나는 즉답을 피하고 묘한 미소만 머금었다.

사실 내가 담배를 배운 것은 누나 때문이었다. 지금 동거하고 있는 누나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스물 세 살의 대학생이었다. 나보다 8살이나 연상이었다. 내 영원한 첫사랑이자 과외 선생님이었던 누나는 내신 1등급을 하고서도 학력고사 성적을 340점 만점에 300점 가까이 맞아야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의 컴퓨터 디자인학과에 다녔으며, 대낮에 길거리를 마음 놓고 활보하지 못할 정도로 남자들의 추파를 한 몸에 받았다. 대한민국 상위 1% 레벨이었다. 170cm에 육박한 키에 팔다리가 가늘고 길었고, 가슴은 당당히 C컵을 자랑했으며, 게다가 누나는 한 포털의 메인 광고 카피처럼 세상의 모든 지식,이었다. 어떤 분야를 물어 봐도 마치 개론서를 읽듯 줄줄이 설명해 나갔다. 영어는 아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희롱할 정도였다. 이런 여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누나는 충격이자 경악이었다.

누나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일주일에 세 번씩 하기로 한 과외를 우리집에서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집에서 공부하면 내가 긴장감이 풀릴 것이라며, 지하철을 타고 십분 거리에 있는 누나의 대학 도서관에서 나를 공부시키겠다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증권회사 부하 직원의 소개를 받은 아버지는 누나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는 대가로 월 50만원의 과외비를 지급했다. 그러나 누나는 거의 매번 약속을 어겼다. 또한 도서관에서 공부 시키겠다고 한 말도 거짓이었다. 누나는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하고 있었는데, 오라는 시간에 맞추어 가 보아도 매번 문이 잠겨 있기 일쑤였다. 언제 메모를 남겼는지는 몰라도, 무조건 삼십 분 후에 올게, 오지 않으면 내일 이 시간에 오렴, 이런 메모만 일방적으로 남겨져 있었다. 누나에게 시간 약속을 잘 좀 지켰으면 좋겠다고 어필도 해 보았지만, ‘양’보다 ‘질’이 우선이라며 내 볼을 톡 꼬집았다. 그때마다 나는 온 세포가 요동쳤다. 누나는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내 어깨를 감싸며 ‘그렇게 푸는 게 아니지, 너네 선생님은 참 어렵게 가르치신다. 함수처럼 쉬운 게 어디 있니,라며 땀찬 내 손을 느닷없이 움켜 잡았다. 진하지 않은 은은한 오렌지 향수, 그리고 긴 생머리가 내 팔등을 바람처럼 스칠 때면 나는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누나의 수학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수학은 패턴이라며, 그 어렵던 방정식과 1차 함수를 두 시간 만에 끝내 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2차 함수와 미적분을 마스터해 주었다. 예를 들어 시험 문제에 나오는 패턴은 이 세 가지를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며, 만약 이 틀을 벗어난 다른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는 식으로 늘 자신만만해 했고, 한 번도 누나의 예상은 틀린 적이 없었다. 과외는 주로 자습이 많았지만, 누나는 현미경으로 내 세포까지 다 들여다 보는 듯했다. 내가 자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 계속해서 과외를 유지하게끔 나를 조종했다. 누나는 아주 편한 복장으로, 가끔은 가슴이 드러나게, 가끔은 허벅지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바짝 마주 앉았다. 내가 민망해서 옷이 좀 야한 거 아녀요? 얘기하면, 뭐가 대수냐는 듯 어디가? 어디가? 제 스스로 가슴을 만지며 허벅지를 만지며 나를 더욱 불살랐다. 그러다가 내가 금새 발개지면 응큼한 놈,이라며 내 볼을 긴 손가락으로 훑어 내렸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욕정에 불타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아슬아슬한 느낌들은 내 첫 몽정으로 쏟아지기도 하였다. 과외보다 누나를 만나는 촉감이 좋았다. 자습하라고 해 놓고 샤워 좀 하고 올게,라고 하면 나는 그날 참고서를 덮어야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지만, 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놓았다 했다.

