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머니스트 선언

p.46

그래서 우머니스트들에게 "우머니쉬"는 혼자서도 삶을 버텨낼 수 있는 책임감 있는 강인한 여성상, 그러면서도 나보다 어린 생명을 돌보고 길러 내는 따듯함과 생기를 잃지 않은 모습을 의미해요.

p.49

이렇게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우머니스트들은 말해 요. "여성을 노새로 응시하는 ‘강한 가부장제‘의 폭력 앞에서도우리는 살아남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왕으로 응시하는 ‘부드러운 가부장제‘는 아예 경험해 본 적도 없다. 이 열악함에도 ‘생존‘을 위한 창조적 전략을 상상하고 실천했던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의 힘이 우리를 지켜 내고 살려 냈다."
이 놀라운 ‘살고 살리는 힘에 대한 우머니스트들의 찬양은 ‘흑인 여성‘의 열악한 환경에서 읽어 내야 바른 메시지를 얻을 수있다는 생각입니다.

p.50

페미니즘 운동의 지도자들은 반드시 사랑과 공감을 보여 줄능력이 있어야 하며, 행동으로 그런 사랑을 드러낼 수 있어야하며, 대화를 성숙하게 끌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선구적인페미니즘은 현명함과 사랑이 넘치는 정치다. 페미니즘 정치의 정신은 지배를 종식하기 위한 헌신이다. 사랑은 결코 지배와 강압에 기반한 관계에 뿌리내릴 수 없다.…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페미니스트 사고와 실천은 동반자 관계와 육아를 통한 상호 성장과 자아실현의 가치를 강조한다. 누구나 욕구를 존중받고, 누구나 권리를 누리고, 누구 든 예속이나 학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관계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가부장제가 관계의 구조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모든 것과 반대된다. 상호 동반자 관계야말로 사랑의 토대다.

p.52

면, 이 질서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꼭 닮아 있지 않나요?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면, 그래도 대부분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언어를 가지지 못한 시스템 안에서 오랫동안 배제되고 박탈되었던 경험으로, 그러나 여성만이 아니라 같이 배제, 박탈을 경험한 자들과 연대하며, 함께 문명적으로 새로운것을 만들어 내려는 사상과 실천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 나라 비전과 다르지 않아요.

p.57-58

물론 ‘우머니즘‘이란 것이 개인의 실천 면에서 자칫 잘못하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힘을 싣게 되는 수도 있어요.
같이 가고 살리려 하다 보니 상황은 그대로 둔 채 나만 씩씩하게 모든 것을 감당하고 말기 쉽죠. 결국은 전통적인 여성이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수행하면서요. 저 역시 자기반성이 되는지점이기도 해요. 머릿속에는 페미니즘의 여러 선택지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우머니즘적 살림으로 공동체를 지켜 내고 버티다 보니 결국 내가 속한 곳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것을 종종 체험하거든요. 이런 방식으로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 페미니즘’이 되었을 때 그게 과연 대안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우리가 꼭 물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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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페미니즘

권리

p.37

그녀들은 ‘남자와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려고 했죠.

p.39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이 두 번째 성, 그러니까 종속적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었고 남성의 여성 응시를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독립된 경제 주체가 아니었다는것이죠.

p.40-41

현 체제에서 남성과 여성의 법적·제도적 ‘평등‘만 성취되면 페미니즘은 종료하는 걸까요? 실제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는 지점입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바 ‘여자 개인’이 어느덧 남성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마치 ‘다 이루었다‘가 되어버리는 거니까요. "명예 남성"이 되는 것이죠.

[각주]
남성들이 만든 구조 안에서 자기 자리를 얻으려다 보니 내면적 성품은 물론 외모까지 남성적이 되었던 경우가 있었죠.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옷차림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어요. 매우 중성적인데, 물론 남자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공적힘을 갖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질문도 듭니다. 어쩌면 그녀들조차도 남성들이 인간의 대표적 표준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지.

p.42

다만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공동 주장은 이래요. "시스템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그 안에서 한 개인이 권리를 얻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으로 여성해방은 불가능하다!" ••• 결국 ‘직업 선택과 자유 경쟁’이라는 근대적 이상을 여자고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모든 여성들이 그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님을 지적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생겨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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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동역자의 주도 하에 교회 안에 페미니즘 독서모임이 만들어졌다. 비록 매우 조심스러워서 청년부 목사님께만 허락을 구하고 1. 자매 2. 98또래 이상(현재 청년부 막내는 00또래다)의 청년부 지체들만 알음알음 모이게 됐지만 이러한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둔다. 교회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주제들이 있는데(안타깝게도 내가 관심있는 사회문제들 대부분..) 이번 페미니즘 모임을 통해서 더욱 다양한 주제의 논의들이 공론화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모임의 책으로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을 약 한달 반 동안 같이 읽고 토의하게 된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책 선정이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청어람의 강의록을 편집한 것이라는 점과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 설명으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첫번째 책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두번째 모임 전날)까지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들을 메모하다보니 페미니즘과 기독교에 대한 다른 의견들도 궁금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책들이 나와서 이렇게 정리해논다.

