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집을 나간 후, 나는 보일러 실내 온도를 28도에 맞추고 몸을 데웠다. 뼛속까지 잔뜩 바람이 들어갔는지 아무리 뜨거운 물로 몸을 녹여도 풀리지 않았다. 전자레인지에 들어가 해동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나의 1인 시위 소식을 듣고 나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크게 야단치셨다. 바위에 계란 던지는 짓이라며, 당장 그만 두라고 했다. 또한 회사가 요구하는 게 부당한 일이라면 나서서 도우겠지만, 금연하자는 데에 동참 안 하겠다고 우기는 처사가 얼마나 창피한 일이냐며 역정을 다 내셨다. 생각보다 아버지는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아마도 대현건설에 계신 아버지 친구 분을 통해서 얘기를 자주 듣는 것 같았다. 늘 자상하였던 아버지였건만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기세로 흥분하시는 것을 보니 안 그래도 기운이 다 빠졌는데 침울해졌다. 아버지는 시위 건 말고도 요즘 새어머니에게 이상한 일이 좀 있다며 나를 만나자고 했다.

나는 탕 속에서 누워 가족을 생각했다. 이미 욕실은 뿌연 증기로 뒤덮여 내가 시선을 둘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여동생은 잘 있는지, 입양한 둘째 녀석은 잘 크고 있는지 많은 것들이 궁금했지만 너무 추상적이었다. 늘 말이 없던 새어머니, 그리고 한 번도 제대로 같이 놀아주지 못했던 여동생과 새어머니만큼이나 별로 정이 안가는 입양한 막내 동생 모두 허상이었다.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유령처럼 떠돌았다. 중고등학교 졸업식장에도 새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 앞 플래카드에 이름까지 걸릴 만큼이나 영광이었던 S대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아버지 외에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새어머니는 한 번도 잘했다, 못했다 내 행동에 어떤 피드백도 해 주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날 밤, 마지못해 잘 다녀오라고 했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내 사소한 일상에도 새어머니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삼겹살이라도 한 번 구워먹고 싶었으나, 새어머니 티를 내려는 것인지 철저히 계획적으로 나를 가족에서 제외시켰다. 외롭고 쓸쓸했다. 회사 직원에게도, 가족에게도 나는 별다른 존재일 뿐이었다.

1인 시위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가장 컸던 것은 역시 자존심 때문이었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새삼 느낀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3개월 동안 손 안에 들어온 월급은 채 20만원이 되지 못했다. 마케팅팀 직원들은 매일 번갈아가면서 나를 미행했고, 일시와 장소를 표기해 경쟁하듯 신고했다. 3층에 있던 총무팀 직원들까지 가담한 사실도 알았다.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회사 생활을 하고 있던 입사 동기의 양심 고백이 없었더라면 나는 밖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누군가는 나를 ‘쓰레기’라 하였고, 누군가는 언제 회사를 그만 둘지 내기를 하고 있었으며, 가장 많이 신고한 사람은 경영기획실장에게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회사 내 두루 요직을 거치며 차기 대표이사 감으로 꼽혔던 실장은 팀장들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 앉힌 후, 마지막 남은 각 팀의 골초들을 처리할 방안을 의논한 끝에, 결국 돈에는 장사 없다,는 식으로 결론 내리고, 흡연자들을 매타작했다. 그는 내가 인권위원회나 노동부에 제소할 수도 있다며, 법무팀에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법률조치를 할 것인지 미리 사전에 검토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했다.