나는 돈 많은 아버지를 설득하여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누나에게 국어와 영어도 배웠다. 반에서 20등 정도를 유지하던 성적은 3학년에 들어서서 3위에서 5위권을 배회했고, 나날이 오르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아버지는 누나에게 무척이나 감사해 했다. 당시 아버지와 띠동갑으로, 삼십대 중반이던 젊은 새어머니는 누나를 썩 탐탁해 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내가 워낙 완강하게 밀어붙이니 못이긴 척 들어주었다. 아버지는 누나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사 주었고, 샤넬 향수도 선물하는 등 적어도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잘 부탁한다며 진심으로 애걸복걸했다. 그러나 누나는 이런 간청을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 아버지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중요한 과외가 몇 건 더 있기 때문에 수학 이외에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 손이 부끄럽지 않게 상품권도 향수도 돌려드렸다.

“무성이를 제가 다닌 대학 정도까지는 보낼 수 있겠는데, 자꾸 대치동쪽에서 연락이 와서 학원가로 아예 진출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봐 왔으니 일 년 정도는 더 봐 드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정말이지 죄송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아버지에게 누나 과외 끊기면 내 성적 곤두박질칠 거라고 협박했다. 가르치는 차원이 ‘4차원’이라고 했고, 몇 년 더 과외를 받으면 서울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버지가 어떻게 든 해결해 주시라고 밤낮으로 졸랐다. 삼일 간 단식투쟁한 끝에 아버지는 누나를 만나,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매주 4회씩 나만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한 달 300만원의 목돈을 제시했다. 그리고 ‘SKY’대학을 비롯한 이에 준하는 대학에 입학할 시, 국내산 중형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누나는 똑똑했다. 300만원이라는 돈이 대학생 신분으로는 너무 부담스러우니, 보수는 월 100만원 정도로만 하고, 대신 좋은 주식 종목이 있을 때 알려주시면 안 되냐고 수줍게 말했다. 아버지는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주식에 관심이 많은지 전혀 몰랐다며, VIP 고객 중에서도 VIP에게만 나가는 최고급 정보를 알려 주겠다 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증권 계좌를 누나 명의로 개설한 후, 매월 100만원씩 직원에게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덧붙여 원금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자신이 직접 다 배상해 주겠다며, 환상적인 조건으로 누나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누나의 협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여러 번 공부를 가르쳐 보니, 만나는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성적은 자기 노력에 달려 있고, 공부 패턴만 바로잡아 주면 되는 것 같더라며, 일주일에 6시간씩 주 3회로 고정하면 안 되냐고 했고, 그것은 다 알아서 하시라며 아버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말미에 내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자신을 선생님이 아닌 학교 여자 친구 정도로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꽤 심하다며, 엄하게 가르치겠으니 성적표만 보시라는 말도 했다. 아버지는 누나 말을 안 듣거나 함부로 대하면 가만 안 두겠다며, 4년 약속을 보장하고 누나가 가져온 서류에 지장까지 굳게 찍었다.

그러나 그것은 독약이었다. 누나는 계약이 체결된 이후, 사정없이 나를 짓밟았다. 문제를 풀지 못하면 새벽 한 두시까지 아예 방에 가두고 공부를 시켰다. 돌대마리, 저능아, 정신박약아, 무뇌아 등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병행하여 나를 짓눌렀다. 계속 반복해서 문제를 틀리면, 머리를 박으라며 파리채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여덟살 연상은 사실 만만한 게 아니었다. 어떤 항거에도 누나는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비논리적으로 폭압스럽게 나를 제압했다. 나는 200점 만점인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당당히 186점을 맞았다. 암기과목에서 몇 개의 실수가 있었지만, 전교에서 8등을 할 정도로 높은 성적이었다. 외아들 공부에 대해 거의 포기했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누나의 공으로 돌렸다. 당시 금융시장이 좋았던 때라 누나는 못해도 원금의 다섯 배 이상 수익을 얻었을 터였다.