찾아보니 아무래도 현재 읽고 있는 책의 저자인 ‘백소영’님과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의 ‘양혜원’님이 유명하신 것 같다. 북플 후기들을 읽어보니 방향성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페미니즘과 기독교>를 쓰신 ‘강남순’님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아마 페이스북 같은데서 책소개나 글을 소개받았을 지도 모른다.

모두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졸업해야한다..) 이 모임이 단발성이 아니게 된다면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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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성경과 페미니즘은 양립가능?

성경을 우리는 기독교 경전이라고 고백합니다. 경전, 경줄(세로줄)이 되는 책이란 의미입니다. 살면서 꼭 붙들어야 하는책이죠. 한자 ‘경(經)자가 힌트를 주었어요. 이 한자는 ‘실을 세로로 고정해 놓고 하는 작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네, 베 짜기예요. 성경은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의 말씀을 경줄 삼아, 자신들의 삶과 언어로 위줄(가로줄) 짜기를 해 놓은 책이죠. 그렇다면 사회학이 작동하는 부분은 바로 이 위줄에 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의 의미와 배경을 살피는 일이죠. 이를 잘살펴야 경줄도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요. 다시 말해 위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철저히 해야, 신학적 성찰의 내용인 경줄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회학은 과거의 위줄찾기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 우리가 사는 외부 환경은 어떠한지, 이 상황에서 경줄을 꼭 붙잡고 우리가 짜야 하는 위줄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성찰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죠.

p.18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도 배제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 내신 분입니다. 하물며 ‘여성‘은 어떻겠습니까? 여자를 ‘집안의 재산‘ 쯤으로 여기며 그녀의 생살여탈권까지 남자가 자치하던 강한 가부장제(전근대적 가부장제) 한 중간에 사시면서도, 여자에게는 토라를 가르치지 말라는 율법학자들의 권고가 ‘문화적 당연‘이던 시절에 사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여성을 한 인간으로 응시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를 가르치셨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제대로 거하는 사람에게 배제나 포기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p.22 페미니즘이 페미닌이어야 하는 이유

여성들은 계속 가부장적 시스템 안에 있었고, 이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수고로운 일을 해 왔지만, 본인들의 역사와 본인들의 언어가 없었던 가장 많은 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부장제 ‘밖‘의 시스템을 상상하려면,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려면, 핵심어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종적으로는 흑인이,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언어를 가지지 않은 역사가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언어를 빼앗겼던 사람들은 역시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p.28 오늘날 대학에서 사라지고 있는 총여학생회. 여학생회의 역할이 학생회로 충분히 넘어갔는가? 이제 대학 내에서 여성보다는 외국인 유학생 등의 소수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학생회도 생겨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퀄리즘‘이라고 했을 때 사라지는 것은 배제되어 왔던 희생자의 이름이에요. 물론 지향점은 같습니다. 만인의 평등! 그러나 언어를 ‘보편어’로 바꿀 때, 남성/여성 구도에서 여성들이 당해 왔던 희생의 흔적이 사라지게 되거든요. 백인/흑인, 자본가/노동가 구도에서도 그러하듯 누구의 목소리가 빼앗겨 왔는가를 강조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것은 텍스트와 컨텍스트에서 그동안 배제되었던 여성의 경험, 시각, 주장, 의미, 해석을 포함시키는 것이에요.

p.31 미러링의 의미

요즘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시도하는 미러링의 사회학적 기능은 이런 거예요. 불편하게 만드는 것. "그동안 ‘문화적 당연‘의 이름으로 너희가 우리에게 행해 온 것을 되돌려 주마." 이것이 페미니즘의 최종 지점은 아니지만, 그동안 여성들이 얼마나 불편해 왔는지 깨닫게 하는 수단으로서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p.32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신체적 지적 등의 모든 능력을 말하는 걸까? 교회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 중 신체적 능력의 차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울스톤크래프트의 주장에서 이미 파악했겠지만, ‘첫 번째 페미니스트들’의 강조점은 "우리는 남자들과 동등하다!"는 것이었어요. "너희들이 하는 것은 우리도 다 할 수 있다. 여자들만의 영역, 남자들만의 영역이란 없다. 능력이 같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시민혁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p.35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끼는 남성들의 사고