조직은 무시무시했다. 나 같은 거 하나 없다고, 어느 누구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모두의 흥미진진한 구경꺼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술자리에서도, 회사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점심식사 가는 행렬에서도 그들의 안주감밖에 되지 않았다. 양심적인 동기는 선량한 마음에서, 진심으로 내가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참한 일이 점차 이상하게 변질됐다고 했다. 경영기획실장의 지시를 받은 마케팅 팀장은 그룹이 요구해서가 아니다. 김무성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끊어야 하며, 모두 다 안 피우는데 김무성 혼자 담배를 피우면 왕따 당할 것이고, 앞으로 승진은 물론 회사의 모든 사안에서 불리해 질 수밖에 없는데, 서로 ‘식구’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 몰라라 관망만 하고 있으면 이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며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고 했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맞아요, 맞아, 무성이가 마케팅팀의 핵심 인재인데, 담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일은 속상하다,며 제 일처럼 걱정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재무팀장에게 말해 벌금으로 공제된 돈은 자신의 여비비로 채워주겠다는 약속까지 했기에, 재미삼아 신고하고 또 신고했는데, 그룹 월차회의에 참석하고 난 후,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했다. 그는 성난 코뿔소처럼 식식거리며, 나를 인사팀으로 대기발령 내겠다 했다. 자신이 얼마나 왕따인지 처절히 느낄 수 있도록 모든 팀원들은 세 마디 이상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지시도 내렸다. 김무성이 다가오면 십년 묵혀 둔 구더기 보듯 피하라 했다. 더구나 내가 그날 장난으로 당신들 모아놓고 흡연 신고하라고 했는지 아냐며, 벌금을 최소한 천만원 이상 물렸어야 담배를 끊을 것 아니냐며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얼마 후 나는 마케팅 팀장의 말대로 대기발령을 받아 인사팀으로 내려갔고, 3개월 동안 지루하게 모나미 펜만 돌렸다. 말이 3개월이지, 낯설게 오가는 회사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러나 지독한 회사는 3개월 이상 명분 없이 가두어놓을 수 없자 나를 강남의 총판 사원으로 발령내 버렸다. 너무 기가 막혀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케팅 팀장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것을 왜 나한테 묻느냐며 되려 짜증을 냈다. 이제 목소리도 듣기 싫어졌는지, 그도, 마케팅팀 누구도 내 얼굴조차 바라보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듯 불끈거렸다. 모든 것을 다 뒤엎고 싶었다. 담배 한 개비가 대체 뭐라고, 나는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한 히로시마 한복판에 서 있는 듯 했다. 다시 인사팀장에게 내려가 이런 조치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금연 안 했다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면, 기본권 침해로 인권위에 제소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노동청에도 신고해 부당행위로 고발하겠다고도 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사팀장은 어린놈이 싸가지 없게 어디서 법을 들이대냐며, 사납게 눈을 치켜 떴다. ‘인권위’의 시정 명령으로 내가 다시 마케팅팀으로 복귀한다 해도, 설 자리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노동법이 해석하기에 따라 너한테 유리할 거라 착각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이며, 금연법이 추가된 사규를 공지했는데도 보지 못했느냐, 네가 거기에 서명까지 했다는 사실도 정말 모르고 있느냐며, 서명이 된 출력물을 보여 주며 확인사살까지 했다. 

나는 회사 사람들이 다 듣도록 목청 높여 얘기했다. 당신들 다 병신 아니냐구! 담배 몇 개비 피웠다고 이런 처사를 받는 게 온당하냐고, 회사에서 피우지 말라 해서 집 앞 한강변에 나가 몇 개비 피운 것밖에 없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냐고. 정기검진 명목으로 소변 검사할 때, 모발 검사 받을 때 수치스럽지 않았냐고. 당신들은 나를 식구,라고 하는데, 당신들 동생이 회사에서 이런 수모를 겪는다면, 그런 회사 당장 때려 치우라 안하겠냐고, 나는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고 말했다.

그러나 인사팀장은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치며 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대현그룹이! 3년간! 수도 없이 금연 켐페인을 벌였는데!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며! 참고 기다렸는데! 처음엔 너 같은 직원들도 많았지만! 패치 부치고! 유혹될까봐 술도 안 마시고! 밤잠 설치면서! 이참에 독한 마음 먹고 모두 다 끊었는데! 왜 너만 버티고 있는 거냐고 이 미친 자식아! 넌 이기적인 새끼야 아주 이기적인 새끼! 4만명의 직원이 너 하나 때문에 쪽팔려하고 있다구 임마!”