그러나 누나한테 배운 것은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있었다. 그것은 담배였다. 아마도 우리집에서 과외하지 않겠다 했던 것은 담배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다. 몇 번 학교 도서관에서 과외를 받긴 하였지만, 누나는 뭐가 마땅치 않았는지 원룸에 가서 공부하자고 했다. 모두가 담배 때문인 듯 하였다. 처음에는 화장실 환풍기 옆에서 피우더니, 이후에는 거실에서 대놓고 피웠다. 크지 않은 15평 원룸이어서, 담배 냄새는 집안 곳곳을 맴돌았다. 담배 냄새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하면, 누나는 핑계도 좋다,며 말을 씹었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미안한 듯 다시 베란다로, 자기 방으로 떠돌며 담배를 피웠지만 상당한 골초 같았다. 하루에 얼마나 피우느냐, 언제부터 피웠냐 물어보면 시끄럽다,며 말을 톡 잘랐다. 누나가 집을 비운 사이, 나는 재떨이를 뒤져 담배를 피웠다. 누나의 붉은 립스틱 자욱이 선명히 묻어 있는 꽁초만 골라서 피웠다. 처음 한 두 번은 변기통을 잡고 구토도 하였지만, 이후 혈류를 타고 들어간 담배는 온몸을 이완시켰다. 되려 학습 효과도 좋아지는 듯했다. 딱히 머리 식힐 방법도 없었던 그 시절, 나는 베란다에서 한숨처럼 담배를 피웠다. 담배 연기로 도너스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정석 문제를 풀 때에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누나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집밖을 나가서 피지 않겠다는 것과 절대로 내가 담배를 피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이 약속을 어기면 과외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누나의 충실한 발바리가 되어 있었다. 새어머니가 나의 흡연 사실을 눈치 챘지만, 절대 아버지에게 말하지 말라는 단호하고 퉁명스런 말에 별 관심 없다는 듯 모른 체 하였다. 나는 학창 시절, 약속대로 누나의 원룸을 제외하고 어디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누나의 원룸에서 내 담배량은 갈수록 늘어갔고,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그 흡연량은 배가 됐다. 하루 두 갑이 아니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내 고단한 회사 생활은 다시 대학 생활의 평균 흡연량을 훌쩍 뛰어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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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추적추적 내렸던 비는, 퇴근 시간에 맞추어 장대비로 바뀌었다. 빌딩 앞 현관 앞에 혼자 피켓을 들고, 나는 동상처럼 서 있었다. 알은 체를 했던 동료들도 보름이 지나자 쯧쯧 혀를 차며 지나갔다. 누군가는 ‘투쟁’이라 했고, 누군가는 ‘미친짓’이라 했다. 대표이사는 창사 29년 만에 나타난 ‘최악의 직원’이라며 개탄했다. 장대비는 칼침처럼 내 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비명 같은 것들이 귓전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7시 퇴근할 때까지 나는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경비원이 나를 몇 번이나 내동댕이쳤지만, 나는 무표정하게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그들을 조롱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옆 빌딩의 경제일간지 기자들이 집요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피켓’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던 터라, 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3년 동안 회사가 추진해 온 금연 프로젝트는 이제야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회사는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4만 여 임직원들 중 58명이 1차 흡연자로 판단되었지만, 다시 재검한 끝에 다행히 한 명의 흡연자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회사는 불시에 모발 검사를 했고, 흡연 의심자들에게는 피검사를 통한 재검까지 실시했다. 결과는 제로였다. 그러나 매월 1회씩 퇴직 공지를 했던 대현그룹은 요 몇 달간 매주 30명 이상의 직원을 퇴직시켰다. 회장은 전직원의 위대한 승리,라는 말로 흡연자들의 결단을 치하하며, 내년도 임금을 10% 인상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위기로 올해 임금 협상이 동결된 것에 비하면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는 수치였다. 

회장은 여세를 몰아 모든 광고에 ‘대현은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자연을 사랑합니다’는 문구를 넣도록 지시했다. TV 광고 하단에도 금연 광고 카피는 반복적으로 들어갔다. 강회장은 보건복지부 금연 공익 켐페인 광고에도 직접 출연하여, 어린 세 살박이 아이들 둘을 양팔에 올려 놓고, ‘금연’이야말로 당신의 몸과 가정과 우리 사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라고 홍보했다. 강회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앞세운 공식적인 금연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흡연률 0%라는 선전은 거짓이었다. 나는 검사를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나는 엄연히 사번이 존재하는 (주)해닮은식품 마케팅팀 사원이었지만, 회사는 아무런 동의 없이 나를 지워버렸다. 나는 6개월 전, 금연학교 입소식에 빠진 유일한 직원이었다. 마케팅 팀장에게도, 인사 팀장에게도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담배를 합법적으로 피우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때맞춰 그들은 강제로 인사발령을 냈고, 3개월 동안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계획적으로 직원들을 동원하여 나를 회사 밖으로 쫓아냈다.

