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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 - 대학교수, 작가, 예술인 50인이 선정한 최고의 소설
장성수.문순태.김춘섭.송하춘.함한희.이남호.정도상 외 43명 지음 / 소라주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우아, 이책 뭐지? 송하춘, 우한용, 이남호 게다가 문순태 소설가까지... 흠,, 범상치 않은 책인데... 일단 무조건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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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 이은선 옮김 / 창비 / 2008년 7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8월 1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05월 0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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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부터 베스낚시를 시작했지만, 전날 내린 비로 안동호가 만수위가 되면서 먹이 활동이 활발한 이름 아침에도 입질이 전혀 없었다. 햇볕이 좀 내리쬐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늘은 다시금 폭우를 쏟아낼 기세였다. 긴 생머리를 야무지게 묶은 그녀는 지갑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근처에서 잠깐만 낚시하다가 나갈 참이라고 하려다가 말을 삭혔다. 대륙의 바다,라고 불리는 안동호 위에 여자와 같이 떠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쾌감이 있었고, 인적 없는 보트 위에서 질퍽하게 정사를 벌여보는 상상만으로도 괜한 흥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나는 케스팅을 하면서 간간히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여자는 종잡을 수 없었다. 때론 시무룩하게, 때론 발랄하게, 때론 마네킹처럼 표정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여자는 더 멀리가면 안 되겠냐고 뜬금없이 재촉했다. 깊숙한 곳으로부터 몸과 마음이 불끈거렸다. 밧데리가 하나 뿐이어서, 더 멀리가면 돌아오기 힘들다는 말도 하려다가 말았다. 다음 주에 베스 프로 낚시 대회가 있어서 비교적 보트가 많이 떠 있었고, 배터리가 끊기면 노 하나 정도 빌려 돌아가면 될 터였다. 그것도 안 되면 안동호 관리소에 전화해서 도선이라도 부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 이름 석자도 몰랐다. 나는 그냥 그녀가 타고 싶다고 해서 태워 줬을 뿐이고, 삼 일간 내린 비에 안동호에 갇혔을 뿐이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녀가 보트에 올라타고 나서, 뜬금없이 어제 정말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 하늘이 터진 듯 엄청난 폭우가 안동호에 퍼붓기 시작하던 오후 2시 무렵이었다. 전날 비로 수위가 불어 예민해진 베스들이 바닥 깊숙이 자리 잡은 듯하여 나는 무거운 웜 채비로 바닥을 훑고 있었다. 파다다닥 빗방울이 떨어지던 그때, 나는 그녀에게 죽겠다는 결심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여자는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은 채 말이 없었다.

‘귀신인가, 이 여자...’

나는 기색을 감추고 허하게 웃었지만 여자는 다시 한 번 확인 사살하듯 어제 정말 죽으려 했어요,라고 말했다. 앙다문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온 그 말은 내 머리칼을 쭈삣거리게 만들었다. 하늘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안동호에 비를 퍼부었다. 강풍을 동반한 빗줄기는 안동호의 수면을 사방팔방으로 정신없이 몰아부쳤다. 여자는 비에 흠뻑 젖었고, 나는 원피스를 들춰내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못했으며, 여자에게 날씨를 탓하며 서둘러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때늦은 생각이었다. 배는 이미 안동호 한복판으로 와 있었다. 노는 하나뿐이었다. 최대한 땅으로 배를 몰아야 된다는 생각에 여자에 한 눈 팔 겨를이 없었다. 나는 바삐 악셀을 밟았다. 그러나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 후 배는 털털거렸다. 노 하나로 배를 저어보려 했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은 배에 찬 빗물을 퍼내는 것이었다. 죽기 싫으면 빗물 좀 퍼내라며 여자에게 비상용 손바가지를 던졌다. 여자가 힘없이 바가지질을 했지만 빗물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보트 위에 올려 놓았던 핸드폰도 비에 젖어 먹통이었다. 진압군 같은 시커먼 비구름이 안동호를 사납게 덮쳐 버렸다.

