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추적추적 내렸던 비는, 퇴근 시간에 맞추어 장대비로 바뀌었다. 빌딩 앞 현관 앞에 혼자 피켓을 들고, 나는 동상처럼 서 있었다. 알은 체를 했던 동료들도 보름이 지나자 쯧쯧 혀를 차며 지나갔다. 누군가는 ‘투쟁’이라 했고, 누군가는 ‘미친짓’이라 했다. 대표이사는 창사 29년 만에 나타난 ‘최악의 직원’이라며 개탄했다. 장대비는 칼침처럼 내 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비명 같은 것들이 귓전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7시 퇴근할 때까지 나는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경비원이 나를 몇 번이나 내동댕이쳤지만, 나는 무표정하게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그들을 조롱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옆 빌딩의 경제일간지 기자들이 집요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피켓’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던 터라, 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3년 동안 회사가 추진해 온 금연 프로젝트는 이제야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회사는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4만 여 임직원들 중 58명이 1차 흡연자로 판단되었지만, 다시 재검한 끝에 다행히 한 명의 흡연자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회사는 불시에 모발 검사를 했고, 흡연 의심자들에게는 피검사를 통한 재검까지 실시했다. 결과는 제로였다. 그러나 매월 1회씩 퇴직 공지를 했던 대현그룹은 요 몇 달간 매주 30명 이상의 직원을 퇴직시켰다. 회장은 전직원의 위대한 승리,라는 말로 흡연자들의 결단을 치하하며, 내년도 임금을 10% 인상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위기로 올해 임금 협상이 동결된 것에 비하면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는 수치였다. 

회장은 여세를 몰아 모든 광고에 ‘대현은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자연을 사랑합니다’는 문구를 넣도록 지시했다. TV 광고 하단에도 금연 광고 카피는 반복적으로 들어갔다. 강회장은 보건복지부 금연 공익 켐페인 광고에도 직접 출연하여, 어린 세 살박이 아이들 둘을 양팔에 올려 놓고, ‘금연’이야말로 당신의 몸과 가정과 우리 사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라고 홍보했다. 강회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앞세운 공식적인 금연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흡연률 0%라는 선전은 거짓이었다. 나는 검사를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나는 엄연히 사번이 존재하는 (주)해닮은식품 마케팅팀 사원이었지만, 회사는 아무런 동의 없이 나를 지워버렸다. 나는 6개월 전, 금연학교 입소식에 빠진 유일한 직원이었다. 마케팅 팀장에게도, 인사 팀장에게도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담배를 합법적으로 피우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때맞춰 그들은 강제로 인사발령을 냈고, 3개월 동안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계획적으로 직원들을 동원하여 나를 회사 밖으로 쫓아냈다.

내가 왜 담배를 끊어야 하는지 그 누구도 납득할 만한 답을 주지 못했다. 강회장은 대현그룹이 환경기업이기 때문에, 전직원이 환경경영실천에 앞장 서야 한다고 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앞뒤 없이 이는 '고객과의 약속'이라고 했다. 해닮은식품 대표이사는 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21세기형 인간, 우리의 당위'라는 표현을 썼으며, 1년 동안 20번도 넘게 끊었다 피웠다를 반복하다 간신히 끊은 마케팅 팀장은 우리집 개도 담배는 안 피운다,며 나를 개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계약적 노동 관계에서, 내가 회사에 고용된 시간은 평일 9시부터 6시까지인데, 그 밖의 시간까지 회사는 나를 통제하고 간섭했다. 대현그룹 개인의 역량 지표는 흡연 여부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어제까지 나를 데리러 왔던 누나가 오지 않자, 나는 온 가족의 사랑을 받다 길 잃은 강아지처럼 쓸쓸해졌다. 작정한 듯 퍼붓는 빗줄기를 피하기 싶었지만, 나는 7시 이전까지 한걸음도 떼지 않았다. 성난 군중들은 내게서 사나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보름이 지나는 동안, 강회장을 비롯한 회사 간부들은 돌이라도 던질 듯 나를 노려 보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회사 사규에 의하면 나는 불법 흡연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기준일 뿐이었다. 퍼붓는 빗소리에 지상이나 지하나 세상 것들은 다 요란하기 마찬가지였다.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누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부재 중이었다. 이상하게도 누나는 내가 담배 끊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끊어도 최후의 1인자가 된 후 끊으라,고 말했다. 또 무슨 계략이 있는 듯 보였다. 누나는 강회장의 이런 처신이 아무런 명분이 없다고 했다. 모든 직원들이 알아서 굽히기 때문에 싸움이 어렵게 보이는 것이지, 이런 게임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라고 했다. 명분이 없는 싸움에서 일관된 명분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버티고 있으면 이긴다는 말을 했다. 누나는 앞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무조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면 내가 이 싸움에서 이긴다고 했다. 

“전직원이 100% 금연을 할 거야, 너만 빼고... 넌 너네 회사의 0.0003%가 되는 거지. 꼴통처럼 보이지 말고, 금연이 정말 안 된다고 끝까지 버텨야 해. 별별 협박이 다 날아올 거야. 표정 한 번 바꾸지 말고, 도저히 안 되는 걸 어떡하냐고 되려 따져 물어야 해. 아주 순진무궁하게 말야.”