내가 왜 담배를 끊어야 하는지 그 누구도 납득할 만한 답을 주지 못했다. 강회장은 대현그룹이 환경기업이기 때문에, 전직원이 환경경영실천에 앞장 서야 한다고 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앞뒤 없이 이는 '고객과의 약속'이라고 했다. 해닮은식품 대표이사는 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21세기형 인간, 우리의 당위'라는 표현을 썼으며, 1년 동안 20번도 넘게 끊었다 피웠다를 반복하다 간신히 끊은 마케팅 팀장은 우리집 개도 담배는 안 피운다,며 나를 개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계약적 노동 관계에서, 내가 회사에 고용된 시간은 평일 9시부터 6시까지인데, 그 밖의 시간까지 회사는 나를 통제하고 간섭했다. 대현그룹 개인의 역량 지표는 흡연 여부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어제까지 나를 데리러 왔던 누나가 오지 않자, 나는 온 가족의 사랑을 받다 길 잃은 강아지처럼 쓸쓸해졌다. 작정한 듯 퍼붓는 빗줄기를 피하기 싶었지만, 나는 7시 이전까지 한걸음도 떼지 않았다. 성난 군중들은 내게서 사나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보름이 지나는 동안, 강회장을 비롯한 회사 간부들은 돌이라도 던질 듯 나를 노려 보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회사 사규에 의하면 나는 불법 흡연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기준일 뿐이었다. 퍼붓는 빗소리에 지상이나 지하나 세상 것들은 다 요란하기 마찬가지였다.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누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부재 중이었다. 이상하게도 누나는 내가 담배 끊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끊어도 최후의 1인자가 된 후 끊으라,고 말했다. 또 무슨 계략이 있는 듯 보였다. 누나는 강회장의 이런 처신이 아무런 명분이 없다고 했다. 모든 직원들이 알아서 굽히기 때문에 싸움이 어렵게 보이는 것이지, 이런 게임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라고 했다. 명분이 없는 싸움에서 일관된 명분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버티고 있으면 이긴다는 말을 했다. 누나는 앞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무조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면 내가 이 싸움에서 이긴다고 했다. 

“전직원이 100% 금연을 할 거야, 너만 빼고... 넌 너네 회사의 0.0003%가 되는 거지. 꼴통처럼 보이지 말고, 금연이 정말 안 된다고 끝까지 버텨야 해. 별별 협박이 다 날아올 거야. 표정 한 번 바꾸지 말고, 도저히 안 되는 걸 어떡하냐고 되려 따져 물어야 해. 아주 순진무궁하게 말야.”

대현그룹 전직원이 본격적으로 금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1년 전이었다. 먼저 상무 이상 임원들이 금연을 선언하여 분위기를 잡았고, 이를 필두로 강회장은 전직원에게 금연 서약을 받아냈다. 그룹은 3년 전, 4만여 임직원에게 자발적으로 금연을 권장했다. '환경경영실천'이란 모토를 전직원에게 배양하기 위해서였다. 금연을 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강회장의 지론이었다. 회장은 첫해부터 가장 혐오스러운 금연 켐페인 포스터를 수집해 각 계열사 게시판에 붙이게 했다. 담배를 태우려면 차라리 바람을 피워라,는 부인의 날카로운 외침이 담긴 포스터, 담배 연기 가득한 젖병을 물고 있는 해맑은 아기의 포스터 등 보기에도 경멸스런 포스터를 각 계열사의 골든 위치에 부착하도록 했다. 비흡연자들은 회장의 금연 정책에 편승해 흡연자들을 압박했고, 대현그룹의 모든 건물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고야 말았다.

