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1년 전, 본격적으로 흡연률 0%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룹 홍보실은 전 언론사에 대현그룹의 전직원이 흡연률 0%에 도전할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언론사는 경쟁적으로 이 사실을 기사화했다. 외국 기업 중 이와 같은 사례가 더러 있었지만, 국내 중견기업으로는 처음 시도되는 것이며, 이는 대현그룹이 환경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대외적으로 확고히 다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대현그룹의 금연 선언은 동종 업계 및 다른 기업으로도 확산되어 금연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졌던 대현그룹의 주요 상장 주식은 언론사의 일제 보도가 나온 즉시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물론 태양광 발전 기초 소재 설비 확장 공시와 맞물린 이유도 있었지만, 별다른 호재가 없었던 식품과 건설까지 동시에 상한가를 기록한 것은 상장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보다 외국인의 주식 매집이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증권사는 대현에너지와 해닮은식품의 목표가를 50% 이상 상향 조정하였고, 국내 최초로 전직원 금연 선언이 주는 효과가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친환경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러시아와의 태양광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대현건설까지도 유망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나는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대학교 같은 과 선배여서 유별나게 잘 챙겨줬던 박과장과 입사 전 M출판사 세계문학전집 마케팅 대사 5기 활동을 같이 역임하며 친하게 지냈던 최은지마저 메신저로 질책해 오자 모든 게 뒤숭숭했다. 박과장은 무슨 지령을 받았는지 나를 어루고 달랬다. 삼일 참으니까 헛구역질에, 헛것에 식은땀 줄줄 나오더니 오일 정도 지나니까 견딜만 하더라. 어차피 그룹 정책은 못꺾는다. 백기 들고 정진하자,는 내용이었고, 최은지는 팀장에게 대들 성깔 있으면 보란 듯이 끊어버려라,는 다분히 인신공격적인 멘트를 날렸다. 가장 믿었던 친한 동료들조차 대놓고 하나같이 멀리했다. 메신저 대화명도 금연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당신과 내가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는 흡연, 전직원 금연의 자부심 등 이래도 안 끊을 것이냐는 식의 경고성 메시지뿐이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마다 사내 홈페이지에는 포위된 적이 자진 항복하기를 바라는 양 금연에 대해 강도 높게 압박해 왔다. 기조실장은 그룹 임직원 중 흡연한 사람을 발견하여 메일로 신고하면 포상금 1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모든 것은 익명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신고하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했고, 언론에 공표한 그대로 대현그룹은 반드시 흡연률 0%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는 올곧은 의지를 다시 천명했다. 덧붙여 포상금 10만원은 흡연 여부가 확인되는 대로 즉시 급여 계좌로 지급될 것이며, 포상금 재원은 신고 당한 사람의 월급에서 공제한다고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남녀 성별을 따지지 않고, 3회 이상 적발된 직원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표하겠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공지 후 다시 흡연하다 적발될 시, 공개 반성문까지 쓰게 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흡연 직원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굳이 담배를 끊지 않고 계속 피겠다는 명분도 서서히 잃어갔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고 담배를 태웠다. 옥상마저도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자 옆 빌딩 흡연구역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웠다. 보름 정도 지난 후, 인재육성팀에서 사람이 파견 나와 흡연 사실을 물었고, 나는 담담히 그렇다,고 자백했다. 두 번의 자백이 있은 이후에도 몇 번의 반복된 질문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폈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달이 지난 후, 나의 이름은 사내 인트라넷에 20여명의 직원과 함께 소개되었다. 4만 여명이 보는 긴급공지 게시판이었다. 공지에는 한 번 적발된 직원이 198명, 두 번이 12명, 세 번에서 다섯 번이 3명, 예순 여섯 번이 1명이라고 소개되었다. 그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나는 인사팀에서 받은 메일을 통해 이번 달 월급이 마이너스 410만원임을 알았다. 급여 담당자는 다음 달 월급에서 전액을 공제하고, 그 다음 달에도 남은 금액을 공제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내왔다.

