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나에게 대현그룹의 금연정책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믿었던 대표이사마저도 자발적으로 회장에게 찾아가 금연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회장은 전체 사장단 회의에서 지난 수 년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금연 의지를 표명하였는데, 금연 문화가 전직원에게 확산되지 않고 있다며,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CEO들의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대표이사 중에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계신데, 뭐라 할 말이 없다,며 일침을 가했다. 사전에 미리 조율된 각본이라는 얘기도 떠돌았지만, 여튼 우리 대표이사는 만약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일이 목격된다면, 그 사람에게 100만원의 돈을 주겠다며, 전직원 앞에서 금연을 서약했다. 다른 6개 계열사 대표이사도 모두 동시다발적으로 금연을 선포하여 회장의 금연 정책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런 마당에 팀장급 이상 중견 간부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유능하고, 역량 있으면서, 담배도 안 피는 후배들이 해운대 모래알처럼 깔려 있는 판에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표이사의 정책을 거스를 수 있는 간 큰 팀장은 그룹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회장은 사내 홈페이지에 임원의 흡연률이 0%가 된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며, 앞으로 담배 피우는 사람은 절대로 임원으로 승진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새로 입사하는 신입 사원들은 반드시 금연서약서를 작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담배를 태울 시 퇴사하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전해왔다. 흡연자들은 회사 분위기가 장난 아니라며 앞다투어 걱정했다. 그냥 하는 말이겠지, 그냥 이러다 말겠지,했지만 분위기는 갈수록 사나워져 가고 있었다. 특히 알아서 미리 담배를 끊은 팀장급 이상 간부들은 유난히 여느 때보다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안절부절못했고, 술자리를 피하려 미리 잡았던 회식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결재 기안에 한 글자의 오류만 있어도 온갖 트집을 잡고 직원들을 야단쳤다. 회사는 언제나 깨끗하고 깔끔하였지만, 모래폭풍 몰아치는 중동의 사막처럼 스산하고 불안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일반 직원들은 요령껏 담배를 피웠다. 곧 자신에게도 닥칠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회장의 공식적인 언급이 없어 직원들은 술집에서, PC방에서, 베란다에서 흠씬 니코틴을 흡수했다.

그러나 회사의 금연정책은 집요했다. 몇 번 잽만 날릴 줄 알았던 흡연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원투 스트레이트에 어퍼컷까지 날리고 있었다.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다섯 살 된 아들의 나쁜 버릇을 고치려는 엄한 부모처럼 다가왔다. 계열사 모든 대표이사의 금연 선언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회사 인트라넷 팝업창에는 '당신은 건강에도 나쁘고, 일의 역량을 저해시키는 담배를 지금도 피우고 계십니까?'라는 설문이 올라왔다. 그리고 모든 직원은 ‘YES’와 ‘NO’중에 반드시 체크하도록 했다. ‘YES’에 체크하면 '이젠 회사의 금연 정책을 따르겠습니까?'라는 물음이 협박처럼 따라 나왔다. 흡연자들은 망설였다. 설문 하단에 써 있던 한 줄 문구 때문이었다. '만약 금연을 서약한 후 흡연이 적발되면 인사고과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으며, 승진자 명단에서 3년간 자동 제외됩니다' 흡연자들은 올 것이 왔다며 연거푸 한숨을 몰아쉬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흡연자에는 ‘YES’, 금연 동참은 ‘NO’로 체크했다. 화면에는 '회사의 금연 정책을 거역하여 지속적으로 흡연하겠다는 직원은 인사고과시스템에 자동 반영되어 그 어떤 역량을 발휘해도 D등급 이상 받을 수가 없음을 명백히 말씀드립니다'는 말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왔다. 한 번만이라도 D등급을 받으면 승진 연한이 2년 이상 늦추어지기 때문에 결국 직장인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다시 누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돌아가기’라는 붉은색 배너 버튼이 하단에 번득였다. 그러나 '돌아가기' 말고 다른 버튼이 없었다. '계속가기'라는 버튼도 있어야 하는데, 화면에는 배너가 심판관처럼 번득이며, '돌아가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지주회사 총무팀으로 긴급 업무협조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일단 누르고 보자,는 식으로 나는 '돌아가기'를 버튼을 눌렀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여러분을 치하합니다'는 문구 위로 강회장의 환히 웃음 짓는 표정이 나타났다. 놀림 당하는 듯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이것을 빌미로 금연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나는 그룹 공지를 담당하고 있는 기획조정실 홍보팀 직원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식품 마케팅팀 김무성 사원인데요. 금연 팝업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수화기를 타고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어투가 되돌아왔다.

"다 끊으라는 얘긴데요. 아직도 담배 태우세요?"

"담배 태우죠. 근데 왜 모두 담배를 끊어야죠?"

"회사 방침에 대해 지난 3년간 그렇게 홍보하고 켐페인을 벌였는데도 제가 다시 설명해야 하나요?"