내가 있던 을지로 1가 해안빌딩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대현그룹 대표계열사인 (주)해닮은식품 신제품 마케팅팀 사원으로, 입사한 지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해닮은식품은 대현그룹의 음료사업 영역을 담당하였고, 자연의 고마움을 담아, 친환경 마실꺼리, 먹꺼리를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슬로건을 통해 사업 진출 3년 만에 업계 5위로 급부상한 회사였다. 매실로, 쌀로, 보리로, 토마토로 음료수를 만들었다. 회사는 고객이 ‘재료’를 마시는 게 아니라 ‘자연’을 마시는 것처럼 마케팅하였다. 사람들은 웰빙 바람에 휩쓸렸다. 생산 라인은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였다. 지방으로 시설을 확충하고, 24시간 풀가동 해도 열풍은 그치지 않았다. '당신의 몸이 자연입니다', '엄마의 마음까지 닮아 101% 국내산으로 만들었습니다'라는 친환경 이미지 광고로 소비자를 공략하여 대한민국 유통망을 장악해 버렸다. 음료 업계는 비상이 걸렸지만,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미 ‘해닮은식품’이 친환경 관련 코드를 모두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신제품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대기업 마케팅 팀에 입사하기 위해 토익 공부에 치중하지 않았다. 대학 공부에 별다른 취미가 없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학과 공부를 따라설 자신이 있었다. 또한 누나의 일관된 간섭도 있었다. 너는 간판이 좋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것 말고 다른 차별점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그건 실전에 바로 쓰일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누나의 과외 덕으로 S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나는 두 번의 휴학 끝에 6년간 대학을 다니며, 매년 2회 이상 3개월 단위로 활동하는 기업 홍보 대사 활동을 휴식 없이 진행했다. 학과 공부는 간신히 F를 면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특히 신제품을 어떻게 마케팅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체득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 상품을 사게 하는 일련의 행위가 너무나 즐거웠다. 이 제품의 급소는 어디일까? 고객의 구매 충동을 자극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TV 광고나 각종 매체를 통해 소비자의 기호를 집중적으로 메모하고 학습했다. 나는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지휘봉의 끝을 따라 고객들이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했다. 나는 CEO보다 우리나라 최고의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틈만 나면 마케팅과 회계 공부에 주력하였다. 마케팅 사례 분석을 통해 성공과 실패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를 열람하여 기업을 분석해 보는 것이 취미였다. 마케팅 기획서가 완성되면 경영학과 교수를 찾아가 자진하여 PT를 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수는 모든 것을 학문적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여,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온당한 답을 주지 못했다. 경영학과 동기들은 이런 나를 유별나다며 이해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MBA 과정을 거쳐 미국 컨설팅 업체에서 몇 년 일하면 국내의 어지간한 대기업 임원으로 스카웃될 터인데, 왜 이렇게 고지식하냐고 비꼬았다. 동급 또래보다 많은 경험이 축적된 나는 비교적 회사 면접을 수월히 치루었다. 나는 ‘해닮은'의 건강음료 신제품인 오가피 음료를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지 말해 보라는 질문에 숨도 안 쉬고 답을 이어나갔다.

“STP 전략부터 말씀드리면, 오가피 음료는 숙취해소와 간에 좋은 건강음료로 세그먼트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1차 타켓 고객은 30대 이상의 서울, 수도권의 직장인입니다. 프로모션 전략으로는 직장인이 제일 걱정하는 몸의 장기가 간이기 때문에 사대문 안과 강남 테헤란로 지하철 출구에서 무료 시음회를 벌여야 합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비교적 몸이 쌩쌩하고, 금요일은 주말이 있어서 느긋해지기 때문에 몸의 피로도가 가장 높은 목요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돈을 더 많이 주고서라도 몸매가 좋은 레이싱걸 출신을 아르바이트로 기용하여야 합니다. 두 달 정도 진행하면 눈에 익을 것이고, 그때부터 버스 광고, 지하철 광고, 일간지 광고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간지 광고는 매일경제신문이나 한국경제신문이 좋겠고, 30대 직장인이 주식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팍스넷 같은 증권 포탈 메인 팝업으로 노출한다면 '아! 그때 그 음료군'할 것입니다. 제품이 출시되는 두 달 동안 광고와 병행하여 편의점을 중심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 음료의 성공 관건이 맛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오가피가 입에 쓸 것이기 때문에 쓴 것이 왜 몸에 좋은지에 대한 효능을 동의보감이나 유명한 한의사를 통해 입증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같이 면접을 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겁했지만, 나는 너무 즉설적으로 말한 것이어서, 실제로 회사 선배 마케터들이 보시면 많이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는 겸손함까지 내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대현그룹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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