누나의 머리 뚜껑이 열린 것은 바로 이때쯤이었다. 누나는 별 거지 같은 회사가 다 있다,며 나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투쟁에 들어가라고 지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나를 대신해 인권위원회에 고소하겠다, 사규가 개인의 기본권보다 우선시 되는지 따져 묻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누나는 밤새도록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더니 결국 실성한 듯 660만원이면 던힐 1미리가 2640갑인데, 법인카드로 미친 척 담배를 구입하고 난 후, 회사 앞에서 한국노총, 민주노총의 흡연 회원 2640명과 함께 하루 종일 담배 연기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자는 얘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나를 챙겨 주는 건 역시 누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위로가 되긴 하였지만, 세상만사가 다 공허했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지만, 담배야 걸리지 않고 몰래 숨어서 피우면 되겠지만, 대체 어떤 사람이 입사 2년차 신입 직원을 신고하여 배를 불렸을까 생각하니 배신감에 아찔했다. 나를 예순 여섯 번이나 신고한 사람이 누구일까, 한 명일까, 다섯 명일까, 예순 여섯 명일까, 나는 밤잠을 설쳐가며 용의자를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추적해 보아도, 결국 내부 직원의 소행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담배 핀 대부분의 장소는 금연 구역으로 설정된 내부 옥상과 식사 후 옆 빌딩 흡연구역, 그리고 PC방 및 회사 근처 몇몇 술집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 직원이 내 얼굴을 알 리 없었고, 내부 마케팅 팀 직원을 제외하고 같은 층을 쓰는 재무팀, 인사팀, 인재육성팀밖에 나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내 인트라넷에 실명으로 흡연자가 공지된 후, 여러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했다. 담배를 끊느니 회사를 끊겠다며 사표를 낸 직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단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한 후 같이 담배를 나눠 폈는데 신고 당했다며 주먹다짐을 벌인 동기도 있었다. 상사가 후배 직원에게 느닷없이 메신저로 내가 사람 잘 되게는 못하지만 얼마든지 꼬이게는 할 수 있다,며 너 과장 진급하는지 두고 봐라, 협박했다는 소문도 흉흉하게 퍼져나갔다. 임신한 여직원 중 미처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은 온갖 비난질을 견디지 못하다 결국 퇴사했고, 자신을 신고했을 거라는 괜한 추측에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던 여직원의 이마를 거울에 밀쳐 결국 응급실로 이송된 별별 일도 다 벌어졌다. 회사 내부가 어수선해지는 만큼 내 마음은 두 배로 심난해 졌다. 니코틴은 내 몸 속에서 얌전히 꽈리를 틀고 앉아 있다가 해변가 지랄탄처럼 온 내장을 들쑤시고 다녔다. 예측할 수 없는 금단 현상에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마케팅 팀장은 나를 불러 매일매일 흡연 여부를 체크했다. 안 했다고 거짓말하기가 비굴해 보여 흡연 여부에 네,라고 짧게만 대답하고 시선을 피했다. 팀장은 반항하냐,며 큰 목소리로 질책도 하고, 끊을 수 있다는 용기도 주곤 하였지만, 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자 팀장은 설득하는 일 대신 아예 외출을 금지시켰다. 다른 팀원들이 거래처 관계자들 만나려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데 좀 과하지 않냐,는 어필도 해 보았지만, 팀장은 업무를 조정했으면 했지 절대로 그럴 생각은 없다,며, 꿈쩍도 안했다. 팀장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지극정성으로 도시락을 배달시켜 나와 함께 먹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나는 최대한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도 허락 받고 움직여야 했다. 나는 코미디 같은 이런 일들이 어떻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한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누나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급히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어디 가냐고 물을 기운도 없어 고개만 끄덕이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누나는 뒤늦게 무엇이 생각난 듯 잠시 자리에 앉아 보라며 제 방에서 보라색 악세사리 함을 가져 왔다. 또 무슨 심부름을 시킬 작정인 듯 보였다. 누나는 일 년 전부터 포털에 까페를 만들어 비밀리에 심부름 대행사 일을 하고 있었다. 은밀히 거래하는 직원이 20명 정도 된다고 하였다. 누나는 가끔씩 나를 알바로 동원하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무엇을 전달해 주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워낙 다양한 일을 하는 것 같았고, 직원에게 주는 보수도 상당한 것 같았다. 누나는 착수하기 전, 일을 해결할 직원을 불러 일대일로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누나는 자신이 보통 40%를 갖고, 실행자가 60%를 갖는다고 했다. 실행자에 비해 보수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고 물어 보았지만, 누나는 모든 전략을 자신이 세우기 때문에 실제로는 60%를 갖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뢰인이 의뢰한 모든 것을 100% 선택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사람을 죽여 달라는 무시무시한 제안이나, 심각한 상해를 입혀야 하는 제안, 어떻게 해도 뒷꽁무니가 밟힐 만한 일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슬쩍 발을 뺀다고 했다.

