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짜고 치는 고스톱 마냥 회사는 내가 입사하자마자 금연 정책을 실시했다. 나는 심히 갈등했다. 누나에게 회사의 이런 정책을 설명하며 괜히 따지듯 항변했지만, 누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바닥을 딱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걱정 말고 피던 담배를 계속 피우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이냐며 반복해 물어보았지만, 누나는 즉답을 피하고 묘한 미소만 머금었다.
사실 내가 담배를 배운 것은 누나 때문이었다. 지금 동거하고 있는 누나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스물 세 살의 대학생이었다. 나보다 8살이나 연상이었다. 내 영원한 첫사랑이자 과외 선생님이었던 누나는 내신 1등급을 하고서도 학력고사 성적을 340점 만점에 300점 가까이 맞아야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의 컴퓨터 디자인학과에 다녔으며, 대낮에 길거리를 마음 놓고 활보하지 못할 정도로 남자들의 추파를 한 몸에 받았다. 대한민국 상위 1% 레벨이었다. 170cm에 육박한 키에 팔다리가 가늘고 길었고, 가슴은 당당히 C컵을 자랑했으며, 게다가 누나는 한 포털의 메인 광고 카피처럼 세상의 모든 지식,이었다. 어떤 분야를 물어 봐도 마치 개론서를 읽듯 줄줄이 설명해 나갔다. 영어는 아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희롱할 정도였다. 이런 여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누나는 충격이자 경악이었다.
누나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일주일에 세 번씩 하기로 한 과외를 우리집에서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집에서 공부하면 내가 긴장감이 풀릴 것이라며, 지하철을 타고 십분 거리에 있는 누나의 대학 도서관에서 나를 공부시키겠다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증권회사 부하 직원의 소개를 받은 아버지는 누나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는 대가로 월 50만원의 과외비를 지급했다. 그러나 누나는 거의 매번 약속을 어겼다. 또한 도서관에서 공부 시키겠다고 한 말도 거짓이었다. 누나는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하고 있었는데, 오라는 시간에 맞추어 가 보아도 매번 문이 잠겨 있기 일쑤였다. 언제 메모를 남겼는지는 몰라도, 무조건 삼십 분 후에 올게, 오지 않으면 내일 이 시간에 오렴, 이런 메모만 일방적으로 남겨져 있었다. 누나에게 시간 약속을 잘 좀 지켰으면 좋겠다고 어필도 해 보았지만, ‘양’보다 ‘질’이 우선이라며 내 볼을 톡 꼬집았다. 그때마다 나는 온 세포가 요동쳤다. 누나는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내 어깨를 감싸며 ‘그렇게 푸는 게 아니지, 너네 선생님은 참 어렵게 가르치신다. 함수처럼 쉬운 게 어디 있니,라며 땀찬 내 손을 느닷없이 움켜 잡았다. 진하지 않은 은은한 오렌지 향수, 그리고 긴 생머리가 내 팔등을 바람처럼 스칠 때면 나는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누나의 수학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수학은 패턴이라며, 그 어렵던 방정식과 1차 함수를 두 시간 만에 끝내 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2차 함수와 미적분을 마스터해 주었다. 예를 들어 시험 문제에 나오는 패턴은 이 세 가지를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며, 만약 이 틀을 벗어난 다른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는 식으로 늘 자신만만해 했고, 한 번도 누나의 예상은 틀린 적이 없었다. 과외는 주로 자습이 많았지만, 누나는 현미경으로 내 세포까지 다 들여다 보는 듯했다. 내가 자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 계속해서 과외를 유지하게끔 나를 조종했다. 누나는 아주 편한 복장으로, 가끔은 가슴이 드러나게, 가끔은 허벅지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바짝 마주 앉았다. 내가 민망해서 옷이 좀 야한 거 아녀요? 얘기하면, 뭐가 대수냐는 듯 어디가? 어디가? 제 스스로 가슴을 만지며 허벅지를 만지며 나를 더욱 불살랐다. 그러다가 내가 금새 발개지면 응큼한 놈,이라며 내 볼을 긴 손가락으로 훑어 내렸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욕정에 불타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아슬아슬한 느낌들은 내 첫 몽정으로 쏟아지기도 하였다. 과외보다 누나를 만나는 촉감이 좋았다. 자습하라고 해 놓고 샤워 좀 하고 올게,라고 하면 나는 그날 참고서를 덮어야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지만, 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놓았다 했다.
나는 돈 많은 아버지를 설득하여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누나에게 국어와 영어도 배웠다. 반에서 20등 정도를 유지하던 성적은 3학년에 들어서서 3위에서 5위권을 배회했고, 나날이 오르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아버지는 누나에게 무척이나 감사해 했다. 당시 아버지와 띠동갑으로, 삼십대 중반이던 젊은 새어머니는 누나를 썩 탐탁해 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내가 워낙 완강하게 밀어붙이니 못이긴 척 들어주었다. 아버지는 누나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사 주었고, 샤넬 향수도 선물하는 등 적어도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잘 부탁한다며 진심으로 애걸복걸했다. 그러나 누나는 이런 간청을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 아버지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중요한 과외가 몇 건 더 있기 때문에 수학 이외에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 손이 부끄럽지 않게 상품권도 향수도 돌려드렸다.