내가 계속해서 그녀를 모른다고 부인하자 놈은 예의 그 썩은 표정을 하며 나를 압박했다. 놈은 어떻게 상식적으로 멀쩡히 제정신을 가진 여자가 교통도 힘든 안동호 선착장에 가서 처음 보는 남자에게 보트를 태워 달라고 하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가 무슨 꼬임수를 썼으니 여자가 따라나선 것이지, 아무 이유 없이 절대 보트에 올라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 같았다. 나는 내가 그 여자가 아니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탁형사는 목격자까지 있는데 왜 뻔한 거짓말을 하냐며 나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목격자라니... 

나는 놈에게 차라리 소설을 쓰시죠,라고 비꼬며 말했다. 이대로 놈의 폭언에 계속 밀리다 보면 모든 것을 다 뒤집어쓸 것만 같았다.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탐문 수사 하던 중 잉어골 지류에 살던 할머니가 배 위에 있던 남녀를 봤다며, 내가 여자에게 성큼 다가서더니 한참동안 실갱이를 벌였다는 증언을 전했다. 나는 움찔하며 그녀를 만난 첫 장면부터 빠르게 되돌려 보았다. 비슷한 상황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내가 직벽 근처에서 케스팅을 하니, 그녀가 나를 따라 갑자기 일어섰고, 동시에 배가 휘청 뒤흔들렸다. 내가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아챈 적이 있었다. 사실 그날 구명조끼가 하나밖에 없어서 아슬아슬했다. 베스 포인트가 발견되면 케스팅 위치에 따라 보트를 자주 회전시키는데, 경험이 없는 초보의 경우 중심을 잃기 쉬웠다. 나는 그녀에게 노 묶는 줄이라도 꽉 잡고 있어야 한다 말했지만, 잡아챈 손목이 아팠는지 그녀는 왼손으로 손목만 매만지고 있었다. 나를 살인자로 만들 생각이 아니면, 이 줄을 꼭 잡아야 한다고 놈에게 구체적인 행동까지 보이며 증명해 보았지만, 모든 게 허사였다.

형사는 나를 무슨 희극 배우 보듯 킬킬대며 웃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암담했다. 다 설명했다 싶으면 또다른 질문이 나왔고, 아예 질문의 싹을 자르기 위해 더욱 구체적이며 정교하게 상황을 설명해 보아도 다른 비슷한 질문을 던져 피를 말렸다.

“언제 죽인 거야? 첫째날이야 둘째날이야 셋째날이야? 낮이야 밤이야?”

“그게 아니라니까요!”

나는 긴 한숨을 표나게 내쉬며, 억울함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내가 뱉은 말들은 모두 증발해 버렸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해명은 그 다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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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소설은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정말 좋은 회사입니다.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까 고민고민했는데, 그렇게밖에 현실적으로 결론 내릴 수 없었습니다. 18개월 된 아들도 있거든요....^^

회사에서 금연하라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편소설만 끝내면 정말 담배 끊자고 결심하였는데, 쓰면서 담배가 더 늘어버렸습니다. 제가 창조한 인물들이지만, 김무성이나 누나나 둘다 걱정입니다. 아버지도 걱정이구요.

참 이상하게 한숨만 나옵니다.

스물 네 살부터 스물 일곱 살때까지 소설을 습작했습니다만, 10년 동안 쓰지 않았던 글이 다시 쓰여진 건 아마도 알라딘 창작블로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쩍 용기가 나더라구요. 창작블로그가 만들어진 지 근 한 달만에 두 편의 소설을 거의 완성했습니다. 알라딘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편 소설을 더 올리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조회수는 많은데 어떤 피드백이 없어서 여러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시는 지는 모르겠어요. 어차피 이 공간이 그냥 주저리 주저리 글 쓰고 싶은 사람 쓰고, 댓글 달고 싶은 사람 댓글 달고 뭐 그런 공간인 줄 알겠는데... 제 아마추어 소설이 재미있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거듭 추천을 눌러 주세요. 그러면 지금 반절 정도 완성한 소설 다시 올려 볼게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으신 것 같아서 이 공간이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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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아 여기 분당 연지부동산인데요... 오늘 몇 시에 오시나요?”

“지금 중요한 미팅 중이니 다시 연락 드릴게요.”