“내가 이것을 책장 밑 서랍에 넣어놓을 테니, 다음 주 일요일에 심부름 좀 다녀와라. 내가 한 일주일 정도 어디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나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주말에는 꼭 좀 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누나는 금새 내 곁으로 다가와 뺨을 어루만지며 애교 있게 부탁했다.

“회사 흡연 문제 내가 깔끔하게 처리해 줄 테니, 이것 좀 꼭 전해 줘.”

누나는 내가 연일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자,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언제부터인지 이제는 우리 무성이를 위해서 왕누나가 나서야 겠다,며 자주 내 엉덩이를 장난스레 토닥여 주었다. 나는 그때마다 누나를 만류하며, 회사 내부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 했지만, 누나는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냐,며 게의치 않았다. 나는 악세사리 함을 열어보았다. 번뜩임이 예사롭지 않은 다이아반지였다. 

“그 남자가 의뢰인에게 이것을 주며 6개월 후에 지금 사는 부인과 이혼한 후 자기와 결혼하기로 했다는데, 한 3개월 전부터 연락도 안 하고, 무조건 피하나봐.”

“사람 시켜요. 저 심부름 다닐 때 아닌 것 알잖아요...”

나는 귀찮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사람 시킬 일 아니야, 내 친구야.”

누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면서 갑자기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종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 남자를 모르면 어떻게 하겠는데, 나와도 잘 알거든. 그냥 이것만 와이프한테 전해 주면 돼. 주말에 가족들이랑 교회에 간다고 하니, 서교동에 있는 주찬양교회로 가. 와이프가 성가대원이야. 12시 10분에 예배 끝나면 성가 연습하고, 12시 50분 정도에 지하 식당으로 간다니깐 그때 불러서 전하기만 하면 돼.”

“이게 뭐냐고 물으면요?”

“그냥 어떤 사람이 전해 달라고만 했다고 해.”

누나는 어차피 부인이 남편에게 말할 것이고, 남편은 뒤로 놀라 자빠질 것이며, 이 정도로 나온다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만나서 무슨 얘기라도 할 것이라고 했다. 누나의 일 중에서 이렇게 쉬운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예측이 빗나가기도 하고, 돌발 변수가 튀어나와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일들도 꽤 있었다. 사건의 접수 및 실행 단계는 대략 이러했다. 의뢰인이 이메일로 처리해 주었으면 하는 내용을 적어서 보내면, 누나는 의뢰 사연을 보고 대략적인 판단을 내린 후, 유선으로 연락하여 1차 미팅을 갖는다. 그때 누나가 제시한 해결책에 동의하면 계약 금액의 50%를 선수금으로 받고 일을 진행한다. 계약 금액은 의뢰자를 만나서 즉석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힘든 일일수록 받아챙기는 돈이 많았다. 못해도 한 건당 최소 3백만원 이상의 사례비를 받는 것 같았다. 누나에게 너무 비싸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누나는 모든 해결 방법이 비정상적이고, 모든 것이 비밀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은 그다지 돈의 액수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고소나 고발에 대응하기 위해, 의뢰자를 만난 후 모든 내용을 사전에 녹음해 둔다고 하였다. 혹시 의뢰자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발뺌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해 놓는다고 하였다.