“무성이를 제가 다닌 대학 정도까지는 보낼 수 있겠는데, 자꾸 대치동쪽에서 연락이 와서 학원가로 아예 진출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봐 왔으니 일 년 정도는 더 봐 드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정말이지 죄송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아버지에게 누나 과외 끊기면 내 성적 곤두박질칠 거라고 협박했다. 가르치는 차원이 ‘4차원’이라고 했고, 몇 년 더 과외를 받으면 서울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버지가 어떻게 든 해결해 주시라고 밤낮으로 졸랐다. 삼일 간 단식투쟁한 끝에 아버지는 누나를 만나,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매주 4회씩 나만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한 달 300만원의 목돈을 제시했다. 그리고 ‘SKY’대학을 비롯한 이에 준하는 대학에 입학할 시, 국내산 중형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누나는 똑똑했다. 300만원이라는 돈이 대학생 신분으로는 너무 부담스러우니, 보수는 월 100만원 정도로만 하고, 대신 좋은 주식 종목이 있을 때 알려주시면 안 되냐고 수줍게 말했다. 아버지는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주식에 관심이 많은지 전혀 몰랐다며, VIP 고객 중에서도 VIP에게만 나가는 최고급 정보를 알려 주겠다 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증권 계좌를 누나 명의로 개설한 후, 매월 100만원씩 직원에게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덧붙여 원금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자신이 직접 다 배상해 주겠다며, 환상적인 조건으로 누나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누나의 협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여러 번 공부를 가르쳐 보니, 만나는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성적은 자기 노력에 달려 있고, 공부 패턴만 바로잡아 주면 되는 것 같더라며, 일주일에 6시간씩 주 3회로 고정하면 안 되냐고 했고, 그것은 다 알아서 하시라며 아버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말미에 내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자신을 선생님이 아닌 학교 여자 친구 정도로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꽤 심하다며, 엄하게 가르치겠으니 성적표만 보시라는 말도 했다. 아버지는 누나 말을 안 듣거나 함부로 대하면 가만 안 두겠다며, 4년 약속을 보장하고 누나가 가져온 서류에 지장까지 굳게 찍었다.
그러나 그것은 독약이었다. 누나는 계약이 체결된 이후, 사정없이 나를 짓밟았다. 문제를 풀지 못하면 새벽 한 두시까지 아예 방에 가두고 공부를 시켰다. 돌대마리, 저능아, 정신박약아, 무뇌아 등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병행하여 나를 짓눌렀다. 계속 반복해서 문제를 틀리면, 머리를 박으라며 파리채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여덟살 연상은 사실 만만한 게 아니었다. 어떤 항거에도 누나는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비논리적으로 폭압스럽게 나를 제압했다. 나는 200점 만점인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당당히 186점을 맞았다. 암기과목에서 몇 개의 실수가 있었지만, 전교에서 8등을 할 정도로 높은 성적이었다. 외아들 공부에 대해 거의 포기했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누나의 공으로 돌렸다. 당시 금융시장이 좋았던 때라 누나는 못해도 원금의 다섯 배 이상 수익을 얻었을 터였다.
그러나 누나한테 배운 것은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있었다. 그것은 담배였다. 아마도 우리집에서 과외하지 않겠다 했던 것은 담배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다. 몇 번 학교 도서관에서 과외를 받긴 하였지만, 누나는 뭐가 마땅치 않았는지 원룸에 가서 공부하자고 했다. 모두가 담배 때문인 듯 하였다. 처음에는 화장실 환풍기 옆에서 피우더니, 이후에는 거실에서 대놓고 피웠다. 크지 않은 15평 원룸이어서, 담배 냄새는 집안 곳곳을 맴돌았다. 담배 냄새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하면, 누나는 핑계도 좋다,며 말을 씹었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미안한 듯 다시 베란다로, 자기 방으로 떠돌며 담배를 피웠지만 상당한 골초 같았다. 하루에 얼마나 피우느냐, 언제부터 피웠냐 물어보면 시끄럽다,며 말을 톡 잘랐다. 누나가 집을 비운 사이, 나는 재떨이를 뒤져 담배를 피웠다. 누나의 붉은 립스틱 자욱이 선명히 묻어 있는 꽁초만 골라서 피웠다. 처음 한 두 번은 변기통을 잡고 구토도 하였지만, 이후 혈류를 타고 들어간 담배는 온몸을 이완시켰다. 되려 학습 효과도 좋아지는 듯했다. 딱히 머리 식힐 방법도 없었던 그 시절, 나는 베란다에서 한숨처럼 담배를 피웠다. 담배 연기로 도너스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정석 문제를 풀 때에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누나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집밖을 나가서 피지 않겠다는 것과 절대로 내가 담배를 피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이 약속을 어기면 과외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누나의 충실한 발바리가 되어 있었다. 새어머니가 나의 흡연 사실을 눈치 챘지만, 절대 아버지에게 말하지 말라는 단호하고 퉁명스런 말에 별 관심 없다는 듯 모른 체 하였다. 나는 학창 시절, 약속대로 누나의 원룸을 제외하고 어디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누나의 원룸에서 내 담배량은 갈수록 늘어갔고,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그 흡연량은 배가 됐다. 하루 두 갑이 아니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내 고단한 회사 생활은 다시 대학 생활의 평균 흡연량을 훌쩍 뛰어 넘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