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의 날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과 상호작용하시는, 복잡하고 계속 전개되어 가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성경을 어떤 형용사로 바꾸어 다른 묵직한 말(이를테면 남성성, 여성성, 정치학, 경제학, 결혼, 심지어 평등) 앞에 붙일 때, 우리 취향에 맞지 않는 성경의 부분은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단순화하기 위해 성경의 불협화음을 하나의 톤으로 억지로 맞춘다. 복잡하고 때로는 불편한 거룩한 말씀을, 요점 정리하듯 어떤 선언이나 신조로 정리해 버린다. 자주 우리는, 성경이 실제로 말씀하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즉 성경이 말씀했으면 하는 내용에 얽매이고 만다.

나는 ‘성경적 여성성‘을 실험하는 한 해를 보낸 뒤, 그런 것은 없다는 좀 자유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성경은 여성성에 대한 한 가지 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칭송받는 여성들은 전사, 과부, 노예, 자매 아내, 사도, 교사, 첩, 왕비, 이방인, 창녀, 예언자, 어머니 그리고 순교자들이다. 이 여인들의 이야기가 책장 밖으로 뛰어나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일종의 보편적인 이상에 순응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문화와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 - P398

철학자 피터 롤린스Peter Rollins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이 모두 어떤 문화적 상황에 놓인 것이며 따라서 특정한 편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은 단순히 거기서 의미를 추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읽는다는 뜻임을 이해할 수 있다. ••• 하나님에게서 태어났고 따라서 사랑으로 태어난 자로서 그것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편견이다. ••• 이상적인 성경 읽기는, 사랑으로 창조적인 해석을 하는 접근 방식으로 대체된다."

••• 그러므로 우리가 자문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편견으로 읽고 있는가, 판단과 힘, 자기 이익과 탐욕이라는 편견으로 읽고 있는가?
•••
바로 이때문에, 텍스트를 읽을 때 때로 가장 유익한 질문은 ‘그것이 뭐라고 말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 이 사실을 아셨으리라 생각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 P400

‘리더’가 된다는 건 상황 없이는 의미 없는 개념이다. 무엇의 리더인가? ••• 리더십은 목표가 아니다. 리더십은 하나의 역할이다. 지혜와 힘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더십은 아니다. 지혜는 우리가 언제 이끌어야 하는지 분별하게 해 준다. 힘은 지혜를 실천하는데서 나온다. 리더십은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역할이다. 이에 비추어서, 중요한 것은 ‘리더‘가 되고 싶어서 이끄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지혜와 힘이 당신을 리더의 자리로 인도할 때 망치지 않기 위해 그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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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다, 내 말을 더 이상 듣지 말라

사도들은 그들의 편지가 토라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되고 적용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의 깊은 독자라면, 어떤 가르침은 여전히 현대의 교회를 비추고 안내할 말씀이고, 어떤 가르침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인지 분류하는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 - P354

"그렇지요. 주의 깊게 선택한 몇 마디 말은 어떤 강의나 설교보다 훨씬 더 힘이 있어요." 그녀는 말했다. "우리 퀘이커교도들은 이를 ‘무거운 말‘ 이라고 하지요."

무거운 말. 딱 맞는 표현이다. - P376

무엇보다, 묵살당하는 것과 스스로 침묵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아빌라의 테레사, 노르위치의 줄리안, 시에나의 캐서린 같은 여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침묵하는 법을 알았기에, 여성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시대에도 교회에 너무나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침묵 속에서, 나는 힘의 저수지를 찾았다. 거기서 물을 끌어오는 법을 배운다면, 내 말을 더욱 무겁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침묵 속에서 나는 마침내 내 목소리를 찾은 듯하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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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골라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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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라이프˝(Greenlife - http://rachelheldevans.com/greenlife)

유대교에는 ‘자선‘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그 대신 유대인들은 ‘쩨다카tzedakab’를 쓰는데, 이것은 ‘정의‘ 혹은 ‘의‘를 뜻하는 단어다.

‘자선charity‘은 ‘준다‘는 행위 하나만을 함의하는 데 비해, ‘정의justice‘는 올바른 삶을 말한다. 창조 세계를 착취하기보다는 지속하게 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정의는 은사가 아니다. 삶의 방식이다. 유대인의 ‘틱쿤 올람tikkun olam’ 개념, 즉 세상을 고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미6:8) (사58:6-7) (슥7:9-10) (암5:24) - P312

"여성들은 문제가 아니다." 크리스토프와 우던은 썼다. "여성들은 해결책이다. 소녀들이 당하는 역경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라 기회다." - P324

내 생각에 이것은 자선과 정의 사이의 다른 점이다. 정의는 궁핍한 이와 베푸는 이의 이분법을 넘어서, 우리는 모두 서로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두렵고도 아름다운 현실을 직면하는 것을 뜻한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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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주고 양보하기

신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진화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갈 곳을 정해 주는 소위 ‘영적 리더’를 찾는 것이 아니라 긴 여정을 함께할 영적 동반자를 찾게 될 것이다. 결혼은 탱고가 아니라 느린 춤이라는 걸 배울 때, 우리는 누가 주도권을 잡을지 덜 걱정하게 되고, 상대방이 움직이는 미묘한 변화에 발을 맞춰 갈 것이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음악에 맞춰 각자의 몸을 움직이는, 강요되지 않는 리듬이다. - P283

지금 시대의 우리는 알아채시가 어렵지만, 베드로와 바울은 1세기 그리스도인 가정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공동체를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제도의 꼿꼿한 위계질서를 초월하는 공동체, 서로 복종하고 모두가 자유인인 그런 공동체를. - P300

나는 내 남편이 남자이고 내가 여자라서 그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내 ‘자리‘가 그에게 복종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댄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 또한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를 존경한다.

이것은 은혜다. 그리고 우리 둘에게 그건 상호적인 작용이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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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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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는 요근래 인기가 많아서 그래픽노블 빌리는데도 애먹었다. 그림이라 빠르게 넘어갔지만 전체적 상황만 짐작될 뿐 세세한 이야기까지는 캐치하지 못했다. 원작이 그런건지, 만화는 나랑 안맞아서 그런건지, 그냥 구성이 애매했던 건지는 줄글로 읽어봐야겠다. 저번달은 잠언, 이번달은 마태복음을 읽고 있는데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본 1년]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며칠 전 읽은 구절이 인용되는 경험들이 새롭다. 성경해석의 오용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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