누나의 얘기를 들어보면 별별 제안이 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애인에게 차여 열이 받아 견딜 수 없다며, 반드시 똥을 한 바가지 퍼부어 달라는 제안이나, 사귄 지 두 달 됐는데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시험해서 결과를 알려달라는 제안, 시부모가 둘째 며느리만 이뻐하는데 둘째 며느리의 흠을 잡아서 절대 사랑을 못 받게 해 달라는 제안 등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 

첫 번째 사연의 경우, 누나는 남직원 둘을 시켜 몇 일간 남자를 미행하게 하였다. 그들은 서울 인근 노인집 푸세실 화장실에서 똥을 잔뜩 퍼 락앤락에 담아 다니다 점심 식사 후 테헤란로 대로변에서 별 생각 없이 담배를 피고 있던 놈의 머리 위로 똥을 부어버렸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건장한 두 남자 중 한 사람은 화질 좋은 소형 켐코더로 촬영에 성공했다. 남자는 눈에 똥이 들어갔는지 똥묻은 손으로 눈을 연신 비벼대다가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아 야이 개시팔눔들아! 연신 욕을 해댔다. 그러나 이미 실행자들은 자리에 없었다. 남자는 십분 넘게 자리를 뜨지 못했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했다. 어떤 사람이 그 광경을 사진에 담아 경찰서에 제보했고, 인터넷 뉴스에 한낮의 똥테러,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어 남자는 한참동안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하였다.

남자 친구의 진심을 확인해 달라는 의뢰에는 초소형 녹음기를 대동하고 나섰다. 누나의 수족은 하교하는 남자 앞에서 일부러 넘어져, 굽이 부러졌다며 도와달라는 뻔한 수작을 했고, 남자는 드라마처럼 그녀를 부축하고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문 앞 버스정류장 구두 수선집에 구두를 맡기고 찾아다 주는 선심까지 베풀었다. 연신 감탄한 듯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남자에게 절대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술을 한 잔 사겠다 했고, 남자는 싫은 내색 없이 질질질 따라갔다. 남녀는 대학교 앞 조그만 라이브 음악 까페에서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 누나는 업무에 착수하기 전, 의뢰인에게 남자의 이상형을 물어 윤은혜와 닮은 밝고 상큼한 친구를 실행자로 내보냈다. 남자는 예상대로 정처 없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남자는 취기가 오를수록 호기로워져 여자의 손을 덥썩덥썩 잡았고, 여자가 그다지 제지하지 않자 한 번 하자,는 얘기까지 더했다. 물론 모든 것이 녹음되었다. 놀란 눈으로 여자가 다음에 만나자,고 수줍게 웃자 남자는 발정난 개처럼 여자 옆으로 다가와 자신이 곧 유학을 떠날 것이며, 자신의 아버지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의 대표이사이며, 유학을 가려면 믿을 만한 여자 친구와 약혼 후 떠나라고 온갖 있는 척에, 초특급 허풍까지 다보여 주었다. 누나는 사건을 의뢰한 여자에게 녹음한 내용은 이러하나, 사실 이 정도 여자 앞에서 안 넘어갈 남자는 거세한 내시 말고는 없다며, 크게 의미를 두지 말라고 했다. 여자는 꺼이꺼이 울면서 다 허풍이라며, 자기를 꼬여냈던 첫날과 너무 비슷하다며 즉시 헤어지겠다고 했다. 노련한 누나는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며 각서를 쓰게 했다. 

