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3 성경과 페미니즘은 양립가능?

성경을 우리는 기독교 경전이라고 고백합니다. 경전, 경줄(세로줄)이 되는 책이란 의미입니다. 살면서 꼭 붙들어야 하는책이죠. 한자 ‘경(經)자가 힌트를 주었어요. 이 한자는 ‘실을 세로로 고정해 놓고 하는 작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네, 베 짜기예요. 성경은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의 말씀을 경줄 삼아, 자신들의 삶과 언어로 위줄(가로줄) 짜기를 해 놓은 책이죠. 그렇다면 사회학이 작동하는 부분은 바로 이 위줄에 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의 의미와 배경을 살피는 일이죠. 이를 잘살펴야 경줄도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요. 다시 말해 위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철저히 해야, 신학적 성찰의 내용인 경줄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회학은 과거의 위줄찾기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 우리가 사는 외부 환경은 어떠한지, 이 상황에서 경줄을 꼭 붙잡고 우리가 짜야 하는 위줄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성찰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죠.

p.18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도 배제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 내신 분입니다. 하물며 ‘여성‘은 어떻겠습니까? 여자를 ‘집안의 재산‘ 쯤으로 여기며 그녀의 생살여탈권까지 남자가 자치하던 강한 가부장제(전근대적 가부장제) 한 중간에 사시면서도, 여자에게는 토라를 가르치지 말라는 율법학자들의 권고가 ‘문화적 당연‘이던 시절에 사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여성을 한 인간으로 응시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를 가르치셨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제대로 거하는 사람에게 배제나 포기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p.22 페미니즘이 페미닌이어야 하는 이유

여성들은 계속 가부장적 시스템 안에 있었고, 이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수고로운 일을 해 왔지만, 본인들의 역사와 본인들의 언어가 없었던 가장 많은 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부장제 ‘밖‘의 시스템을 상상하려면,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려면, 핵심어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종적으로는 흑인이,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언어를 가지지 않은 역사가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언어를 빼앗겼던 사람들은 역시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p.28 오늘날 대학에서 사라지고 있는 총여학생회. 여학생회의 역할이 학생회로 충분히 넘어갔는가? 이제 대학 내에서 여성보다는 외국인 유학생 등의 소수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학생회도 생겨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퀄리즘‘이라고 했을 때 사라지는 것은 배제되어 왔던 희생자의 이름이에요. 물론 지향점은 같습니다. 만인의 평등! 그러나 언어를 ‘보편어’로 바꿀 때, 남성/여성 구도에서 여성들이 당해 왔던 희생의 흔적이 사라지게 되거든요. 백인/흑인, 자본가/노동가 구도에서도 그러하듯 누구의 목소리가 빼앗겨 왔는가를 강조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것은 텍스트와 컨텍스트에서 그동안 배제되었던 여성의 경험, 시각, 주장, 의미, 해석을 포함시키는 것이에요.

p.31 미러링의 의미

요즘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시도하는 미러링의 사회학적 기능은 이런 거예요. 불편하게 만드는 것. "그동안 ‘문화적 당연‘의 이름으로 너희가 우리에게 행해 온 것을 되돌려 주마." 이것이 페미니즘의 최종 지점은 아니지만, 그동안 여성들이 얼마나 불편해 왔는지 깨닫게 하는 수단으로서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p.32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신체적 지적 등의 모든 능력을 말하는 걸까? 교회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 중 신체적 능력의 차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울스톤크래프트의 주장에서 이미 파악했겠지만, ‘첫 번째 페미니스트들’의 강조점은 "우리는 남자들과 동등하다!"는 것이었어요. "너희들이 하는 것은 우리도 다 할 수 있다. 여자들만의 영역, 남자들만의 영역이란 없다. 능력이 같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시민혁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p.35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끼는 남성들의 사고

마치 여자들을 엄청 위해 주고 여성성을 낭만화하여 보호하는 것 같지만, 결국 "여성성‘은 ‘생래적’인 것이니, 여성들이여 괜히 머리 쓰지 말고, 여성 본성을 망치지 말고, 남자들의 보호 아래서 딱 사랑받는 모습으로 살아가십시오" 라는 게 ‘부드러운 가부장들‘의 주장인 겁니다.
이에 저항하여 나온 목소리가 페미니즘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생각할 때 페미니스트들은 사랑받지 못해서 저러는 것으로 해석해 버리는 경향이 있죠. "여자는 왕자가 필요 없다"는 말에 남성들이 왜 그렇게 격분할까요? ••• 하지만 그들이 볼 때 이건 ‘남성성‘에 대한 모욕인 겁니다. 여성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남 성‘으로서의 내 존재 의미를 위협하는 것이죠. 근대 사회에서
‘남성‘이란 낭만적으로 여성을 보호하면서 자기 확장을 시도하는 건데, 이걸 못하게 하는 여자들이라니! ••• 사랑을 한번 받아 본다면 그게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편리하며, 얼마나 안전한지 알기 때문에 결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지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둘은 별도입니다. 사랑받는 존재인 경험과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 말이에요. 페미니스트 선언은, 내가 내 삶의 주체로서 나를 해석할 수있는 권리와 권위의 문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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