"그건 회사의 일방적 방침이죠. 저는 계속 담배를 피울 것이니 수정해 주세요."

여직원은 경멸하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근데 어디 회사 누구라고 하셨죠?"

"해닮은식품 신제품 마케팅팀 김무성 사원입니다"

여직원은 짧게 알겠다는 말을 하고 수화기를 내렸다. 그러나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일로 인해 회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옥상에서 담배 세 개비를 연거푸 태우고 자리에 돌아온 나는 외마디 비명 같은 팀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야!”

나는 벼락맞은 기분으로 재빨리 팀장에게 다가갔다.

"너 미친 거 아냐? 야 자식아! 지금 회사가 어떤 분위기인데 담배를 계속 태우겠다고, 홀딩스에 전화를 걸어 뭐 잘난 일이라고 확인까지 시켜줘! 너 또라이야? 또라이?”

평소에 나를 유난히 좋아했던 팀장이었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나 나는 여러 동기와 팀원들 앞에서 이미 자존심이 무너진 터라 쉽게 굽힐 수 없었다.

"아니요, 팀장님. 왜 전직원이 동시에 담배를 끊어야 하는지 전 별로 납득되지 않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결재판 서류가 가슴팍에 떨어졌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시로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반항했다.

"전 그럼 회사 밖에서만 필게요."

팀장은 벌떡 일어서서 검지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톡톡 밀었다.

"회사에서도 안 되고 집에서도 안돼! 우주에서도 안돼!"

나는 항의의 표시로 한숨을 표나게 연신 쉬어댔지만, 마케팅 팀장은 꿈쩍도 안했다.

"불시에 모발검사 해서 니코틴 튀어나오면 내 모가지 날아가. 나 애 둘인데 니가 책임질래?"

"이건 횡포입니다. 회사 밖에서도 집에서도 안 된다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팀장은 다시 날카로운 소리로 야단쳤다.

"둘 중 하나 선택해! 회사 다니려면 끊고! 안 다니려면 사직서 쓰고! 기조실장이 직접 대표님께 전화해서 타고 내려온 거야 이 또라이야! 흡연률 0%가 회사 원칙인데 너만 버틴다고? 절루 나가! 아휴 담배 냄새 나!"  


나는 마케팅 팀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빌려간 담배만 해도, 석가탑을 두 번 넘게 쌓았을 터인데, 그런 골초가 담배 끊었다고 해서 회사 정책 어쩌구 저쩌구 180도 돌아서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담배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만약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자가 있으면 형사처벌 받습니다,라고 법을 공표하면 되는데, 보건복지부가 주동하여 금연 켐페인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대체 이해가 안 된다며, 울분을 토하던 마케팅 팀장이었다. 담배 끊으라면 제일 먼저 자신이 그만 두겠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내뱉어 놓고, 이제 와서 또라이라는 둥, 냄새난다는 둥 이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강회장이 전직원 금연을 해야겠다 결심한 것은 대현그룹의 모든 사업 분야가 자연의, 자연에 의한, 자연을 위한 사업에 연관돼 있기 때문이었다. 대현그룹은 3년 이상 적자를 기록한 의류, 와인, 쇼핑몰을 처분한 후, 대체에너지와 건설 부문을 키워서 매출 규모 제계 10위권으로 진입하고자 하고자 하였다. 그룹 자산 규모는 제계 30위권으로 들어섰지만, 국내 유수의 대기업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건설과 에너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판단이 있었다. 강회장은 금연 이외에도 환경경영실천의 일환으로 모든 임직원에게 환경 개선 봉사활동을 매년 30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시켰다. 불만과 원성이 높았던 직원들은 가족들과 함께 산과 하천의 쓰레기를 줍고 나무를 심었으며,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을 고발하는 등 환경감시단 역할또한 톡톡히 해냈다. 강회장은 또한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에는 전직원에게 3일간의 유급휴가를 주어 태안 바닷가로 보냈으며, 봉사활동을 위해 식대를 비롯한 현지에서 쓴 비용 모두를 회사에서 처리해 주는 파격도 선보였다. 신문과 방송 매체는 대현그룹의 이러한 선행을 높이 평가했고, 덩달아 기업 매출도 상승했다.

강회장은 여러 매체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모든 직원이 친환경적으로 변해야만 우리가 더 큰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도, 그 누가 대현그룹을 칭찬하고 위대하다 말해도, 우리가 먼저 ‘친환경’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어린 아이들이 먹는 음료를 담배 핀 손으로 만들 수 없다. 공기청정기 파는 사람이 담배 냄새 가득하다면 누가 사고 싶겠느냐, 친환경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연구소에 외국 바이어들이 왔는데 직원들이 밖에서 담배를 뻐끔 뻐끔 피고 있다면 어떤 판단을 하겠느냐, 강회장의 친자연적인 사고는 경영정신 그 이상으로 중요한 실천항목이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