그러나 세 번째의 경우처럼 조금 시간이 걸리는 일도 있었다. 둘째 며느리의 흠을 잡아달라는 첫째 며느리의 의뢰를 해결하는 데에는 장장 보름이 걸렸다. 시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 두 분을 아주 어렵사리 구했는데,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삼일 밤낮 100번도 넘게 상황을 연습한 두 아주머니는 마트에서 천연덕스럽게 시어머니 곁을 배회하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상황을 놓치지 않고, “어머, 인숙이 시어머니 아니세요?” 다가갔다. 시어머니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우리 둘째 며느리를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었고, 평소 둘째 며느리와 찜찔방을 자주 갔다는 정보를 이용하여 “저번에 며느리와 백석 찜찔방에서 인사했잖아요”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두 아주머니는 장 잘 보시고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누나는 그 뒤로도 5일 걸러 한 번씩 아주머니들과 시어머니를 마주치게 했고, “왜 그렇게 고우세요, 너무 젊다 너무 젊어.” 라는 말로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시어머니가 편한 호감을 갖게 했다. 그러다 이렇게 만난 김에 찜질방이나 가자며, 한 아주머니가 유인했지만 시어머니는 오늘이 곗날이라며, 혼자 가기 심심하니 이번 주 토요일 날 저녁에나 봅시다,며 알아서 날을 잡아주었다. 그날, 작정한 대로 일이 터졌다. 한 아주머니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며느리가 어딨냐,며 둘째 며느리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다른 아주머니는 속모르는 소리 말라,며 펄쩍 날뛰었다. 시어머니와 둘째 며느리가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같은 찜질방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아주머니는 정해진 각본대로 능청스럽게 말했다.

“뭐시기... 저번에 둘째 며느리가 친구인지 이웃인지는 몰라도 함께 찜질방에 왔는데, 세상에 옆에서 듣자하니, 시어머니가 나이값도 못하고 그 나이에 보톡스를 맞고 다닌다며 얼마나 싸잡아 뭐시기하게 얘기하던지... 듣고 있던 내가 민망하더랑께. 어디 그뿐여! 마곡지구에 땅 사 놓은 것 있죠이. 그거 한 세배 뛰었제라? 돈다발 싸짊어지고 10미터도 못갈 만큼 돈 많은데도, 둘째 손녀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방 하나 안 사줬다고 얼마나 오래 사는지 두고 보겠다는 말이나 허고, 용인에 무슨 푸레지온가 하는 아파트 사 둔 거 그거 큰 아들 준다고 혔으니, 우리 남편한테는 마곡지구 땅 주지 않겄냐고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고 있더랑게요!”

시어머니는 부득부득 이를 갈다가 아주머니들과 인사도 안하고 찜질방을 박차고 나갔다. 빼도박도 못할 구체적 정황 앞에서, 둘째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완벽히 버림 받았다. 둘째 며느리는 펑펑 울며, 제발 그 아주머니들과 대질 좀 해 보자,며 억울함을 하소연 해 보았지만, 시어머니는 소박 안 맞은 것만도 다행이라며 세상에 있는 역정을 다 퍼부어댔다. 누나의 일은 언제나 완벽했다. 자로 잰 듯한 계획과 번개 같은 실행력으로 상대의 급소를 찔렀다. 살쾡이처럼, 대담하게 단 번에 콱 물면 절대 놓치지 않았다. 누나는 작업이 시작되면 평소답지 않게 무척이나 냉혹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모든 것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실행자를 실전처럼 연습시켰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정없이 질책했다. 비위 상한 그들도 빳빳한 현금이 손에 쥐어질 때는 그간의 과정을 모두 잊는 듯했고, 그렇게 검증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자기 편으로 모아 일을 쉽게 쉽게 처리해 나가는 것 같았다.