그는 주먹으로 얼굴이라도 내리칠 듯 광분해 있었다. 넥타이를 끌었다 당겼다 하며 내 숨을 끊어놓을 태세였다. 그런 광경에 놀란 여직원 둘이 달려 나와 인사팀장을 황급히 말렸다. 괜찮냐며 나를 챙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작정한 듯 멀찍이 입구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뒤돌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모두들 기가 차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동기는 이해한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모두가 똑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4만여 명이 모두 똑같이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다고 해도,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다름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금연에 성공해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하더라도, 나와 같은 또다른 이탈자가 생긴다면 그때도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돌을 내던질 것인가. 공동이 추구하는 가치는 모든 수단이 획일적으로 동일할 때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큰 미래를 지향한다는 대현그룹이 모든 임직원을 금연,이라는 틀로 묶어버린다면, 그것만으로도 대현그룹은 이류, 삼류기업으로 후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흡연이 승진과 우열을 가리는 기준점이 되는 회사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굳게 침묵했다. 그저 하수인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혁명가도 투사도 아니었다. 단 하나, 담배 한 개비를 피고 싶었을 뿐이었다. 누나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나의 투쟁을 더 이상 농담처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누나는 흡연률 제로를 광고 홍보하는 대현그룹의 모든 관련 기사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댓글을 달겠다고 했다. 나는 그것은 아니다 싶어, 고개를 저었지만, 애들을 풀어 직접 처리하겠다고 했다. 갈수록 처량해져가는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럴 때마다 나는 누나에게 화를 냈다. 잘 나가는 과 동기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로 오라고 스카웃 제의를 하였지만, 나는 개미 발톱만큼도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신제품 마케팅 PT를 마쳤을 때, 기립하여 박수치던 대표이사가 생각났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코레일과 협의하여, 200만명이 넘는 귀경객들을 상대로 시음회 이벤트를 성공시켰던 추억도 떠올랐다. MBA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와 대현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해 밤새 토론하였고, 그에게 소개받은 GE의 직원과 이메일로 마케팅 관련 자료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또한 인터넷서점 아마존을 뒤져 세계 유명 CEO의 자서전이나 마케팅 성공 스토리를 원서로 읽었다.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였고,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스왓 분석을 통해 신제품에 대한 문제점과 대응책을 내놓았고, 자꾸 개발자들과 충돌하였지만 절대로 고객의 관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년 동안, 나는 최극점에 목표를 설정하고, 매일 매일 분투했다.

누나는 이렇게까지 투쟁하는 내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누나는 퉁퉁 부은 내 다리를 보면서 속절없이 안타까워했다. 얼음찜질을 하면서, 절대로 쪽팔려하지 말고 당당하라고 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 제대로 싸워줘야 한다며, 믿음도 인정도 없는 더러운 집단이라며 마구 욕을 해댔다. 누나는 포털을 검색해서, 대현그룹의 흡연율 0% 기사가 나오면, 한 사람은 아직도 담배를 피고 있습니다. 거짓광고 마세요,라는 댓글을 달았고, 위선적이며 기만적인 대현그룹을 규탄한다고, 마치 데모대의 주동자처럼 댓글을 남겼다. 또한 토론방을 만들어, 회사 내 전직원 금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주제를 던져 놓고, ‘너무한 처사다’, ‘직원들 담배 다 끊어놓고, 오폐수 버리면 그것도 환경기업이냐’, ‘금연 구역에서도 안 피우고, 한강변에서 피운다는데, 그런 회사 때려치우고 우리 회사로 와라’는 등 토론방은 성난 흡연자들로 인해 부글거렸다. 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해닮은식품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자’고까지 했다. 찬성이 1988명으로, 반대 311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누나는 나 몰래 여론을 움직여서 그룹을 압박할 작정인 듯 나날이 강도를 높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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