마치 여자들을 엄청 위해 주고 여성성을 낭만화하여 보호하는 것 같지만, 결국 "여성성‘은 ‘생래적’인 것이니, 여성들이여 괜히 머리 쓰지 말고, 여성 본성을 망치지 말고, 남자들의 보호 아래서 딱 사랑받는 모습으로 살아가십시오" 라는 게 ‘부드러운 가부장들‘의 주장인 겁니다.
이에 저항하여 나온 목소리가 페미니즘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생각할 때 페미니스트들은 사랑받지 못해서 저러는 것으로 해석해 버리는 경향이 있죠. "여자는 왕자가 필요 없다"는 말에 남성들이 왜 그렇게 격분할까요? ••• 하지만 그들이 볼 때 이건 ‘남성성‘에 대한 모욕인 겁니다. 여성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남 성‘으로서의 내 존재 의미를 위협하는 것이죠. 근대 사회에서
‘남성‘이란 낭만적으로 여성을 보호하면서 자기 확장을 시도하는 건데, 이걸 못하게 하는 여자들이라니! ••• 사랑을 한번 받아 본다면 그게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편리하며, 얼마나 안전한지 알기 때문에 결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지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둘은 별도입니다. 사랑받는 존재인 경험과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 말이에요. 페미니스트 선언은, 내가 내 삶의 주체로서 나를 해석할 수있는 권리와 권위의 문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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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세]

p.20
살구나무와 딸기 넝쿨의 숨소리가 공기 중에 희미하게 깔려 있는 것 같았다.

p.27
소녀는 이 세상의 움직임들을 한 발자국 앞서 눈치 채는 것 같다.

p.56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너무 다르죠. 삼촌 말대로 지금은 자기 나름대로의 책임감을 느꼈던 시대와는 달라요.

[비티]

p.99-100
어떻게 더 쉽고 자연스럽게 설명할까? 지금 학교는 더 많은 야구선수, 높이뛰기 선수, 레이서, 땜장이, 강도, 날치기꾼, 비행사와 수영선수를 양산해 내고 있지. 연구원이나 비평가, 지식인, 그리고 상상력 이 풍부한 창작가들 대신 말일세.
•••
우리 전부가 똑같은 인간이 되어야 했거든. 헌법에도 나와 있듯 사람들은 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또 사람들은 전부 똑같은 인간이 되도록 길들여지지. 우린 모두 서로의 거울이야. 그렇게되면 행복해지는 거지. 움츠러들거나 스스로에 대립되는 판결을 내리는 장애물이 없으니까. 그래, 바로 그렇기 때문이야! 책이란 옆집에 숨겨 놓은 장전된 권총이야. 태워 버려야 돼. 무기에서 탄환을 빼내야 한다고.
•••
(방화수는) 우리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열등한 인간이 된다는 두려움, 그 타당하고 정당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거지. 정부 검열관이나 판사, 집행관 같은 파수꾼, 몬태그. 그게 바로 자네고, 나라는 존재야.

p.100-101
스스로한테 물어보게. 결국 우리가 이 나라에 바라는 게 뭔가?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지길 원해. 내 말이 맞지 않은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나? 사람들은 말하지. 난 행복해지고 싶어라고 말야. 글쎄, 사람들은 불행한가? 우리는 사람들한테 감동과 즐거움을 제공했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도 그게 전부고, 쾌락, 자극? 자네도 인정해야만 돼. 우리 문화는 이미 이런 것을 많이 제공했어.
•••
불은 현명하고 깨끗하지.

p.102-103
못이나 나무 없이는 집을 지을 수 없지. 집을 갖고 싶지 않다면 못이나 나무를 숨겨 버리면 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불행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양면을 가진 질문을 해서 그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대답이 하나만 나올 수 있는 질문만 던지라고. 물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게 제일 낫지. 전쟁 같은 일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하는 거야. 무능하고 불안하고 세금만 많이 걷는 정부라고 해도 그나마 있는 편이 사람들이 걱정 근심에 싸인 것보단 나은법이지. 몬태그, 평화라고.
•••
사람들한테 해석이 필요 없는 정보를 잔뜩 집어넣거나 속이 꽉 찼다고 느끼도록 사실들을 주입시켜야 돼. 새로 얻은 정보 때문에 훌륭해졌다고 느끼도록 말이야. 그리고 나면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움직이지 않고도 운동감을 느끼게 될 테지. 그리고 행복해지는 거야. 그렇게 주입된 ‘사실’들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까.

[파버]

p.136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책이 아니야! 당신은 낡은 축음기 음반에서, 낡은 영화 필름에서,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에게서 책에서 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자연 속에서, 그리고 당신 자신 속에서 찾아보시오. 책이란 단지 많은 것들을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의 한 종류일 따름이니까. 우리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을 담아 두는것이지. 책 자체에는 전혀 신비스럽거나 마술적인 매력이 없소. 그 매력은 오로지 책이 말하는 내용에 있는 거요.
•••
이제 알겠소? 왜 책들이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책들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숨구멍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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