누나가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년 전, 우리집으로 이사 온 직후였다. 누나는 이전에 오픈 마켓과 홈페이지를 통해 몇 가지 특이한 상품을 팔았는데, 톡톡히 재미를 보고난 후 과감히 폐쇄해 버렸다. 누나는 당시 우리나라에 빅 사이즈 옷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허리 40인치가 넘는 바지류와 티셔츠 류를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팔아치웠다. 여성 의류, 여성 구두 같은 것들은 워낙 경쟁이 치열하여 끼어들 엄두가 안 났다고 하지만, 사실 누나는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틈새 시장만을 공략하였다. 누나는 쇼핑몰을 걷어치운 후 곧바로 여성들을 위한 섹스용품을 팔았다. 누나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든 후, 이 쇼핑몰은 여성 회원제로 운영되며, 남성 분들은 절대 입장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메인에 박았다. 만 19세 미만과 남자들은 아예 회원 가입조차 되지 않게 제한하여, 남자 여자 모두 들락거리면 괜히 꺼림직해할 여성들을 철저히 보호하였다. 남자들이야 널린 성인용품점에 가서 얼마든지 물품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여자들은 호기심이 있어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인터넷에서 판을 벌였다. 누나는 성인용품 도매상에 가서 대차게 직거래를 텄고, 포털에 ‘섹스’ ‘여성전용’ ‘자위’ 등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홈페이지가 노출되도록 광고했다. 또한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의 여성들이 많은 사이트에 비싼 돈을 들여 배너 광고도 집행하였다. 민감한 여성들을 위해 배송되는 박스도 화장품 상자처럼 위장하였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누나는 꽤 많은 돈을 벌어 들였고, 이를 통해 아직 한국에 입점하지 않은 외국 명품 의류와 가방, 가죽제품까지 손을 대 거듭 성공을 거두었다. 누나는 자본주의의 신이었다. 누나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준 사업 아이템만 하더라도 수십 개가 넘었다.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누나의 표정은 자신만만하고 한없이 도도했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방식대로 돈을 벌어야 해. 틈을 노리고 기다리다가 제대로 한 방에 급소를 찔러야 해. 누군가 하고 있는 일이나, 했던 일은 가급적 안 하는 게 좋아. 아예 경쟁할 수 없는 미지의 블루오션에 쳐들어가 먼저 깃발을 꽂는 거지.”

그러다 어느 날 밤, 누나는 오래 전부터 꼭 재미있게 해 보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다며, 나를 불러앉혔다. 누나는 북어포와 마요네즈와 캔맥주 두 개를 꺼내 거실로 나오라고 하더니, 사뭇 진지하게 자신의 사업 구상을 얘기해 나갔다. 바로 심부름센터였다. 누나는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 줬으면 하는 골치 아픈 사연 한 두 개쯤은 갖고 있다며, 꼭 이 사업을 시작해 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농으로 하는 얘기인 줄 알았으나, 누나는 꽤나 심각하게 이런 일은 수익또한 엄청나다며, 이제 물건 떼어다 파는 것도 지겹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고객 클레임 처리하는 일도 이젠 신물 나고, 알바가 자꾸 바뀌다보니 인수 인계하는 일도 힘들다며 때늦은 짜증까지 냈다. 무엇보다도 누나는 이 일이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한참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히죽히죽 웃어댔다. 생각보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나는 몇 번이나 법에 접촉되는 일이 많을 거라며 우려하였지만, 누나는 모든 작업 이 의뢰자의 동의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만의 하나 문제가 생겨도 자폭할 수 있다며 걱정하지 않았다.