대현그룹 전직원이 본격적으로 금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1년 전이었다. 먼저 상무 이상 임원들이 금연을 선언하여 분위기를 잡았고, 이를 필두로 강회장은 전직원에게 금연 서약을 받아냈다. 그룹은 3년 전, 4만여 임직원에게 자발적으로 금연을 권장했다. '환경경영실천'이란 모토를 전직원에게 배양하기 위해서였다. 금연을 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강회장의 지론이었다. 회장은 첫해부터 가장 혐오스러운 금연 켐페인 포스터를 수집해 각 계열사 게시판에 붙이게 했다. 담배를 태우려면 차라리 바람을 피워라,는 부인의 날카로운 외침이 담긴 포스터, 담배 연기 가득한 젖병을 물고 있는 해맑은 아기의 포스터 등 보기에도 경멸스런 포스터를 각 계열사의 골든 위치에 부착하도록 했다. 비흡연자들은 회장의 금연 정책에 편승해 흡연자들을 압박했고, 대현그룹의 모든 건물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고야 말았다.

내가 있던 을지로 1가 해안빌딩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대현그룹 대표계열사인 (주)해닮은식품 신제품 마케팅팀 사원으로, 입사한 지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해닮은식품은 대현그룹의 음료사업 영역을 담당하였고, 자연의 고마움을 담아, 친환경 마실꺼리, 먹꺼리를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슬로건을 통해 사업 진출 3년 만에 업계 5위로 급부상한 회사였다. 매실로, 쌀로, 보리로, 토마토로 음료수를 만들었다. 회사는 고객이 ‘재료’를 마시는 게 아니라 ‘자연’을 마시는 것처럼 마케팅하였다. 사람들은 웰빙 바람에 휩쓸렸다. 생산 라인은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였다. 지방으로 시설을 확충하고, 24시간 풀가동 해도 열풍은 그치지 않았다. '당신의 몸이 자연입니다', '엄마의 마음까지 닮아 101% 국내산으로 만들었습니다'라는 친환경 이미지 광고로 소비자를 공략하여 대한민국 유통망을 장악해 버렸다. 음료 업계는 비상이 걸렸지만,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미 ‘해닮은식품’이 친환경 관련 코드를 모두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신제품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대기업 마케팅 팀에 입사하기 위해 토익 공부에 치중하지 않았다. 대학 공부에 별다른 취미가 없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학과 공부를 따라설 자신이 있었다. 또한 누나의 일관된 간섭도 있었다. 너는 간판이 좋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것 말고 다른 차별점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그건 실전에 바로 쓰일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누나의 과외 덕으로 S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나는 두 번의 휴학 끝에 6년간 대학을 다니며, 매년 2회 이상 3개월 단위로 활동하는 기업 홍보 대사 활동을 휴식 없이 진행했다. 학과 공부는 간신히 F를 면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특히 신제품을 어떻게 마케팅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체득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 상품을 사게 하는 일련의 행위가 너무나 즐거웠다. 이 제품의 급소는 어디일까? 고객의 구매 충동을 자극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TV 광고나 각종 매체를 통해 소비자의 기호를 집중적으로 메모하고 학습했다. 나는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지휘봉의 끝을 따라 고객들이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했다. 나는 CEO보다 우리나라 최고의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틈만 나면 마케팅과 회계 공부에 주력하였다. 마케팅 사례 분석을 통해 성공과 실패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를 열람하여 기업을 분석해 보는 것이 취미였다. 마케팅 기획서가 완성되면 경영학과 교수를 찾아가 자진하여 PT를 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수는 모든 것을 학문적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여,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온당한 답을 주지 못했다. 경영학과 동기들은 이런 나를 유별나다며 이해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MBA 과정을 거쳐 미국 컨설팅 업체에서 몇 년 일하면 국내의 어지간한 대기업 임원으로 스카웃될 터인데, 왜 이렇게 고지식하냐고 비꼬았다. 동급 또래보다 많은 경험이 축적된 나는 비교적 회사 면접을 수월히 치루었다. 나는 ‘해닮은'의 건강음료 신제품인 오가피 음료를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지 말해 보라는 질문에 숨도 안 쉬고 답을 이어나갔다.

“STP 전략부터 말씀드리면, 오가피 음료는 숙취해소와 간에 좋은 건강음료로 세그먼트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1차 타켓 고객은 30대 이상의 서울, 수도권의 직장인입니다. 프로모션 전략으로는 직장인이 제일 걱정하는 몸의 장기가 간이기 때문에 사대문 안과 강남 테헤란로 지하철 출구에서 무료 시음회를 벌여야 합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비교적 몸이 쌩쌩하고, 금요일은 주말이 있어서 느긋해지기 때문에 몸의 피로도가 가장 높은 목요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돈을 더 많이 주고서라도 몸매가 좋은 레이싱걸 출신을 아르바이트로 기용하여야 합니다. 두 달 정도 진행하면 눈에 익을 것이고, 그때부터 버스 광고, 지하철 광고, 일간지 광고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간지 광고는 매일경제신문이나 한국경제신문이 좋겠고, 30대 직장인이 주식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팍스넷 같은 증권 포탈 메인 팝업으로 노출한다면 '아! 그때 그 음료군'할 것입니다. 제품이 출시되는 두 달 동안 광고와 병행하여 편의점을 중심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 음료의 성공 관건이 맛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오가피가 입에 쓸 것이기 때문에 쓴 것이 왜 몸에 좋은지에 대한 효능을 동의보감이나 유명한 한의사를 통해 입증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같이 면접을 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겁했지만, 나는 너무 즉설적으로 말한 것이어서, 실제로 회사 선배 마케터들이 보시면 많이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는 겸손함까지 내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대현그룹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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