매매 계약한 분당의 부동산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를 끊자, 사람들은 대화의 흐름이 끊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서로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잠시 후 짜증스럽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미안하다는 표시로 한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하이마트인데요... 지금 배달가려는 데 댁에 계시나요?”

“아직 배달오지 마세요.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수화기 저편에서 그럼 언제 갈까요,라는 말이 간절하게 들려왔지만, 나는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다시 잠시간의 공백이 있은 후, 대표이사는 나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는 두려움마자 느껴졌다. 대표이사는 한참을 고심하다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말을 꺼냈다.

“이렇게 하지... 어차피 지금 인터넷에 우리 회사 비방 기사가 가득한데, 김무성이 무슨 경쟁업체 회장도 아니고, 500억을, 5000억을 청구해도 손배상 처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쟤 하나 감방 넣어봤자 별로 회사가 관용도 없어 보이구, 일이 오히려 꼬일 수도 있어. 김무성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복직해. 답은 그것 뿐야.”

자리에 있던 6명의 모든 간부들은 너무 의외라는 듯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경영기획실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뭐라 끼어들려 하다가 대표이사가 손으로 제지하자 말을 닫았다.

“단, 10억 당좌는 의미 없고, 김무성이 복직하는 조건은 단 하나, 진짜 금연 서약하는 거야. 경영기획실장은 아무런 징계도 가하지 말구 복직시켜. 기조실에 보고해서, TV 광고 신문 광고 등 각종 광고에 전직원 100% 금연 실천에 대한 문구를 집어넣도록 해. 경쟁업체에서 비방해도 이젠 모든 게 사실이 되어버렸으니, 우리가 공격받을 수 있는 것은 없어. 김무성은 여기 홍보팀장이 자료 조사한 사이트에 일일이 들어가서 지금까지 댓글 단 것 다 삭제해. 한 곳이라도 음해성 기사 발각되면, 그때부터 진짜 징계 들어갈 것이니 각오 단단히 해. 그룹 홍보팀장은 다른 경쟁업체나 흡연자들이 대응하면 너무 자극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덤덤이 받아들여. 대한민국에 별별 이슈들 많아서, 이런 건은 한 달도 못가. 여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정말 심각해지니, 김무성이는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하고, 회사 식구들 게의치 말고, 예전처럼 다부지게 일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주 뻔뻔하고 태연하게 말야.”

나는 대표이사에게 거듭 죄송하고 고맙다며 일어서서 여러 번 목례했다. 대표이사는 모든 증거가 다 있기 때문에 정말 한 번만 더 이런 사고를 치면 손배상 처리해서 평생 알거지를 만들겠다고 엄하게 꾸중했다. 회사가 그렇게 어리숙한지 아냐며, 각 계열사 법무팀만 합해도 100명은 넘는다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말 잘 쉬고 월요일에 보자고 했다. 대표이사의 카리스마에 눌려 다른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경영기획실장은 분이 안 풀렸는지, 운 좋은지 알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나는 남아 있는 직원들 앞에서 회개하듯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들끓던 오기와 다부진 각오는 온데 간데 없었다. 늪지에서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육지로 빠져나온 직후의 심정이었다.

40층이 넘는 거대한 혜안빌딩 앞에서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 세상 어느 것도 만만한 구석이 없었다. 도무지 그동안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건지 허망하고 막막했다. 긴장이 풀리자 간절히 담배가 생각났지만, 쓰레기통에 구겨 버렸다. 10억짜리 당좌수표도, 찢을 수 있을 만큼 잘게 찢어 하수구에 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핸드폰 전화기를 켜니, 부재중 전화가 5통 걸려와 있었다. 하남부동산에서 3건, 누나와 아버지로부터 각각 한 건씩 있었다. 나는 막막하게 전화를 걸었고, 간절히 부탁을 했고, 뭐라 항변하지도 못하고, 계속 우물쭈물거렸다. 