누나는 역시나 빠르고 대담하게 업무에 착수했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키워드를 장악했다. ‘골치 아픈 일’, ‘해결사’, ‘심부름센터’, ‘열받는 일’등 키워드를 검색할 때마다 사이트가 돌출되게 하였다. 또한 알바를 동원해 자신이 해결 받은 일들에 대한 감사후기를 속시원하게 올리도록 했다. 동원된 사람임을 고객들이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나는 부산, 광주, 대전, 강원도 속초에서 일이 해결된 양 광역적으로 스케일이 크게 장치해 놓았다. 누나는 한 달에 아무리 많아도 10건 이상 처리하지 않았다. 워낙 기습적으로 작전을 펼쳐야 하는 일이어서, 그 상황에 걸맞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교육시키는 일이 제일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누나는 깍두기 형님 10명 앞에서도 발가락조차 꿈쩍하지 않을 정도의 강한 깡다구가 있었다. 다른 일반적인 여자들은 곤경에 빠졌을 시 어떻게 하면 일을 감추고 무마하려고 할까 덮어버리는데, 누나는 상대가 누구이건 상관하지 않고 들이 받았다. 대학 시절, 하숙집 잡을 때까지만 같이 있어 달라고 했던 과 남자 후배 두 명을 인도적 차원에서 받아들인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 놈이 누나와 잤다는 식의 이상야릇한 말을 친구에게 농담으로 얘기했다가, 캠퍼스에 와전되고 확대되어 2대 1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른쪽 엉덩이에 어린 애 몽고반점만한 사마귀가 있어서 할 때마다 웃겨 죽는 줄 알았다는 등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버렸다. 누나는 소문의 첫 근원지를 추적하여 자취방에 몇 일 묶었던 후배 한 녀석이 문제였던 것을 밝혀 냈다. 강의실에 들어설 때마다 히죽거리며 웃어대는 선후배들을 보면서 소문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누나는, 정부 여성위원회 간사로 일하고 있던 여자 교수님 강의 시간에 참았던 화를 터뜨렸다.

“교수님 강의 시간에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해서 너무 죄송하지만, 여성 인권을 위한 일이니 잠시만 공식적으로 발언할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한 달 전, 저는 하숙집을 구하지 못해 애 먹던 남자 후배 둘의 간청을 받아들여 몇 일 집에서 묶게 하였는데, 이중 김필로라는 녀석이 제가 자기하고 잤다는 식의 농담을 친구에게 건넸고, 이것이 우리 과 전체로 퍼져 도무지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은 학생들 사이에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해져 급기야 제 엉덩이에 지름 10센티만한 사마귀가 있다, 2:1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임신해 산부인과에 다녀왔는데 누구 애인 줄 몰라 유전자 검사까지 받았다더라,라는 둥 도무지 제가 진압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버렸습니다. 첫 소문의 진원지를 김필로 친구에게 확인 받았고, 제 엉덩이에 사마귀 없다는 것도 여자 선후배 6명에게 화장실에서 보여 주어 사실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필로가 공식적으로 저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고, 이후 단 한 번이라도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학교의 징계를 받아야 된다고 건의 드리는 바입니다.”

여성위원회 간사 교수님은 눈이 확 돌아버린 듯 격한 숨을 내쉬며 김필로를 강단 앞으로 불러 이유가 어찌됐든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당신이니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누나는 삐쩍삐쩍 머뭇거리던 김필로에게 싸대기를 올려 붙였고, 단번에 사과를 받아냈다. 어디까지 소문이 퍼져나갔는지 확인할 길 없는 일을 거침없이 해결해 버렸다. 이후 누나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거의 전설이 되었다. 여학생들은 선배라며, 후배라며 찾아와서 자기의 고민을 수도 없이 얘기했고, 누나는 직접 나서거나 전략을 짜서 그들을 크게 혼내 주는 일들을 진행했다. 체득된 경험이 남달라, 누나가 구상한 심부름센터는 어찌보면 누나의 스타일 상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누나는 졸업하고 난 후, 강남 테헤란로 있었던 IT 기업에서 2년간 웹디자이너를 하였지만, 돈을 벌기 위함보다는 훗날을 도모해 경험을 축적한 것뿐이라고 했다. 결국 인터넷의 편리함을 맛본 고객들은 계속 가상 공간에서 쇼핑하며 떠돌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갈수록 사람들은 편리한 문명에 적응하여 게을러질 것이고, 온라인에서의 사업 수익은 서버 비용만 감당하면 된다고 하였다. 누나는 고객 특성에 따라 자유자재로 까페와 블로그와 사이트를 개설하고, 참신하게 디자인하여 고객을 끌어들였다.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누나는 자본주의의 전사로 그 누구보다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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