“저 아파트 계약한 사람인데요... 사장님, 저어.. 저기요..., 계약금을 다시 돌려 받을 수는 없을까요? 아.. 그게요... 돈을 주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중도금 날짜를 못 맞출 것 같은데요... 아... 그건 안 된다구요? 아... 집 팔기로 한 사람이 계약금으로 다른 집을 사서... 아..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죠? 아... 대출이 있구나... 그럼 대출은 얼마 정도 받을 수 있을까요? 아... 2억 5천요... 그럼 한 달 이자가 대략... 아... 140만원 정도되구나... 제가 월급이 250만원이 안 되어서.... 이것 떼고 저것 떼고 하면... 좀 힘들 것 같은데... 아, 사장님... 그러지 말구요... 제가 부탁 좀 드릴게요... 집주인한테... 계약금에서 2천 5백만원만 돌려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그래도 앉은 자리에서 오백은 거저 버는 거잖아요... 네네... 집주인이 그렇게 안 하겠군요... 돌려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 그럼요... 제가 아버지하고 통화를 해 보구나서 다시 한 번 전화를 드릴게요... 네네... 감사합니다... 네네...”

“아버지 저예요... 전화 하셨던데요... 아... 전세금요? 아... 전세 계약은 하셨어요? 아.. 그랬구나... 다음 주에는 중도금을 줘야 한다구요? 네네... 제가 일단 상황이 좀 복잡해서요... 아니 안 드리려는 게 아니구... 일이 좀 이상하게 돼 버려서... 네... 네... 아니, 드린다구요... 아, 근데 새엄머니는 정말 돈이 한 푼도 없대요? 아... 증말 너무하네... 아니요... 아버지가 그런 게 아니구, 새어머니요... 해도 해도 참, 진짜, 그렇잖아요... 한 두 푼도 아니고, 그냥... 아무 주식이나 찍어서 십년 갖고 있어도 따블은 칠 건데... 아... 증말 짜증나네... 일단.. 알았어요... 빼서 드릴 게요... 네... 제가 약속한 일이니, 어떻게든 지킬게요... 아녀요... 미안해 하실 게 뭐 있나요... 네... 네...”

"어, 누나... 장인어른께 다 말씀드려 놓았다구요? 무척 좋아하셨다구요? 아... 아니요... 나도 기분 좋지요 뭐... 음, 그건 그렇구요... 누나... 만약에... 10억 그 돈 못 받아도... 우리 괜찮을까요? ...무슨 소리냐구요? 아... 그게... 그러니까요... 그게... 법무팀에서 장난친 거더라구요... 현금을 받았어야 했는데... 아니요... 현금 받았어도... 민사 걸어서... 다 토해 냈을 거구... 이래나 저래나 다 마찬가지일 거여요... 물 한 방울 빠져 나갈 구멍이 없어요... 완전 낚였어요... 설명 자세히 해 봤자... 어차피 안 될 일예요... 누나가 다시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구... 제가... 누나... 그래도 평생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 있어요... 누나 사랑하니깐... 안 울어요... 울긴 뭐 울어요... 청승맞게시리... 그래요... 집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네네...“

세상에 서 있는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난 허허벌판에 홀로 망연하게 서 있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무슨 일부터 처리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감감했다. 무저갱으로 곤두박질치는, 내 영혼의 날갯짓이 불현듯 떠올랐다. 전세금을 빼서 계약금과 모기지론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하려던 내 잠시간의 계획도 물거품 되어 버렸다. 분당의 아파트 계약금도 날릴 판이고, 리모델링 착수금도 날릴 판이고, 들여온 60인치 벽걸이 TV와 오디오 세트는 집의 규격에 맞지 않아 다시 반송해야 할 처지였다. 회사가 소송을 거두어 들인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10억을 날려버린 것을 통곡하며 땅을 쳐야 할지, 아니면 복직한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으며 한숨 몇 번 내쉬고 말아야 하는 건지, 내 머릿속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나의 태도였다. 누나는 내 울음소리를 듣고 설령 내가 돈이 없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위로해 주었다. 우리 가족 살 정도의 돈은 지금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넘친다며, 왼손만 써도 평생 분에 넘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누나는 몇 가지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전략을 수정해 보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무서웠다. 깜깜한 지하 창고에 갇힌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온몸을 어찌할 바 모를 지경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날 절망시켰다. 신호등을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한동한 정지한 듯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뒤를 돌아 멀찌감치 굳건히 서 있는 혜안 빌딩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자연입니다,라는 대형현수막 뒤로 시커먼 소나기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늦가을 이른 낮 치고 참으로 뜬금없는 비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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